278편 - 천뇌
초절정이라는 경지는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궁극의 경지였다.
사실 그 윗단계로는 화경의 경지가 있지만 그런 경지를 개척하는 것은 사실상 가능했기에 무림인이라면 초절정의 경지라도 되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인은 초절정고수가 되었으니 모든것을 얻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마인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고수급의 경지가 대부분이고 절정고수는 무공과 그동안 쌓은 명성에 따라 마두라 불렀으며, 초절정고수는 대마두라 불렀다.
그랬기에 마인이 아니라 마두라 불려야 했고 지금의 경지는 대마두라 칭해야 했던 것이다.
내공으로 따지자면 마인의 내공은 초절정 경지에 근접했다. 그리고 원래 무위가 절정고수였기에 자신이 가진 힘을 어느정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인은 도를 휘두르며 장수를 압박했다.
"죽어라."
마인은 장수의 무공 수위가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했는지 상당히 여유있는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장수는 이미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상태다. 마인의 도를 막는 것은 눈을 감고도 가능하다.
거기다 눈앞의 녀석은 내공의 수위만이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상태였다. 깨달음과 무학에 대한 이해는 장수를 따를 수 없다.
생각같아선 단번에 쳐죽일 수 있는 수위지만 오히려 장수가 택한 것은 회피였다.
그는 마치 간신히 적의 공격을 받아내는 듯한 인상을 남기며 몸을 회피했다.
장수가 필요한 것은 마두를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크하하하, 죽어라!”
마치 일방적으로 마인이 장수를 밀어붙이는듯했다.
누가 봐도 장수는 피하는데 급급해 보였다.
그리고 눈앞의 마인은 초절정 고수처럼 펼치는 무위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정도 무위라면 정파의 무사들 중에는 이미 상대할 만한 자가 없을 것이다.
마인은 내공을 아낌없이 쓰며 장수를 몰아 붙였다. 하지만 잡힐 듯 하면서도 장수는 잡히지 않았기에 마인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죽어라. 질긴 녀석아.”
마인은 말과 함께 강수를 펼치기 시작했다.
도의 궤도에 따라 짙은 도기가 장수의 몸을 절단할 듯한 기세로 날아왔다.
그러나 장수는 그대로 신형을 움직여 도기를 피해 냈고 그대로 다리를 앞으로 뻗어 마인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이놈!”
마인은 흥분한 듯 계속해서 살초를 퍼부었다. 하지만 장수는 닿을 듯 말 듯 간신히 도초를 피해내고 있었다.
그 둘의 결투가 길어질듯 하자 마인 중 한명이 외쳤다.
“여기는 녀석에게 맡기고 우리는 공주를 얻으러 간다!”
“와!!!”
말과 함께 마인들은 공주가 있는 마차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장수는 마음이 급해졋다.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데…….”
눈앞의 녀석이 초절정고수급 이였기에 단순히 제압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정파의 무사들이 필사적으로 마인들의 앞을 막았다.
“녀석들을 공주가 있는 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라.”
고함소리에 장수는 갑갑함을 느꼈다.
“같이 싸워야지, 왜 같이 안싸워?”
지금 상황에서 정파의 고수들과 황실의 고수들이 힘을 합쳐야 승산이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마인들을 당해내기 힘들어 보였다.
사실 원래라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없었다. 천하에 누가 절정고수를 일회용으로 쓰겠는가?
그리고 절정고수들도 머리가 있기에 누가 자폭용이 될것을 알면서도 순순히 응하겠는가?
하지만 혈교의 행사는 그것을 가능케 했다. 심지어 마인들 마저도 속여 내어 그들을 사지로 몰아내면서 자신의 세력은 드러내지 조차 않고 있다.
이 얼마나 무서운 간계인가!
장수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황을 보던 중 마인중 하나가 무엇인가를 꺼냈다. 장수는 그것을 보자마자 상황을 파악했다.
'저것은 천뇌잖아?'
무림을 재패하기 위해 혈교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하던 폭탄이 바로 천뇌다.
혈교는 효과적으로, 그리고 간단하게 적을 살상하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수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그렇게 하여 발명된 것이 바로 천뇌라고 할 수 있었다.
과거에 장수가 혈교에 있을 시절에는 천뇌가 아닌 그보다 약한 폭탄으로 임무를 수행해 왔었다.
그러나 점차 장수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그들이 만드는 ‘천뇌’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말로만 들어왔던 셈이다.
천뇌는 휴대성이 간편하면서 조작도 쉬웠고 더구나 폭발력이 대단한 폭탄이다.
하지만 어떤 병기나 그렇듯이 만드는데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런 귀중한 폭탄을 마인들에게 내 준 것을 보면 이번일에 혈교가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천뇌에 혈단이라! 이번 일에 교가 이번 일에 공을 많이 들였구나.’
이번일은 철저한 준비를 한 혈교의 계획대로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정도로 준비를 했는데 장수로서도 막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장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뇌를 공주가 있는 곳에 던지면 공주를 호위하던 황실의 고수들이 다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폭발력에 공주가 죽을수도 있었다.
그래서 정파의 무사들이 마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구나.’
혈교의 계획대로 움직이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랬기에 장수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어쩔 수 없군. 장풍을 쓰자.’
장풍이라면 눈앞의 녀석을 충분히 간단히 제압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냥 장풍이 아니다.
그 속에 번천장의 깨달음이 들어간다면 눈앞의 마인 따윈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크하하하! 죽어라!”
마인은 미친 듯이 도를 휘둘렀다.
혈단을 복용한 자는 한 가지 특성을 더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내공을 사용하면 할수록 화의 기운이 몸 안에 쌓인다는 점이다. 그렇게 쌓인 화기가 머리에 침투하게 되면 광기가 생기면서 강한 호전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 호전성은 눈앞에 보이려는 것을 모두 파괴하려는 광기에 가까웠다.
원래라면 마인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발작을 일으켜야 하지만 장수와 결투를 벌이면서 필요이상으로 과다한 내공을 소모했기에 발작의 시간이 당겨진 것이다.
바람소리가 사방으로 울렸고 필요 이상의 내공이 허공에 흝뿌려지면서 도의 끝부분에 아지랑이 처럼 실같은 검은 선이 뻗어 나왔다.
그것이 바로 도사였다.
도사는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야만 사용할 수 있는 고등의 무학으로서 도사에 닿는 모든 것을 엄청난 절삭력으로 잘라 버리는 효능이 있었다.
더구나 도사를 펼친 상태였기에 도의 속도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진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장수가 접근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일이였다.
장수는 천천히 마인의 약점을 살폈다.
“지금이다.”
찰나와도 같은 짧은 순간 마인의 초식에 헛점이 보이자마자 장수는 본능적으로 손바닥에 기운을 집중했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뜨거운 기운이 뻗어 나갔다.
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도가 하늘로 날아갔다.
그와 함께 자신이 무기가 아무것도 부딪히지 않았는데 하늘로 올라가자 마인이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짧은 순간 이미 장수는 마인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리곤 단전을 향해 손바닥을 뻗어 암경을 발사했다.
쿵
그리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암경이 단전으로 침투해 그대로 뭉개버리는 소리였다.
마인은 일순간 내공을 상실하자 공허함을 느꼈다.
“끄으으으억!”
이미 기가 미칠 듯이 팽창하는 상황이었고 암경이 그 안을 뒤 흔들어 놓자 마치 물을 쌓은 둑이 터지듯이 마인의 전신이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물론 마인의 무공이 기본부터 충실히 수련한 정종의 무학이라면 수습할 방도가 있겠지만 그는 그러한 수준조차 되지 못했다.
슈우욱
장수의 손이 또 한번 장력을 발출했다.
이번에는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마인의 머리는 그대로 깨지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 황궁과 무림맹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도록 가능한 힘을 아끼며 싸워왔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천뇌가 터지게 된다면 그건 정말 죽도 밥도 안 된다.
아까 그 마인은 이미 손에 천뇌를 쥔 상태였다. 역시나 아까전의 천뇌의 위력에 놀란 상태였는지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파괴력에 놀라서 어느 정도 위축이 된듯했다.
마인은 천뇌를 던질 위치를 생각하고 있었다.
공주를 죽이지 않으면서 황실의 고수들에게는 상당한 피해를 주면서 마인들에게는 안전할 만한 장소였다.
원래라면 그런 것따윈 신경도 쓰지 않을 테지만 눈앞에서 천뇌가 터지는 모습을 보았기에 주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 죽어라!"
마인은 웃으며 천뇌를 던질 준비를 했다.
마인의 주변에는 마인들 밖에 없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정파의 무사들과 황실의 고수들이 있었기에 마인이 던지는 것을 막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장수는 마음이 급했다.
저게 공주가 있는 마차로 떨어지면 모든 게 끝이였다. 공주가 운 나쁘게 죽기라도 한다면 바로 정마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아니 그 보다 더한 상황도 일어날 수 있다.
게다가 이미 전장에 마인이 등장한 상태였다.
지금 상황만으로도 마교의 개입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된다.
그렇게 되서 마교와 무림맹 그리고 황실이 싸우다 지칠때가 되면 혈교가 모습을 드러내어 천하를 장악할 것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내공을 모으자.’
장풍이란 무적의 기술이 아니다.
또한 장수의 경지로는 언거리까지 충격을 줄수 없었다.
그리고 먼거리까지 장풍이 날라간다고 해도 원하는 파괴력을 낼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다곤 하더라도 장수가 할 수 있는 마인을 막을 방법은 장풍을 날리는 것 뿐이다.
‘제발 되라.’
장수는 단전의 내공을 잔뜩 모아 혈도를 통해 손바닥에 모았다.
무리해서 공력을 운기하여 혈도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지만 천뇌가 폭발하는 것보다는 혈도가 터지는 쪽이 나아 보였다.
그는 번천장의 깨달음과 흑룡장의 요령 그리고 스승 유운의 가르침을 모두 모아 손바닥 하나에 모았다. 장수의 손바닥에 모인 기운이 동그랗게 말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장풍!”
장수는 크게 외치며 몸속의 공력으로 힘을 보탰다.
그러면서 손바닥에 모인 기운을 밖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 길쭉하게 내공의 덩어리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백룡과도 같았다.
장수가 날린 것은 장풍이었지만 보통의 장풍이 아니다. 마치 백룡과도 같은 형상의 내공 덩어리는 그대로 하늘을 유영하면서 빠르게 마인을 향해 날아갔다.
“이,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