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편 - 천지음양수투
천하 십대상단의 규모는 엄청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상단이 황실의 조사를 받는다면 큰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 교묘하게 석가장에 사업체를 몰아준다면 석가장도 천하 십대상단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정말입니까?”
“그래. 사실 전쟁을 벌이기 전에 적의 보급을 끊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네. 그렇기 때문에 마교와 연관이 없다고 해도 신강 쪽으로는 아예 가지 못하게 할 생각이네. 그렇게 하면 마교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야!”
장수로서는 그런 일이 크게 소용이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마교는 크게 돈이 들어갈 일이 없었다. 최대한 아끼며 무공에만 전념하였기에 남는 돈은 모두 보물 창고로 보냈던 것이다. 거기다 비단길을 통해 서역의 상인들과 교역을 할 수 있기에 물자를 공급하지 않는다고 해도 큰 영향이 없었다.
하지만 혈교는 달랐다. 마교는 비단길을 통해 막대한 재물이 오고 가지만 혈교는 순수하게 중원하고만 무역을 했다. 물론 새외의 다른 지역과도 무역을 하기는 했지만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영향이 별로 없었다.
혈교 역시 천하 십대상단과 연관이 있다는 걸 장수는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번 일이 마교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혈교에는 큰 피해를 입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래, 자네도 좋아할 줄 알았네!”
장수는 계획 자체를 칭찬한 것이지만 수장은 황실이 장수의 가문을 위한다는 것을 좋아하는 거라 생각했다.
장수는 그것을 깨닫고 다시 설명하려다 이내 포기했다.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나을 거 같다.’
괜히 설명만 해봤자 오해만 쌓일 뿐이었다. 장수는 기반 지식이 있어 그 계획이 좋다고 생각한 것이지만 수장의 입장에서는 나이도 어린 장수가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았는지 의심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럼 보던 책만 마저 보고 그대로 출발하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수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뭘 그렇게 빨리 가려고 그러나? 우선 어의께서 자네를 위해 만들고 있는 약이 있네!”
“예? 그동안 꾸준히 마셨습니다!”
“아니야. 그것은 그냥 중화제 같은 것이고, 어의가 그동안 만든 약은 자네의 몸 상태를 더욱 좋게 만드는 것이라네. 아마 그것을 먹으면 몸 상태가 어느 정도 좋아질 것이네!”
“배려 감사합니다!”
“나한테 감사할 필요는 없네. 황제 폐하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지. 이번 일에 황제 폐하께서는 아낌없이 영약을 내놓으셨네. 아! 그리고 보물 창고에 가보게!”
“예?”
“앞으로 자네의 임무에 필요한 무구를 주기로 했네. 그러니 황실 보물 창고로 가게나. 가서 자네가 원하는 보물을 가지도록 하게!”
수장의 말에 장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황실의 보물 창고는 규모도 규모지만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기진이보가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금 천하를 지배하는 황제였기에 중원에서 나는 진귀한 것들뿐만 아니라 새외와 서역에서까지 진귀한 물품을 보내 왔던 것이다.
보물 창고에서 보물을 얻는다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고, 매우 희귀하거나 강력한 무기를 얻을 수도 있었다.
“정말이십니까?”
장수 역시 무인이었기에 강한 무기에 관심이 많았다. 보통의 무인과는 주먹이나 장력을 이용해 싸우면 되지만 예측불허의 괴물을 만나게 되면 무기도 하나쯤은 필요했던 것이다.
장수는 수장의 말에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래, 그러니 어서 가보게. 가서 자네가 원하는 것을 찾게!”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내시가 들어왔다. 미리 준비를 한 것이 분명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중성스러운 내시의 목소리도 이번에는 매우 아름답게 들렸다.
장수 역시 남자였기에 호기심이 강했고, 강한 무구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장수는 급하게 내시를 재촉하며 보물 창고로 향했다.
보물 창고 역시 무공비급이 있는 창고처럼 경계가 매우 삼엄했다. 중원 제일의 신투라 할지라도 이곳을 뚫는 건 힘들 것 같았다.
그렇게 창고 안으로 들어간 장수는 강렬한 빛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보물들이 발하는 광채에 눈이 멀 듯했기 때문이다.
“이, 이럴 수가!”
장수가 놀라워하는 동안 내시가 손으로 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든 원하는 만큼 가지십시오. 하지만 무사님만 쓰셔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장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급히 살폈다.
창고 안은 무기별로 나뉘어 있었는데, 가장 많은 것은 검이었다. 게다가 하나하나가 전설상에 나오는 신검이었고, 보검들은 너무 많아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장수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보검을 살피며 감탄했다. 이렇게나 많은 무기들이 전부 보검이나 신검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전설에 나오는 간장과 막야가 제작한 검들도 눈에 띄었다.
“정말 대단하구나!”
장수는 이내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눈을 돌려도 다른 보검이 눈에 들어오니 결국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휴!”
장수는 한숨을 쉰 후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무인이라면 보검을 보고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주로 쓰는 무기가 주먹이라 다행이지, 검객이었다면 보물에 혼이 나가 버렸을 것이다.
“다른 곳에 가보자!”
장수는 검을 보는 것을 그만두고 다른 무기 쪽으로 향했다.
다른 무기들 역시 대단했다. 장인의 혼이 서린 무기들이 수두룩했던 것이다. 그런 곳에서 앞으로 쓸 무기를 찾아야 한다니 정신이 어지러웠다.
장수는 혀를 내차면서 무기들을 지나쳤다. 강호에 나가면 피바람을 일으킬 무기들이 보물 창고 안에 한꺼번에 있는 것이 어색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마교였다면 이렇게 무기를 모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무기는 쓰는 게 예의라고, 모든 무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실이기에 이렇게 보물들을 모아 둔 것이다.
그렇게 여러 개의 무기들을 훑어보면서 한참을 가다 보니 이번엔 갑옷들이 나왔다.
갑옷들 역시 대단한 것들이었다. 이국적인 것들도 있고, 강한 방어력을 가진 것들도 있었는데 장수에게는 모두 무의미했다. 가벼운 것은 방어력이 너무 약했고, 무거운 것은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결국 갑옷은 장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렇게 갑옷을 지나자 부채와 신기하게 생긴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들 역시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무기였다. 부채는 촉이 한철로 만들어진 것이라 보검도 막을 수 있을 듯했고, 비단옷은 천잠사의 실로 만들어 질기고 끊어지지 않았다.
장수는 비단을 보자 욕심이 생겼다.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텐데?”
아무래도 일반 옷보다는 도움이 될 듯했기에 마음속으로 점찍어 두고 다른 것을 찾았다.
그런데 한쪽에 눈이 가는 게 있었다. 바로 장갑이었다.
장갑은 겉이 비늘로 만들어져 있었다. 뱀의 비늘로 만들어진 듯한데 왼쪽은 붉고 오른쪽은 하얀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지?”
보물의 밑에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장수는 잠시 설명을 읽어 보았다.
“만년화룡과 만년빙룡으로 만든 천지음양수투.”
그 아래로 어디서 얻은 비늘을 이용해 천하제일의 명장이 대를 이어 완성했다고 써 있었는데, 장수로서는 믿기 힘든 말이었다. 어떻게 생물이 만 년 동안 살 수 있단 말인가? 아마 과장한 것이겠지만 흥미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장수는 천천히 장갑을 꺼내 손에 착용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장갑이 손에 딱 맞았다. 거기다 붉고 흰 색깔이 그대로 사라지더니 마치 장수의 손인 것처럼 수투가 투명해졌다.
“이건 뭐야?”
장수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천하를 종횡하며 돌아다닐 때도 이런 장갑이 있다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장갑을 끼고 있음에도 마치 자신의 피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천고에 다시없을 기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만년화룡과 만년빙룡의 비늘로 만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