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편 - 변화된 신체
환관은 공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공주를 깨웠다.
"공주마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음…."
공주는 곤히 자다 환관이 깨우자 인상을 쓰며 일어났다. 그러더니 주변을 살피자 울상을 지었다.
"뭐…뭐야…여…여기는 어디야?"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대충 무슨 꿈을 꾸었을지는 예상이 되어졌다. 아마 황실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던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러다 눈을 뜨니 황실이 아닌 숲속이니 공주로서도 당황할 것이다.
하지만 공주를 안심시킬수도 없었다. 어차피 황실에만 가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일이였던 것이다.
"공주 마마 이제 조금만 더가면 황실이 나옵니다."
환관이 말에 공주의 표정이 밝아졋다. 황실이라는 말만 들어도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저…정말이야?"
"그렇습니다. 마마."
"어…얼마나 남았어?"
공주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침을 흘리고 있었다. 황실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이제 하북입니다. 그리고 좀만 더 들어가면 북경이 나옵니다."
"뭐? 하북이라고…아직도 멀었잖아."
공주로서는 하북만 해도 먼 곳이었다. 북경 안이라면 모를까 하북 역시 북경에서 먼 곳이었던 것이다.
"예. 공주마마. 하지만 소신이 최선을 다해 공주님을 모신다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기도 합니다."
"휴… 그래. 그럼 가자."
공주는 자연스럽게 환관에게 안기려고 했다. 하지만 환관은 고개를 흔들었다.
"공주마마 이제부터는 북경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합니다. 그러니 걸어서 가셔야 합니다."
환관으로서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야 했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체면을 지켜야 했던 것이다.
환관이 말에 장수가 나섰다.
"대인 지금 한시가 급합니다. 그리고 공주마마의 걸음이라면 금방 잡힐 수 밖에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가? 아무리 그래도 공주마마께서 남자에게 안겨 가는 모습을 백성들이 보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것인가?"
환관이 말에 장수는 입고 있던 겉옷을 벗었다.
"공주마마에게 이 옷을 입히시면 됩니다. 그럼 누가 공주마마인줄 알겠습니까? 그리고 대인께서도 옷차림을 바꾸신다면 누구도 저희가 누군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환관 역시 더러워 졌고 찢겨 졌지만 고위관리의 옷을 입고 있었다.
거기다 매우 고급스러운 옷이었기에 눈썰미만 있다면 누군지 확인하는 게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장수의 말이 일리가 있었기에 환관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군. 옷을 바꿔 입어야 겠어."
"대인 제가 근처 민가에서 옷을 구해 오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환관은 화를 냈다.
"공주마마께서 일반 평민이 입는 옷을 입으라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대인!"
장수의 말에 환관은 잠시 생각을 하는듯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방법이 없었다. 그랬기에 장수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환관이 말을 하자마자 장수는 빠르게 움직였다.
근처 민가에서 옷을 훔쳐 오기 위해서였다.
민가에 가자마자 넉넉하게 은자를 둔 후에 환관과 공주에게 맞을 만한 옷을 훔쳤다.
그리고 다시 환관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옷을 보자 환관과 공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옷을 입는 것은 고집을 피울만한 것이 아니었다.
공주나 환관 역시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기에 옷을 바꿔 입었던 것이다.
벗은 옷은 땅에 묻었다. 이제 환관과 공주는 할머니와 어린 남자아이로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장수로서는 만족스러웠다. 이제 들킬 염려가 없어진 듯 했기 때문이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수의 말이 떨어지자 공주는 환관에게 안겼다.
할머니가 남자아이를 엎은 모습이라 조금 이상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빠른 시간 안에 황실에 도착하는 게 중요했기에 조금 이상한 것은 생각하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장수와 환관은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황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때 장수와 환관이 달리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는 마을주민이 있었다.
그는 빠르게 지나가는 장수와 환관을 보자 마자 급하게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급하게 새를 날렸다.
새는 어딘가로 날아갔다.
푸드덕.
새에 달린 쪽지를 살펴본 평범하게 생긴 남자는 싸늘한 표정을 지은 채 급히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명령하기 시작했다.
하남을 지나 일행은 북경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황궁이 나온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끝나는 것이었다.
장수로서는 혈교의 가장 큰 음모중 하나를 또다시 막게 되는 것이었다.
장수로서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혈교의 음모를 어느 정도 막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더구나 혈교의 전력을 어느정도 알아낼 수 있었기에 장수로서는 분석을 해서 다음번에 제대로 대응을 할수 있게 된 것이다.
황궁으로 가기 위한 길에는 시장이 하나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장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냄새를 맡자 장수의 배속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꼬르르륵"
'이런….'
장수는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절정고수인 장수로서는 배에서 소리가 나는 것 자체가 무인으로서 기본이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장수의 신체로는 한 달을 굶어도 끄떡이 없을 텐데 음식 냄새를 맡았다고 배에서 소리가 날거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주위시선이 이상했다.
주변 사람들은 장수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일행도 바라보았던 것이다.
장수만 배에서 소리가 난 게 아니라 공주와 환관에게서도 큰 소리가 났고 세명이 배속에서 음악을 연주했기에 주변사람들이 관심을 받았던 것이다.
장수는 물론이거니와 공주와 환관 역시 최근에 먹은 음식이라고는 장수가 한 고기 요리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양이 적어 양에 안찼던 것이다.
장수야 무인이라 괜찮지만 공주나 고위관리인 환관이야 이런 일을 언제 겪었겠는가?
항상 호화로운 만찬으로 호위호식을 하던 그들이였기에 배에서 소리가 나자 얼굴이 붉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공주로서도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환관을 쳐다보았다.
공주의 눈빛을 보자 환관 역시 마음이 약해졌다. 더구나 조금만 더 가면 황궁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황실의 영역이였기에 음식을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했던 것이다.
환관은 장수에게 목소리를 낮춰 말을 했다.
"이곳에서 음식을 먹을까?"
원래라면 고위관리인 환관이 천박한 무사 따위에게 의사를 묻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장수의 존재감이 엄청났고 그동안 도움도 많이 받았기에 의사를 물어본 것이다.
환관이 말에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이제 조금만 가면 황실입니다."
"그래도 여기서 먹는 게 문제가 될 거 같지는 않은데?"
"이곳에 적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나 대인께서는 괜찮겠지만 공주마마께서는 일반인의 암습에도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장수의 말이 맞았다. 환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마마 조금만 참으십시요. 오늘 안에 황실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공주는 고집을 피웠지만 환관을 꺽을 수는 없었다.
이제 조금만 가면 황실인데 괜히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때 장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살기는 아니지만 왠지 모를 안 좋은 예감이였던 것이다.
그러자 왠 초로의 노인이 웃으며 공주쪽으로 다가오는데 장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랬기에 환관이 앞을 막았다.
그러자 초로의 노인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장수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는데 장수라 해도 막는 게 쉽지 않았다. 살기가 없이 공격이 이루어졌기에 장수로서도 공격을 막을 간격을 잡는 게 어려웠던 것이다.
장수는 노인이 휘두른 검을 검날째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바로 뺏은 후 가볍게 장력을 날렸다.
퍽!
단 한방에 노인은 거꾸러졌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수십명의 주민들이 공주를 향해 육탄으로 달려 들었던 것이다.
"젠장…."
장수로서도 혈교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렇게 평범한 자객들로 공격을 할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공격을 한자들은 고수도 아니었다.
더구나 혈단도 복용하지 않은 평범한 자객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공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환관은 공주를 안은 채 달려드는 주민들을 향해 살수를 펼쳤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피핏!
환관의 몸에 상처가 늘었다. 상대의 수가 많으니 아무리 환관이 초절정고수라도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그는 공주를 안은 채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방어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거기다 환관이 이런 위기를 얼마나 겪어 봤겠는가?
아무리 초절정고수이며 무위가 높다 해도 황실에서 무공수련만 한 결과였다.
이런 혼전에서는 차라리 수많은 경험을 쌓은 황실의 장군이나 무사들이 더 나았던 것이다.
무공도 없는 자들이 육탄으로 달려들자 환관은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빠르게 날라 다니며 발차기로 주민들을 제압했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장수 역시 빠르게 움직이며 주민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들은 살수였다.
그리고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살수를 쓸 수 밖에 없었다. 제압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이쪽입니다."
장수는 말과 함께 길을 뚫었다.
그러자 환관이 그 뒤를 따랐다.
그 순간 장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와 함께 미세한 화약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폭탄이다.'
화약 냄새가 나는 것은 폭죽과 폭탄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쓸 것은 폭탄밖에 없었다.
아마 천뇌는 아닐 듯 했다.
천뇌가 많은 것도 아니고 이런 자객들이 가지고 다니기에 너무 위험한 물건이었다.
잘해야 벽력탄이고 그보다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장수는 미친 듯이 장풍을 날렸다. 장풍은 품에 손을 넣은 자들을 중점적으로 날렸다.
거기다 화약냄새가 나는 쪽을 위주로 장풍을 집중적으로 날렸다.
그 순간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쾅!
폭탄이 터진 것이다.
장수가 날린 장풍에 폭탄을 가진 자가 맞았는데 그 덕분에 폭탄이 터진 것이다.
엄청난 후폭풍이 사방으로 날랐고 폭발의 위력덕분에 주변에 있던 자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었다.
장수 역시 강한 바람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아무리 미리 막았다 해도 폭탄의 위력은 만만하게 볼게 아니었다.
더구나 짧은 순간 집중을 하지 못 한게 컸다.
그 순간 빠르게 무엇인가 날라 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장수는 보지도 않고 장풍 먼저 날렸다.
그러자 다시한번 거대한 폭음이 터졌다. 이번에는 환관 근처에서 폭탄이 터진 것이다.
장수는 폭탄이 날아온 쪽으로 장풍을 연속해서 날린 다음에 환관과 공주를 낚아 챈 후 그대로 달렸다. 황궁이 있는 쪽이었다.
사실 황궁으로 달리지 않더라도 시간을 끌면 황궁에서 무사들이 우루루 뛰어 나올 터다.
하지만 그 시간 보다 황궁으로 달리는게 더 살 확률이 높았다.
'젠장….'
장수로서는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폭탄을 신경쓰지 못한 것이다.
그랬기에 어느정도 막아내긴 했지만 그 여파를 뒤집어 쓴 환관과 공주가 얼마나 다쳤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장수는 둘을 안고서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다.
자신이 공주와 환관을 안고 달렸으면은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주가 자신이 안는 것을 싫어했기에 다른 방법을 쓰다 보니 이런 문제가 벌어진 것이다.
'얼마나 다쳤을까?'
지금 환관이나 공주의 상세를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우선은 도망쳐야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