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편 - 서장
천마는 표길랑을 살펴보았다. 기도가 안정된 것이, 예전보다 어느 정도 진보를 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 임무 덕분에 어느 정도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그래? 이거 기쁜 일인데. 좋아, 얼마나 늘었는지 내 직접 확인해 보지!”
천마는 그 말과 함께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표길랑도 그 뒤를 따랐다.
잠시 뒤, 연무장에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굉음이 터져 나갔다.
그와 함께 잠시도 쉬지 않고 비명 소리와 철판이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자 천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사람으로 짐작되는 물건인 듯해 자세히 보니 바로 표길랑이었다.
군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혹시 죽지나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 장로님은 살아 계십니까?”
군사의 말에 천마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 본교의 부교주를 죽일 수는 없지 말이야!”
“예?”
군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교에는 부교주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교주 타령을 하니 의아했던 것이다.
“이 녀석, 실력이 제법 늘었어. 어쩌면 경지를 넘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앞으로 제대로 된 지원을 해줘야겠어!”
천마가 칭찬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니, 최근에는 아예 없었다. 천마의 안목은 누구보다 높았고 자존심도 강했기에 칭찬을 하기보다는 모멸감을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천마가 이 정도로 표현하다니, 이것은 최고의 칭찬이나 다름없었다.
“그 말씀은!”
“그래, 본교가 또 다른 화경의 고수를 가질지도 모르겠다는 말이야. 지금 녀석은 기절한 게 아니야. 깨달음의 세계에 빠진 것이지. 아마 의식을 되찾으면 한 단계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될 것이야!”
천마의 말에 군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럼 화경의 고수가 되신 겁니까?”
군사의 말에 천마는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 화경의 경지가 그리 쉬울까? 녀석이 화경의 고수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지. 여러 번 한계를 넘고 벽을 넘어야 그 절대의 경지가 약간이나마 들어올까? 하지만 이렇게 시작되는 첫 단추를 맞추었으니 그 누구보다 더 가능성이 생긴 것이야. 그렇게 되면 본교에는 화경의 고수가 두 명이나 생기는 것이지!”
천마의 말에 군사는 입을 벌렸다.
화경의 고수의 위력은 군사인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일인군단이라 할 수 있는 화경의 고수는 그 자체가 재앙이었고, 비교할 수 없는 무력부대였다. 한 개 문파 정도는 순식간에 정리할 힘이 있었던 것이다.
가뜩이나 마교의 세력은 천하제일이었다. 그리고 천마의 실력은 비공식이지만 천하제일고수라 할 수 있었다.
정파에 성승이 있고 혈교에 혈마가 있긴 하지만 성승은 늙어서 힘이 없고, 혈마는 머리만 좋지 무력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다.
그랬기에 천마가 있는 마교가 천하제일이라 불렸는데 이제는 진정으로 천하제일이라 불릴 만했다. 화경의 고수가 하나 더 생겼으니 상황이 종결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무림맹과 황실이 아무리 신강을 넘어 봐야 두 명의 화경의 고수를 상대할 순 없었다. 그리고 폭인과 자객을 앞세운 혈교가 쳐들어온다 해도 두 명의 화경의 고수를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군사는 밝게 미소를 지었다.
“축하드립니다, 천마시여!”
군사의 말에 천마 역시 미소를 지었다.
“전부터 가능성이 보이는 녀석이었지만 쓸데없는 아집만 있어서 포기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스스로 벽을 허물었어. 그러니 녀석이 깨어날 때를 맞추어서 부교주 취임식을 열도록. 본교에 오랫동안 비어 있던 부교주 자리에 주인이 생겼으니 빨리 임명하는 게 중요하겠지!”
“알겠습니다. 깨어나실 때 임명식이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천마는 웃어 보였다.
“그래, 이제 한동안 심심하지는 않겠어. 녀석이 화경의 고수가 되기 전까지는 수련을 위해 대련을 하고, 화경의 고수가 되면 당당한 본교의 부교주로서 실력을 쌓게 하기 위해 대련을 하면 되니 말이야!”
천마는 웃으며 주먹을 쓰다듬었다.
그에 군사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천마에게 맞아 병신이 된 마인들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마인들 중 누구도 천마의 상대가 되지 못했기에 따분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알아서 먹잇감이 생긴 것이다.
표길랑도 정신이 들면 공포를 느낄 것이다. 화경의 고수인 천마와 매일 실전과 같은 수련을 쌓아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표길랑은 쓰러진 상태에서도 한기를 느끼는 듯 온몸을 떨었다. 앞으로의 고난을 짐작했는지 떨림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지속되었다.
장수는 말을 타고 쉬지도 않고 달리고 있었다.
호북에서 서장까지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말을 탄 채 계속 달리고만 있었지만 아직도 서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역마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장수는 황실에서 임시로 임명받은 관리이자 장군이었기에 관청에서 제공하는 말을 이용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근처에 관청이 있으면 무조건 말을 바꿔 타고 계속해서 달렸던 것이다.
하지만 달리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장수도 힘이 들었지만 말 역시 쉬어 줘야 했던 것이다.
계속해서 말을 바꾸어 주었는데도 오래가지 못하고 쉬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장수는 말을 들판으로 인도한 다음 나무 밑에 가서 휴식을 취했다.
장수 역시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쉴 수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혈교에 가서 혈교의 음모를 파헤쳐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게 힘들다면 혈교가 가진 세력을 혼자서라도 부숴야 했다.
장수는 말이 숨을 안정시키며 풀을 뜯어 먹는 동안에도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혈교의 연구 시설은 그곳의 상위 고수였던 흑룡혈장 장삼도 모르는 시설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알아서 찾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혈교가 위치한 곳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찾는 시간은 줄어들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쉽지는 않을 듯했다.
마교나 황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혈교는 오랜 시간 노력해 왔고, 그 결과로 대부분의 시설을 아무도 모르게 은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랬기에 관계자나 수뇌부 중에서도 몇 명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불행히도 장수는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하긴, 흡성대법으로 폭인이 될 정도면 혈교에서 장수의 위치는 별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장수는 한숨을 내쉬고 하늘을 보았다.
“그나저나 표길랑의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표길랑의 실력은 전율 그 자체였다. 무공 실력도 실력이지만 깨달음이 대단했던 것이다. 과거만 생각하고 그렇게 강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뚜껑을 열어 보니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표길랑의 실력은 놀라울 만했고, 장수 역시 전력을 다해야 제압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더구나 표길랑의 몸은 수십 년간 단련된 몸이었다. 그에 반해 장수의 몸은 손색이 있었다.
표길랑은 흑룡장 한 개의 장법만 일 갑자 동안 수련했지만 장수는 최근에야 번천장을 겨우 배웠던 것이다.
그 차이는 매우 컸다.
표길랑의 흑룡장은 과거 장삼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숙련된 위력이었다. 거기다 운용력이나 제어력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 장법에 있어서는 현재 표길랑이 더 났다고 인정을 해야 했다.
장수가 우위에 있는 것은 환골탈태를 통한 몸뿐이었다. 그 덕분에 신체 반응속도가 빨랐던 것이다.
하지만 표길랑은 오랜 시간 수련을 한 몸이라 무공을 좀 더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었으니, 그런 우위마저도 사실 별게 아닌 게 돼 버렸다.
다른 장점은 바로 내공이었다. 장수의 내공은 전신심법과 선천기공 덕분에 부드럽기 이를 데 없고 진기를 운용하는 데 거스름이 없었다.
하지만 표길랑에게도 흑룡심법에 포함된 역혈대법이 있었고, 장수는 몸속에 쓸 수 없는 내공이 있었기에 표길랑에 비해 사실 나을 게 없었다.
그나마 나은 것은 양의심법이었다.
생각을 두 개로 나눈다는 것은 내공 면에서는 소용이 없지만 무공을 펼칠 때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무공을 동시에 두 개나 쓸 수 있다는 것은 바꿔 말해 내공만 충분하다면 공격을 끝없이 펼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장풍을 쉴 틈 없이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표길랑은 양의심법을 몰랐기 때문에 공격이 빠르지 않았고, 그 차이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장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표길랑을 생각하니 좀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표길랑의 흑룡장법은 장수가 전생에 익힌 흑룡장법보다 좀 더 깊은 수준까지 들어가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수준 하나만을 놓고 봤을 때 표길랑의 수준은 감히 장수가 측량할 수 없는 수준이 된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따라잡아야 했다.
“빨리 양의심법과 번천장에 대해 깨달아야 해!”
양의심법도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가의 서적을 보고 지식의 양은 늘었지만 아직까지 장수의 것은 되지 않았다. 그저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장수가 이해하고 그것을 써먹을 정도가 되려면 앞으로도 많은 명상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지식을 다듬어야 했다.
그렇게 돼야 양의심법과 번천장에 대한 깨달음이 높아져 더욱 자연스럽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장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다가 문득 손을 바라보았다.
손에는 의식을 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손에 끼워진 장갑이 있었다.
원래 이것의 이름은 천지음양수투였다.
대충 봐도 음양의 기운을 자연스럽게 조절할 수 있을 듯한데, 현재까지는 장갑으로서의 효능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장갑을 낀 상태에서 돌에 가져다 대면 돌이 그대로 가루가 돼 버렸던 것이다.
그것만 봐도 보통 물건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표길랑을 상대할 때나 장풍을 쓸 때 예전에 느꼈던 저항감마저도 없애 주는 것이, 아무래도 장갑이 반발력을 해소해 주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거기다 타격감도 늘어난 것이, 장법을 쓰는 장수에게 있어 보물이라 할 수 있었다.
장수는 손에 끼워진 장갑을 살펴보았다.
“이 장갑을 쓰면 분명 음양의 기운을 조절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장갑의 이름에 괜히 음양이 들어갈 리 없다. 거기다 쓸데없이 만년화룡과 만년빙룡을 쓸 리도 없고, 색깔 역시 차이가 있을 리 없었다.
분명 음과 양의 기운을 쓸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장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장풍을 쓸 때나 무공을 펼칠 때 음과 양의 기운을 자연스럽게 내뿜을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무림에는 양강지기나 음한지기를 이용한 무공이 있다. 그리고 그런 무공은 사용하기가 힘든 만큼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장수 역시 현재 상황에서 화기나 음기를 내뿜을 수 있지만 자연스럽게 내뿜지는 못했다. 만약 대결 중에 그런 기운을 자연스럽게 내뿜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 월등히 강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장수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천히 들판을 둘러보자 말이 한가롭게 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충분히 풀을 먹은 듯했다.
장수는 천천히 말에 다가갔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