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편 - 천지음양수투
믿을 수 없었다. 전설에나 나올 것 같은 만년화룡으로 만든 장갑이 있다니, 거기다 그것을 자신이 끼고 있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장수는 신기하다는 듯이 장갑을 살폈는데,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정말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구나!”
장수는 장법을 쓰는 장법가로서 이런 무기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서 빨리 장갑을 끼고 장풍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보물 창고에는 신기라 부를 만한 무기가 많았지만 장수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이 빨갛고 하얀 장갑 한 짝뿐이었다.
그렇게 서둘러 보물 창고를 나가려는데 어디서 애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잉~~~~~~~~ 잉~~~~~~~~~ 잉.
“음…… 이게 무슨 소리지?”
장수는 호기심이 생겼다. 혹시라도 자신의 손에 들린 장갑 같은 신기가 또 생길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가자 짧고 둔탁해 보이는 단검이 눈에 띄었다.
“뭐야, 이거?”
검신은 묵빛으로 되어 있었다.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앞의 단검이 보통 무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로였다. 주변을 가득 채운 게 천고의 신병이기나 명검, 보검들인데 이런 단검이 눈에 들어올 리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검은 지잉거리며 스스로 떨리더니 장수를 향해 그러는 것처럼 계속해서 울었다.
“참 나, 어이가 없구나. 이런 검이 나와 인연이 있다는 말인가?”
이건 분명 검과 장수가 인연이 있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이 정도로 울 줄 아는 검이라면 보통 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수는 천천히 단검에 손을 뻗어 짚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떨림과 울음이 멈췄다
“이거 참 신기하구나!”
장수는 검신을 살폈다. 검은 너무도 투박해서 무엇을 자르기도 힘들 듯했다. 더구나 묵빛을 띠고 있는 것은 검으로서 효용이 없을 것 같았다.
이번엔 검날을 튕겨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검신이 단단해서 튕겨지지도 않았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검이구나!”
검을 담을 검갑도 없었기에 단검만 들고 가야 했다. 나중에 하나 만들어야 할 듯했다.
“이제 나가야겠구나!”
장수로서는 장갑을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몇 개의 보물이 더 마음에 들었지만 장갑을 끼고 있자 이상하게 욕심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장갑에 신묘한 힘이 있어 다른 무기를 억누르는 듯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검이 운 것을 보니 단검 역시 보통 물건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장수는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장수를 본 내시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사님, 아직도 못 고르셨습니까? 원하신다면 제가 목록을 드리겠습니다. 취향대로 고르십시오.”
내시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이미 골랐습니다!”
“예?”
내시는 장수의 손에 들린 단검을 보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사님, 이곳에 있는 무기들은 전부 신병이기입니다. 그러니 이왕 들어오신 김에 절세의 무기를 고르십시오. 무기도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야 복이라 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무기들은 무사님에게 적합한 무기들이고 무사님이 쓰셔야 빛이 나니 제대로 된 것을 골라 주십시오!”
내시는 장수가 손에 장갑을 끼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장수로서는 그게 더욱 마음에 들었다. 효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 기물이라면 효능도 대단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이것이면 됩니다!”
“……무사님!”
내시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무인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무기가 잔뜩 널려 있었다. 그런데 그런 무기들 중에서 하필이면 가장 볼품없는 무기를 고를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장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제 눈에는 제 손에 들린 이 단검이 다른 어떤 보물보다 더욱 뛰어난 보물인 거 같습니다!”
장수의 말에 내시는 한숨을 쉬었다. 이미 그의 결심이 확고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십시오!”
“바로 무공비급이 있는 곳으로 가 주십시오.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다!”
내시는 질린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무공비급이 있는 곳으로 장수를 안내했다.
장수는 도착하자마자 남은 책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쉬운 표정으로 서고의 책들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 모두 읽겠다.”
그동안 이곳에서 읽은 책들은 장수에게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물론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간접적인 도움은 꽤 되었고, 후에 경지에 오를 때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수는 서고를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제 가야겠구나!”
혈교를 막으려면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장수가 가려고 하자 내시가 급히 말을 걸었다.
“무사님!”
내시의 부름에 장수는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공주님께서 무사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공주라는 말에 장수는 헛웃음이 나왔다. 갑작스럽게 공주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표독스러우면서 생긴 것은 말라 삐삐해서 여자 같지 않던 여자가 장수가 생각하는 공주였다. 황실 제일미가 아니라 천하제일 말라깽이라 불려 마땅했다. 더구나 성깔이 더럽고 까칠해서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구했으니 멀쩡한지 궁금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장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내시가 급히 말을 이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공주님은 별궁에 계십니다. 전부터 무사님을 뵙고 싶어 하셨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어서 미처 말을 못했습니다!”
공주가 부르는 것도 사실 매우 큰일이었다. 하지만 장수가 하는 일들은 범국가적인 계획으로, 일개 공주의 명보다 월등히 중요한 것들이었다. 그랬기에 내시는 공주의 부탁을 지금까지 말도 못한 것이다.
그러나 장수가 황실을 떠나려고 하자 급히 말을 꺼냈다.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장수의 말에 내시는 천천히 장수를 안내했다.
별궁은 황궁 바로 옆에 지어진 건물로 크기가 매우 컸다. 게다가 큰 정원이 있었고, 그 안에 여러 가지 기화이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장수는 풀과 꽃들을 쳐다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별궁은 공주와 왕자들이 기거하는 곳이기에 매우 호화스러웠다.
장수는 내시의 안내를 받아 별궁의 제법 깊숙한 곳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갔다.
매우 호화롭게 꾸며져 있는 방은 사방이 비단과 고급스러운 도자기로 가득 차 있었다. 더구나 전부 이국의 보물들이나 보석들로 장식된 것이, 방 안에 있는 것 중 하나만 팔아도 제법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수가 비싸 보이는 장식물에 눈이 팔려 있을 때, 방 한쪽에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왔는가, 무사여!”
‘누구지?’
장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는 공주가 눈에 보였다.
예전에 봤을 때랑은 차원이 달랐다. 예전에는 빼빼 마른 까칠녀였다면 지금은 아름다운 인형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더구나 화려한 옷에 보석이 가득하니 장수로서는 그 화려함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정말 아름답구나!’
보석과 화려한 옷으로 치장을 해서인지 공주의 외모는 완벽하다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더구나 화장술이 대단한 게, 예전에는 먼지와 흙으로 볼품이 없었는데 지금은 너무 하야면서도 매력이 돋아났다. 거기다 가슴도 제법 부풀어 오른 것이,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장수의 취향은 아니었다. 거기다 장수는 직접 가슴 부분을 만져 보기도 했기에 정확히 진실을 알고 있었다. 저 가슴이나 엉덩이는 어떻게 한 건지 몰라도 가짜였다. 그나마 진짜는 허리였다. 허리는 저렇게 잘록했던 것이다.
어쨌든 너무 아름다웠기에 장수로서도 눈길이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공주를 한참 동안 쳐다보자 공주의 볼이 붉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야? 쟤 볼이 왜 붉어지지? 암튼 저런 빼빼 마른 년은 관심도 없어.’
장수의 여성상은 모든 게 커야 했다. 이미 전생에 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었기에 잠자리를 기준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특히 가슴이 커야 좋았다. 그러니 공주에게는 조금도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상하게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갑자기 주변의 온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엄하다! 어딜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것이냐?”
목소리는 바로 공주 옆에서 나고 있었다. 시녀들이 공주를 호위하고 있었는데, 장수는 옆에 있던 시녀들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그, 그게 아니라……!”
장수는 언제나 당당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공주를 보자 가슴이 떨렸던 것이다.
‘내가 왜 이러지?’
손녀뻘밖에 안 되는 공주를 보는 게 매우 어려웠다. 더구나 말까지 더듬는 것이, 평상시의 장수와는 완전히 달랐다.
장수는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설마 공주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옆의 시녀를 바라보았다.
가슴도 크고 엉덩이도 큰 것이 딱 장수가 좋아할 만한 여자였다.
‘그래, 여자라면 저 정도는 돼야지.’
얼굴은 평범하게 생겼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결혼할 것도 아니고 하룻밤 인연이면 충분하니 몸매 외의 것은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저 여자를 봐서 그런 걸 거야.’
자꾸 보니 시녀도 제법 괜찮아 보였다.
장수는 의도적으로 공주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다.
“본녀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목숨을 구한 것을 칭찬하기 위해서이다!”
공주의 목소리는 매우 미성이었는데 높낮이에 굴곡이 있어 듣기에 아주 좋았다. 더구나 말할 때는 낮게 울려 퍼져서 귀가 시원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거 완전 요물이구나. 어떻게 같이 다닐 때는 몰랐지?’
공주와 함께 도망을 칠 때는 여유가 없었다. 거기다 공주는 잘 먹지도 못하고 기력이 쇠한 상태였기에 말할 기운도 없었다. 그러니 죽을힘을 다해 말했고, 그 탓에 장수에겐 까칠하다는 기억만 남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