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편 - 10권 황실로 가다
장수는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덕분에 빠르게 황궁에 다가갈 수 있었다.
정체불명의 남자가 황궁으로 달려오자 황궁을 지키던 병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멈춰라! 멈추지 않으면 사살하겠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루해 보이는 옷에 부상을 당한 자를 안고 달려오는 장수는 충분히 수상해 보였다.
장수가 달려가면서 소리쳤다.
“공주님이다. 지금 공주님이랑 같이 간다!”
공주님이라는 말에 경비를 서는 병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서 빨리 안으로 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공주가 탈출했다는 소식은 병사들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장수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었다.
“거짓말이라면 너의 목숨은 없다!”
병사는 말을 하면서도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가뜩이나 폭탄으로 인해 경비가 배로 늘어난 데다 경비하는 구역 역시 넓어졌기에 경계가 삼엄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병사가 살기를 띠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면 바로 공격할 준비를 했던 것이다.
호각을 불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빠르게 나왔다. 그와 함께 경비를 맡은 대장이 굳어진 얼굴로 달려 나오면서 경비를 서던 병사들에게 외쳤다.
“무슨 일이냐?”
경비대장의 무기는 이미 장수를 겨루고 있었다. 그러면서 상황을 설명하라고 병사에게 말을 건 것이다.
경비대장의 말에 병사는 급히 말을 했다.
“공주님이시랍니다!”
“뭐라? 뭐하는 것이냐? 최대한 빨리 안쪽으로 모시지 않고. 확인은 나중이다. 우선은 안으로 모시고 경비를 두 배로 늘려라. 그리고 비상사태이니 동창과 금의위에도 소식을 알려라!”
진짜 공주라면 큰 문제였다. 혈교가 공주를 노리고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 공주를 노리고 암습을 가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장수와 다른 두 명을 데리고 빠르게 안쪽으로 갔다.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대장이 급히 장수에게 물었다.
“이 두 분은 누구시냐?”
장수는 급히 대답했다.
“한 분은 호위를 맡은 환관이고, 다른 한 분이 공주님입니다.”
“뭐? 이분이 공주님이라고?”
대장이 잠시 봤지만 공주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화려한 옷과 화장으로 꾸미지 않으면 공주라는 것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보기에는 그냥 어린 남자아이로 보였다.
더구나 환관은 큰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폭발이 일어났을 때 공주를 감싸 안았던 탓에 환관이 입은 상처는 엄청날 정도였다. 아무리 초절정고수라 해도 호신강기가 없는 이상 보통 사람보다 열에 강할 뿐이지 피와 살로 이루어졌기에 부상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환관과 내시들이 급하게 달려왔고, 이어서 황실의 어의와 의원들이 앞을 다투어 달려왔다. 그리고 경비들이 주변을 경계 섰다.
장수 역시 멀뚱히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 동창의 무사가 장수를 보더니 외쳤다.
“넌 뭐냐?”
“저는 공주님의 호위무사입니다!”
“뭐? 호위무사라고? 난 너를 본 적이 없다!”
동창의 무사는 황실에서 보낸 무사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장수는 본 적이 없었기에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임시로 고용되어 호위무사가 되었습니다!”
“그래? 무림맹의 무사인가 보군. 너에게는 따로 물어볼 것이니 우선은 대기하고 있어라!”
동창의 무사는 그 말과 함께 시녀를 불렀다.
“이자를 방으로 안내해라!”
장수는 중요한 증인이었다. 그랬기에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없었다. 장수 역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황실에 있어야 했기에 얌전히 동창의 무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때 내시가 크게 외쳤다.
“공주님이다. 공주님이 맞다!”
가늘고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내시가 외쳤지만 모두들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공주다. 공주가 무사히 황궁으로 돌아온 것이다.
모두들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기를 빌었지만 생각과 현실은 달랐다. 무사히 돌아올 거라 믿었던 공주가 돌아왔으니 황실에 소속된 자들은 환호를 질렀다.
“공주님이 돌아오셨다!”
“공주님이다!”
그때 어의가 외쳤다.
“같이 온 환관이 매우 위독하오. 누군지 확인할 수 없지만 위험한 상황이니 조용하시오!”
어의는 그 말과 함께 같이 온 의원에게 내상약과 외상약을 가져오게 했다.
장수는 방에 홀로 남겨졌다. 밖이 매우 시끄러웠지만 그는 황실에 소속된 자가 아니었기에 방관자가 된 것이다.
“와, 허무하구나!”
갖은 고생을 다 해서 공주를 데려와 그런지 황궁에 도착하자 공허감이 들었다.
하지만 쉴 시간이 없었다. 어차피 공주에 대한 것은 황실에 맡겨야 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면담을 할 때까지 무공수련을 해야 했다.
“우선은 무공수련을 하자!”
해야 할 것은 많았다. 우선 몸속에 있는 기운을 모두 흡수하지는 못하더라도 정리는 해야 했다. 그리고 무공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했다.
혈교의 강함은 놀랄 만했다. 더구나 폭인이라든가 자객들을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해져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폭인을 한번 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장수 역시 유운 스승님 덕분에 구제를 받았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이 느꼈던 고마운 마음을 전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살리고 싶었다. 폭인으로 사는 것은 사람으로서 할 일이 아니었다.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사는 것이 사는 것이었다. 장수는 그에게 그런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나 역시 스승님처럼 되고 싶구나!”
장수가 아는 가장 강하며 자애스러운 스승님을 생각하자 가슴이 뭉클했다. 유운 스승님과 같은 일을 겪고 나서야 스승님의 행동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생사가 걸린 일에서 남을 생각하고 도와주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게 목숨을 노렸던 상대라면 더욱 그러했다.
장수로서는 더욱 강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폭인을 도와주고 싶었다. 과거의 자신에게 스승님이 도움을 주고 이번 삶에서 스승님이 되어 주신 것처럼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노력해야 했다.
“그런데 괜찮을까?”
막상 무공을 수련하려니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장수로서는 실력을 너무 많이 보인 것이다. 번천장이라든지 연속해서 장풍을 쓴 거 하며, 보여 줘도 너무 보여 주었다.
그때는 목숨이 걸린 일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무모한 짓이었다. 더구나 장수의 무위를 본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후!”
덮을 수 있는 게 있고 덮을 수 없는 게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장수가 황실 소속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장수는 군복을 입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실에 고용된 자라고만 얘기를 했다. 그렇게 얘기했으니 황실이 방패막이가 되어 줄 것이다.
사실 전력으로 따지자면 무림맹이나 황실이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영향력은 황실이 더욱 강했다. 황실에는 중원 전체를 다스리는 황제가 존재했고, 무림맹은 황제의 땅을 빌려 사는 입장이었다. 그랬기에 황제의 권위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황이 그러니 무림맹에서도 황실에 정체불명의 초절정고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후…… 개방의 인연도 아쉽구나!”
원래라면 개방과 인연을 만들어 혈교에 대한 동태를 파악하려 했다.
동태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장수에겐 전생에서 활약했을 때의 정보밖에 없다. 이십 년 동안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세력을 구축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어떻게든 개방이나 하오문과 인연을 맺어야 했다.
하지만 호위 중에 만난 개방 왕소의의 생사는 불명이었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데다 절정고수급 자객 수십 명이 공격을 하였기에 그 사이에서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무공이 제법 되는 자들은 더욱 빨리 죽었다. 혈교의 전력은 놀라울 정도여서 태풍에 휩쓸리듯이 순식간에 쓸려 버린 것이다.
더구나 살아 있어도 문제였다. 장수의 소속이나 무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나를 생각하자 여러 개가 동시에 떠올랐다. 더구나 지금 상황에 대한 게 가장 궁금했다.
분명 공주는 무사히 구했다. 그랬기에 당장은 싸움이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주가 포함된 감찰단을 공격한 것은 반란이나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더구나 죽은 사람이 몇 명인가? 이 정도 일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무림맹으로서도 많은 무림명숙을 잃었고, 황실 역시 기강이 무너진 것이다.
이런 것을 그냥 넘어간다면 기틀이 서지 않는다. 황실이나 무림맹을 우습게 생각하는 무리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싫어도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수로서는 시간만 벌게 되는 꼴이었다. 적은 혈교인데 엉뚱한 마교만 공격당하게 되고 결국 혈교가 천하를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여기 있어도 안 되는데!”
장수로서는 상황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황실과 무림맹을 설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직위나 위치, 그리고 명성이 너무 부족했다. 무림명숙이나 무림맹의 장로급만 되어도 어느 정도 발언권이 생기겠지만 지금은 무명소졸과 진배없었기 때문이다.
무공과 명성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무공이 높다고 명성까지 높은 것은 아니다. 무공이 높으면 명성이 올라갈 기회가 생기는 것뿐이지 무공이 높다고 대우를 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명성은 한 명의 무사가 무림에 쌓은 업적이다. 그렇기에 명성을 날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게 명성이든 악명이든 천하에 널리 알려질 정도로 쌓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