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편 - 서장으로
장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천마는 목숨을 잃었다. 사실 장수는 천마를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설득해 싸움을 말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때 함성이 울려 퍼졌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정파의 무사들이 함성을 지른 것이다. 그들은 마치 천신과도 같은 두 무인의 위대한 싸움을 지켜봤다. 게다가 둘 중 그들 편이 이기는 것을 똑똑히 봤던 것이다.
“이겼다.”
정파의 무사와 황실의 병사 그리고 동맹군으로 온 각국의 군대는 함성을 지르며 살아남은 마인들을 척살하기 시작했다.
이미 마인들은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그들의 신이나 다름없는 천마가 죽은데다 천마에 의해 이미 많은 마인이 죽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원래라면 중원과도 맞먹는 전력을 가진 마인들이었지만 도망가기에 바빴던 것이다.
마인들을 소탕하는 동안 장수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하는 바는 틀렸다.
‘저들을 말려야 해.’
더 이상 마인들을 죽일 필요가 없었다. 장수는 마교의 마인들에 대해서 나쁜 감정이 없었다. 전생에서는 적대하는 자들도 많았지만 친한 자들도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친구인 표길량의 문파였던 것이다.
게다가 이미 상당부분 전력을 잃었기에 이대로 둔다고 해도 중원에 위협이 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무림명숙들이 장수를 향해 달려왔다.
“축하드립니다. 대협.”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협.”
천마를 쓰러뜨린 장수는 이제 명실공히 천하제일 고수라 할만 했다. 물론 혈마가 있었지만 혈마는 천마에 비해 급이 약간 낮았다. 비슷하거나 낮은 무위로 생각했기에 장수가 천하제일이라 해도 반대할 사람이 없었다.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대협, 그런데 진정 전진의 후예가 맞으십니까?”
화산파의 장로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진파는 도문이 환상을 가진 곳이었다. 오래전에 멸문했지만 모든 도문의 뿌리와도 같은 곳이었기에 장수가 전진의 후예라 하자 경외감을 가지고 물어본 것이다.
장수는 잠시 생각을 했다.
‘내가 전진심법을 가졌으니 전진의 후예라 할 수 있다.’
사실 장수는 어디 소속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유운을 따랐기에 무당파에 들어갔고 석가장에서 태어났기에 석가장의 자손이 되었다. 그리고 황실과 인연이 닿기에 황실의 관리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 소속되었던 장수는 장수였다. 게다가 장수는 전생에 혈교에까지 소속된 상태였다. 그랬기에 어디에 소속되었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렇습니다.”
장수의 말에 모두들 감복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전설에 나오는 전진의 후예가 현세에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첫 등장에 강호의 제일악적이라 할 수 있는 천마를 제거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무림을 구원하기 위해 친히 나타나셨군요.”
“앞으로 천하는 대협 손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원시천존. 정말 감사합니다.”
무림에 손꼽히는 명숙들이 장수를 칭찬하기에 바빴다. 이제 앞으로 강호는 장수의 손에 의해 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전진의 제자라면 상징성도 있기에 미리 아부를 하려고 한 것이다.
그때 토벌을 하던 장군들도 장수에게 다가왔다.
장수는 황실의 고위 관리인데다 총사령관이었다. 그랬기에 지시를 받기 위해 달려왔던 것이다.
“총사령관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적군이 퇴각하고 있습니다.”
“당장 적군을 쫓아 토벌해야 합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이라면 마교를 뿌리째 뽑을 수 있었다. 비록 많은 숫자의 마인들이 천산으로 도망갔지만 천산은 도망가거나 숨기에는 좋지만 식량이 부족했다. 그랬기에 천산을 포위하며 지속적으로 토벌을 한다면 마교는 그대로 전멸 할 것이다.
대장군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장수의 이외의 말에 대장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황실의 명은 마교를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 다행이 마교의 교주인 천마를 제거했지만 마인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했다. 그런데 어디로 간단 말인가?
장수는 장군들 뿐만 아니라 무림명숙들과 각파의 장로들을 향해 말을 했다.
“여러분들도 들어주셔야 합니다. 현재 천하는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위기라는 말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를 죽인상태인데 무슨 위기가 찾아왔다는 말인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협.”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상대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화경의 고수에 천마를 죽였으며 천하제일고수이자 황실의 고위관리이며 총사령관에 전진의 제자인 장수의 말이었기에 사람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번 전쟁이 발발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폭인과 폭탄 때문입니다”
장로는 말을 하면서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싸우면서 폭탄이나 폭인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사들이 상대한 것은 마인들 뿐이었고 그동안 천하를 혼란에 빠뜨렸던 절정고수를 죽이는 자객이나 황실의 초절정고수를 죽인 폭인은 모습조차 들어내지 않았던 것이다.
“마교를 공격한 것은 폭인과 폭탄 그리고 자객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눈에 보입니까?”
장수의 말에 장로들 과 정파의 무림명숙들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사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자객은커녕 폭탄이나 폭인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장수니까 이정도 말이 통했지. 원래라면 장로들과 무림명숙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다른 것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장수가 말을 하니 통하는 것이었다.
“그렇고 보니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마교는 멸망하기 직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보내지 않은 것은 말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역으로 공격을 간 것입니까?”
장로는 말을 하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마교를 상대하는 동안 마교가 폭인이나 폭탄 그리고 자객을 이용해 중원을 유린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중원의 전력 역시 여력이 남았지만 마교의 마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버틸 수 없었다.
각파의 장로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잘못하면 각파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혈교의 음모입니다.”
“예? 혈교라니요?”
혈교 역시 마교와 더불어 없어져야 할 단체였다. 하지만 마교처럼 시급히 없어져야 할 곳은 아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눈에 뛰게 악명도 사라졌기에 존재감도 희미해진 곳이었다. 그나마 눈에 뛰는 것은 화경의 고수인 혈마가 있다는 정도였다.
장로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모든 일은 혈교가 일으킨 일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증거가 있습니까?”
장로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것은 장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증거는 바로 눈앞의 모든 것입니다. 이곳에 그동안 천하를 혼란하게 만들었던 것들이 있습니까? 마교가 마지막 순간에도 비밀무기들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까?”
장수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물론 전진의 제자였고 화경의 고수였기에 설득력을 가졌다. 게다가 신처럼 위대한 모습을 본 뒤였기에 감히 반박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그럼…….”
“그렇습니다. 이 모든 일은 혈마가 천하를 집어 삼키기 위해 벌인 일입니다.”
혈마라는 말에 장내에 있던 모든 자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미 천마와 장수의 가공할 만한 무위를 본 뒤였다. 그랬기에 장수 외에 남은 화경의 고수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음모를 꾸밀 정도라면 화경의 고수인 혈마밖에는 없었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 마교는 그만 두고 바로 혈교를 쳐야 합니다. 혈교는 지금 천하를 장악할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지금 이대로 두면 천하는 혈마의 손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서장으로 가면 알 수 있습니다. 서장 초입만 가도 제가 한말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장수가 이렇게 까지 말하는데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장수의 말을 들으면 또 다른 악의 축인 혈마를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장수는 이제 천하제일고수이자 천하제일협객이 된 상태였다. 천마를 죽이기 전까지 장수는 무림에 큰 영향력이 없었지만 이제는 천하를 좌지우지할 만한 영향력이 생긴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무림명숙들과 장로들 그리고 어느새 나타난 무림맹주인 혜공대사는 모여서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장수는 장군들에게 말을 했다.
“이제 이곳을 공격하는 것을 마무리 하고 서장을 공격할 것입니다.”
“서장말씀이십니까? 서장을 공격하는 것은 명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군대는 명령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명령은 황실에서 내려왔던 것이다.
“제가 총사령관입니다. 그러니 저를 믿어 주십시오.”
“하지만 명령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장군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두 눈으로 장수의 무위를 본 후였다. 그리고 군대는 명령으로 움직였기에 현 총사령관인 장수의 말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장수는 부마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장수는 몰랐지만 황실은 공주를 장수에게 시집보낼 계획을 짜고 있었다. 총사령관이자 화경의 고수인 장수를 어떻게든 잡아둘 생각을 했기에 모든 방법을 쓸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장수는 자신도 모르게 황실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저희들 역시 회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장군 역시 장군들을 데리고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면한 문제는 마교의 남은 자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게 가장 중요했고 남은 잔당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살아남은 자들이 다시 마교를 재건할 수도 있었다. 만약 장수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장군들은 장수의 말을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거인이었다. 그랬기에 어떻게든 성의를 보여야 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지?”
대장군의 말에 다른 장군들이 안색이 굳어졌다. 그들로서도 오랜 적이던 마교를 토벌하는데 전력을 쏟고 싶었다.
“지금 마교를 토벌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어차피 혈교 역시 이번일이 마무리 되면 토벌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중에 재정비를 하고 가자고 하는 게 어떻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대승을 거두었다고 하지만 우리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혈교를 공격할 필요는 없습니다.”
장군들 중에는 반대하는 자가 많았다. 장수가 무리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리 대승을 거두었다고 해도 전쟁을 마무리 하지 않고 강대한 적과 다시 싸우는 것은 미친 짓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번에 가공할 만한 무위를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장수에게 따질 다혈질인 장군들도 많았던 것이다.
그들로서는 맡은바 임무인 마교를 제대로 제압하는 게 올바른 일이였다. 또한 혈교는 나중에 다시 공격하면 되는 것이다. 군대는 이미 가장 강력한 적인 마교를 처치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마교에 비해 실력이 낮은 혈교를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