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편 - 강시를 이용하다
폭발의 위력을 정면에서 받은 혈마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 분명해보였다.
장수는 불안한 마음으로 한쪽을 바라보았다. 바로 혈마가 있는 쪽이었다. 이정도 피해로 혈마가 죽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혈마는 괴물 중에 괴물이고, 혈마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는지가 중요했다. 그랬기에 혈마의 상태를 확인 할 필요가 있었다.
장수는 정면을 주시한 채 몸은 계속해서 물러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혈마가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장수가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혈마가 정상이 아니더라도 강기를 사용할 수 있었고, 또 강기를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장수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잠시 뒤에 흙먼지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폭탄이 터져 시야가 흙먼지로 가득했고, 시간이 점차 지나자 아래로 가라앉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옅은 흙먼지 사이로 혈마의 모습이 보였다.
혈마의 모습은 참혹했다. 아무리 호신강기가 있다고 해도 어느 한계 이상은 막아줄 수 없었다. 더구나 혈마는 폭발의 중심에 있었다. 그랬기에 폭발의 여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았다.
그 대문에 혈마의 호신강기는 그대로 깨져버렸다.
그 순간 다시 호신강기와 함께 수강을 펼쳐 폭발의 여력을 막으려고 했지만 물밀듯이 밀려드는 충격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고, 혈마의 온몸은 화상으로 흉하게 일그러진 상태였다.
온몸의 피부는 벗겨져 찢어졌고, 전신에서는 피가 주르르 흐르고 있는 것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죽고 다시 살아나도 죽었을 것은 말 안 해도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혈마는 화경이라는 지고의 경지를 개척한 절대고수였고, 일반인이 아닌 초인이었다. 그는 살아날 수 있었다..
상처입은 혈마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손에는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강기가 담긴 지존도가 들려있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몇 달은 요상을 해야 하는 중상을 입었지만 혈마는 장수를 죽여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그랬기에 다소 무리하면서 장수에게 다가갔다. 단 한번이면 된다. 강기가 서린 도는 무엇이든 베어 버렸기에 눈앞의 녀석을 간단히 두 동강 낼 수 있다.
이제 장수를 시체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저 멀리 사라진 상태였다. 시체가 아니라 사지를 모두 다 분지르고 갈기갈기 조각내도 부족하다.
“죽여 버리겠다.”
혈마가 진득한 살의를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수는 혈마의 모습에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화경의 고수가 내뿜는 의지는 실로 무서울 정도라서 장수가 초절정고수가 아니었다면 의지만으로도 이미 시체가 되어 지금쯤 지면을 구르고 있었을 것이다.
혈마는 전설에나 나오는 심즉살(心卽殺)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였지만, 그 경지가 높지 않았기에 장수가 아직 살아 있을 수 있었다. 만약에 혈마의 경지가 조금만 높았어도 죽거나 기절했을 것은 말 하지 않아도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장수는 혈마가 다가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간신히 몸을 돌려 천천히 걸었다. 달릴 수도 없었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도망쳐야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다면 죽는다.
장수는 필사적으로 걷다가 들고 있던 단검으로 자신의 오른쪽 허벅지를 찔렀다. 허벅지에서 붉은 혈액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장수는 정신이 번쩍들었다.
공포심이 어느정도 사라지고 고통으로 자리잡자, 장수는 그 순간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장수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몸 안의 내공을 모두 불어 넣어 경공술을 발휘했다. 그러자 엄청날 속도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장수는 무의식중에 묻어둔 폭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차피 혈마를 벗어날 방법은 없따. 그나마 혈마가 부상을 입었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멀리 도망칠 수도 없었다.
장수는 바로 뒤에 혈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살기도 그렇고 욕설도 들려 왔으며 간간히 무기가 날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대로 심장이 멎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장수 바로 뒤에는 혈마가 바짝 쫓고 있었다. 하지만 혈마의 상태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바닥에 묻힌 폭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기에 내상과 외상이 심했다.
더구나 그런 상태로 내공을 운용하여 경공술을 펼치고 있었으니, 수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혈마로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멈춰서 치료를 하고 싶었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녀석에게 도로 난도질 하지 않는다면 화가 치밀어 올라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혈마는 무리를 해가면서도 달려가고 있었다.
게다가 바로 눈앞에 있었기에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초절정고수와 화경의 고수는 단전의 크기가 틀리다. 지금 혈마로서는 부상 때문에 제 속도를 낼 수 없었지만, 단전의 내공은 지금도 충실한 상태였다. 그에 비해 눈앞의 장수는 초절정고수였기 때문에 단전에 한계가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은 무리해서 달린다고 하지만 얼마 못가 퍼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상황은 끝난다.
하지만 장수의 내공은 쉽게 바닥나지 않았다. 장수의 몸에는 전진심법과 선천기공이 내공을 만들어 주었기에 소모된 만큼 회복이 되었다.
더구나 선천기공이 큰 도움이 되었다. 목숨이 위협을 받자 신기하게도 선천기공이 내공으로 화해 주었다. 선천기공은 일반 내공에 비해 고밀도의 내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장수의 내공은 금세 다시 빵빵해 졌고, 혈마의 예상보다 더 멀리 까지 도망칠 수 있었 다.
“이노옴! 멈춰라!”
혈마는 고함을 지르며 장수를 쫓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미세하게나마 장수가 좀 더 빨랐고, 혈마는 상처가 도져서 속도가 처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생각에 무리를 해서 혈마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그에 비해 장수는 큰 부상이 없었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어느새 폭탄이 묻어둔 곳까지 도착했다.
장수는 앞을 지나가자마자 몸을 돌렸다.
그러자 잠시 후 혈마가 달려왔다.
혈마는 아무 말 없이 도부터 휘둘렀다. 이미 상상만으로는 장수를 골백번도 난도질 한 상태였다. 그랬기에 당장 눈앞에 보이자 전력을 다해 베어갔다.
그 순간 장수는 모아둔 기를 아낌없이 방출하여 일장을 날렸다.
손바닥에서 거대한 용이 혈마를 잡아먹을 듯이 입을 쩌억 벌려 달려들었다.
번천장이었다.
번천장이 날아들자 혈마는 순간적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번천장의 위력은 충분히 감상한 뒤었기에 번천장이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혈마의 몸 상태도 안 좋지만 내공역시 문제가 있었다. 장수를 쫓으면서 운기를 하지 못했기에 엄청날 정도의 내공을 가졌지만 어느새 많은 양을 써버렸다. 게다가 장수 역시 내공이 바닥난 줄 알고 미처 대비를 하지 못했기에 번천장의 위협에 정면으로 노출 된 것이었다.
혈마는 강기가 서린 도로 장수가 뿜어낸 번천장을 베어냈지만, 완전히 기운을 해소한 것은 아니었다.
두 조각 난 장력이 그대로 혈마를 덮쳐왔지만 혈마가 다시 도를 휘두르자 기운은 그대로 사그라들었다.
더구나 혈마가 펼친 것은 도막이었다. 도를 빠르게 움직여 하나의 벽을 만드는 것으로 혈마의 경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장수는 바로 이어서 연달아 번천장을 쏘았다. 바로 양의번천장이었다.
혈마는 눈앞의 번천장을 막자마자 다른 번천장이 땅에 닿는 그 순간 혈마는 안 좋은 예감이들었다.
사실 협력자도 없는 장수가 이곳에서도 폭탄을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게 바로 현실이었다. 장수는 일부러 이곳까지 유인했고, 혈마는 이성을 잃고 쫓아오다 현실을 외면했다.
부르르르!
그 순간 대지가 들썩였다. 다시 폭탄이 터지려고 하는 낌새였다.
혈마는 이번에는 맞서지 않고 물러서는 것을 선택했다. 또다시 폭탄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어차피 폭탄이라고 해봐야 한번 터지면 그만이었기에 우선은 피해야했다.
혈마는 호신강기를 펼친 채 강기가 서린 도로 도막을 형성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폭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혈마는 폭발력을 그대로 이용했다. 폭발이 터지자마자 거친 바람과 함께 뒤로 날아갔다.
그 덕분에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충격을 모두 피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혈마의 몸 상태는 최악이라 할 수 있었기에 다 피하지는 못했고, 다시 상처가 났으니 큰 문제였다.
쾅!
폭발이 터지고 나자 한참 뒤에 혈마가 나타났다. 폭발에 저항하지 않고 물러났기에 이번에는 피해도 적었다.
혈마는 큰 문제가 없자 장수를 찾았다.
하지만 장수는 찾을 수가 없었다. 폭발이 터지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장수는 혈마의 추격을 무사히 따돌릴 수 있었다.
“이노옴! 어디 갔느냐?”
혈마는 스스로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사방으로 강기의 다발을 폭사했다. 그러자 주변 땅이 순식간에 황폐화 되버렸다. 강기가 주변 땅을 날려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미 놓친 상황이었다. 화경의 고수가 초절정고수에게 농락을 당한 것이다.
“이놈! 지옥까지 쫓아가 주겠다.”
혈마는 앞만 보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수는 앞이 아니고 우측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더구나 폭탄이 터지자마자 달려갔기에 거리가 상당히 멀어져서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혈마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첫 번째 폭파 때 큰 충격을 받았고 이차 폭파 때는 폭발의 여력을 상당부분 피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다.
마치 준비해 둔 것처럼 폭탄을 매설했기에 혈마로서도 큰 피해를 입었다. 초절정의 고수는 화경의 고수에게 피해를 줄 수가 없다. 그 상식 때문에 방심한 결과 피해가 매우 컸다.
혈마는 악으로 버텼지만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장수라는 녀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화경의 고수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초절정고수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쯤이라면 멀리 도망갔을 것이 분명했다.
“네 녀석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