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편 - 강시를 이용하다
어떻게 방비해야 할지 방법이 없어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서장 내에 얼마나 보급이 되어있는지도 미지수였다.
만약 서장 안에 있는 혈교의 지부마다 어느 정도 보관이 되어 있다면 큰일이다.
혈교의 전력은 능히 마교나 무림맹을 뛰어넘는다.
‘다시 한 번 생각할까?’
장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곧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시 들어가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아무리 장수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해도 혼자에 불과하고, 이십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한 것이 너무 많았다.
경계가 삼엄해졌기에 다시 또 들어갔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다. 장수는 함부로 총단으로 침투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다시 장수는 생각을 잠기려다가, 그만두었다.
“우선 먹고 생각하자.”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배가 심하게 고파왔다.
워낙 무리를 한 상태였기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배가 심히 고팠고, 뭐라도 섭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계곡이 옆에 있었기에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장수는 계곡으로 들어가서 물고기와 근처에서 식용식물을 뜯었고, 대충 씻어서 입에 넣어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이런 곳에서 불을 피우는 것은 미친 짓이다.
불을 피우면 순찰중인 혈교의 무사가 발견하는 것이 뻔했고, 조금 비려도 날걸로 먹는 것이 가장 나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전생에 임무 중에 쫓기다 보면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상황도 마주칠 때가 있어서 구더기나 날벌레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먹어야 했었다.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은 오히려 풍족한 상황이다.
바로 옆에 계곡이 있었기에 제대로 된 것들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주워 먹다 보니 배가 불렀다. 배가 부르자 장수는 만족감이 들었는지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배는 채웠지만, 생각해야 하는 게 너무나도 많았다.
정보원도 없고 상대해야 하는 적은 너무 강했기에 장수로서는 망망대해에 떠있는듯한 느낌이었다. 차라리 소림사에 침입해서 방장을 죽이는 것이 더 쉬운 임무일 것 같았다.
전생을 떠올려 봐도 이정도로 힘든 일은 그다지 없었다.
거기다 임무도 막연했다. 누구를 죽이거나 정보를 빼오는 것도 아니고 혈교에 최대한 피해를 주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목적 자체가 상당히 난해했다. 차라리 혈마를 암살하라는 임무였으면 좀 더 낫다.
혈마를 제거하는 것만 신경 쓰면 되기 때문이다. 임무가 실패하던 말던 장수로서는 그렇게 정해진 임무가 편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결정하기 힘들었다.
장수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총단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안되겠어.”
원래 장수의 계획은 총단 근처의 주변에 있는 생산기지를 부수는 게 목적이었다.
무기를 생산하는 시설이니 호위가 많겠지만 그 정도는 장수 혼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거기다 그런 시설이 많아봐야 몇 개 될 리가 없었다. 혈교가 개발하는 무기는 대부분 강력한 위력을 가진 것이며 생산비용이 많이 들기에 아무리 혈교라도 많은 시설을 만들 수 없다.
그랬기에 몇 개만 부수면 혈교의 전력이 상당히 줄어 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대충 봐도 혈교는 전력을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그것을 실용화 단계인 듯했다. 그 때문에 이제는 생산시설을 부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새로운 무기의 위력이 너무나도 강했다.
아무리 장수의 무력이 초절정고수라 해도 상대하기가 벅찼다. 할 수 없이 장수는 과감히 생산시설을 파괴하는 것을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어차피 마교와 무림맹이 전쟁을 벌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무림맹이나 황실의 명예가 무너진 상황이었고 이미 어명을 내렸기에 전쟁은 어떻게든 시작될 수 밖에 없다.
장수로서는 어떻게든 혈교의 전력을 무너뜨려야했다.
“지부를 공격할까?”
장수의 머릿속에는 전생에 들렀던 지부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혈교에서 지부가 가치는 의미는 사실 그렇게 큰 게 아니었다. 혈교 자체가 점조직으로 이루어졌고 가장 중요한 시설은 서장에서 가장 큰 산인 주목랑마 근처에 세워져 있기에 각 지부는 필요한 인원만 대기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설 중에서도 중요한 전쟁 물자를 보관하는 곳도 있었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도 있었다.
장수는 전생에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었기에 그런 곳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어느 곳을 공격하면 혈교가 어느 정도 타격을 입을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각 지부간에는 상당히 먼 거리가 있었고, 아무리 같은 서장 땅이라고 해도 동쪽 끝과 서쪽 끝은 상당히 먼 거리였다.
그러나 장수는 자신이 있었다. 더구나 혈교로서도 자신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언제까지 참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장수를 잡기위해 무력단체를 보내면 그것을 부수는 것도 상당한 타격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잡자 장수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나저나 대단한 물건들이구나.”
장수는 품속에 가지고 있던 단검을 꺼내들었다.
단검은 투박하고 뭉툭했다. 지금 상태로는 나뭇잎 하나 제대로 벨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기를 주입해보니 단검은 엄청날 정도의 절삭력을 발휘했다.
그랬기에 수백 명이 포위한 상태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장수는 천천히 단검의 날을 만져보았다.
“전혀 날카롭지는 않은데 말이야?”
신기한 일이었다.
황궁무고에서도 검명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챙겼는데 이렇게나 큰 도움을 줄지를 몰랐다.
장수는 무기에 대해 호기심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무기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다음 전투 때도 도움이 될 수 있었기에 단검을 관찰했다.
장수는 단검을 두들겨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만져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를 불어넣어 상태를 살폈다.
웅웅
얌전히 있던 단검은 기를 불어넣자마자 시끄럽게 울어댔다..
“이런…….”
장수는 즉시 내공을 불어넣는 행위를 그만두었다.
혹시라도 들은 사람이 있을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추격자 따위는 겁나지 않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추격자들이 숫자는 금세 늘어날 테고 그렇게 되면 생각할 시간도 없이 다시 쫓기게 된다.
“소리만 나지 않으면 참 좋겠는데.”
장수는 나지막하게 말을 한 후에 내공을 다시 불어 넣었다.
그러자 마치 단검이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빛을 반짝일 뿐 검명이 울리지 않았다.
“이상하구나.”
장수는 무기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랬기에 보검이나 신병이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더구나 눈앞에 보이는 단검은 마치 장수의 말을 알아듣는 거 같았지만 장수는 설마 단검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내공을 불어넣자 단검에서는 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검기였다.
검기는 유형화 되지는 않았지만 유심히 보면 검날이 색이 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정파의 무인이 내뿜는 검기는 푸른색이고 마도의 무인이 내뿜는 검기는 검거나 붉은색이 많았다. 그런데 장수는 신기하게도 파란색이나 검은색이 아닌 하얀색이었다. 그것도 노란빛이 어렸는데 마치 황금색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정말 신기하구나.”
단검에 들어가는 내공의 양은 적은데 위력은 상당했다.
이정도 효율이라면 웬만하면 단검을 들고 다니는 것이 나았다.
장수가 즐겨 쓰는 무공은 장법을 뺀다면 태극권이다.
하지만 태극권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결국에는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랬기에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약했는데 단검을 쓴다면 상대방을 제거하는데 더 중요했다.
장수는 단검을 쥔 채 태극권을 펼쳐 보였다. 장수는 태극권의 흐름에서 단검이 방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연습을 했는데 처음이라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번 연습을 하자 어느 정도 손에 익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수는 그렇게 단검을 모두 살핀 다음에 장갑을 살폈다.
장갑 역시 단검처럼 훌륭한 물건이었다. 거기다 격전을 치르고 나서 그런지 장갑이 훌륭함을 좀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장갑을 끼고 있던 부위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놀랍게도 웬만한 공격은 장갑이 막아었다.
그리고 무공의 위력이 더욱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신기해서 시험을 해보니 장갑을 벗고 바위를 부순 것과 끼고 바위를 부순 위력이 달랐다.
장수는 황궁무고에서 얻은 무기들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장수는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가야겠구나.”
목적지는 정했다.
근처에 있는 혈교의 지부.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면서 지부를 파괴할 생각이었다.
장수는 빨아놓은 옷을 주섬주섬 입은 뒤에 출발했다.
* * *
그렇게 한참을 달려가자 눈앞에 마을이 보였다.
서장에 있는 평범한 듯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서장에 있는 마을들은 모두 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랬기에 혈교의 암호문을 안다면 지부를 알 수 있다.
마을에 도착한 장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장수는 혈교의 표식을 발견하고는 헛기침을 하고는 정해진 표식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평범해 보이는 마을 사람이 장수에게 걸어왔다.
혈교의 표식은 오랜 시간동안 타 문파에 알려지지 않았다. 워낙 복잡했고 암호가 바뀌었기에 타 문파에서는 유추할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