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편 - 석가장
장수의 말에 장주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계약을 하러 갈 준비 말이다. 원래 상인이라는 것은 풍채가 엄청나게 중요하고, 체격도 좋아야 한다.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거든. 그리고 소송 마차에서부터 무사 하나를 써도 제대로 된 무사들을 써야 한다. 그런데 네 꼴을 보아하니 하나도 준비하지 않은 거 같구나!”
장수는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아버지. 매우 급한 일이라 말을 타고 달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구매와 관련된 것들은 따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말을 타고 최대한 빨리 가는 게 관건이지, 도착만 하면 호화로운 마차에 정예병들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장수의 말은 사실이었다.
장수는 관청이나 주둔지에서 병사 오천 명을 지휘할 권한을 가진 장군이었다. 원하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상황이 그러하니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장수의 말에 장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가 어련히 잘하겠냐마는 걱정이 되는구나. 아무래도 시국이 이러니 나는 네가 얌전히 본가에만 있었으면 하는구나. 그리고 몸도 다시 원상태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지금 모습은 상인이 아니라 꼭 낭인 같구나. 낭인 말이야. 지금 상태로는 큰 거래를 따기 힘들단다!”
장주는 철저히 상인의 시각으로 장수를 평가했다.
사실 그게 맞는 말이었다. 상인은 풍채와 가진 자금으로 상대방을 평가했다. 그러니 자금이 아무리 많더라도 풍채가 별로이면 반은 깎여 나가는 것이다.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대한 빨리 살을 불리겠습니다!”
말만 그렇게 했지, 실제로 살을 불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살이라는 것은 무공에 방해가 되는 것이다. 물론 살이 많아야 펼칠 수 있는 무공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했고, 사악한 무공이 대부분이었다. 정상적인 무인이라면 날렵한 몸매를 가지고 있어야 강한 무공을 쓸 수 있었다.
그러니 장수로서는 살을 찌우고 싶지 않았다. 물론 장수의 무력이 월등히 강해져서 뚱뚱해도 일성이마보다 우위에 있다면 생각이 달라질 테지만 말이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바람을 들어드릴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날렵한 몸매를 가지고 싶었다.
“그럼 언제 가는 것이냐? 가기 전까지 최대한 좋은 것만 먹도록 하거라!”
장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죄송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가야 하는 일입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냐? 한시라도 빨리 가야 한다니? 그럼 내일 당장이라도 가야 한다는 말이냐?”
장주의 말에 장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은 아버지의 얼굴만 보러 이곳에 온 것입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무슨 말이냐? 그럼 식사 한 끼 먹을 시간도 없다는 말이냐?”
장주의 말에 장수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매우 시급한 상황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그럼 이미 음식을 차리라 지시한 상태이니 한 숟가락이라도 들도록 해라!”
장주는 너무도 간절히 말했다.
장수도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가 밥을 먹으라는데 그것을 거절할 자식이 몇이나 되겠는가. 결국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장수가 허락하자 장주는 장수의 손을 잡고 급히 발길을 재촉했다.
“빨리 오거라, 아들아.”
“예, 아버지!”
이미 집안 식탁에는 음식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매우 큰 상에 갖가지 별식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음식 중에는 내륙지방의 음식이나 해안지방의 음식들도 있어 석가장이 평상시 음식 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장수는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로 많은 음식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황궁에서도 이런 음식은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장수가 매우 바빴기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하고 간단하게 먹은 탓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정도를 넘어선 것이었다.
더구나 음식을 먹을 사람은 아버지와 장수, 두 명뿐이었다.
한데 두 명이 먹을 음식이 산처럼 쌓여 있는 것이다.
“어서 먹거라, 아들아. 먹어서 홀쭉해진 배를 다시 채우도록 해라!”
장주는 계속해서 장수에게 음식을 권했다.
장수는 어쩔 수 없이 음식을 꾸역꾸역 넣기 시작했다.
표길랑과 싸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번엔 음식 때문에 배가 터질 정도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 * *
표길랑은 매우 빠르게 신강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초절정고수인 표길랑이었기에 단거리는 말보다 직접 달리는 게 더 빨랐다. 물론 장거리는 말보다 느렸지만 그래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그가 가는 곳은 신강에서도 천산 부근이 아니었다. 바로 신강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산이었다.
표길랑은 익숙하게 산을 타고 올라가더니 매우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그리고 손을 입으로 모아 휘파람 소리를 냈다.
삐잇! 삐삐삐삐잇~ 빼빼!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방이 잠시 고요해졌다.
다시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삐! 빼빼! 빼! 삐! 삐삐삐! 삐!
표길랑은 휘파람 소리에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그렇게 여러 번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지다 멎었고, 기묘한 정적이 사방으로 퍼졌다.
표길랑은 잠시 서서 기다리다 들고 있던 행낭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한참을 기다렸다.
잠시 뒤,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수십 명의 무사들이 나타났다.
“대주님!”
나타난 자들은 마인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눈에선 강렬한 마기가 새어 나오고, 팔과 다리는 깡말라 있었다.
때문에 체격이 작아 보이면서 키가 더욱 커 보였다.
이들이 바로 마교가 자랑하는 강력한 무력부대 중 하나인 흑마열왕대였다.
그들은 표길랑에게 달려들더니 그대로 부복했다.
“오셨습니까, 대주님!”
“그래, 그동안 수련하느라 수고 많았다!”
표길랑은 그 말을 하면서 대원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수련은 개뿔!’
대원은 표길랑의 말에 부아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계급이 깡패라고, 자신들의 대주인 표길랑의 말을 거역할 순 없는 것이다.
마교의 당당한 고수인 그들은 마교가 중원을 공격하기 위한 척후병이라는 사실에 매우 감복한 상황이었다.
모든 마인들이 바라는 것은 마도천하였고, 그 일보가 바로 중원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번 기회는 그들이 바라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목숨을 걸고 정파의 고수들을 학살하며 명성을 쌓고 싶었다. 그리고 살아만 남는다면 교에서 막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감동도 잠시, 이 산에서 대기하라는 표길랑의 말에 황당함을 느꼈다.
황당함이 배고픔이 되는 것은 일순간이었다.
산에 몇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 먹을 식량이 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그들을 대표하는 흑마들도 먹을 게 없어 쫄쫄 굶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곳에서 수련은커녕 그날그날 먹을 음식을 구하는 것이 더 큰일이 돼 버렸다.
그래도 마교가 자랑하는 흑마열왕대답게 지금까지 아무도 아사는 하지 않고 버텼지만 대부분 영양실조로 고생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대주의 귀환이 더욱 반가웠던 것이다.
“임무는 마치셨습니까?”
대원들은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아니, 그럴 여유도 없었기에 먹고살 길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대주가 왔으니 궁금한 것을 물어야 했다. 원래 받았던 임무를 수행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대원들의 말에 표길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임무는 마쳤다. 그러니 내가 돌아온 것이다. 이제 본교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
“우와아아아!”
대원들로서는 감동적인 말이었다. 얼마나 듣고 싶은 말이었던가? 교로 돌아가는 것이 마치 그들에겐 필생의 소원인 것처럼 느껴졌다.
교에서는 최소한 밥을 굶기지는 않았다. 게다가 마음 놓고 술도 마시고 여자들도 충분히 안을 수 있었다.
표길랑의 말에 대원들은 잔뜩 신이 났다.
그렇게 말을 하는 동안 대원들이 속속 앞에 나타났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상당히 먼 곳까지 달려갔던 대원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말들도 모습을 드러냈는데, 대원들의 몰골처럼 깡마른 것이 뼈다귀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표길랑은 불쌍하다는 듯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아니, 대체 그 몰골이 무엇이냐? 당당한 마교의 무사로서 창피한 것을 알아야지. 내가 무사 시절엔 말이야, 한 달을 굶어도 흙을 퍼먹으면서까지 체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흙을 먹는다고 체형이 유지되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표길랑의 억지에 정면으로 대들 만큼 용기를 가진 자는 없었기에 모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든 최대한 빨리 복귀해야 한다. 해야 할 게 많거든. 그리고 이건 선물이다!”
표길랑은 그 말과 함께 가져온 것을 꺼냈다. 바로 만두였다. 여기 오기 직전에 마을에 들러 산 만두로, 숫자는 겨우 백 개도 되지 않았다.
이것을 들고 오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하지만 만두 백 개는 흑마열왕대 대원 모두가 먹을 수 없는 양이었다. 그랬기에 한 개의 만두를 여러 명의 대원들이 나누어 먹어야만 했다.
대원들은 나누어진 조각도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쪼개 먹었다.
얼마나 먹고 싶던 만두인가?
대원들이 걸신들린 것처럼 만두를 먹자 표길랑은 미소를 지었다.
“자, 대충 준비를 끝내라. 이제 마을로 내려가서 배 터지도록 먹여 주마!”
“와!!!!!!!”
대원들의 환호성이 산을 가득 메울 것처럼 보였다.
표길랑이 미소를 짓더니 외쳤다.
“가자!”
그 말과 함께 표길랑이 앞서 달려 나가자 대원들이 표길랑의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흑마열왕대의 대원들은 곧바로 근처 마을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마을의 음식을 거덜 낸 후에도 먹는 것을 끝내지 않고 또 다른 마을로 갔다.
그렇게 몇 개 마을의 음식을 바닥낸 후에야 배가 불렀다.
대원들의 입을 만족시켜 준 표길랑은 그 길로 바로 천산 마교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