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편 - 어의
장수는 더욱 펼쳐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연습만 몇 번 하면 가능할 것도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만 할 뿐 책을 보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연습을 하면서 책을 보면 언제 다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저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만 알아도 무공에 대한 개념이 넓어져 나중에 사용할 수 있을 테고, 책을 볼 기회는 지금밖에 없었다. 눈앞에 많은 책이 있었기에 다 보려면 더욱 시간이 없었다. 더구나 언제 혈교에 갈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우선 책에 집중하기로 했다.
장수는 매우 빠르게 책을 볼 수 있었다. 머리가 좋은 덕도 있었지만 장법의 흐름을 알고 있는 데다 깨달음도 상당했기에 몇 장만 넘겨도 대충은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전생에 혈교에서 본 장법도 있었고, 장법서지만 도입부만 있는 것과 미완성인 책도 있는 탓에 빠르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자 대충 책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장수가 마지막 책을 넣자 옆에서 지켜보던 서기가 질린 표정으로 장수를 보았다.
“책을 모두 다 보신 겁니까?”
서기로서는 장수가 천재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수로서는 이미 다 아는 것은 넘기고 본 덕에 빠르게 본 것일 뿐, 천재는 아니었기에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전에 본 책들도 있어서 빠르게 볼 수 있었습니다!”
장수는 말을 하다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책에 집중해 생각 없이 말을 해 버린 것이다. 천하에 장법을 이 정도로 모을 수 있는 곳이 과연 몇 군데나 될 것인가? 그중에 무당파나 석가장은 끼지 않았다.
무당파 역시 자파의 장법이나 모을 수 있지, 이 정도의 규모로 모을 수는 없었다. 가능한 곳이라고는 혈교나 마교, 그리고 무림맹뿐이었다.
장수는 급히 말을 덧붙였다.
“장법이라고 하지만 내용이 비슷합니다. 가문 서책의 기본 원리랑 비교했을 때 이곳에 있는 책들의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그리고 미완이거나 말이 되지 않는 것, 이론에 불과한 것들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넘기니 빠르게 볼 수 있었습니다!”
서기는 장수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래도 무사님의 집중력이 상당하신 거 같습니다. 벌써 열 시진이나 지났고, 그동안 저는 다른 서기랑 네 번이나 교대를 했습니다!”
서기는 말을 하면서 웃었다.
그제야 장수는 서기가 처음 봤던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서기들이 교대로 자신을 지켜본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나중에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너무 집중을 했구나.’
너무 오랜만에 장법에 관련된 책을 봐서인지 흥분한 상태였고, 흥미롭게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더구나 너무나도 획기적인 발상이 많았기에 실전에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집중해서 본 것 같았다.
“저 때문에 괜히 고생을 하셨군요!”
“아닙니다. 일인데요, 뭘. 어쨌든 이제 휴식을 취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서기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흔들며 정중히 거절했다.
“아닙니다. 더 봐도 상관이 없을 거 같습니다!”
지금 그는 흥분한 상태였고 장법에 집중을 하느라 머리가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잠을 청한다 해도 어차피 잠이 올 거 같지 않았다.
더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전진심법과 선천기공은 스스로 운기를 하고 있었고, 환골탈태로 강화된 육체는 이 정도 가지고는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책들까지 보는 게 더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보기 전까지는 황궁에서 보관 중인 무공서라고 해서 별게 있겠냐는 생각을 했지만 장법은 확실하게 파격적이었다. 더구나 수량이 많았기에 그중에서 괜찮은 게 있었다.
장수의 상태는 수련을 하면 좋은 상황이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고 결투를 벌여 많은 깨달음을 얻어야 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황궁에 보관 중인 서적도 깨달음을 위해 중요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자 책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만약 심법서나 도가 서적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는다면 다음번 혈교나 마교를 상대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장수의 무위도 강해지긴 했지만 그가 상대해야 하는 혈교나 마교의 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여기에서 계속 책을 보실 생각입니까?”
서기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곳에 있는 책을 모두 보진 못했지만 대충 어떤 책들이 있는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쪽 서고는 다음에 다시 오고 이번에는 심법이 있는 서고로 갔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서기로서는 명령받은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이곳 서고에 있는 책들은 모두 중요한 무공비급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최고라 할 수 있는 것들은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 하나 이곳의 중요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에 급을 나누어서 개방을 한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예외였다. 그는 황실에서 작정하고 키우는 자였기에 그런 규제가 없었던 것이다.
서기는 장수가 원하는 대로 다른 서고로 그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심법서 역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심법서의 양 또한 상당했는데, 천하에 산재한 문파의 수가 엄청난 데다 그중 상당수의 문파가 황실에 심법을 바쳤기에 많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중원 외에 새외를 정벌하면서 얻은 무공서도 있고 마교나 혈교와 전쟁을 벌이면서 얻은 것도 있기에 양이 엄청났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쪽에는 심법에 대한 분석이 있었는데 각 문파에 속한 심법의 장단점이 소상히 적혀 있었고, 그중 마교와 혈교에 대한 분석이 가장 많았다.
장수는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로 분류를 하기 위해 황실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만 봐도 황실이 얼마나 혈교나 마교를 멸문시키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장수가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동안 서기가 목록이 적힌 서책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 양 또한 상당했다.
“장법에 비해 양이 많습니다. 원래 심법이라는 것이 도사들이나 승려들이 새롭게 만든 것도 있고 개량한 것도 있어서 그 양이 상당합니다.”
장수 역시 어느 정도는 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 양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장수는 천천히 목록을 살폈다. 하지만 분류 자체가 제목과 저자, 그리고 속성만 있었기에 이것 역시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직접 볼 수밖에 없었다.
장수는 천천히 도가 쪽 심법이 있는 서고로 향했다. 장수가 익힌 심법은 전진심법과 양의심법이었기 때문이다.
서고로 가서 순서대로 책을 꺼내 보던 장수는 처음부터 난색을 표했다. 심법은 장법과 달리 쉽게 생각할 게 아니었던 것이다.
장법은 써야 하는 혈도가 비슷한 경우가 많은 데다 대부분 팔에 국한되었다. 하지만 심법은 전신을 경유하며 움직이는 혈도가 하나만 달라도 전혀 다른 성질의 기운이 되었다.
그러니 심법이라는 것을 잘못 익히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혈교의 심법은 대부분 마공서였다. 때문에 극단적으로 내공의 성취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었고, 역혈심법을 통해 내공의 증진이 빠르게 되는 것을 추구했다. 어떻게 보면 매우 단순했다.
하지만 마도가 아닌 정파나 사파, 도가나 불가의 심법은 달랐다. 같은 심법임에도 그 속에 깨달음이나 삶과 사상이 녹아드는 경우가 많았기에 심법에 대해 배우려면 그에 대한 제반 지식이나 학문이 상당해야 했다.
장수 역시 혈교에서 최고의 내공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이곳에서 심법에 대해 봐봐야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이 중에서 가장 훌륭한 심법을 찾으라고 하면 모를까, 이 심법으로 자신이 가진 심법에 참고할 만한 것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수는 책을 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대로는 소용이 없겠구나!”
심법을 찾은 것은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장법과 다르게 심법으로는 큰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았다. 차라리 이 시간에 도가에 관련된 서적을 찾는 게 더 도움이 될 듯했다.
장수는 서기를 바라보았다.
“무슨 할 말이 있으십니까?”
“심법은 됐습니다.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그렇습니까?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보셔도 됩니다!”
“그럴 거 없습니다. 그보다 도가 사상이 있는 곳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서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서기는 이내 다른 곳으로 장수를 데려갔다.
서기가 데려간 곳은 서고의 거의 끝 부분이었다. 그곳은 도가의 경전으로 가득했고, 매우 오래된 고서도 눈에 띄었다.
“이게 도가 서적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도가 서적은 아니지만 그보다 오래된 같은 계통의 서적도 있으니 차분히 보십시오!”
도가의 창시자는 노자고, 도가를 집대성한 것은 장자였다. 그 후 도가의 사상을 기반으로 전진교 같은 현문의 문파가 생겨났고, 시간이 흘러 무당과 화산 같은 도가 계열의 문파가 생겨났다.
하지만 노자 이전에도 도가와 같은 계열의 학문이 있었는데, 그런 상고시대의 서적들을 황궁에서 가지고 있었다.
‘저거구나!’
장수로서는 보물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장수가 익힌 것은 이미 멸문한 지 오래인 전진교의 심법이었다. 그러니 참고 서적으로 고서가 더욱 나았다.
장수는 빠르게 달려가 서적을 꺼내 보았다. 서적엔 신선 사상에 대해 적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도가 사상의 뿌리였다.
‘정말 어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