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루검비의 몸뚱이는 참혹하리만치 짓이겨졌다. 찢기고 멍들고…… 육반 루가의 자손도 철인(鐵人)은 아니었다. 다른 인간들처럼 피와 살로 만들어졌다.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피범벅이 되어 돌아왔다.
이것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교주가 절묘한 신경전을 펼치지 않았다면 십중팔구 시신이 되었을 게다.
이제 루검비의 목숨은 형당에 달렸다. 매타작을 이겨내면 살고, 이겨내지 못하면 죽는 형당 본연의 임무만 남았다. 최소한 견제 세력에게 암살당하는 불운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칠절신군, 면도, 혈우광도…… 그들 모두 환희밀공을 탐낸다.
그것이 그들의 약점이다. 환희밀공을 탐내는 한 정랑은 화녀들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약점이 지저분한 현 상황에서 벗어나 진정한 환희교로 탈바꿈할 수 있는 힘을 주리라.
교주와의 접촉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형당에서 제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줘야 한다.
“오늘은 뭐지?”
“생나무 타작입니다.”
무척 아픈 매질이다.
사람을 때리는 도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생나무도 그 중 하나다. 살아있는 나뭇가지를 뚝 잘라서 잔가지만 쳐내면 아주 훌륭한 매가 된다. 죽은 나무는 살을 때리고 튕겨 나오지만 물기가 함유된 매는 살을 휘감는다.
맞았구나. 아픈데? 악!
뼛속까지 저려울리는 아픔을 확실하게 안겨줄 매질이다.
‘무리야.’
돌팔매질을 당한 몸에 생나무 타작까지 당하면 견뎌내지 못한다. 아이라서가 아니라 어른도 못 견딘다.
“도접(刀摺)으로 바꿔.”
“네?”
“사정 봐주지 말고 확실히 저며.”
“지금 상태에서 도접하면 살지 못할 거예요.”
“……”
“휴우!”
부두화(副頭花)는 긴 한숨을 남기고 물러갔다.
틀린 생각이다. 현 상태에서 생나무 타작을 하면 죽는다. 온 몸이 골병들어 있을 때는 피를 볼 지언정 살점을 저미는 편이 낫다.
도잡은 살을 찢는다. 해서 치료 또한 불가피하게 시행한다.
때리고 또 때리고가 아니라 때리고 찢고 치료하는 순으로 진행시킨다.
어쩔 수 없이 삼법을 시행해야 한다해도 목숨을 부지하게는 해줘야 할 게 아닌가.
“도접이다!”
“네? 도접이요?”
모두가 놀랐다. 하지만 수두화의 명이니 이행하지 않을 수 없다.
“꼬마가 불쌍하게 됐네.”
누군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형당에 끌려온 중에 도접을 경험한 자는 삼 할도 되지 않는다. 도접을 경험하기 전에 죽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은 살과 뼈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그렇게들 말한다. 하지만 형당에서는 달리 말한다. 내장이 있고, 뼈가 내장을 감싸고, 그 위로 가죽이 덮여 있다고.
도접이란 가죽을 잘게 잘라 내장을 들여다보는 걸 말한다.
장기를 손상시키지 않고 살을 베여내야 하니 고도의 솜씨가 필요하다. 헌데 형당에서는 솜씨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가죽을 자르다가 뼈까지 잘라내도 어쩔 수 없고, 혹여 내장을 건드려 즉사해도 이 또한 어쩔 수 없다.
고통을 최대한 이끌어 내어 담옥으로 이끌기만 하면 된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식물인간 상태가 되면 성공했다 할 것이다.
도접은 인법 중에서도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치명적 형벌이다.
도접을 당하면 목숨이 아주 질겨서 형벌을 견뎌내도 죽은 것과 진배없다. 아니, 도접을 당하는 순간부터 죽은 목숨으로 치부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틀 맞고 하루 쉰다는 원칙은 도접에도 해당된다.
이틀 동안 갈기갈기 찢어진 육신에 천하의 명약을 갖다 붙인들 하루 만에 회복될 리 없다.
다음 형벌이 무엇이든 필히 죽는다.
“형은 두 사람이 집행한다. 오늘은 잔화(殘花)가 맡고, 내일은 첨화(尖花)가 해.”
그나마 루검비가 꼬마라는 점을 생각해서 최고의 도수(刀手)를 붙였다. 잔화의 첨화의 섬세한 손놀림이라면 내장이나 뼈가 다칠 우려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보조는…… 그래, 서화(舒花)와 유화(蹂花)가 해. 잘 해야 될 거야. 출혈로 죽으면 너희 탓이야.”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은 두 화녀를 붙였으니 생존 가능성이 일 푼 정도 더 높아졌다.
최선을 다했다. 수두화가 내린 명령을 받들면서 루검비의 생존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부두화도 물러섰다.
“아악! 아악! 아아악……!”
비명을 얼마나 질렀을까?
기진맥진해서 소리를 내지를 여력도 없다. 목이 쉬어서 비명 대신 끅끅 거리는 소리만 나온다. 헌데도 비명은 나온다. 날카로운 쇠붙이가 몸뚱이를 찢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돼지 멱따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살고 싶다는 욕구는 들지 않는다. 보고 싶은 사람도 없다. 무조건 빨리 죽고 싶다. 빨리 죽여줬으면 좋겠다.
“죽여줘요. 헉헉! 제발…… 죽여주세요.”
루검비는 잠시 칼질이 멈춘 틈을 빌어 애원했다.
“늦었어. 그런 말은 여기 오기 전에 했어야지. 돌팔매질 당할 때 말이야. 일단 이 안으로 들어오면 편히 죽여줄 수 없단다. 최대한 빨리 담옥으로 보내줘야 할 텐데. 너도 의식을 잃도록 노력해봐.”
“아줌마. 제발! 제발 죽여주세요!”
“쯧! 그건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그냥 살려달라는 말과 같단다. 빨리 기절이나 하렴.”
쓰으윽……!
“아악! 아아아악……!”
이번에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를 악물고 참으려 했다. 비명이 나온다. 뱃속에서부터 우러나온다. 꽁꽁 묶인 사지가 증오스럽다. 그렇지 않다면 발버둥이라도 마구 쳐볼 텐데. 그러면 조금은 고통이 덜할 텐데.
칼로 살을 저미는 여인이 밉다. 저며진 곳에서 피가 흐르지 않도록 치료를 하는 여인은 더 밉다.
한 여인이 쑤신다. 한 여인은 상처를 치료한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흐른다. 치료한 여인과 칼을 든 여인이 자리바꿈을 하는 순간에 잠시 공백이 생긴다.
죽음, 공포, 극통……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쁜 것들이 한꺼번에 응축되어 있는 지옥의 순간이다.
“헉헉!”
루검비는 가쁜 숨을 내쉬며 겁에 질린 얼굴로 여인을 쳐다봤다.
그때, 앙칼진 여인의 음성이 비수처럼 뇌리를 쑤셨다.
‘몸에 있는 모든 기운을 풀어라. 마약한 힘도 남겨놔서는 안 된다. 몇 번을 말했거늘 아직도 그 모양이야! 삶과 죽음이 네게 달렸거늘 진정 죽고 싶은 거냐!’
누군지 모르지만 곁에 있다면 욕이라도 해주고 싶다.
칼이 배를 그어대는데, 몸에 힘을 주지 말라고? 그게 될 성싶은가? 직접 해보고 하는 말인가?
여인은 말을 풀어서 했지만 아버지에게서 기본공 정도는 배웠기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다.
몸에 힘을 주지 말라는 것은 전신방송(全身放松)이다. 미약한 힘도 남기지 말라는 것은 일점불용경(一點不用勁)이다. 그 다음도 있다. 여인은 말하지 않았지만 배제잡념(排除雜念)으로 이어진다.
누굴 바보로 아나?
진기를 끌어올리기 전에 취해야 할 상태를 일컬음이 아니던가.
평안한 상태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몸에 칼질을 한 번만 안 해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살을 찢어대면서 다른 한 편으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라면 개가 짖는다. 무슨 개소리라며 컹컹 짖는다.
여인의 음성이 이어졌다.
‘오늘로 나흘째. 네 번째 글자를 알려주마. 도(道)다. 길 도. 엉뚱한 생각 말고 글자에 담긴 뜻만 생각해라.’
그럴 수 없었다.
여인은 지난 사흘 동안 세 글자를 가르쳐 주었다. 첫날 말해준 것이 스스로 자(自)이며, 둘째 날은 해칠 잔(殘)을, 어제는 갈 지(之) 자를 말해주었다.
오늘 들은 길 도까지 사자(四字)가 만들어졌다.
자잔지도(自殘之道).
각 글자의 뜻을 음미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네 글자를 한꺼번에 이으니 생각거리가 더 많아진다.
자잔지도라니?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게 도(道)?
루검비는 학문을 알지 못했다. 글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다. 아버지가 말해준 구결을 듣고 몸으로 익혔기에 쓸 줄은 모르면서 몇 글자 정도 아는 게 고작이었다.
그에게 ‘자잔지도’라는 말은 너무 어려웠다.
전음을 날려 온 여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호통을 쳐왔다.
‘글자 하나만 생각하라니까! 잘 들어라. 저들은 너를 죽이지 않는다. 아니, 죽이지 못한다. 죽이는 것은 교리에 위반되니까 최대한 고통만 가하는 것으로 끝날 게다. 아픔을 무서워하지 마라. 죽음이 없는 아픔은 아무 것도 아니다.’
죽이지 않는다? 죽음이 없다? 그냥 고통만 주는 거다?
여인이 말을 이었다.
‘아픔은 참아낼 수 있다. 참지 못하겠으면 기절해라. 네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네 마음이다. 무지무지 아플 것이라는 짐작이 공포를 불러오고, 칼을 대자마자 비명을 질러대는 게다. 참아라. 그리고 도(道)에 대해서 생각해라.’
말은 쉽다. 몸이 갈가리 찢어지는데 죽이지 않을 테니 참으란다.
여인이 칼을 댔다. 그리고 루검비는 거의 반사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악!”
루검비의 경우, 그의 목숨을 좌우하는 사람은 칼을 든 잔화와 첨화다. 그녀들은 공격을 한다. 방어는 서화와 유화가 맡는다. 그녀들은 치료한다.
원래 같은 실력라면 공격과 방어가 팽팽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루검비에게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치료가 아무리 빠르고 정확하다고 해도 상태를 계속 악화시킬 뿐인 칼질이 멈추지 않는 한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아이의 몸에 여든 한 번의 도흔을 새겨놓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두 시진.
칼을 더 쓰고 싶어도 쓸 곳이 없다.
“더 이상은 의미 없어.”
잔화가 칼을 거뒀다.
“내일은 어떡하지? 이건 하루가 아니라 한 달은 요양해야 될 상처인데. 내일까지 어느 정도나 아물겠어?”
서화가 능숙하게 지혈하며 말했다.
“이렇게 걸레를 만들어 놨는데, 아물긴 어떻게 아물어. 상처는 그대로고 몸집은 두 배로 커져있을 거야. 퉁퉁 부어서.”
“이 꼬마, 일 년은 고사하고 칠 주야도 버티지 못하겠는데.”
“내일은 첨화와 유화 차례인데…… 유화는 할 것이 없겠어. 여기다 한 번만 더 칼을 쓰면 못 견뎌.”
“할 일 없기는 첨화도 마찬가지지. 이런 상태에서는 칼을 댈 마음도 안 생겨. 어디 벨데가 있어야 말이지.”
루검비는 벌거벗은 상태였다. 벌거벗은 혈인(血人)이었다.
서화는 한 시진에 걸쳐서 앞뒤로 꼼꼼히 약초를 붙였다. 그리고 흰 광목으로 몸 전체를 둘둘 감았다. 목 밑에서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라고는 얼굴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엄마 품에서 재롱이나 부릴 꼬마를 불구덩이에 집어넣고 무얼 기대한단 말인가. 살살 봐주면서 때리는 시늉만 한 것도 아니다. 생존 가능성이 절반밖에 안 되는 투석형에 어른도 견디기 힘든 도접을 가했으니 죽지 않은 것만도 천운이다.
“수두화님 뜻을 모르겠어. 죽이라는 건지 살리라는 건지.”
잔화가 칼에 묻은 피를 닦으며 말했다. 그러자 서화가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난 알겠는데? 담옥으로 보내라는 거야.”
“지금 장난해?”
“아니. 내일 보면 알아. 이 애, 죽지 않아.”
“뭐가 있는 거야?”
“있지. 첨화와 유화.”
“난 지금 말장난할 기분 아냐. 그 애들이라고…… 처, 첨화! 유화!”
“그래, 첨화와 유화. 그 애들 때문에 이 아인 살아.”
“사중생(死中生)이라더니……”
잔화가 말끝을 흐렸다.
형당에는 수두화를 필두로 하여 부두화가 있고, 부두화 밑에 열두 명의 화녀가 있다. 그 중 두 명은 수두화를 보필하니, 실제로 형당에서 담옥인도의 역할을 하는 화녀는 열 명이다.
이 열 명은 다른 화녀들처럼 정랑을 두지 않는다.
몸을 섞은 정랑이 형당에 잡혀왔을 때, 자칫 인정에 치우칠 것을 염려한 조처다. 허나 그런 조처가 없더라도 형당 화녀들은 사내를 길가에 나뒹구는 돌보듯 쳐다본다.
그렇다. 그녀들은 사내가 필요 없다. 관심조차 없다. 대신 여인을 사랑한다. 사내의 손길은 뱀처럼 징그럽지만 여인의 손길은 온 몸을 녹인다.
생각해보라. 사내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여인들이 사내를 취조하거나 담옥으로 이끌 때 손끝이 얼마나 매울지를.
형당 화녀는 특이 성향을 지닌 여인만 선발된다.
또 다른 별종도 있다. 첨화나 유화가 그런 경우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성교 자체에 관심 없는 무심녀(無心女)들.
그런 여인들이 어떻게 환희교도가 되었을까?
그녀들은 환희교가 추구하는 교리 같은 건 아무런 관심도 없다. 바깥세상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해서 투신했을 뿐이다.
이런 여인들은 참으로 처치 곤란이다.
정랑과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건 환희교의 교리에 정면으로 위배되니 축출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교인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교주는 축출 대신 형당 화녀로 선발했다.
다행히도 무심녀는 두 명 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그녀들은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근육을 가닥가닥 베어내는 섬세한 손과 그와 정반대로 끊어진 신경까지 깔끔하게 이어붙이는 약왕(藥王)의 손.
환희교에 교리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내치기에는 그녀들의 재주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녀들은 인정이 없다. 차갑다. 냉혹하다. 처참한 몰골이나 가련한 모습을 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명령만이 그녀를 움직이게 한다. 허나 마음까지 움직이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교주가 직접 하달한 명령조차도 그녀의 무심한 마음은 움직이지 못할게다.
첨화와 유화가 하나가 되었을 때, 형당 죄인들은 비로소 죽음이 얼마나 편한 형벌인지 알게 된다.
열 명의 화녀들 중에서 최고 도수 두 명을 꼽으라면 잔화와 첨화이지만 한 명만 말하라면 망설일 것도 없이 단연 첨화다. 의술도 마찬가지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사람의 숨통을 붙여놓는 일도 의술이라면 서화와 유화가 손꼽힌다. 한 명만 선택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유화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