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편 - 번천장의 위력
뚱보가 날아간 곳에 있던 병사들 십여 명이 한꺼번에 깔렸다. 그들은 아마 중상을 입거나 재수 없는 자는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뚱보는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도 깔린 병사들을 손으로 잡았는데 그 사이에 흡성대법을 통해 병사들의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장수는 천천히 자신을 구한 자를 바라보았다. 바로 환관이었다. 운기가 끝난 듯이 혈색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아까보다 좋다는 것이지 하얀 얼굴을 보면 상태가 완전히 호전된 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괜찮은가?”
환관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인.”
장수의 말에 환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상대야. 하지만 자네와 내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야. 아까 발목을 다치게 한 것은 잘했네.”
뚱보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임시방편이었다.
그리고 저렇게 일직선으로 달려드는 공격은 예측하기 쉬웠다. 아까처럼 공격한다면 상대하기 힘들겠지만 지금처럼 다리가 다친 상태에서 온몸을 이용해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하기가 아까보다 쉬웠다.
“감사합니다, 대인.”
환관은 장수를 아는 듯했다. 그랬기에 서슴없이 말을 하는 듯했다.
“녀석을 빠른 시간에 죽여야 하네. 마교의 준비는 이게 끝이 아닐 거야. 그러니 뚱보를 막고 저쪽에서 기회를 보는 마인을 처리해야 하네.”
마교의 공격은 이번이 끝이었다. 아니, 혈교의 공격은 이번이 끝이었다.
이번에 벌인 일로 더 이상 혈교에 자객이나 혈단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고수급 자객이나 경지를 넘게 해주는 혈단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당분간은 제조에만 신경을 쓴다고 해도 얼마간은 같은 방법을 쓰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눈앞의 뚱보는 폭인이었다.
걸어 다니는 폭탄인 것이다. 더구나 그 위력은 감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장수로서는 예측하건대 작은 산은 우습게 부술 거라 생각됐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력이 강할 수도 있었다.
더구나 체형을 보면 얼마나 많은 자들을 흡성대법으로 내공화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폭발력도 엄청날 것이다. 혈교로서는 폭인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생각한 수가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장수는 환관을 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얼굴을 쳐다볼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뚱보를 해치우는 게 먼저였다.
“그런데 마교에서 어떻게 저런 괴물을 만들었지? 그리고 저런 괴물을 전쟁에 쓴다면 상대가 어렵겠군.”
장수 역시 환관의 말에 일부는 동의를 했다. 하지만 전쟁에 쓰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인은 양날의 칼이었다.
눈앞의 폭인은 이성을 상실한 상태였기에 명령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랬기에 방금 전에 아군이라 할 수 있는 자객도 흡성대법을 통해 흡수한 했다.
명령을 듣지 않는 괴물은 하등 쓸모도 없는 녀석이었다. 더구나 폭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소용된다. 그랬기에 혈교에서도 쉽게 만들지 못한다. 그랬기에 사실 쓰기에 만만하지는 않았다.
호신강기나 반탄강기 그리고 막강한 체력이나 재생력은 우연한 결과로 얻은 산물일 것이다.
더 중요한 능력은 바로 폭발력이었다. 이렇게나 강한 적이 폭발까지 하니 혈교로서는 무서운 괴물을 만들어 내었다 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대인.”
환관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했다.
“이번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생각도 못했네. 이런 괴물을 상대로 하다니 믿지 못할 일이야.”
“예.”
장수와 환관이 얘기를 하는 동안에 뚱보는 이빨을 보이며 인상을 썼다. 거기다 숨결이 거칠어진 것을 보니 흥분한 것으로 보였다.
‘큰일났구나.’
이성을 상실한 뚱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그랬기에 장수로서는 뚱보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도망을 쳤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더구나 언제 폭발할지 몰랐기에 뚱보를 예민하게 관찰해야 해서 더욱 긴장감이 들었다.
“간다!”
환관의 말이 신호였다. 환관은 아까처럼 상승의 절기를 아낌없이 쏟아 부으며 뚱보를 압박했다.
그리고 장수 역시 태극권을 펼치며 뚱보의 퇴로를 차단했다. 그러면서 내공이 생기는 대로 장풍과 장력을 뚱보에게 선사했다.
전세는 유리해졌다. 두 명의 초절정고수가 힘을 합쳐 상대해서인지 뚱보가 점점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장수는 움직이면서 통증을 느꼈다. 방금 전에 깔리면서 내장을 다쳤기 때문이다.
지금 상태에서 장수로서는 휴식을 취해야 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죽든 살든 뚱보를 몰아붙여야 했다.
환관은 조금도 지치지 않은 듯이 아까보다 더 극랄한 검법을 펼치며 뚱보의 급소를 노렸다. 그 덕분에 뚱보의 몸에서 나는 피는 더욱 많아졌다.
이대로라면 뚱보를 죽일 수도 있을 듯이 보였다.
그랬기에 장수는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장수와 환관의 귀에 믿을 수 없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 공주가 있다. 여기다.”
마인의 목소리였다. 음탕하면서 괴의한 목소리를 낼 만한 자는 마인뿐이었다.
마인의 목소리와 함께 여자의 비명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장수는 자신도 모르게 뒤돌아보았다. 그러자 군복을 입은 자를 향해 마인들이 소리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군복을 입은 병사의 몸이 지나치게 호리했다. 그리고 외모가 너무 병약해 보였다.
분명 병사는 여자였다. 하지만 여자는 병사가 될 수가 없다.
무림인이야 여자도 될 수 있지만 병사들은 철저하게 남자만 뽑는다.
물론 상급지휘관인 장수로야 간혹 뽑는 경우가 있지만 여자를 병사로 뽑는 경우는 없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서 군복을 입은 여자라면 공주일 수밖에 없었다.
비명 소리와 함께 마인들이 공주를 공격했지만 그 순간 옆에 있던 자가 보호해 주었다. 바로 다른 초절정고수였다. 그자 역시 군복을 입었는데 단검으로 마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공주를 보호하고 있는 초절정고수는 짧은 단검으로 마인들을 여유롭게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연약한 공주를 보호하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리고 상대하는 마인들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원래 절정고수였다가 이번에 자혈단을 복용하고 초절정급에 오른 마인들도 있기에 방심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그 외의 마인들 역시 고수의 경지에 있었고 절정고수에 가까운 내공을 지녔기에 얕잡아볼 수 없었다.
“젠장.”
환관은 쇳소리를 냈다. 완벽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간을 끌어줄 공주의 변장이 단숨에 발각될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그런데 너무 쉽게 발각이 되었기에 환관으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공주를 발견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바로 병사들이었다. 다른 자들처럼 결사적으로 침입자를 막던 병사 중에 한 명이 하던 일을 멈추고 품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바로 피리였다. 병사는 피리를 꺼내더니 그대로 불기 시작했다.
“삐리리리리리리~~.”
난데없는 피리 소리가 나자 모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무시했다.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래 군대에서는 다양한 신호로 대군을 움직인다. 보통 북이나 뿔피리 깃발 등을 이용했기에 피리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장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안 돼.”
피리 소리는 뚱보를 폭인으로 만드는 소리였다. 귀를 통해 내기를 흔들어 강제로 폭발시키는 것으로 이제 얼마 뒤면 뚱보는 폭탄이 될 것이다.
장수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손으로 쥐어 잡자 환관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짓이냐?”
뚱보의 무위는 무서울 정도였다. 가히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머리를 짜니 환관으로서는 이상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장수는 피리 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날렸다.
“녀석을 죽여야 해.”
뚱보는 둘째 문제였다. 지금은 피리를 부는 녀석을 가장 먼저 제거하는 게 중요했다.
장수는 달려가면서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병사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긴 병사를 세뇌시키면 되는 것이니 어려울 게 없는 일이었다. 세뇌하면서 병사들에게 조건이 갖추어지면 행동하도록 만들면 된다.
장수는 달려가면서 손바닥에 기운을 모았다. 그리고 병사를 향해 날렸다.
펑
병사는 단 한 방에 머리가 터져 죽었다.
“휴…….”
장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폭발이 일어나는 것은 막은 것이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초절정고수가 지키고 있지만 어서 빨리 공주를 구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안심도 잠깐이었다. 장수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수십 명의 병사들이 품속에서 피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각자 피리를 입으로 가져간 후에 불기 시작했다.
“이…… 이런…….”
장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렇게 철저하게 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병사 수십 명이 한꺼번에 피리를 불면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피리를 준비하던 자는 한두 명이 아니었다. 더구나 여행을 떠나기 전에 병사들을 세뇌했을 것이니 혈교의 준비성에 놀랄 뿐이다.
혈교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을 쓴 것이다. 더구나 수십 명이나 준비를 한 것을 보면 혈교가 이번 일에 들인 공을 알 수가 있었다.
사방에 있는 병사들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그리고 그 틈에 폭인이 폭발해 버릴 것이다.
피리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자 뚱보는 괴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의 몸이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환관은 상황을 미처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위기임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쏜살같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괴물의 몸이 부풀어 오른다. 어쩌면 위험한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환관으로서는 상황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공주를 모시는 상황이었기에 최악의 상황도 생각해야 했다.
환관의 말에 근처에 있던 병사들과 무사들이 분분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더구나 상황이 안 좋아 보였기에 많이 물러나는 자들도 있었다. 환관은 바로 공주를 향해 달려갔다. 마인들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장수는 인상을 썼다.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장수는 미친 듯이 달려갔다. 공주를 데리고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뚱보의 옆을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것이다.
‘스승님은 나를 위해 목숨을 거시고 도와주었다. 그런데 나는 이자를 외면해야 하는 것인가?’
평소라면 사람 목숨 하나쯤은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더구나 인간폭탄이나 마찬가지인 뚱보를 배려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뚱보와 자신이 다른 점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자신도 혈교의 소속이었고 이용만 당하다가 나중에는 인간 폭탄이 되어 무당파로 갔다.
그리고 폭발을 했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러니 눈앞의 뚱보와 별 차이가 없다.
유일한 차이라면 유운 스승님을 만난 것이다. 유운 스승님께서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거셨다.
소중한 목숨마저도 말이다.
그런데 스승님의 제자로 다시 태어난 자신은 폭탄이 된 뚱보를 그냥 지나쳐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