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편 - 정보를 나누다
장수의 실력도 대단했지만 움직임은 마치 표길랑의 공격을 아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실력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니고 무공을 알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같은 초절정고수였다. 아무리 그래도 동작을 펼쳐야 반응할 수 있지 그 전에 반응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장법을 쓰는 초절정고수는 매우 드물었기에 오랜 세월을 살아온 표길랑 역시 같은 초절정고수 중에 장법을 사용하는 자와는 몇 번 싸워 본 적이 없었다. 있어 봐야 이미 죽은 흑룡혈장 장삼이 다였던 것이다.
그런데 장수의 움직임이나 장풍을 쓰는 법은 너무나도 능숙해 보였다.
장수로서야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전생에 표길랑과 많이 싸워 본 데다 장법의 지존이라 할 수 있는 번천장협 유운과도 대결을 펼쳤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전 경험은 장수가 더 많았다. 천하를 돌며 혈교가 명하는 임무를 전부 처리했기에 장법을 펼치는 것도 훨씬 능숙했다.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유운 스승님에게 배우면 그렇게 됩니다!”
장수의 말에 표길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내가 유운 스승님에게 무공을 배운 것은 자네보다 늦으니 말이야.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자네에게 밀렸지만 다음번에는 어림도 없어. 그러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이번 대결에선 표길랑이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실력 차이는 그리 많이 나지 않았지만 장수는 표길랑의 무공이나 공격 방식을 대부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양의심법은 거의 사기 기술이라 해도 될 만한 것이었다.
표길랑의 흑룡심법이 공력을 몇 배로 늘려 주는 놀라운 기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법의 위력이나 발사 속도를 늘려 주지는 않는다.
그에 반해 장수가 펼친 장풍은 양의심법의 도움을 받아 거의 시간차 없이 발사할 수 있었기에 더욱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만약 장수가 양의심법을 통해 장풍을 연달아 발사할 수 없었다면 대결은 좀 더 길어졌을 것이다. 흑룡심법을 통해 내공을 증진한 표길랑이 무서울 정도의 강함을 가졌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다음번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자네 역시 무슨 일을 하든 잘 풀렸으면 하네!”
표길랑은 그 말을 끝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시가 급했기 때문이다.
장수는 표길랑이 떠나자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깝구나. 써먹을 데가 많았는데!”
장수는 표길랑을 적절히 설득해 석가장을 위한 일을 시키려고 했다. 표길랑이라면 싼값에 열심히 일해 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 생각은 상상만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오랜만에 만난 친우를 떠나보내려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어서 가야겠구나!”
장수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이렇게 가만히 서서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장수는 바로 스승인 유운이 거처하는 숙소로 달려갔다.
* * *
유운의 숙소로 가는 길은 상당히 멀었다.
표길랑과 대결을 펼치면서 상당히 먼 거리를 온 데다 주점을 찾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계속해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법 시간을 잡아먹었지만 결국 서둘러 다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유운의 거처는 불이 밝혀 있었고, 장수는 서둘러 거처로 들어갔다.
“왔느냐?”
유운은 매우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예, 스승님.”
“그래, 도우님과는 얘기 잘 나누었느냐?”
“그렇습니다, 스승님.”
장수의 말에 유운은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분, 도우님 덕분에 내가 요즘 즐겁더구나. 마음이 착하고 순수한 것이 참 보기가 좋았단다!”
표길랑으로서는 오랜 시간 벽에 막혀 있던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는 소중한 존재인 유운에게 어떻게든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최선을 다해서 봉양을 한 것이다.
유운으로서는 그 모습이 표길랑의 천성으로 오해한 것이지만 말이다.
장수는 유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제자가 보기에도 좋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 만약 좋은 곳에서 배움을 얻었다면 지금쯤 이름을 날리는 협객이 되었을 것이야. 정말 아까운 일이지!”
유운은 말을 하면서 조금의 아쉬움도 없어 보였다. 모든 것은 인연이었다. 표길랑이 마인인 것은 그 또한 순리인 것이다.
유운으로서는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에 말이 부드럽게 나왔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자야, 할 일이 많으냐?”
유운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제자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장수는 사실 유운과 만나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다. 앞으로의 일이나 늘어난 무위, 그리고 계속해서 생겨나는 무공에 대한 의문점 등 몇 달 동안 물어도 끝이 없을 정도로 질문이 많았다.
하지만 한 가지도 제대로 물어볼 수가 없었다. 편안한 표정을 한 유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의문이 다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몇 달을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스승이 늙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약해진 듯한 스승의 모습을 보자 다른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스승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장수의 말에 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제자인 네가 이렇게 걱정을 해주는데 몸이 안 괜찮을 리 있겠느냐? 네가 걱정해 준 덕분에 나는 이렇게 건강하단다!”
유운은 말을 하면서 팔을 거뜬히 들어 올렸다.
하지만 장수의 눈에는 깡마른 팔이 더욱 앙상해 보일 뿐이었다.
“건강하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래, 내 나이에 이렇게 건강하다는 것도 복이지. 내가 처음 본파에 왔을 때 행동을 같이했던 자들도 이제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 모두 속세를 떠난 것이지. 나 역시 이제 떠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유운의 말에 장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이토록 정정한 스승이 속세를 떠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승님, 스승님께서는 오래도록 건강하셔야 합니다!”
장수의 말에 유운은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은 원시천존님이 안배하신 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그런 것이겠지. 내 너무 오래 살았구나. 그래도 너같이 훌륭한 제자를 둬서 다행이다. 무당의 정수도 제대로 전수한 거 같고 말이야!”
“아닙니다, 스승님. 저는 아직도 배울 게 많습니다!”
“그래, 아직 못 가르친 게 많지. 그러니 빨리 돌아와서 남은 것들을 배우거라. 하긴, 네 재능이 워낙 뛰어나 금방 배울 테지만 말이야!”
“아닙니다, 스승님. 저는 스승님에게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니 스승님께서는 오래오래 사시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장수의 말에 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걱정하지 말거라. 내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은 모두 가르쳐 주고 가더라도 갈 테니 말이야!”
유운의 호언장담에도 장수는 걱정스러웠다. 유운이 갑자기 운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승님, 그런데 요즘에도 전진심법을 운기하십니까?”
장수의 말에 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네 덕분에 몸이 좀 더 편안해진 거 같단다. 그래서인지 밤에 잠도 잘 와. 예전에는 허리가 아파 오고 비가 오면 온몸이 저려 왔는데 그런 통증도 가셨고 말이야!”
유운의 말에 장수는 왈칵 울음이 쏟아질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운은 폭발 이후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남몰래 고통을 참은 모양이었다.
장수는 그것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러셨습니까?”
“그래, 하지만 이제 다 나았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제자야, 정말 고맙구나!”
유운의 말에 장수는 가슴이 아팠다.
‘이런, 내가 실수했구나. 황궁무고에서 나올 때 영약이라도 하나 챙길 것을…….’
스승님의 보신을 위해 영약을 챙겨 왔어야 하는데 미처 그 생각을 못한 것이다.
장수는 그것 때문에 가슴이 아파 왔다.
“제가 안마를 해드리겠습니다!”
“안마 말이냐? 괜찮다!”
유운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장수를 향해 어깨를 내밀었다.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안마를 해주겠다는데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장수는 천천히 유운의 어깨를 만지며 기를 넣어 그의 몸 상태를 살폈다.
유운의 몸 상태는 예전에 비해 월등히 나아져 있었다. 예전에는 곳곳의 기혈이 막혀 있고 혈도 역시 정상이 아니었는데 많이 좋아진 것이다.
아마 전진심법의 공능과 장수가 넣어 준 선천지기가 유운의 몸을 어느 정도 정상으로 만든 듯했다.
장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스승님, 오래오래 건강히 사십시오!’
그 말과 함께 강하게 의지를 다지자 장수의 몸속에 있던 선천지기 중 일부가 천천히 유운의 몸속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유운의 몸 상태로는 받을 수 있는 양이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예전에 넣은 선천지기도 아직 다 못 쓴 상태였다.
유운은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저 장수의 손이 따듯하다는 느낌만 받을 뿐이었다.
장수는 이왕 시작한 김에 군데군데 안마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하자 유운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고맙구나. 네 덕분에 몸이 십 년은 젊어진 거 같구나. 그러니 이제 그만해라. 네가 너무 힘들 거 같구나!”
“아닙니다. 스승님을 위해서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못하겠습니까?”
장수의 말에 스승은 웃었다.
“이제 정말 괜찮다. 몸 상태도 좋아졌고, 네 덕분에 기분 좋게 잠을 잘 수 있을 거 같구나!”
장수는 그제야 손을 떼고 유운을 바라보았다.
“스승님.”
“그래, 바쁜데 어여 가보도록 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