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편 - 어의
장수의 말에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게. 황제 폐하를 진맥하는 자들이네. 자네에 대한 것은 황제 폐하와 마찬가지로 비밀로 다루어질 것이야!”
그제야 장수는 안심이 되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어의는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 방에 있는 침대에 눕게.”
“예!”
장수는 천천히 방 한쪽에 놓인 침대에 누웠다.
이내 어의와 다른 의원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럼 지금부터 확인을 해보겠네!”
어의는 천천히 장수의 몸을 진맥하더니 한참 침을 놓고 뜸을 뜨고 피를 뽑고 나서야 몸 상태를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장수로서는 매우 따분한 시간이었다. 무엇인가를 하나 한 뒤엔 어의가 다른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매우 원론적인 이야기라 아무리 새겨들으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전문적인 이야기였기에 장수가 알기 위해서는 의학서를 따로 공부해야 했던 것이다.
결국 장수는 무공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어의가 장수에게 다가왔다.
“끝났으니 일어나게!”
“예!”
“그래, 꼼꼼히 살펴보았는데 자네의 체질은 정말 놀라울 정도야. 전설의 천무지체나 천마지체가 이런 상태일까? 무공을 익히기에 최적화된 골격이라고 할 수 있네. 앞으로 팔을 쓰는 권법을 펼치는 게 더욱 편해질 걸세. 그런데 몸속에 가득 찬 내공은 큰 문제야. 자네의 몸이 가까스로 버티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 큰 성취가 없으면 자네 몸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네!”
장수 역시 느끼는 일이었다. 몸속의 내공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 몸 안에 선천지기가 없었더라면 진즉에 터졌을 것이다. 선천지기의 무한한 공능이 지금까지 폭발을 막아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거 같습니다!”
“무인들의 단계를 나눌 때 화경의 경지라는 게 있다고 들었네. 내 장담을 할 순 없지만 지금 자네의 경지는 초절정의 경지 정도라고 추측되네!”
의원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가진 내공은 아마 화경의 고수는 되어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네. 그 전까지 자네 스스로도 무던히 수련을 해야겠지만 의원인 우리도 자네의 몸이 터지지 않게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야 할 거 같네!”
“조치라고요?”
장수로서는 놀라운 말이었다. 몸속에 내공이 가득 찬 게 문제인데 어떻게 조치가 가능하단 말인가?
“의학에선 사람의 몸속 기운을 사기와 정기로 구분하네. 그런데 자네의 몸속엔 정기와 사기가 가득 차 있어. 그중 사기를 영약이나 중화제를 통해 몸 밖으로 배출할 수 있네. 자네의 내공 자체도 어느 정도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빼낼 수 있으면 빼내야 할 테고!”
“그게 가능합니까?”
장수의 말에 어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것도 같네. 하지만 장담은 할 수 없어. 자네 같은 경우는 흔한 게 아니거든. 하지만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약을 먹고 자네 스스로도 수련을 해서 몸을 만드는 게 중요하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약을 마시게!”
어의는 그 말과 함께 약을 건넸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자네 몸속에 있는 사기와 탁기를 없애 줄 약이네. 물론 그 효과가 미약하겠지만 오래 마시면 어느 정도 효능이 있을 것이야!”
어의의 말에 장수는 약을 마셨다.
“그럼 이제 무공서가 있는 곳으로 가게. 아까도 말했듯이 치료도 중요하지만 자네 스스로의 노력도 절실히 필요하네!”
“알겠습니다!”
“이 시녀를 따라가게. 우리는 이따 자네에게 줄 약을 만들고 있겠네!”
“어르신, 감사합니다!”
“아닐세. 우리야 명령에 의해서 한 것이니 고맙게 생각할 필요 없네!”
어의는 그 말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따 보세!”
“예!”
장수는 천천히 시녀의 뒤를 따랐다.
시녀가 안내한 곳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은 장수를 쳐다도 보지 않았는데, 장수로서는 그들의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상당히 경계가 삼엄하구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대충 주변을 살피니 기관이 존재할 거 같았다.
기관이란 침입자를 상대하기 위한 함정인데, 기계로 움직이는 게 많기에 상당한 고수라 해도 피하기 힘들었다. 더구나 이렇게 좁은 곳에서 기관이 터지면 아무리 장수라도 피해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조금만 들어가도 계속해서 철창이 나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곳인 듯했다.
그렇게 한참을 들어가자 시녀가 장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곳입니다!”
시녀는 손으로 안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장수는 인사를 한 후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수많은 책들이 서고마다 가득 들어 있었다. 대충 봐도 매우 중요한 책들인 듯했고, 여러 명이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장수를 보며 물었다.
“오늘 오시기로 한 무사님이군요!”
“그렇습니다!”
“어떤 책을 찾으십니까?”
사실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전생에 혈교에 있는 상당량의 비급들을 보았고, 매우 중요한 무공서도 보았기에 이제 더 이상 무공서는 볼 필요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황궁의 무공서는 혈교의 양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중원을 지배하는 황실이라 그런지 상당한 양의 장서가 모여 있었다.
더구나 장수는 최근 양의심법이나 번천장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수련만으로는 더 이상의 발전이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전진심법이나 선천기공에 대해 심도 깊게 이해하려면 그에 관련된 서적을 봐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없었기에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배울 기회가 생겼으니 이참에 전부 배우고 싶었다.
“제가 보고 싶은 것은 장법과 심법, 그리고 도가와 관련된 서적입니다!”
“장법과 심법, 그리고 도가라……. 장법과 심법은 무공들이 있는 서고에 있지만 도가와 관련된 심법은 인문학이라 다른 서고에 있습니다. 이곳에 배치된 것은 전부 귀중한 책들이라 만약 일반 책이나 대중적인 도가 서적을 원하시면 바로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장법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장수의 장법 실력은 천하에 손꼽힐 정도였다. 장법에서는 적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유가 장법이 거의 사장되다시피 한 데다 무인이라면 장법이나 권법보다는 검이나 도를 사용하기 때문이지만, 화경의 고수인 일성이마 외에는 적이라 부를 만한 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 정도의 실력임에도 장수는 습관처럼 장법이 가장 먼저 보고 싶었다.
장수의 말에 서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를 따라오십시오!”
서기는 한참을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한쪽에 서고가 보였는데, 서기는 그곳에서 세 권의 서책을 꺼내 장수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바로 목록표입니다!”
장법에 관한 서책의 제목만 해도 세 권의 책에 담겨 있는 모양이었다. 장수로서는 그 방대함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장수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무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장법이었기에 새로운 장법을 만나려니 흥분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잠시 목록을 보았지만 제목만 봐서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래도 무공을 알려면 직접 봐야 할 것 같았다.
장수는 장법이 적힌 책을 천천히 처음부터 꺼내 보기 시작했다.
마치 천하에 존재하는 장법은 모두 가져다 둔 것처럼 시시한 장법에서부터 상당한 수준의 장법까지 다양한 장법이 있었지만 장법에 대해서는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장수였기에 대충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위력인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장법이라는 게 매우 어려운 무공이었다. 사용하기도 힘들고 익히기 위해서는 상당한 내공과 경공술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법서라 이름 했음에도 경공술이나 심법서가 내용의 태반을 장식했고, 실제 장법에 관한 것은 구결 한 줄이 전부인 것도 있었다.
“훗!”
장수는 콧방귀가 나왔다. 실로 같잖은 장법도 여러 개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상당히 심도 깊고 장법이라는 측면에서 실험적인 것도 매우 많았다.
그리고 이론서에는 장법을 실전에서 쓸 수 있는 방법과 장법을 이용해 무기에 암경을 써 상대방의 몸에 침투시키는 것이나 암경으로 사용하는 무기를 폭발시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도 나와 있었다.
“이런 방법이 있구나!”
장수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무공이었다. 장법으로 평생을 보낸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방법이 많았던 것이다.
장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꼼지락거리며 생각 속에서 그것들을 사용해 보기도 했다.
“역시 천하엔 기인이사가 많구나!”
파괴적인 면이나 기의 운용 면에서 훌륭한 것도 많았지만 발상이 대단한 게 더욱 많았다.
물론 무공서를 보는 것만으론 보통의 무인들에게 불가능한 이론상의 무예였지만 장수는 달랐다. 장수의 경지는 초절정의 경지에서도 거의 극에 이르렀다 할 수 있고, 육체 역시 환골탈태를 통해서 장법을 펼치기에 가장 이상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내공 또한 보통의 무인보다 많았기에 충분히 펼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