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편 - 어의
초절정고수인 수장 역시 같은 초절정고수인 장수의 수련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잠시라도 나온다면 부르려고 했는데 도무지 나오지 않는 바람에 결국 이렇게 부른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시간이 너무 촉박해졌다. 이미 황실의 황제와 고위 관료들이 모여 회의를 마쳤기에 그에 대한 결과를 장수에게 알려 줘야 했다.
“전부터 보고 싶은 책들이 있었는데 마침 서고에 있어 계속해서 본 듯합니다. 사실 그런 수준 높은 책들은 어디서 구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상승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자질이나 스승, 그리고 내공이나 수련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학문이었다.
더 높은 깨달음과 경지의 밑거름으로 일정 이상의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것은 수장 역시 알고 있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 또한 황실 무공을 익히면서 학문도 부족함 없이 익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맞는 말이네. 그곳에 있는 책들은 오래되기도 했거니와 매우 희귀하면서 중요한 책들이라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많네. 그런데 자네, 수양이 보통이 아니군. 그 정도의 책을 보려면 어느 정도 학식이 있어야 하는데, 무당파의 속가제자라면서 언제 그렇게 학문을 수련한 것인가?”
“그냥 이런 기회가 없기에 이해하기보다는 외우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어려워서 무슨 내용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장수의 너스레에 수장은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자네처럼 학문에 매진하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단 말이야!”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래, 성취는 있었나?”
수장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지식을 얻었습니다!”
“앞으로의 성장에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
“말씀 감사합니다!”
수장은 그 외 다른 말을 했고, 장수는 간단하게 답했다.
“이제 내가 자네에게 할 말은 황제 폐하와 관리들이 회의를 한 결과라네. 자네의 말은 충분히 들었고, 회의를 통해 자네의 의사 또한 충분히 이해하려고 했네. 자네 말대로 혈교는 당장 황실의 등 뒤를 노리는 검과도 같으니 그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네. 만약 마교와 전쟁을 벌이는 중에 혈교가 공격을 한다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거든. 사실 혈교 역시 마도의 세력이니 최근까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는 존재이네. 그래서 자네 말대로 그들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을 허락받았네!”
“그렇습니까?”
사실 장수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수가 혈교를 조사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황실과 손을 잡겠다고 했으니 그것을 기본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확실한 상태였다. 거기에 초절정고수인 장수를 끌어들이려면 무슨 방법이라도 써야 했다.
“자네가 말한 대로 혈교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을 기본으로 움직이되, 정해진 시간 안에 마교 측도 조사를 해주게!”
“마교를 말입니까?”
장수 역시 예측했던 바였다.
현재 황실이 상대해야 하는 곳은 마교였다. 그러니 마교에 대한 대비도 철저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폭인이라든가 자객, 일개 단체가 보유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무력을 가진 마교에 대해 황실에서는 상당한 정보가 필요했다.
“그러네. 자네가 혈교를 조사하면서 마교도 같이 조사해 주었으면 하네. 사실 자네가 황궁에서 황제 폐하를 호위하는 것이 가장 나을 수도 있지만, 적의 전력을 모르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으니 자네 의견을 수용한 것이라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전쟁은 언제쯤 날 거 같습니까?”
장수로서는 꼭 알아야 하는 일이었다. 전쟁이 나기 전에 혈교의 음모를 황실에 알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마교가 아닌 혈교와 전쟁을 치를 수 있게 될 테고, 장수로서는 복수를 한 거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폭인이나 다른 전력이 강하다 해도 전쟁은 무인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장수는 주 전력이라 할 수 있는 혈교의 절정고수들을 거의 학살하다시피 했다. 그러니 정면 대결을 하면 혈교에서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장수의 말에 수장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했다.
“모르겠네. 전쟁이라는 게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해서 말이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외 지역에 위험이 될 만한 세력이 감소했다는 것이네. 그 덕분에 이번 원정에 군대를 좀 더 동원할 수 있게 되었어. 그래도 군수물자를 생산해야 하니 빨라야 반년, 길어도 일 년 안엔 준비가 끝날 걸세!”
반년이라는 말에 장수는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반년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혈교에 대해 조사하려면 그 정도 시간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교까지 조사하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반년이라는 시간 안에 혈교와 마교 모두를 조사하라는 것입니까?”
장수의 말에 수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닐세. 전쟁이 임박해지면 자네에게 따로 연락을 할 걸세. 앞으로 자네는 황실의 고위 관료니 관청에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걸세. 우리가 연락하면 그때부터는 마교에만 집중하면 되네. 그리고 마교 부근인 청해에 주둔지를 만들면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전쟁을 수행하면 되네!”
수장의 말에 장수는 한숨이 나왔다. 혈교를 조사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조사를 마칠 틈도 없이 바로 마교를 조사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마교의 전력은 분석할 것도 없었다. 마교는 숨겨 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마교가 있는 신강 천산에 가면 마교의 신자들이 사는 수많은 집들이 있다. 그곳에는 마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살고 있는데, 전쟁이 나면 천산 부근으로 숨어 들어가서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무력 역시 훈련이 개방되었기에 쉽게 알 수 있었다.
마교 부근에서만 살펴봐도 어느 정도 무력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대단한 세력이었다. 초절정고수의 숫자는 이십 명이 넘고 절정고수의 숫자는 백 명에 조금 미치지 못했다.
더구나 장수는 전생에 마교의 정보에 대해서 많이 들었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할 것이기에 조사가 좀 더 수월했다.
만약 마교를 조사하고 싶다면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표길랑에게 물어보면 되었다. 마교의 장로인 표길랑이 무당파에서 유운 스승님에게 무공을 배우고 있었기에 돌려 물어보면 어느 정도 전력이 분석되어질 터였다.
하지만 황실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마교에 폭인이나 자객 양성소가 있는 줄 알기에 마교에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장수에게 조사를 시킬 것이 분명했다.
없는 시설을 찾아봐야 뭐하겠는가?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 될 텐데 말이다.
‘가만, 그러고 보니 혈교의 시설 중 중요한 게 뭐지?’
장수는 잠시 혈교에 대해 생각했다.
혈교는 무력단체지만 그 기원은 주술에 있었다. 혈교를 만든 자들 중 주술사가 있는 것이다.
주술이라는 것은 매우 생소한 것으로, 도사들이 쓰는 도술에 비해 원시종교이기에 상당히 잔인하거나 비이성적인 일이 많았다. 더구나 초현실적인 것들을 연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강시였다.
혈교는 설립 초창기에 강시를 사용해 무림을 전복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강시를 강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거기다 중원의 저력을 몰랐기에 물밀듯이 생겨나는 기인이사들의 떼거리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혈교는 그 후 기인이사를 상대하기 위해 폭인이나 자객 등을 생각해 냈지만 기본은 역시 강시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강시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어?’
장수는 혈교의 강시를 여러 번 보았다. 하지만 중원은 알지 못하게 새외 지역에서만 선보였기에 중원에서는 강시라는 것을 보기 힘들었다.
‘분명 강시들을 만드는 시설이 있을 거야. 그리고 폭약을 만드는 곳과 자객 양성소, 혈단 같은 단환을 제조하는 곳과 폭인을 만드는 시설도 있겠지? 그러고 보니 혈교가 준비를 단단히 했구나.’
장수가 아는 시설만 해도 여러 개였고, 모두 매우 중요한 시설들이었다.
폭인은 전생의 장수가 기억하는 위력보다 몇 배나 강해진 상태였다. 단지 내공을 흡입하는 것만으로도 초절정고수 세 명을 상대할 정도면 대단한 발전인 것이다.
폭약 역시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는데, 폭탄의 제조는 국법으로 엄히 다스리고 있었다. 하지만 새외인 서장에 존재하는 혈교는 이미 수많은 폭탄을 만들어 사용해 왔다.
뿐만 아니라 자객 양성소나 단환 제조소 등 조사해야 할 게 무척 많았다. 분명 그것들은 한곳에 있지 않고 매우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을 것이 뻔했다.
그런 시설은 수뇌부라 할지라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리고 폭인 같은 것은 혈마 혼자서 아는 특급 비밀이었기에 그런 비밀 시설을 찾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가?”
“아, 아닙니다!”
장수는 생각을 정리하며 수장에게 대답했다.
“말을 하다 깊게 생각하는 듯해 그대로 두었네만, 무슨 생각인지 들을 수 있겠는가?”
“별거 아닙니다. 다만 혈교를 조사할 시간이 줄어들 거 같아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