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편 - 표길랑과의 대결
서서히 표길랑의 숨결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내공 조금 썼다고 체력이 바닥난 것은 아니었다. 흥분해서 머리가 뜨거워졌기에 숨결이 거칠어진 것이다.
차라리 생사지적과 싸웠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표길랑으로서는 생각도 안 했던 녀석이 마음대로 잡히지 않자 더욱 화가 났다.
“이놈, 잡혀라!”
표길랑의 말에 장수는 뒤로 세 걸음 물러난 다음 급하게 말다.
“대협, 왜 그러시는 겁니까?”
장수의 말에 표길랑은 인상을 쓰며 답했다.
“우선 네놈을 잡은 다음에 말하겠다!”
표길랑은 그 말과 함께 손을 뻗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손만 뻗은 게 아니라 무공을 펼쳤다. 간단한 금나수법이었지만 그 속에는 상승의 권법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가 무공까지 펼치자 장수로서는 그냥 피해 낼 수가 없었다. 장수 역시 권법으로 표길랑에게 응전했다.
투두둑.
순식간에 수십 방이 서로 간에 오고 갔다. 그랬기에 주변으로 소리만 난 것이다.
장수가 무공을 펼치자 표길랑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네, 네가 어떻게 이 정도의 무공을 펼치는 거냐?”
원래 상식이라는 게 있다. 천하에 다시없을 천재가 태어나 무공을 익힌다 해도 나이가 어리면 쌓을 수 있는 내공에도 한계가 있고 깨달음도 그 나이대의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장수의 무위는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표길랑은 그 속에 숨은 상승무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표길랑의 말에 장수는 천천히 말했다.
“스승님에게 배운 무공입니다!”
스승님에게 배운 것은 맞았다. 장수는 원래 초절정고수의 깨달음이 있었지만 그것을 한층 발달시키고 좀 더 진보시키게 만든 것은 유운 스승님이었다.
표길랑은 잠시 멍하니 하늘을 보더니 다시 장수를 보고 말했다.
“그걸 나더러 믿으라는 것이냐? 솔직히 말해라. 너 반로환동의 고수였냐? 그렇지 않다면 네 나이에 그 정도 무공을 쌓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게 아니면 동안이라서 그렇지, 실제로는 중년인인 거 아니냐?”
외모로 볼 때나 목소리로 볼 때나 지금까지 표길랑이 본 것이 있기에 장수의 지금 무위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엄마 배 속에서 무공을 쌓아도 지금 무위는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표길랑의 무공은 대단해서 화경의 고수인 일성이마가 아니라면 상대가 될 자도 없었다. 비록 간단한 탐색전에 불과했지만 표길랑으로서는 장수의 무위가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납득할 근거가 필요했다.
장수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저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신 분은 유운 스승님 한 분뿐입니다. 그분의 가르침 덕분에 제 무위가 이렇게 강해진 것입니다!”
“뭐? 저렇게 늙고 힘없는 노인이 가르쳐 준 무공이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냐?”
표길랑 역시 유운을 존경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랐지만 지금 들은 내용은 너무 충격적이었기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표길랑의 말에 장수는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감히 스승님을 늙고 힘없는 노인이라 했겠다?’
표길랑은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도 모르고 계속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알면 되겠지!”
마교 역시 고문술이 제대로 발전한 곳 중 하나였다. 포로가 생기면 고문을 통해 정보를 알아내야 했기에 표길랑 역시 그 방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장수도 표길랑을 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무공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표길랑이 주먹을 꺾으며 장수에게 무공을 펼치려 하자 장수는 서둘러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뭘 기다리라는 것이냐? 우선 널 꺾은 다음에 이야기는 천천히 들으면 된다!”
표길랑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아닙니다. 이곳이 아무리 한적한 곳이라도 무공을 펼치면 소리가 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다른 곳에 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장수의 말에 표길랑은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쳤다.
“네 녀석이 가벼운 손재주를 익힌 모양인데 겁이 없어도 너무 없구나. 더구나 뭐, 소리가 난다고? 걱정하지 마라. 소리가 나기 전에 네 녀석을 잡아 주겠다!”
표길랑은 그 말과 함께 장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장수 역시 무공을 펼쳤다.
표길랑이 주먹과 팔꿈치, 그리고 무릎을 이용해 순식간에 수십 방의 공격을 펼쳤고, 장수 역시 표길랑의 공격을 일일이 방어한 다음 같은 수의 공격을 펼친 것이다.
퍼퍼퍼퍽!
처음에는 방심한 표길랑이 장수의 공격에 몇 대 맞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표길랑으로서는 방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장수가 자신과 비슷한 무위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공력을 조절하면서 싸웠던 것이다.
그에 반해 장수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때문에 처음에는 표길랑이 손해를 보았지만 이내 서로 간의 공방이 비슷해졌다.
그렇게 계속해서 접근전을 펼치다 장수가 연거푸 주먹을 뻗더니 그대로 표길랑을 낚아채 집어 던졌다.
쾅!
바닥으로 떨어진 표길랑은 잠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장수에게 나가떨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천하에 누가 있어 자신을 낚아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실로 말도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장수는 잠시 시간이 나자 표길랑에게 소리쳤다.
“그럼 장소를 옮길 테니 나를 따라오십시오!”
이성적으로 설득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더구나 이제는 기본무공이 아니라 상승무공이 펼쳐질 것이고, 상승무공이란 내공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에 분명 무당파에 소리가 들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수로서는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장수가 먼저 달려가자 표길랑 역시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표길랑은 잔뜩 성이 난 상태였지만 장수의 뒷모습을 보고 공격하지는 않았다. 당당한 마교의 장로가 어린 후배를 상대로 뒤에서 암격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왕이면 당당하게 장수를 이겨 무릎 꿇리고 싶지, 비겁한 수단으로 이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장수의 뒤를 묵묵히 뒤따랐다.
무당파를 벗어나 무당산에서도 제법 한적한 곳까지 도달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무당파에서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장수가 뒤를 돌아본 후 표길랑에게 말했다.
“이 정도라면 괜찮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표길랑은 잠시 장수를 쳐다보더니 빠르게 말했다.
“네 녀석, 경공이 제법이구나!”
모든 무공의 기본은 경공이었다. 무공이 경지에 이르면 경공술이 발전하는 것이다. 그랬기에 표길랑은 장수의 경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경공술이 안정적이고 느리지 않은 것이, 장수의 경지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박투술을 펼칠 때의 실력은 기본이 탄탄하다는 것이다. 그랬기에 표길랑은 장수에게 호기심이 들었다.
하지만 호기심을 능가하는 감정이 있었다. 바로 호승심이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전에 우선은 달아오른 몸을 식혀야 했고, 몸을 식히기 위해서는 눈앞의 장수를 때려눕혀야 했다.
“과찬이십니다!”
장수의 말에 표길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풀었다.
상승무공을 펼치기 전에 몸을 이완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상승무공 중 몇 개는 몸에 상당한 무리를 가져왔고 잘못하면 뼈가 꺾일 수도 있기에 조심해야 했던 것이다.
더구나 표길랑이 익힌 무공은 마도의 무공이었다. 어느 정도 무공의 반동을 생각해서 미리 대비해야 할 게 많았다.
장수는 표길랑의 그런 모습에 긴장했다. 장수 역시 마도에 몸을 담고 있었기에 표길랑의 행동이 전력을 다하겠다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장수는 주먹을 꽉 쥐고 잠시 생각했다.
‘과연 장갑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달리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장갑과 단검을 세심하게 살폈다. 나중에 대장간에서 확인을 해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수투를 끼고 있으면 주먹이 다칠 일은 없을 거 같았다. 만년화룡과 만년빙룡의 비늘로 만들어서 그런지 내구성이 매우 뛰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직 어떻게 써야 하는지 사용법을 알지 못했기에 지금으로서는 단순하게 손을 좀 더 자연스럽게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밖에 없었다.
물론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장풍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장갑은 다른 사람의 눈에도 띄지 않고 표면에 얇게 달라붙어 있어 피부와 진배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피부처럼 밀집해 있어 장풍을 쓰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장수 역시 천천히 몸을 풀었다. 잠깐 박투전을 해봤지만 표길랑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전력을 써야 하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버릇을 고쳐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이유 따윈 필요 없었다. 눈앞에 맞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싸울 이유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전력을 다해 싸우고 싶었다.
표길랑은 몸을 세세히 푼 뒤 장수를 보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면 용서해 주겠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대결이 시작되면 봐주는 것은 없다!”
그 말과 함께 표길랑은 가까운 나무를 향해 장풍을 발사했다.
쾅!
매우 자연스럽게 장풍이 나갔는데, 그 위력이 어마어마한 듯 나무가 흔들렸다. 아니, 장풍에 의해 상당히 깊게 파인 것을 볼 수 있었다.
표길랑은 자신이 장풍을 쓸 수 있을 정도의 고수라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장수 역시 옆의 나무를 향해 장풍을 발사했다.
쾅!
표길랑보단 약했지만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발사된 장풍이 나무를 가격했고, 잠시 뒤 하늘에서 사방으로 낙엽이 날렸다.
장수가 장풍을 쓰자 표길랑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장풍을 쓸 정도의 고수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표길랑은 곧 자세를 바꾸었다.
“이거 내가 실수했군. 장풍을 쓰는 것으로 보아 초절정고수인 듯한데 너무 가볍게 대한 거 같군!”
“미리 말을 하지 않은 제 잘못입니다!”
장풍을 쓸 줄 아는 고수를 상대로 방심은 죽음이었다. 표길랑은 다시금 자세를 잡고 장수에게 말했다.
“어찌 되었든 시작하지!”
표길랑은 마인답지 않은 마인이었다. 만약 보통의 마인이었다면 이 정도로 시간을 끌거나 예를 갖추진 않았을 것이다.
마인이란 강함을 갈구했고,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었다. 때문에 대결이 시작되면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에 반해 표길랑은 장수의 사정을 많이 봐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표길랑은 말이 끝나자마자 번개같이 장수에게 달려들어 권법을 펼쳤다.
마교의 권법 중 삽시간에 대여섯 개가 번개처럼 펼쳐졌다.
장법의 대가인 표길랑은 권법에도 일가견이 있었고, 펼치는 권법 역시 극에 달했다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