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희밀공-69화 (69/125)

# 69

양귀비도 습관을 길들인다는 면에서는 환희밀공과 맥을 같이 한다.

‘매우 강한 양귀비…… 좋은 시련이 되겠군.’

루검비는 속으로 웃었다.

후우욱! 후우욱……!

양귀비가 태워졌다.

하연 연기가 뭉클뭉클 솟구쳤고, 연기는 고스란히 루검비의 콧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쿨룩!”

양귀비를 태우던 상관락이 거센 기침을 하며 밖으로 나갔다.

헝겊으로 코를 막고, 진기로 숨을 조절하지만 그래도 약간은 흡입한 듯하다.

루검비는 몽롱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았다.

자신 스스로 환상을 일으킬 때와 같은 기분이다.

교주와 정사를 벌일 때도 이처럼 몽롱했다. 꿈같기도 하고 물 위를 걷는 것 같기도 하고…… 부드럽고, 포근하고, 아늑했다.

다른 점도 있다. 환상을 불렀을 때는 의지로 상태를 고정시킬 수 있었다. 더 깊게 빨려들어가지 않고 적정한 선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

양귀비는 다르다. 한 없이 빨려든다. 더 깊게, 더 깊게…… 끝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계속 추락한다.

의식은 한 점 빛이 되어 멀어진다.

붙잡으려고 발버둥 쳐보지만 점점 희미해진다.

“이틀째인데 괜찮겠습니까? 어휴, 이거…… 공기만 맡아도 머리가 어질 거립니다.”

“독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네.”

“처음 써보시는 겁니까?”

“쓸 일이 있어야지. 혹시나 하고 지니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쓸 줄은 몰랐네.”

“독성이 이 정도라면 지금쯤 골수까지 중독되었을 것 같은데요?”

“연기가 가시면 상태 좀 보고……”

‘죽일 놈들!’

유수신투의 턱수염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사파나 마도의 인물들이나 하는 짓이다. 극악하고도 극악한 인간들이나 저지르는 행위다. 어떻게 한 인간을 골수까지 타락시킨단 말인가.

상관세가…… 그들을 주시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루검비에 대한 호기심이 치밀었다.

대체 놈이 무엇이기에 상관세가의 이숙과 사숙이 이런 방법까지 취하는가. 놈이 무엇을 가졌나. 막일이나 하는 막일꾼…… 아니다.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희한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뭐가 있기는 있는 놈인가?

유수신투는 멀찍이 떨어져서 암자를 지켜봤다.

암자 부근은 온통 양귀비 연기로 자욱하다.

지나가는 새도, 짐승도 중독되고 말리라.

바깥으로 흘러나온 것이 이럴 진대, 정작 안은 어떻겠나. 안에서 연기를 흡입하는 루검비는 어떤 상태일까?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그때마다 화가 난다. 아니, 들끓어 오른 분기를 가라앉힐 수 없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인간들…… 네 놈들 낯가죽을 벗길 날이 있을 게다.’

“환희밀공의 구결을 말해주겠나?”

“으으으……”

“여기 한 덩어리 더 있네. 조금씩 나눠서 피우면 한 달은 피울 수 있을 것이네만…… 한꺼번에 피우면 생명을 보장 못하지. 그래도 좋겠나?”

“제…… 발……”

“허허허! 어찌 양귀비를 아는 사람 같군. 피워본 적 있나? 자네 모습을 보니 중독에서 벗어나는 법을 아는 사람 같네 그려. 발버둥치지 말게. 편하게 받아들이게. 심신이 날아갈 듯 상쾌해지니 좋지 않나. 환희밀공. 말해주겠나?”

“말…… 말…… 말하겠……”

루검비는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술 취한 사람처럼 혀가 꼬여서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협조하겠다는 뜻은 분명히 전해졌다.

“그렇군. 고맙네. 하지만 말일세…… 자네는 전력이 있어서 말이야. 나는 가주처럼 얻다 마는 일은 당하고 싶지 않네. 조금 더 즐겨줘야겠어.”

“제…… 발……”

상관락은 양귀비를 곱게 으깨서 불을 붙였다.

“자네 이름이 뭔가?”

“음…… 으음……”

“허어! 이 사람, 정신 좀 차리게. 이름. 이름이 뭔가?”

상관락은 루검비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이름을 물었다.

“루…… 으음……”

쫙! 쫙!

루검비의 양쪽 뺨에 불이 붙었다.

상관락은 사정없이 뺨을 후려갈긴 후, 다시 물었다.

“이름이 뭐지?”

“루…… 루……”

“검비. 루검비. 맞지?”

“루……”

“이거 좀 더 피워줄까?”

호박엿처럼 단단하게 뭉쳐진 검은 덩어리를 들어보였다.

순간, 루검비의 눈에 광채가 어렸다. 방금 전까지도 정신이 혼미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

“우우…… 우……”

루검비는 짐승처럼 포효했다. 입가에는 침이 질질 흘러내렸고, 눈은 광기로 번뜩였다.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된 것 같군요.”

상관교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된 것 같군. 자, 루검비! 루검비! 정신 좀 차리고…… 내 말 잘 들어라. 환희밀공에 대해서 말해주면…… 알았지? 환희밀공에 대해서 말해주면 이걸 준다. 알았지?”

“으으…… 으으으……”

루검비는 양귀비를 보자 사지를 마구 뒤틀었다. 바들바들 떨기도 하고 머리를 뒤로 찢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눈길만은 양귀비에 틀어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말해봐. 환희밀공 구결이 어떻게 되지?”

“으으…… 으으으……”

“허! 이거 너무 세게 돌린 것 같군요.”

“그렇군. 잠시 진정시킨 후에 다시 하는 게 좋겠어.”

상관락은 양귀비를 조금 태웠다. 아주 조금만.

‘환희밀공?’

유수신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칠십 평생 중원을 쏘다녔지만 환희밀공이란 무공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보아하니 루검비가 환희밀공을 알고 있고, 상관락과 상관교는 구결을 빼내기 위해 양귀비를 쓰는 모양인데……

상관세가의 천수검법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절공이다. 천수검법 하나만으로도 절정고수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성취 여하에 따라서 무림을 굽어보는 위치에 오를 수도 있다.

상관세가 사람들은 이미 손에 보물을 쥐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남은 일이라면 얼마나 보물을 잘 갈고 닦느냐 뿐이다.

상관락과 상관교가 그 점을 모르지는 않을 터이다.

헌데 자신이 쥐고 있는 보물은 밀쳐두고 다른 보물을 탐낸다?

이런 경우가 없지는 않다. 아니, 왕왕 있다. 너무도 탐나는 무공이란 항상 존재한다. 삼류무인이 되었든 절정고수가 되었든 무공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허나 그것도 정도가 있다.

그는 암자로 들어갈 기회를 엿보았지만 좀처럼 들어갈 수 없었다.

양귀비는 연기뿐만이 아니라 냄새까지 풍긴다.

암자는 단 이 만에 시궁창보다도 더한 악취를 지니게 되었다. 어찌나 독한지 근처에만 가도 몸에 베여 떨어지지 않을 정도다.

유수신투에게 암자로 잠입하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쉽다. 그런 일은 수도 없이 해봤다. 허나 양귀비 냄새로 찌든 곳에 몸을 들이밀기가 죽기보다도 싫었다.

‘계집애가 지랄하겠는데. 빨리 꺼내가야지.’

그는 다람쥐처럼 나무에서 나무로 건너뛰었다.

“글을 모른다고? 그래서 지필묵을 준비해왔네.”

상관락이 종이를 펼치고 붓을 내밀었다.

그동안 상관교는 루검비의 등 뒤로 돌아가 수갑을 풀었다.

그들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수갑을 풀었다. 자신들의 무공을 철저히 믿었다. 자신들 두 명이 루검비 한 명 제압하지 못한다는 건 생각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두 팔만 풀어줬을 뿐이다. 두 다리는 아직도 가죽 족쇄에 묶여 있다.

염려할 게 없다. 헌데, 숨 한 모금 들이쉴 지극히 짧은 순간에 루검비의 눈빛이 변했다.

타앗! 턱!

루검비의 손이 기묘한 변화를 보였다. 손목이 뱀처럼 영활하게 꺾이면서 부드럽게 상관교의 완맥을 움켜잡았다.

“훗!”

상관교는 깜짝 놀라 손을 빼내려했다.

헌데 빠지지 않는다. 루검비의 손가락은 어느새 쇠집개처럼 단단하게 조여졌다.

“난수(蘭手)! 철골지!”

상관교가 내뱉는 음성에는 힘이 빠지고 있었다.

스으읏!

이체관통이 이루어진다. 화룡이 거침없이 빠져나가 상관교의 진기와 뒤섞인다.

진기는 요동친다. 낯선 화룡의 방문을 받고 본능적으로 저항한다.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용트림을 한다.

사사사사삿!

루검비의 화룡은 이미 상관교의 몸을 빠져나온 후였다. 하지만 상관교의 진기는 여전히 들끓었다. 루검비가 남겨놓은 가성의 화룡을 공격하기 위해 온 몸을 휘젓고 다녔다.

“끄으으윽!”

상관교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코에서 피가 쏟아진다. 귀에서도 검게 죽은피가 흘러나오고, 입으로도 피를 쏟아낸다.

“이런!”

상관락의 반응도 빨랐다. 이상을 감지하는 순간, 그의 손에서 검광이 번쩍였다.

쒜에엑! 쒜엑! 쒜엑! 쒜에엑!

머리 위로, 어깨로, 몸으로…… 팔을 뻗기만 해도 닿을 거리에서 검광이 난무했다.

스윽! 스스슷!

루검비는 상관교를 놓고 몸을 뒤틀었다.

묘한 자세가 되었다.

달려오는 덮쳐오는 상관락, 옆으로 누워 바라보는 루검비, 쓰러지는 상관교의 상체가 상관락의 검을 가로막는다. 거기에 족쇄에 묶인 두 발이 살짝 움직여 상관락의 다리를 걸었다.

쒜에엑!

상관락은 일 검을 쏟아낸 후, 급히 뒤로 물러섰다.

루검비를 죽이는 것은 쉽다. 허나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상관교의 죽음까지 감수해야 한다. 루검비와 상관교는 붙어있다시피 하고 놈은 절묘하게도 상관교의 육신을 방패로 삼고 있다.

“네놈이!”

쒜에엑!

상관락이 분노로 치를 떨 때, 천정에서 검을 물체가 불쑥 내리꽂히더니 루검비를 잡아채어 날아갔다.

“유수…… 신투!”

상관락의 고함은 암자를 쩌렁 울렸다.

쿵!

생기를 모두 쏟아낸 상관교의 신형이 힘없이 무너졌다.

제20장 사람이 으뜸이니

1

유수신투는 혼란스러웠다.

상관교는 대단한 고수다. 당금 무림에서 그를 이토록 쉽게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단 일 초에 절명시킬 수 있는 사람은…… 글쎄? 단 일 초라는 단서를 달면 열 손가락에 꼽지 않을까 싶다.

눈앞에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막일꾼 녀석이 그런 무공을 지녔다.

더욱 놀라운 것은 놈이 사용한 난수와 철골지다.

놈이 어떻게 자신의 독문절학을 알고 있을까? 초식을 구사하는 숙련도가 상당히 높았다. 난수와 철골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몇 십 년에 걸쳐서 수련한 사람 같다.

이해할 수 없다.

“네놈이 누구든 죽어줘야겠다.”

유수신투는 살의를 굳혔다.

불행히도 상관교를 살해하는 장면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온 정신이 어떻게 놈을 끄집어내느냐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놈이 발광하는 장면을 놓쳐버렸다.

허나 분명한 것은 놈이 상관교를 죽인 건 정통 무공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공 쪽에 가까운 무공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타격을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오공으로 피를 쏟으며 죽어갈 리 없다.

무엇보다 놈을 볼 때마다 기분이 안 좋다.

뭐랄까? 그렇다. 놈은 돈벌레 같다.

돈벌레는 바퀴벌레 알을 먹어치운다. 허니 꼭 나쁘지만은 않다. 물리면 몹시 가렵고 오래 가지만 해보다는 득이 많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돈벌레를 싫어한다. 무조건 싫어한다. 눈에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인다. 혐오스럽게 생겼기 때문이다.

루검비는 혐오스럽게 생기지 않았다. 다부지고 단단해 보이니 천생 사내다.

헌데 밉다. 이유는 없다. 괜히 밉다.

유수신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눈 밖에 난 인간치고 제대로 된 인간을 보지 못했다. 눈 밖에 나는 놈은 항상 그럴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놈은 왜 미운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직 발견해내지 못했지만 틀림없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네 놈을 깨워서 어떻게 난수와 철골지를 익혔는지 물어보고 싶다만, 나도 상관교 꼴이 날까봐 겁나는구나. 허니 이대로 그냥 가거라. 너도 편하고 나도 편한 게 좋지 않냐.”

유수신투은 철골지를 운용하며 오른 손을 추켜들었다. 그때,

스스스스스……!

바람도 없는데 나뭇잎이 흔들렸다.

‘제길! 기어이!’

유수신투는 신경을 쫑긋 세웠다.

상관락을 쫓을 때부터 기분나쁜 움직임을 읽었다.

손녀 년과 자신은 상관락의 뒤를 밟고, 자신들의 뒤는 어떤 미친 놈이 따라붙었다.

그놈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놈의 신법이 극히 정교하다. 신경을 바싹 곤두세우지 않는 한 눈치 채기 힘들 정도다. 오죽하면 같이 가는 손녀 년은 미련멍충이마냥 아무 눈치도 못 챘겠는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 그가 시비를 걸어오지 않는 한 미리 달려들 필요는 없다.

그는 늘 곁에 붙어 있었다.

찾아보면 보이지 않고, 무심결에 뒤돌아보면 따라붙는 식이다.

루검비를 낚아채서 데려올 때, 그는 미친놈이 남아주기를 기대했다. 자신에게 볼일이 있는 게 아니라 상관락에게 달라붙어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헌데 자신의 뒤를 밟는다.

미친놈은 루검비에게 용건이 있다.

‘허! 이놈이 누구기에 이놈 저놈 다 달라붙는 거야? 그것도 하나같이 난다 긴다 하는 놈들만.’

스읏!

유수신투는 오른손에 진기를 운집했다. 순간,

스스스스스……!

다시 나뭇잎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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