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정랑이 패거리를 지어 못된 짓을 하면, 모두 버리고 뚝 떨어져 나와 새로운 환희교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들 한다. 교주는 버텼다. 어디서 새롭게 시작하든 똑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정랑을 통제하지 못하는 한은 악순환만 계속된다.
정랑은 쉽게 왔다가 쉽게 떠나간다.
사내는 뿌리가 아니다. 태생적으로 집착, 소유, 독점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내가 여러 여인을 거느린다. 허나 여인이 여러 사내를 거느리는 건 눈 뜨고 보지 못한다. 육체, 성교와 관련 있는 것은 무조건 독점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 사고로는 여인의 자유가 이해될 리 없다.
환희교에 머무는 정랑 중에 쓸모 있는 인간은 없다. 그들은 화녀들을 창기로 생각한다. 화녀도 마찬가지다. 입으로는 교리, 자유 운운하지만 마음으로는 자신 스스로 화냥년으로 치부한다.
모두들 인생의 패배자다.
여인은 사내들에게 종속되어 왔다. 그렇기에 자유에 대한 열망도 각별하다. 사내가 환희교를 이끌면 퇴폐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여인이 이끌면 항상 초심을 잃지 않는다.
환희교의 골격은 화녀가 이뤄야 한다. 환희교의 적통을 이어가야 한다.
교세를 확장시키고, 교리 학습을 강화시키고……
교주는 자신이 하고픈 것을 전혀 하지 못했다. 환희교를 한낱 창기들의 집합처로 만들고 말았다.
환희교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넌 환희교 수문장이지?’
이번에도 눈을 끔벅였다.
헌데…… 뭔가 이상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물밀듯이 일어나던 음심이 깨끗이 사라졌다. 아무 욕념 없이 교주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세상에 이런 기적이!
‘환희교는 없어졌다. 깨끗이 사라졌어. 몇몇은 살겁을 피해 도주했지만, 환희교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을 게다. 모두 잊어라. 이제 환희교도는 없다.’
교주는 환희교의 몰락을 이야기하면서도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예쁘다. 아니, 아름답다. 그래, 그렇다. 어렷을 적에 보았던 얼굴이 바로 이 얼굴이다. 어린 마음에도 이분이라면 마음놓고 몸을 의탁해도 될 것 같았다.
성스러움…… 교주에게서는 성스러움이 풍긴다.
‘다시 시작하는 거야. 다시. 루검비! 제사대 교주로써 명한다. 루검비 수문장! 제 오대 교주를 찾아라. 환희교주로 적합한 여인을 구해 교리를 전수하라. 완벽한 환희교를 만들어라.’
루검비는 눈만 끔뻑였다.
무슨 소리? 교주를 찾으라니? 무슨 말인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뜻에서 연속으로 대여섯 번이나 끔뻑였다.
천정에, 벽 뒤에, 기둥 뒤에…… 사방에 눈이 있다. 그들은 모습만 숨겼을 뿐, 자신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조차 숨기지 않았다. 호흡은 컸고, 가끔 옷자락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검비야.”
교주가 입을 열어 말했다.
그러자 정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고요하던 마음이 들끓는다. 교주를 눕히고 싶다. 마구 탐하고 싶다. 저 입술, 저 가슴, 저…… 아!
‘검비야, 똑똑히 들어라. 여기서 네가 살아나갈 방법은 없다. 오직 하나, 가진 걸 모두 내놓고 버려지는 것뿐. 껍데기만 남겨놓고 꼭꼭 숨어라. 숨어 살아라. 교를 일으켜도 세상에 드러내지는 말아라. 만인이 공유할 신(神)이 아니니.’
‘이게 무슨 귀신 곡할……’
전음을 들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입을 열어 말하면 욕정이 생긴다.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지만 환희밀공의 비밀을 또 하나 알았다.
‘명심해라. 정신이 드는 순간 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을 것이니. 그래도 환희밀공을 믿어라. 환희밀공이 널 영원히 지켜줄 것이다.’
루검비는 즉시 눈을 끔뻑였다.
“검비야, 어째서 잔화를 죽였니? 환희밀공을 왜 그런데다 쓴 거야? 넌 무슨 생각으로……”
교주가 말을 했다. 그것도 아양 섞인 콧소리까지 흘렸다.
루검비는 교주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이이……!”
참을 수 없다. 미치겠다.
그는 교주를 밀어트렸고, 확 달려들어 갸녀린 동체를 껴안았다.
회음혈에서 수십 마리의 화룡이 일어나 온 몸을 휘젓는다.
단연코 이런 적은 없었다. 언제나 한 마리만 일어났었다. 자신의 몸에 화룡이 수십 마리나 있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았다.
“허억!”
황급히 음기를 취하기 위해 손을 놀렸다.
타혈…… 타혈…… 타혈해야 음기를 얻는다.
허나 루검비는 혈을 치지 못하고 땀만 뻘뻘 흘렸다. 어찌된 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겠다.
어느 새 마혈(麻穴)을 제압당했다.
미치고 환장하겠다. 화룡이 요동을 치는데 몸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교주가 들뜬 신음을 토하고 있으니 더욱 미치겠다.
아니다. 그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숨어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격렬하게 여체를 탐하는 색마처럼 보였다.
교주의 손이 밑으로 미끄러지더니 하물을 움켜잡았다.
‘아아! 교주!’
이제야 알았다. 교주는 환희교에 언제 어느 때던 환희밀공을 깨트릴 사람이 있다고 했다. 루검비가 아무리 강해져도 손가락 하나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수문장이 되기 싫다고 도주하면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 죽이겠다고 장담했다.
그 여자가 교주다.
교주의 수룡은 환희밀공과는 극성이다. 그녀는 거대한 바다요, 자신은 조그만 모닥불이다.
“검비, 나 못 참겠어.”
교주가 치마를 걷었다. 그리고 루검비를 이끌어 비밀의 문을 열게 했다.
“학! 아아아……!”
난생 처음 느껴보는 쾌감.
음기를 빼앗지 못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체를 접했다. 진짜 성교가 무엇인지 알았다. 동정(童貞)이…… 동정이 깨지고 말았다.
“아아! 아아아!”
루검비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쾌감은 또 다른 쾌감을 불러왔다.
더욱 강하게, 더더더 강하게…… 그의 몸은 파도처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안 돼! 이건 아냐. 안 돼!’
저항은 통하지 않는다. 그의 몸은 쾌락에 순응했고, 지법에서 본 백팔십 가지 그림을 떠올리며 교주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능숙할 대로 능숙해진 자세들 아닌가.
‘저것들!’
상관외는 처음으로 질투라는 감정을 느꼈다.
원래는 서화를 안길 셈이었다. 루검비를 잡았고, 교주까지 손에 넣은 이상 서화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였다.
교주가 특별히 부탁을 해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루검비와 뒹굴고 있는 여자는 그녀였으리라.
“검비는 날 못 죽여요. 하지만 서화는 촌각 만에 죽을 거예요. 서화가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짧은 틈에 흡정 과정을 살필 수 있어요?”
“못 말릴 자신감이군.”
“자신이 아니라 사실이에요. 루검비는 수문장, 난 교주예요. 교주가 수문장 하나 다루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죠. 세상에는 음양이 존재해요. 환히밀공은 양, 저는 음. 제게는 환희밀공을 제압할 비기가 있어요. 그러니 믿어봐요.”
“무공을 익혔는가?”
“정확히 말하면 특이한 방중술이죠.”
두 가지 생각을 했다.
교주의 말이 사실이라면 환희밀공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교주의 말이 거짓이라면 교주는 죽는다. 음기가 빨려 목내이가 된다. 이것도 좋다. 이렇게라도 해서 교주를 떼어내야 한다. 교주가 옆에 붙어 있는 한, 중원을 향해 뻗어나가고자 하는 야망은 물거품이 된다.
상관외는 독한 마음으로 교주를 밀어 넣었다. 질투에 몸을 떨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때다! 한참 운우지락에 젖어있던 두 사람에게 기묘한 변화가 생겼다.
루검비가 교주에게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친다.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안간 힘을 다해 푸드덕거린다. 상반신을 일으키는가 하면 두 손을 옆으로 뻗어 기어나가려고도 한다.
아주 이상한 상황이다. 지금쯤 환희밀공을 펼쳐 음기를 빨아야 할 루검비가 오히려 벗어나지 못해 쩔쩔 매다니!
“아악! 아아아악!”
루검비는 절규까지 터트렸다.
뭔가 잘못 됐다는 느낌이 왔다.
사마귀의 교미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교미가 끝나면 숫컷을 잡아먹는 암사마귀가 생각나는 것은 우연일까?
동충하초(冬蟲夏草)라는 버섯이 있다. 누에의 살을 파먹고 자라는 버섯이다. 결국 누에는 죽고 버섯만 남는다. 승자는 버섯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동충하초는 인간에게 먹힌다. 최종 승자는 인간인 셈이다.
빨려나간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빨려나간다.
가짜 수룡만 맛본 화룡은 절대로 진짜 수룡을 만나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는 잘 해왔다. 음심이 들어 여인을 덮쳐도 합궁에 이르기 전에 가짜 수룡을 먼저 만나곤 했다.
음기를 빼앗고, 여인은 죽고……
언제나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환희밀공은 한번도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진짜 수룡과 만나자 미련 없이 빠져나간다. 꼬리치는 여자를 졸래졸래 따라간다. 그리고는 돌아오지 않는다.
“커억! 커억!”
루검비는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가슴이 답답하다. 숨이 막힌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머리는 어질어질한데, 화룡은 계속 빠져나간다.
수룡…… 놈도 참 지독하다. 온 몸을 뒤져 꼭꼭 숨어있는 새끼 화룡까지 모조리 끌어간다.
서화가 이런 고통을 당했다. 금령이 이렇게 죽었고, 수두화와 잔화도 이런 아픔 속에서 죽었다.
생기를 빨린다는 게 이런 것이다.
자신은 그녀들의 음기를 빨고, 교주는 자신을 먹고…… 결국 최종 승자는 교주다.
‘검비.’
교주가 전음을 보내왔다.
‘이제 여한이 없다. 이로써 환희밀공은 완성된 것…… 청음산(淸陰山) 쌍괴목(雙槐木)에 교리가 있으니, 찾아서 재대로 습득해라. 그리고 꼭 제오대 교주를 찾아 전하거라.’
교주는 정녕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생기가 모두 빨려나가 죽기 직전인데 오히려 환희밀공을 완성했다니. 그리고 유언이나 다름없는 말을 하다니.
‘검비야, 세상에 나가면 딱 하나만 해라.’
‘뭘 하라는 겁니까?’
마음 속 물음이다. 그는 입을 열 기력조차 남지 않았다.
‘즐겨라. 이거. 성교를 즐기도록 해.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담고. 싸움도 즐기고…… 사는 걸 즐겨.’
‘즐기면 강해지기라도 한답니까?’
‘살아남을 수는 있을 거야. 살아남지 못하더라도 즐기면서 산 인생이니 후회는 없겠지. 즐기거라. 즐기면서 살아.’
교주가 루검비에게 해준 마지막 말이었다.
퍼엉!
알맹이가 쏙 빠진 루검비는 허깨비에 불과했다. 가볍게 내친 장력에도 데구르르 굴러가 축 늘어졌다.
“호호호호호!”
교주가 깔깔거리며 일어섰다.
“아이들아! 구경 다 했으면 나와야지? 정인군자인 척하며 숨어서 비결을 훔치려는 좁쌀들. 호호호!”
숨어 있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모습을 드러냈다.
작고 단단한 체구의 상관가주를 비롯하여, 일숙, 이숙, 삼숙, 사숙 모두 나타났다. 그들이 나타나니 상관외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풍위도, 정옥성도 몸을 드러냈다.
별채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숨어있었다.
“루검비만 흡정대법을 연마한 줄 알았더니…… 넌 참 운이 좋구나. 흡정대법을 연마한 여자와 나뒹굴어도 멀쩡하고. 아니면 빨아먹을 게 시원치 않았나?”
상관가주가 비웃음 섞인 농을 건넸다.
상관외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교주가…… 교주가…… 루검비의 정혈을 빨아먹었다. 루검비를 목내이로 만들어 버렸다.
“호호호! 이 누님은 시간이 없어서. 나중에 보자!”
쉬이익!
교주가 신형을 날렸다.
그녀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정숙한 여인이 아니었다. 음탕하고 간악한 여인의 표본이었다. 백치처럼 순종적이던 여인이 이럴 수 있는가. 정사밖에 모르던 여자였는데.
“어딜!”
삼숙 상관흘이 앞을 가로막았다.
쒜엑! 퍼엉!
교주의 무공은 상상외로 높았다. 루검비의 정혈을 모두 취한 터라 파괴력도 가공스러웠다.
쒜엑! 쒜에엑!
교주는 맹렬히 삼숙을 공격했고, 삼숙은 즉시 응대했다.
교주가 사용하는 무공은 응조공(鷹爪功)이다. 삼숙은 매화수(梅花手)를 썼다. 매의 발톱이 삼숙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려는 찰나에 꽃잎 다섯 개가 화려하게 일어나더니 응조공을 감싼다.
퍽! 퍽퍽퍽퍽퍽……!
교주는 열다섯 번이나 격타 당했다.
적진(敵陣), 한 명도 이기기 어려운데 수십 명.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을 것.
교주가 내린 판단이다.
그녀는 살기를 듬뿍 담아 응조공을 펼침으로써 매화수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육신으로 부딪쳤다.
교주는 훨훨 날아가 벽에 부딪친 다음 화병을 깨트리며 굴러떨어졌다.
삼숙이 다가가 교주의 맥을 잡았다.
“이런! 즉사…… 입니다.”
삼숙은 민망한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쯧! 아깝게 됐군. 하지만 볼 건 다 봤고, 아직 한 놈이 살아있잖아? 그놈은 어떤가?”
“이 놈은 아직 숨이 붙어있습니다.”
사숙이 루검비의 맥을 살피며 말했다.
루검비는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 단단하던 몸이 푹 꺼지면서 허물만 남았다고 할까? 그가 죽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 놈은 내 방으로 데려오게. 죽기 전에 몇 마디는 물어볼 수 있겠지.”
상관가주는 상관외를 힐끔 쳐다본 후 별채를 나섰다.
상관외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멍하니 정신을 놓고 죽은 교주만 쳐다봤다.
‘이런…… 이런 개 같은 일이……’
그는 두 주먹을 으스러지게 움켜쥐었다.
<2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