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편 - 어의
너무 큰일이 벌어졌기에 황실로서도 행동을 보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황실이 중원을 지배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제가 혈교가 한 짓이라는 것을 밝히겠습니다!”
“자네가 도대체 어떻게 밝히겠다는 것인가? 정보를 모으는 일이 쉬운 줄 아나? 만약 혈교의 짓이라 해도 어떻게 음모를 파헤칠 생각인가?”
사실 어려운 일이었다. 혈교를 찾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정보를 모으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혈교나 마교가 쓰는 무공이나 방식이 비슷한 점이 많아 분간하기 힘들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그런 상황에서 조사를 하고 확인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건 누구보다 장수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시설이지 않습니까? 폭인이나 자객들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시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시설이라고?”
수장은 흥미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폭인은 누가 봐도 매우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그런 생산 시설은 모처에 숨겨져 있을 테니 그 증거만 잡으면 음모의 주체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습니다. 분명 시설이든 뭐든 증거가 있을 것입니다. 그곳을 제가 밝혀내겠습니다!”
수장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했다.
“……하긴, 마교가 벌인 게 분명하다 해도 혈교의 움직임 역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네. 최근에는 혈교가 전혀 도발을 하지 않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귀찮은 존재였거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 혈교에서도 폭인이나 자객을 육성해 두었다면 큰일이니 말이야. 이 일에 대해서는 황제 폐하께 보고를 해야겠군. 그래, 그럼 자네는 황실 소속으로 혈교를 조사하고 싶다는 것인가?”
장수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좋아, 자네가 혈교를 조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네. 하지만 혈교에 대해 알아본다고 해도 조심해야 할 걸세. 현재 우리는 마교와 상대하기로 한 상태이니 쓸데없이 적을 늘릴 필요는 없지. 물론 혈교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말이야. 정보부에서는 마교와 혈교의 전력을 칠 대 삼으로 생각하고 있네. 마교의 세력이 혈교보다 두 배 이상 강하다고 말이야. 그렇게 판단했기에 마교와 싸울 때 혈교가 음모를 꾸며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네. 하지만 아직도 그들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으니 좀 더 조사를 해봐야 할 거 같네. 그런 점을 황제 폐하께 얘기한다면 들어주실 거야. 그래, 조건은 그것이면 되겠나?”
장수로서는 만족할 만한 얘기가 아니었다. 황실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족을 보호하고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강한 세력에 소속될 필요가 있었다.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그것에 대한 회의를 할 테니 기다리고 있게. 자넨 그동안 어의를 만나도록 하게!”
“어의요?”
“그래, 자네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의를 만나는 게 최선이네. 그 일이 끝나면 무고에도 가고 영약도 복용하게. 자네에 한해 모든 시설을 개방하기로 황제 폐하께서 윤허하셨네!”
장수로서는 깜짝 놀랄 일이었다. 무고에 가거나 어의를 만나는 것은 황실에서도 선택받은 소수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그 모든 시설을 개방한다니, 그만큼 자신을 믿는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아, 알겠습니다!”
“얼마 뒤면 자객을 통해 얻은 자료가 완성될 것이야!”
“자객이요?”
그제야 장수는 자객을 병사에게 넘겨준 일이 생각났다. 워낙 혼전 중이라 살아 있을지 몰랐는데 제대로 전달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래, 자네가 병사들에게 넘겨준 자객 말이네. 그들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지만 결국 진원진기가 말라 죽어 버렸네. 하지만 그동안 얻은 정보로 그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네. 지금 그것을 정리하고 있으니 자네에게 곧 전해 줄 것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가서 이 일을 보고해야 하거든.”
“예!”
수장이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시가 장수에게 다가왔다.
“무사님, 저를 따라오십시오. 어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시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수 역시 황궁 어의의 실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어의가 있는 곳은 황궁에서도 상당히 깊은 곳이었다.
어의가 있는 곳으로 가자 체격이 작고 나이가 많은 의원이 장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네!”
“어의십니까?”
“그래, 내가 어의네. 의식이 없을 때만 보다 이렇게 의식을 차린 상태에서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군!”
어의의 말을 들으니 정신이 없을 때 여러 번 와서 자신을 살펴 준 듯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아니야, 나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그리고 사실 자네의 몸은 어떻게 치료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그래서 기다리고만 있었지. 외상약을 쓸 수도 없고, 내상약을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침이나 뜸 같은 다른 치료 방법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어의 체면이 있지,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시도는 했네만 자네 같은 경우는 사실 처음 보는 거라 어떻게 해줄 수가 없었네!”
어의는 말을 하면서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장수의 몸은 오래 의원 일을 해 온 어의로서도 처음 보는 상태였다. 사람의 몸에 폭주를 일으킬 정도로 내공이 가득 찬 것도 이상했지만 그 상태에서 환골탈태가 한 달 동안 일어나는 것은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어의로서도 해결책을 내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사실 자네는 매우 위험한 상황을 보냈다고 할 수 있네. 그래서 깨어나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 주려고 했네!”
“조치라니요?”
어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의 몸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네. 그리고 몸속에는 아주 많은 내공이 있었네. 얼마 전에 자네를 진맥했을 때도 몸속의 내공이 상당수 그대로 있었고 말이야. 보통 무인은 단전에 내공이라는 것을 저장하지 않는가? 그러니 전신에 쌓인 내공은 문제가 크다고 생각했네. 물론 내 생각이지만 그 내공은 자네가 아직 통제를 하지 못한 기운일 것이야!”
어의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수 역시 그 생각을 한 것이다. 아직 몸 상태를 정확하게 정의하긴 힘들지만 몸속에 상당히 이질적인 기운이 있었다.
물론 이질적인 기운이라 해도 장수가 깨달음을 얻어 내공을 좀 더 많이 운용할 수 있게 되면 그의 내공이 되어 주겠지만 그 전까지는 쓸 수 없는 짐과도 같은 존재였다. 더구나 아직도 많은 양이 남아 있었기에 잘못하면 폭주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런 거 같습니다!”
“그래, 자네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경지를 높이지 못한다면 폭탄과도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네. 보아하니 마교에서 사람을 폭발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하던데, 자네의 경우와 아마 유사할 것이야!”
장수로서는 쓴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의가 말하는 그 폭인으로부터 내공을 흡수해 자신의 몸 상태가 이렇게 된 것이니 폭인과 마찬가지라 해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예,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런데 자네의 내공은 어떻게 해서 생긴 건가? 그전까지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갑자기 그런 상태가 된 게 이해가 가지 않는군!”
장수로서는 설명하기 난감한 일이었다. 폭인에게 흡성대법으로 내공을 흡수했다고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어의에게 한 말은 곧바로 황실에 알려질 터였다.
사실 황실에서도 장수의 내공이 갑자기 늘어난 것에 이상함을 느꼈을 테지만 어의에게 물어보게 하기 위해 묻지 않았을 것이다.
장수로서는 급히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사실 저 역시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짐작하는 바로는, 아마도 폭인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폭인 말인가?”
어의로서는 매우 궁금한 일이었다.
사실 폭인에 대한 것은 의원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만한 일이었다. 초절정고수의 공격에도 다치지 않는 피부와 한계를 넘어선 내공은 의원들에게 한 번쯤 연구하고 싶은 내용인 것이다.
그런데 장수의 내공이 증진한 이유가 폭인과 관계있다니 어의로서도 그 사실이 매우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습니다.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폭인이 한순간 정신을 차린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제 몸을 잡았는데, 저는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폭인이 흡성대법을 펼치는 것을 분명히 봤거든요!”
장수의 말에 어의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였는가?”
어의로서도 마인들이 흡성대법으로 사람의 정기를 갈취한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정작 황실의 병사가 당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게다가 흡성대법에 당하고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저 역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공격을 펼쳤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제 몸의 내공이 전부 빨려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만 그런 느낌을 받았을 뿐, 어느 순간 폭인의 몸에서 제 몸으로 내공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신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에서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순간 의식을 잃었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몸속에 기운이 가득 찬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
어의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자네 말은 도무지 믿기 어렵군. 아무래도 감추는 게 있는 듯해. 그럼 흡성대법을 펼쳤던 폭인이 반대로 자네에게 내공을 전해 주었단 말인가?”
장수로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흡성대법은 금지된 무공이었기에 그것을 익힌 자가 있으면 누구든 무림공적으로 몰려 죽을 수밖에 없다. 물론 천하에 흡성대법을 익힌 자의 숫자를 전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자들이 중원으로 오는 순간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가문이나 문파 역시 멸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장수 역시 그것을 알기에 최대한 자신이 흡성대법을 익혔다는 것을 비밀로 해야 했다.
“그렇습니다!”
어의는 잠시 생각을 하다 말했다.
“폭인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의식을 찾았다니…… 그럴 수도 있겠군. 몸속에 포용할 수 없을 정도의 기운이 있다면 그것을 방출하고 싶은 마음도 들 거야!”
어의는 어느 정도 납득한 듯 보였다. 하지만 장수나 어의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폭인이 내공을 전해 준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 어의로서는 그것을 짚고 넘어갈 수 없었다. 장수가 타인도 아니고 황실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암묵적으로 정해진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식구나 다름없는 장수의 약점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장수 역시 어느 정도 그런 사실을 알았기에 이렇게 넘어갈 수 있었다.
“자네가 원한다면 앞으로 무한한 내공을 얻을 수 있을 걸세. 황실에서는 자네를 확실히 밀어 주기로 결정한 듯하니 자네의 경지를 높여 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할 테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생각 또한 가지고 있네. 그러니 만약 사특한 것을 익히고 있다면 자네 자신을 위해 그것을 멀리하는 게 좋을 것이야!”
맞는 말이었다. 황실이 어느 한 명을 지원한다면 그 사람은 중원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영약이라든지, 의원이라든지, 아니면 어느 정도 수준의 무공비급까지도 얻을 수 있기에 괜히 흡성대법을 펼칠 필요가 없었다.
황실에서도 한 달 반 동안 장수가 거쳐 왔던 곳들을 조사하면서 혹시라도 의문의 실종자가 발생했는지 확인을 했다. 혹여나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 장수를 황실에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적이 없기 때문에 장수가 흡성대법을 익혔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만 가질 뿐이었다.
앞으로 황실의 지원을 받는다면 장수로서도 흡성대법 따위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장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어의는 말을 이었다.
“그래, 자네에 대한 결론이 나기 전까지 이곳에서 자네에게 도움을 주라고 하더군. 그래서 우선은 자네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하네. 물론 자네가 정신을 잃었을 때도 확인은 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다시 한 번 상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네!”
의원이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더구나 장수는 내공이 너무 많아 몸이 터질 뻔한 상황에게 진료를 받아야 했기에 앞으로 더욱 경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장수로서도 함부로 허락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의 상황을 보여 주는 것은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러니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거기다 이번에 장수를 검사하고 나면 그에 대한 것이 모두 황실로 전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혹시나 모를 자신의 약점을 황실에서 모두 알게 될 수도 있었다.
장수의 몸은 호전된 상태였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았다. 지금 몸이 임의로 탈태환골된 상태이긴 하나 조금 더 강해진 정도지 몸속에는 아직도 통제되지 않는 내공이 가득했다.
장수는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황실과 손을 잡기로 한 이상 황실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럼 지금부터 자네의 상태를 검사해 보겠네. 그러기 위해 나 말고 황실의 다른 의원들이 자네를 진맥할 테니 이해해 주게!”
이미 허락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사람이 많으면 비밀을 유지하기 힘들 터, 그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
“제 몸에 대한 것은 비밀이 유지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