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편 - 표길랑과의 대결
밖으로 나온 장수는 주변을 살폈다. 마음 같아서는 무사들의 무공 수준과 여러 가지를 살피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석가장에도 들르고 스승님의 얼굴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때 단주가 급히 달려 나왔다.
“소장주님, 이걸 가져가십시오!”
단주는 하나의 주머니를 가져왔는데, 꽤나 묵직한 것이 상당한 자금이 있는 듯했다. 아마 단주가 장수를 생각해서 넉넉하게 자금을 챙긴 듯했다.
“이건!”
“제 성의입니다. 받아 주십시오!”
단주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단주님.”
상인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자금뿐이었다.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모든 것을 거절하는 것과 같다. 때문에 장수는 확인도 하지 않고 주머니를 품에 넣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실력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장수는 말을 하며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장수가 달려간 곳은 무당파였다.
앞으로 언제 유운 스승님을 다시 만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번 임무는 최소 반년에서 일 년은 걸릴 것이었고 혹시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몰랐기에 이참에 보고 가려고 한 것이다.
무당파는 전운 덕분인지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다.
장수 역시 무당파의 정문을 통과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속가제자로서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장수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유운이었다. 자신의 정신적 지주이자 삶의 의미였던 유운을 보는 것은 장수에게 있어 하나의 신앙과도 같은 것이다.
유운은 한가롭게 길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제법 덩치 있고 중후한 인상을 가진 중년인도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장수는 유운이 보이자마자 소리쳤다.
“스승님!”
장수의 목소리에 유운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지금 나는 소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참 나, 나도 다 늙어서 환청이 들리다니 오래 살기는 글렀구나!”
유운으로서는 들려오는 게 환청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장수가 오는 것에 현실성이 없었던 것이다.
그토록 기다렸던 장수였기에 실제로 모습을 보자 마치 환각처럼 보였다.
먼저 반응한 것은 표길랑이었다.
그는 최근에 은자가 떨어져 죽을 고생이었다. 장수가 주고 간 은자가 제법 많았지만 헤프게 쓴 탓에 벌써 바닥을 보인 것이다.
“장수!”
표길랑은 장수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달려갔다. 물주가 온 것이다. 이제 목구멍에 가득 찬 거미줄을 벗길 수 있을 듯했다.
장수로서는 흥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유운 스승을 만나는 감동적인 순간에 눈치 없이 표길랑이 끼어들자 화가 났다.
‘이 자식한테 번천장을 한번 날릴까?’
번천장의 수련이 제법 된 데다 양의심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깨달은 바가 있었기에 잘하면 동시에 두 번 연달아 번천장을 때릴 수도 있을 듯했다.
하지만 표길랑에게 화풀이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아…… 대협, 계셨습니까?”
달려온 표길랑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표길랑은 장수에게 있어 정보함이었다. 그에게서 최대한 마교의 정보를 빼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 잘 지냈나?”
표길랑은 그 말과 함께 장수의 손을 잡아챘다. 너무 반가워서 손을 잡은 것이다.
당당한 마교의 장로이자 흑마열왕대의 대주인 표길랑이 아무 손이나 막 잡는 것을 본다면 마인들은 믿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표길랑에게 있어 장수의 손은 기녀의 하얗고 고운 손보다도 더욱 보드랍게 느껴졌다. 이제 이 손에서 묵직한 은자가 건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대협께서는 어떻게 성취가 있으셨습니까?”
장수의 말에 표길랑은 크게 웃었다.
“껄껄껄. 그래, 어느 정도 성취가 있었지. 그래서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야. 만약 성취가 없었다면 진즉에 이렇게 재미없는 곳에서 도망쳤겠지!”
표길랑이 이곳에 있는 유일한 이유는 유운이었다. 유운과 함께하면서 벽을 넘을 수 있는 희망을 얻은 것이다. 더구나 유운과 같은 일을 하자 어깨를 무겁게 하던 벽이 헐겁게 느껴졌다. 이제 잘만 하면 화경의 경지에 들 수 있는 길이 보이게 된 것이다.
무공 역시 장족의 발전이 일어났기에 무공으로는 일성이마를 빼고 적이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장수는 표길랑의 말에 코웃음이 나왔다. 장수가 봤을 때 표길랑과 같은 마인은 뼈대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마공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일정 한계 이상을 넘을 수 없다. 그것은 전생에 같은 마공을 익힌 장수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니 표길랑의 말이 허풍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 장수의 무력은 과거의 흑룡혈장 장삼보다 강했다. 그리고 표길랑은 끽해야 과거의 흑룡혈장 정도의 무위밖에는 없을 터였다.
깨달음은 모르겠지만 흡성대법 덕분에 많은 양의 내공을 가지고 있었기에 장수의 무위는 상당했다. 표길랑이 아무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내공에 한계가 있기에 흑룡혈장 장삼만큼의 무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셨습니까?”
장수가 비꼬는데도 표길랑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 앞으로 천하는 일성이마를 칭송할 게 아니라 일성삼마를 칭송하게 될 것이야. 껄껄.”
표길랑의 말에 장수는 손으로 얼굴을 쳤다. 정파의 한가운데인 무당파에서 스스로 마인인 걸 내세우는 것을 보니 한심했던 것이다.
하긴, 표길랑의 무위라면 중원에서는 잡을 자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공을 가르치고 같이 있던 유운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유운은 죄도 없이 마인과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큰 곤경에 처할 것이 분명했다.
‘이 자식이 어떻게 마교의 장로가 되었지?’
사실 표길랑의 머리가 나쁜 게 아니고 기질이나 습성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를 신경 쓰는 마인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정파인은 다르다. 정파인들은 짜잘한 것으로 따지기 때문에 단 하나의 약점만 있어도 그것을 잡아 공격하는 자들이 있었다.
장수는 한숨을 쉰 다음 표길랑을 향해 말했다.
“대단하십니다. 앞으로의 성취를 기대하겠습니다!”
“그래!”
표길랑은 뭔가 더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유운이 다가오자 말을 잇지 못하고 옆으로 피해 주었다.
장수는 유운을 보자마자 큰절을 했다.
“스승님.”
어려운 일을 겪으니 새삼 스승인 유운에 대한 생각이 간절했다. 더구나 폭인과 싸우면서 그동안 유운이 행한 것이 얼마나 대단한 용기이자 희생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유운이 한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희생이었다. 그랬기에 장수로서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 잘 갔다 왔느냐?”
“그렇습니다, 스승님.”
“내 제자 얼굴 한번 보자!”
유운은 장수의 얼굴을 보다 눈물을 흘렸다.
장수 역시 유운의 쭈글쭈글한 얼굴을 보자 눈물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감동의 눈물이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 있던 감동이 물결처럼 솟아 나와 쉬지 않고 그의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둘은 한참을 울었다. 그러자 표길랑 역시 마인답지 않게 같이 울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내가 왜 울어!”
표길랑은 자신이 왜 우는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소매가 다 젖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유운이 장수를 향해 물었다.
“그래, 잘 있었느냐?”
“그렇습니다, 스승님.”
“앞으로 계속 수업을 하는 것이냐?”
장수로서는 유운의 가르침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고, 전생의 장삼을 상대했을 때의 이야기도 다시 한 번 듣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지금으로선 짧은 시간도 내기 힘들 정도였다.
“그게 아닙니다. 그저 스승님의 존안을 보기 위해 온 것입니다!”
“그래, 아깝구나!”
유운으로서는 제자인 장수를 잡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바쁘다니 어쩔 수 없었다. 상인인 장수가 바쁜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보내 주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일만 끝나면 스승님에게 기초부터 다시 배우고 싶습니다!”
장수의 말에 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와 함께 기초부터 다시 배우자꾸나!”
“예, 스승님.”
“그럼 언제 갈 것이냐?”
“스승님에게 뜨거운 식탁 한번 올릴 여유는 있을 거 같습니다!”
장수의 말에 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다. 가자!”
“예, 스승님.”
* * *
식사를 하고 있는데 표길랑이 장수에게 눈치를 주었다.
‘이 자식, 또 무슨 속셈이지?’
대충 무슨 말을 할지 뻔했다. 돈을 달라고 하면서 뻥을 칠 게 분명했다.
‘에휴, 친구라는 게 죄지.’
친구도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이렇게 멍청한 녀석을 친구로 두면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장수는 마음이 약한 자신을 탓하며 표길랑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장수의 말에 표길랑이 웃으며 말했다.
“식사가 끝나면 동문끼리 같이 이야기나 나누세!”
표길랑의 말에 장수는 웃음이 나왔다.
마교의 장로와 석가장의 소장주가 어떻게 동문이 되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같은 속가제자이니 맞는 말이기도 했다. 표길랑이나 장수나 무당파의 속가제자이니 동문이라 할 수 있지만 연배가 너무나 많이 차이 났기에 동문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됐다.
하지만 장수로서도 표길랑과 해야 할 말이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따라가겠습니다!”
장수는 표길랑에게 말을 한 후 유운을 바라보았다.
“스승님, 찬이 입에 맞으십니까?”
장수의 말에 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랜만에 식당에 와서 그런지 음식이 입에 붙는구나!”
식당에서 밥을 먹어서라기보다는 장수와 같이 먹었기 때문이었다. 장수를 바라만 봐도 밥맛이 돌았던 것이다.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에 맞았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식당 주인에게 말을 해 놓을 테니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드십시오!”
“그럴 필요 없다. 수행을 하는 도사가 음식을 가려서야 되겠느냐? 그것은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너도 음식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마라!”
맞는 말이었다. 더구나 유운의 성격상 혼자서는 식당에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수로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따로 식당을 운영하는 자에게 은자를 몇 푼 건네주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 정도라면 장수로서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스승님, 나중에 도우님과 함께 오십시오!”
장수의 말에 표길랑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공짜로 식당에서 음식을 먹게 된 것이다.
표길랑의 입장에서는 바라던 바였다.
장수의 말에 유운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가 편한 대로 하거라!”
“예,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