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편 - 석가장
그렇게 한참 동안 총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멀리서 누군가가 오는 것이 보였다.
무사들 이십여 명을 동반한 자는 매우 뚱뚱한 자였다. 얼마나 뚱뚱한지, 마치 거대한 공이 달려오는 듯이 보였다.
바로 석가장의 장주였다.
장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반가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
장수의 말에 장주 역시 크게 외쳤다.
“아들아!”
장주는 구르다시피 달려와서 장수를 안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장주였다.
“아들아, 그동안 잘 지냈느냐?”
“예, 아버지!”
“그래, 우리 장한 아들 얼굴이나 한번 보자!”
장주는 유심히 장수의 얼굴을 살폈다.
그렇게 한참을 보더니 곧 인상이 찌그러졌다.
“이런, 곱게 키운 내 자식의 얼굴이 반쪽이 되었구나. 이를 어쩔꼬!”
장주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옥이야 금이야 키운 아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뼈만 홀쭉하게 남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양번에 있는 단주가 장주의 앞에 있었다면 당장 불호령을 내렸을 것이다.
장주가 먼저 단주에게 장수를 부탁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고생을 시키라는 것은 아니었다.
장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단주는 죄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너를 그에게 맡겼으니 너에 대한 모든 것은 단주로 인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경을 칠 것이야!”
장주의 말에 장수는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단주님은 죄가 없습니다!”
“죄가 없기는! 죄가 없으면 네가 이 모양이 됐겠어? 어쩐지 양번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성과를 내더니, 그게 다 내 아들을 혹사시켜 얻은 성과구나!”
길길이 뛰는 장주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장수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장주는 계속해서 단주를 성토하더니 그제야 속이 어느 정도 풀린 듯 장수를 바라보았다.
“그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
장주로서는 사실 장수에 대해 궁금한 게 매우 많았다. 양번에서 벌인 믿기 힘든 성과도 그렇고, 황실과의 인연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더구나 황실에서 새로 혜택을 주는 것을 보면 꿈인지 생신지 헷갈릴 정도였다.
원래 황실은 주는 것 없이 상인을 쥐어짜는 것이 일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주지를 못해 안달이 났으니 궁금할 수밖에.
그렇게 된 이유를 장수로 짐작한 장주로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알아야 했다.
“그게!”
장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황실과의 관계나 기타 여러 가지 일들을 설명하는 것도 어려운데 무공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상인인 장주가 초절정이니 고수니 하는 개념을 알아듣긴 힘들 것이다.
그나마 상인으로서 연관이 있는 것이 고수겠지만 사실 고수를 표현하는 방식은 많이 달랐다.
장수는 무공의 경지로 파악하지만 상인은 전적으로 눈에 보이는 결과로 파악했다. 그랬기에 어디 무관 출신이며 전적이 무엇인지로 무사의 몸값을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니 장수의 현재 무위에 대해 설명을 해봐야 알아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손아귀 힘으로 바람을 일으켜 언덕을 무너뜨리고 강철을 맨손으로 부수는 것은 실제로 본다고 하더라도 믿지 못할 일인데 그것을 어떻게 말로 설명하겠는가?
장수는 황실이나 마교 등 곤란한 얘기는 빼고 양번에서 상인 일을 한 것과 군대에 소속되어 산적 토벌을 할 때 전리품을 얻어 판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사실 그 일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고, 그 정도 성과를 거두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주는 장수의 말을 무척 흥미롭게 들었다.
“그래,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그래서 이렇게 살이 쪽 빠진 게야. 사실 나는 네가 걱정이 되어 잠도 오지 않았단다. 중원은 매우 험난한 곳이고, 상행위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거든. 그런데 네가 이렇게 일을 잘 처리하고 돌아오니 나로서는 만족할 만하구나!”
장주는 계속해서 장수를 칭찬했다.
“이제 상행위에 대한 경험은 대충 쌓은 거 같으니 그만 본가로 돌아오거라!”
“예?”
장수로선 의외의 말이었다. 갑자기 돌아오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험난한 강호 생활은 이제 그만하라는 것이다. 상단 일은 다른 사람을 시키면 되고, 양번의 사업체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 그러니 너는 이제 본가에서 일을 배우도록 해라!”
장수를 보낸 이유는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였고, 이미 충분히 경험을 쌓은 것처럼 보였다. 이제 후계자 수업을 시킨 후 장주의 직위만 넘겨주면 되는 것이다.
장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할 게 많이 남았습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 강호의 정세는 매우 어지럽다. 더구나 황실에서는 감찰단이 공격당한 것을 그냥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본가에도 무기 공급을 추가로 요청했단다. 그것만 봐도 돌아가는 정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단다. 만약 전쟁이 벌어지면 매우 위험해. 그나마 이곳은 가문의 터전이 마련되어서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기 쉽단다. 문제가 터지면 임시로 도망을 갈 곳도 있고 말이야. 그러니 나는 네가 이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장수는 손을 흔들며 부정했다.
“아닙니다, 아버지. 저는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장수의 말에 장주는 다시 한 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네가 잘 모르는 게 있어. 황실이 총애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지간이야. 그들은 매우 냉혹한 자들이라 상황에 따라 상대방을 쉽게 쳐낸단다. 지금이야 무슨 이유에서인지 너를 좋게 보고 있지만 금세 이용 가치를 못 느끼고 다른 자들로 갈아 치울 것이야. 그렇게 되면 장수 네가 받는 충격도 매우 클 것이다!”
장주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황실의 관리들은 이익을 매우 많이 추구했고, 만만한 상가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큼 냉정하게 대했다. 그리고 우습게 봤기에 장주가 하는 말이 현실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장주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황실이 장수를 인정한 것은 무위 때문이었다. 초절정고수로서 무력이 대단했기에 그것을 보고 잘해 준 것이다. 더구나 동창의 수장 자리까지 받았으니 어지간해서는 장수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장수가 얻은 장군의 직위나 권력은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굳이 동창의 수장 자리가 아니더라도 장수의 무위는 초절정고수였고, 화경의 경지에 들 가능성이 높은 무인이었다.
그러니 황실이 전폭적인 지지를 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장주는 그런 것을 모르기 때문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아버지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일단 그것을 해결하고 나중에 다시 얘기해야 할 거 같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냐? 황실에서 무슨 의뢰라도 받았느냐?”
장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황실에서 저에게 따로 부탁한 게 있습니다!”
장수의 말에 장주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황실이 너에게 무슨 의뢰를 했단 말이냐? 그리고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이럴 때는 있던 계약도 파기해야 하고 쓸데없이 움직이면 큰일 난다!”
장주로서는 장수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림의 세계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마교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인들은 피를 먹고 인육을 먹으며, 뿔이 달렸고 손과 발이 네 개씩 있어 사람을 산 채로 갈가리 찢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니 그런 괴물과 싸우는 황실에도 협조를 할 수 없는 것이다.
황실과 마교가 전쟁을 벌이는데 괜히 석가장이 황실에 도움을 주었다 마교에 걸리면 마교에서는 석가장에 마인을 파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석가장의 식솔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장주의 생각이었다.
장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위험한 일이 아닙니다. 황실에서 구매 건으로 저에게 임무를 하나 맡겼습니다. 그러니 이번에 가서 그것을 반드시 계약하고 와야 합니다!”
황실에서는 관리만 임용해 쓰는 것이 아니라 상인들에게 임시로 구매 건을 맡기기도 한다. 때문에 황실에 소속된 상단도 존재했다.
장수가 말한 것은 황실의 관리와 비슷한 상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장수의 말에 장주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황실의 상인이라니? 거기다 구매 건이라니? 너 설마 황실의 상인이 된 것이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일 없을 것입니다. 그냥 물건만 사오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 일은 마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장수의 호언장담에 장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장수가 이번에 할 일은 혈교와 관련이 있는 것이지 마교와는 관련이 없었다. 장수는 아예 마교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미 표길랑을 통해 마교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얻은 상태였기에 그것만 보고하고 남는 시간은 혈교에 투자할 생각인 것이다.
“그래,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장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제가 맡은 일은 철저한 보안을 요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휴…… 차라리 황실과 계약하기 전에 알았더라면 결사적으로 말렸겠지만 이미 계약을 했다니 늦었구나. 황실과의 계약을 파기할 경우 후폭풍이 엄청나니 우선은 해결을 해야 할 테지. 그래, 준비는 철저히 했느냐?”
“예? 무슨 준비 말씀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