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오늘을 살살, 끝장은 내일 낸다’로 봤는데 오늘 망가트리고, 내일 살린다는 계획이었다.
“걔네들은 자기가 무얼 하는지 알까?”
“모르겠지. 이 아이를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 알아도 나중에야 알겠지. 칼을 쓴 다음에. 어쨌든 첨화와 유화는 최선을 다할 거야.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얘처럼 망가진 걸 담옥으로 이끌기는 쉽잖아?”
“아닐걸? 이 꼬마, 의외로 잘 버텨.”
서화가 치료를 마치고 일어섰다. 그리고 축 늘어진 루검비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심정은 반반이야. 잘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고, 내일 끝났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끝나면 다신 볼 일이 없지만 버티면 또 봐야 되잖아. 이런 꼴을. 어린 아이에게 이런 짓, 정말 못하겠다.”
형당은 장사곡 가장 위쪽에 위치한다.
산정(山頂)에 가깝다. 계류(谿流)가 시작되는 곳으로 수원(水原)도 보호할 겸, 사람들의 이목도 차단할 겸 가장 깊고 높은 곳에 둥지를 틀었다.
목적한 바는 일궈냈다.
사람들은 형당 근처에 오지 않는다. 가파른 길을 애써 등산하려고 하지 않는다. 허나 형당에서 울려나오는 비명은 바람을 타고 흘러나가 장사곡을 휘감는다.
어린아이의 처절한 비명소리는 형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짐작케 해주었다.
“오늘 못 넘기겠지? 도접이라던데.”
“못 넘기지. 잔화 그년…… 아휴! 치 떨려. 그게 계집이야? 나찰이지. 그년 손에 죽는 게 나아. 내일은 첨화란다. 첨화. 잔화년만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데 첨화면…… 이그그!”
교도들의 수군거림은 첨화와 유화의 귀에도 흘러들었다.
그녀들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꼬마아이가 버티면 어디까지 버티겠는가. 도접을 시행한 건 잘한 일이다. 죽이려면 빨리 죽이는 게 좋다. 죄 없는 꼬마라면 더욱 그렇다.
그녀들은 모든 일이 잔화 손에서 끝나기를 고대했다. 허나 두 시진 만에 비명이 그치고, 세 시진이 되어 두 여인이 나오는 것을 봤을 때 자신들의 손이 피로 얼룩져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냥 끝내지.”
스쳐가는 잔화에게 한 말인데, 잔화는 대꾸도 없이 지나갔다.
죄인을 족치고 나면 약간의 흥분과 설렘으로 기분 좋게 독주(毒酒)를 마시곤 했는데 오늘은 그것마저 없었다.
잔화와 서화는 묵묵히 자신들의 처소로 들어갔다.
“저것들 왜 이래? 갑자기 군자라도 된 거야, 뭐야.”
아이를 죽이는 일만큼 찜찜한 일도 없다. 저항을 할 수 없게 꽁꽁 묶어놓은 상태에서는 칼을 든 손에 힘이 빠진다. 상처가 심해 백포로 둘둘 말린 환자라면 그냥 목에 칼질 한 번 하고 뒤돌아 나가고 싶다.
“휴우! 이거 해야 되나?”
유화가 백포를 걷어내자 새빨간 혈인이 나타났다.
무심녀로 정평이 난 첨화도 쉽게 칼을 들지 못했다.
“하기는 해야겠지?”
“교주님도 그렇고, 수두화님도 그렇고…… 살려두길 바라던 눈치던데. 교주님이 이 아일 거둬오면서 환희교를 지키는 수문장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하셨대. 들은 말이야.”
굳이 들은 말이라고 부언할 필요가 없다. 그게 무슨 비밀이라고. 환희교도라면 모두 아는 사실인데.
“인법을 펼치면서 목숨을 끊으면 안 되는군. 정말 담옥으로 이끌라는 거군.”
“방법은 있어.”
“나도 알아.”
첨화가 툭 쏘듯 말하며 루검비 앞으로 다가갔다.
“비명 지를래?”
“소릴 지르면 좀 덜 아픈 것 같아요. 그러니 그건 좀 봐줘요.”
“아니다. 이를 악물고 소리 내지 마. 고함을 질러서 기운을 붇돋는 경우가 있고, 반대의 경우가 있는데 지금은 반대야. 비명을 지르면 지를수록 정신과 기력이 약해져. 그러니 견뎌낼 생각이라면 이를 악물고 참아.”
“어제보다 더 아파요?”
“사정을 봐주는 건 없어.”
“아프겠구나.”
첨화가 칼을 들어보였다.
날에 서슬이 퍼렇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살이 쩍 갈라지고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다.
“참아.”
그 말이 신호였다. 그녀의 칼이 어제 잔화가 만들어 놓은 상처를 후벼 팠다.
‘으윽! 아악! 아아아악……!’
루검비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이 악물며 참았다.
머리가 띵 하고 울린다. 모든 피가 머리로 치솟는 것 같다. 칼을 배를 후비는데 머리가 빠개지게 아프다.
칼이 어디를 어떻게 휘도는가.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경련이 일어난다. 어제처럼 차라리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혈.”
루검비의 몸뚱이가 유화에게 건네졌다.
한 번의 칼질이 끝났다. 그리고 루검비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강하게 해준다는 핑계로 이유 없는 고통을 받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이다.
그는 첨화가 썩어가는 부위만 도려냈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첨화는 생살을 찢을 때뿐만이 아니라 상처를 치료할 때도 고통을 수반했다. 고통의 무게는 치료라고 더 가볍지 않았다.
첨화와 유화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3
만산에 낙엽이 울긋불긋 물들었다. 나뭇잎은 바람이 조금만 세차게 불어도 우수수 떨어질 듯 바싹 말라있다.
하늘은 투명하리만치 맑고 공기는 시원하다.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고 한낮은 적당히 따뜻해서 하루 종일이라도 바깥에서 지내고 싶은 계절이다.
딱! 따악! 딱!
산정 부근에서 장작 패는 소리가 울렸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이른 새벽이다. 어느 누가 이토록 부지런하여 꼭두새벽부터 장작을 팬단 말인가.
“아휴! 지겨워. 또 시작이야!”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꽤 버티네. 육반 루가의 씨가 다르긴 다른 모양이야.”
“이러다 인법이 깨지는 것 아냐?”
“에이, 설마……”
요즘 들어 환희교도는 루검비에 대한 말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루검비는 변화가 없던 환희교도들에게 묘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환희교도들 중에 누군가가 형당에 끌려갔다면 하루나 이틀 정도 입방아에 오르내린 후, 관심이 멀어졌을 게다.
루검비는 시간이 흐를수록 관심 대상이 되어간다.
어른도 석 달 넘게 인법을 버텨내지는 못한다. 거의 대부분 백 일이 지나기 전에 시체가 되어 들려나온다. 그래서 인법을 달리 백일형(百日刑)이라고도 한다.
루검비는 석 달을 넘기고 넉 달째로 접어들었다.
어른도 견디지 못할 일을 꼬마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달리 형당 화녀들이 봐주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헌데 그런 말은 일체 나오지 않는다. 형당 화녀들이 안에서 벌어진 일을 구구절절이 말해주었을 리는 없고…… 칠절신군, 면도, 그리고 혈우광도의 눈과 귀가 안에 있으니 듣지 않아도 듣고 보지 않아도 보고 있는 것이다.
형당 화녀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두 명이 루검비를 전담하고 있다면 혹여 의심을 살 수도 있겠지만, 화녀 열 명이 고루 돌아가면서 매질을 해대기 때문에 뭔가를 봐줬다는 말은 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형당 화녀들은 죄인의 상태가 어떤지만 보면 전날에 어느 정도로 혹독했는지 한 눈에 안다.
봐주고 싶어도 봐줄 수 없다.
담옥으로 인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은 교리를 위반하는 것이고, 그런 행위는 삼법에 처해진다. 불쌍하다고 매질을 살살 했다가는 당장 루검비와 같은 처지가 될 테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형당 화녀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루검비는 버텨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딱! 따악! 따악……!
장작 패는 소리가 매섭게 들려온다.
소리로 짐작하면 태형(笞刑)을 치는 듯 한데……
‘태(太)!’
백삼십오 번째로 뇌리에 틀어박힌 글자다.
앙칼진 여인은 하루에 딱 한 자만 알려줬다.
모든 글자는 사구(四句)로 정리되며, 여덟 자나 열두 자로 한 문장을 이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안월과산(雁越過山), 영접(迎接)’이 어제까지 알려준 말이다.
기러기가 산을 넘어 무엇을 맞이한다.
한 문장을 이루는데 남은 글자는 두 자. 그 중 한 자가 밝혀졌다.
‘태(太)…… 태양(太陽). 영접태양?’
따악!
참나무를 깎아 만든 몽둥이가 엉덩이에 떨어졌다.
그토록 매를 맞았건만 아직도 매질에는 익숙지 않다. 아니, 영원히 익숙하지 못할 듯하다.
옛말에도 매에는 장사 없다고 했다.
몽둥이가 떨어질 때마다 살이 후들거리고, 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러나 비명은 지르지 않는다. 그 날 이후, 비명을 질러본 적이 없다. 정 죽고 싶거나 소리를 지르고 싶으면 머리를 짓찧으며 첨화의 말을 상기한다.
따악!
또 매가 떨어졌다.
루검비는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자 연구에 몰입했다.
기러기가 산을 넘어 태양을 맞는다?
두 번째 초식이다.
첫 번째는 ‘연어반회(輭語返回), 추소수로(追溯水路)’였다.
연어가 돌아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정도로 세찬 물길이냐에 따라서 쉽게 올라갈 수도 있고, 사력을 다해도 꼼짝 조차 못할 수도 있다.
해답은 다음 팔 일 동안에 풀렸다.
체중십배(體重十倍), 점증압력(漸增壓力).
몸무게의 열 배라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점증압력은 이해하기가 난해하다.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완벽하게 깨닫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정확히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
앙칼진 여인은 말했다. 뜻을 풀려고 하지 말고, 매 맞는 내내 가르쳐 준 글자만 되뇌라고.
우선은 암기, 그런 후에 시간이 있으면 풀이를 한다. 넘쳐나는 게 시간이지만.
루검비는 기러기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산을 넘어 태양과 마주치는 광경을 상상했다.
이단(二段), 혹은 삼단(三段)…… 어쩌면 사단(四段)이나 오단(五段) 도약(跳躍)을 요구할 지도 모르겠다.
‘안월과산, 영접태양’이라는 말 뒤에 어떤 말이 따라붙느냐에 따라서 도약의 수준이 정해진다.
기러기는 양 날개로 난다. 쌍검, 혹은 쌍도.
양손을 활짝 펴서 태양과 부딪친다.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서 산정까지 일로 치달린 다음 힘차게 솟구친다. 태양을 향해, 태양을 노리고, 태양과 부딪쳐간다.
순간이다! 기러기를 생각해서일까? 어깨 근육 앞쪽에 있는 노회혈(臑會穴)에서 화살이 관통한 듯한 충격이 일어나더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양팔이 들썩거려졌다.
엄청난 힘이다. 양팔이 앞으로 쭉 뻗어나가는 환상과 함께 무지막지한 힘이 팔 근육으로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 몸은 난도분시(亂刀分屍)되어 꼼지락거릴 힘조차 없는데, 두 손은 근육이 불끈 선 황소처럼 마구 치달려나가려고 한다.
두 손이 형틀에 묶여 있지 않았다면 허공에 마구 휘두르고 말았으리라.
“호오! 오랜만에 보는 반응이네.”
어깨의 꿈틀거림이 매질을 하던 화녀에게는 몸부림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녀의 입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기러기가 큰 산을 넘어 태양과 마주친다. 태양을 맞이한다. 안월과산 영접태양.’
루검비는 같은 상상을 계속 했다.
또 한 번 강력한 힘을 느끼고 싶다. 두 팔에 넘쳐흐르는 거력(巨力)을 담고 싶다.
힘이 좋아서가 아니다. 무지막지한 힘을 느끼는 순간, 아주 잠깐에 불과했지만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 순간만은 온 몸이 종잇장처럼 가벼워졌고, 늘 떨어지지 않고 달라붙던 육신의 고통도 씻은 듯이 가셨다.
헌데 힘이 빠져나가자 다시 고통이 몰려온다. 예전보다 훨씬 진한 느낌으로 와닿는다.
따악!
“으흑!”
비명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잠시의 안락함이 가져온 결과다. 힘의 충만감이 머무른 건 아주 잠깐 동안인데, 그 짧은 순간에 육신은 편안함을 추구했다.
따악!
“윽!”
“애가 왜 이래? 인간 같지 않게 참더니 오늘은 별 일이네.”
루검비는 화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들을 시간이 없었다. 다시 매가 떨어지기 전에 힘의 충만감을 얻어야 한다.
생각했다. 몰입했다. 기러기가 산을 넘어 태양을 맞이한다.
따악!
“큭!”
힘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장사곡에 내린 눈은 늦은 봄에야 녹는다. 그래서 겨울이 오기 전에 월동 준비를 마쳐야 한다. 지리적으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다람쥐 한 마리 오고가지 못한다.
폭설이 내렸다.
밤새 내린 눈으로 장사곡은 이 세상과 동떨어진 세계가 되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옆집을 가기도 힘들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지붕은 눈 무게를 힘들게 버텨낸다. 작년에도 버텼고, 재작년의 폭설에도 꿈쩍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얼마나 더 버텨줄 지는 아무도 모른다.
“반년이 지났으니 이제 금침술(金針術)로 들어가겠네.”
“믿어지지 않아. 인법을 견뎌낼 줄이야. 고통을 느낄 줄 모르는 체질인가? 육반 루가의 씨가 다르긴 다른 모양이야.”
“난 지금도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아.”
“나도. 조용하니까 이상하지 않아?”
“그러게. 들을 때는 소름이 쭉쭉 끼쳤는데 조용해지니까 허전하네. 뭔가 빠진 것 같아.”
“그믐까지만 버티면 육, 칠 할은 살았다고 봐도 되는데.”
“욕심이지.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용해.”
눈이 내린다. 온 산을 하얗게 물들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아예 파묻어버린다.
“죄인을 담옥으로 이끄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첨화가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칼로 육포(肉脯)를 떠내기 전에 말을 건넨 후 처음이니 정말 오랜만에 말을 걸어왔다.
루검비는 그녀를 흘깃 쳐다봤을 뿐, 대꾸를 하지 않았다.
화녀들에게 하는 말은 공염불이나 다름없다. 사정이나 부탁 같은 건 어림도 없고, 바깥 날씨가 어떠냐는 간단한 물음에도 답을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