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편 - 강시를 이용하다
천하의 혈마가 언제 이렇게 당해 봤겠는가? 더구나 녀석의 장풍이나 매설해 둔 폭탄을 볼 때 혈마를 죽이기 위해 단단히 준비한 것이 분명했다.
혈마는 단단히 화가났다.
“분명 도와준 녀석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서장에서 녀석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녀석과 연관된 곳은 모두 부셔주마, 무당파부터 시작해서 모든 도가계통 문파와 가문과 더불어 지역 자체를 학살해주마! 또한 황실의 모든 녀석들을 죽여 아예 황조를 바꿔 버리겠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도 이분을 풀 수는 없었다. 화경의 고수인 혈마가 언제 이런 일을 당해봤겠는가? 차라리 천마와 일대일로 싸우는 것이 이것보다는 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화상으로 입은 피해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내상도 큰 문제였다. 혈마로서는 마교와 무림맹, 그리고 황실이 서로 상잔을 하자마자 나서서 셋을 쓰러뜨리고 천하를 정복하려고 했지만 대업의 시기가 몇 년 이상 늦어질 것이 분명했다.
“이노오옴!”
혈마는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사이에도 장수는 빠르게 도망치고 있었다.
장수는 사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혈마가 쫓아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장수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생각만을 할뿐이었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화경의 고수가 전력으로 달리면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혈마와 멀어지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방향은 서장에서 멀어지는 방향이었다. 장수가 어디 있는지 알면 바로 혈마가 달려온다. 그리고 혈마가 아니더라도 장수를 죽이기 위해 사력을 다해 공격해 올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그제야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안심할 수 없었다. 화경의 경지는 실로 놀라워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혈마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본 장수는 혈마에게 공포를 어느 정도 느꼈다.
“안 따라오지?”
장수는 확실히 혈마가 안 따라 온다는 생각이 들자 속도를 조금 늦췄다. 이미 몸속의 내공이 간당간당한 상황이었다. 전력을 다해 경공술을 발휘하면 내공소모가 극심했기에 속도를 줄이면서 내공을 채워야했다.
게다가 서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혈교의 무사들을 상대해야했는데, 혈교의 무사들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했기에 내공이 어느 정도 있어야했다.
“그나저나 총단에 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구나.”
다른 건 몰라도 혈마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혈마는 엄청날 정도로 빨랐고 무공 또한 고강했기에 도저히 장수가 상대할만한 자가 아니었다. 더구나 총단에는 혈교의 정예부대가 있었다. 거기다 혈교의 초절정고수들도 있었기에 장수 혼자 활개 칠 수 없었다.
장수로서는 전생의 기억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 생산시설에 타격을 줄 수 있을지 알았지만 이게 한계였다. 더 이상 서장에서 움직이다가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
장수는 아쉽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죽일 듯이 노려보던 혈마가 생각나서였다.
혈마라는 괴물을 상대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다음에 혈마를 상대할 때는 좀 더 무공을 쌓은 후에야 가능할 듯 했다.
장수는 서장을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달려 나갔다.
* * *
혈마의 주변에는 의원들 십여 명의 달라붙었다. 의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혈마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다친 부위가 심각했고 범위도 넓었기에 쉽게 치료할 수 없었기에 바쁘게 움직이며 어떻게든 고치기 위해서 머리를 짜내고 있었다.
혈마는 태어나서 이정도 피해를 받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혈교가 입은 피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장수에게 활강시를 잃었지만 전투를 직접 주술사가 보았기에 활강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도 얻었기에 오히려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혈교에서 만들고 있는 활강시는 한구가 아니다. 여러 구였기 때문에 이번에 얻은 개선점을 적용시키면 활강시가 더욱 강해진다.
하지만 혈마가 피해를 입은 것은 심각한 일이었다. 혈마는 혈교의 지존이이며 교주였다. 그리고 유일한 화경의 고수다.
만약 혈마가 없다면 혈교 따위는 진작에 혈교를 노리는 천마나 성승에 의해 붕괴된다..
그만큼 혈마는 단 일인이지만 어떻게 보면 혈교 전부보다 더 중요한 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지존인 혈마가 큰 피해를 입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
만약 이 사실을 마교나 무림맹이 알게 된다면 공작을 펼칠 수도 있고, 천마나 성승이 직접 와서 난장판을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전쟁을 목전에 두고 천마나 성승이 그럴 리는 없지만 가능성은 존재했다.
그랬기에 혈교의 전력을 투입해 혈마의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혈마는 분을 못 이기고 인상을 구기곤 주먹을 뻗었다.
파삭!
단 한방이었다.
그 단 한방의 주먹에 의원 한명의 머리가 수박처럼 간단히 박살났다.
“아프다고 했지!”
부상을 치료하는데 아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픈 것보다는 장수를 놓친 것에 대한 화풀이였다.
혈마의 눈빛에 의원들은 주눅이 들었다. 무림의 고수들도 버티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거기다 부상으로 인해 기세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서 주변은 혈마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의원들은 혈마의 눈치를 보며 죽기 살기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아프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혈마의 화를 가라앉게 할 수는 없었다.
그때 군사가 급히 들어왔다.
“혈마시여!”
“그래. 군사. 녀석의 행방은 알았느냐?”
“그렇습니다. 현재 파청에서 산을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산을 넘었다고?”
파청은 산악지대로 매우 높은 고지대였다. 그리고 파청의 산길은 험난하기로 유명했고, 더구나 무서운 맹수류들이 존재한다.
또 경사가 심해서 혈교에서 일부러 돌아가는 길까지 만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산을 넘는다.
파청이 지나가기는 힘들지만 서장을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그리고 제대로만 간다면 가장 빠른 시간에 청해로 들어설 수 있다.
혈마는 인상을 쓰더니 외쳤다.
“무조건 녀석을 잡고 있어라, 이것은 명령이다.”
“하,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파청은 길이 험해서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게다가 울퉁불퉁해서 시야 확보도 잘되지 않고, 장수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력이 필요했는데 그런 무력을 산 정상에까지 데려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죽고 싶냐?”
혈마가 낮게 으르릉 거리자 군사가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아, 아닙니다.”
보통 때의 혈마라면 군사를 죽이지 않겠지만 현재의 혈마는 눈이 뒤집혀진 상태였다.
군사도 열 받은 혈마를 상대하면 행동하나 조심해야했다. 혈마의 간단한 동작에도의 목숨이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살고 싶으면 최대한 빨리 녀석을 잡아와라!”
“예!”
“그리고 녀석의 사문으로 짐작되는 곳과 가문을 빠짐없이 모두 없애버려라, 으드득.”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애써 세운 계획을 망치게 됩니다. 그러니 전쟁이 시작되면 일을 벌이겠습니다.”
마교와 정파가 전쟁 중에는 혈교가 무슨 짓을 하던 막을 수가 없다. 더구나 상가나 가문은 무림맹 관할이 아니라 황실 관할이다. 전쟁을 벌이는 중에는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가를 부수다가 전쟁이 끝날 때쯤에 구파일방중 하나인 무당파를 공격하면 되는 것이기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당파가 아무리 강해도 빈집을 공격하는 것이고 혈교의 세력이 월등히 강하다 그랬기에 충분히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었다.
군사의 말에 혈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서 녀석을 잡아 와라.”
“예.”
폭발이 터지고 나자 한참 뒤에 혈마가 나타났다. 폭발에 저항하지 않고 물러났기에 이번에는 피해도 적었다.
혈마는 큰 문제가 없자 장수를 찾았다.
하지만 장수는 찾을 수가 없었다. 폭발이 터지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장수는 혈마의 추격을 무사히 따돌릴 수 있었다.
“이노옴! 어디 갔느냐?”
혈마는 스스로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사방으로 강기의 다발을 폭사했다. 그러자 주변 땅이 순식간에 황폐화 되버렸다. 강기가 주변 땅을 날려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미 놓친 상황이었다. 화경의 고수가 초절정고수에게 농락을 당한 것이다.
“이놈! 지옥까지 쫓아가 주겠다.”
혈마는 앞만 보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수는 앞이 아니고 우측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더구나 폭탄이 터지자마자 달려갔기에 거리가 상당히 멀어져서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혈마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첫 번째 폭파 때 큰 충격을 받았고 이차 폭파 때는 폭발의 여력을 상당부분 피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다.
마치 준비해 둔 것처럼 폭탄을 매설했기에 혈마로서도 큰 피해를 입었다. 초절정의 고수는 화경의 고수에게 피해를 줄 수가 없다. 그 상식 때문에 방심한 결과 피해가 매우 컸다.
혈마는 악으로 버텼지만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장수라는 녀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화경의 고수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초절정고수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쯤이라면 멀리 도망갔을 것이 분명했다.
“네 녀석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