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없지. 어느 대법이든 즉시 목내이를 만들지. 내가 정상이라는 것은 흡정대법에 당한 시신은 대략 반나절에 걸쳐서 목내이가 된다는 뜻이고…… 그래서 새로운 흡정대법이 출현했다고 하지 않았나.”
모초권은 볼 일이 끝난 듯 일어섰다.
그가 방문을 열고 나가기 전, 뒤돌아보며 말했다.
“우린 적일 것 같나, 아니면 스쳐가는 인연일까? 무천에 사람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쿵!
화룡이 뛰었다. 아주 크게 요동쳤다.
“후후후!”
그가 웃으며 나갔다.
루검비는 하얗게 질린 낯으로 그가 나간 문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화룡만 화룡을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진기도 화룡을 건드린다. 모초권이 자신에게 시행한 것이 그것이다. 자신의 화룡은 그의 화룡을 건드리지 못했는데, 그는 진기를 사용하여 간단하게 화룡을 들쑤셔 놨다.
상위(上位)의 화룡이 하위의 진기에게 당한 격이다.
하위가 얼마나 강하기에 상위를 주무를 수 있는가. 아니다.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하위가 강해서라기보다 상위가 약하기 때문이다.
‘역시…… 정사 없이는 화룡을 키우지 못하는 건가. 음양화합만이 최선인가.’
루검비는 들고 있던 피부조각을 기녀의 몸에 붙여주었다.
“자, 마셔.”
유화가 술병을 불쑥 내밀었다.
루검비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술병을 받아들고 술 한 병을 한 입에 털어넣었다.
꿀꺽! 꿀꺽!
술이 물처럼 들어갔다.
“참 못났다.”
“……”
“졌다고 생각해?”
수룡을 본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사람 마음을 미리 헤아릴 수 있으니 답답하지도 않다. 그러나 없는 것을 만들어 줄 수는 없다. 마음이 언짢아도 예전처럼 몇 마디 말로 위로해주는 게 고작이다.
루검비의 화룡은 의기소침해 있다. 밑으로 축 가라앉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모초권 때문이다. 그의 기도가 워낙 강했던 탓이다.
꿀꺽! 꿀꺽! 꿀꺽!
“그만 마셔. 마시란다고 다 마셔? 무슨 술을 냉수처럼 들이켜니.”
그녀는 술병을 빼앗았다.
“모초권은 보통 통령이 아냐. 무공으로 따지면 총통령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한다더라. 삼관도 마찬가지고. 굉장히 강한 자야. 사실 진 것도 아니잖아? 몇 마디 말에 위축되어서 이게 뭐야!”
손과 발을 쓴 싸움은 아니다.
기와 기가 충돌한 것뿐이니 사람 눈에 보일 리가 없다.
유화도 며칠 전 같았으면 이해하지 못했을 터이다.
지금은 이해한다. 눈으로 본다. 귀로 듣고 몸으로 느낀다.
모초권은 바다와 같아서 좀처럼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 물결이 언제 들이칠지 예측조차 못한다.
그녀에게 모초권은 하늘 위에 하늘이었다.
루검비도 그렇게 느꼈나 보다.
그의 화룡과 자신의 수룡이 거의 같은 수준으로 추락했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것인데…… 수룡을 안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정신 차리고…… 오늘 수련하자.”
유화는 일부러 밝게 웃으며 루검비에게 등을 보이며 앉았다.
“준비 됐어. 시작해.”
그녀는 척추를 통해 밀려들 뜨거운 기운을 기다렸다.
아주 작은 불꽃이 연못에 떨어지면 흔적도 없이 꺼져버린다. 물이 차가우면 차가울수록 불꽃이 사그라지는 속도는 빨라진다.
루검비는 수룡을 자극하되, 손상시키지 않을 정도로 미량의 화룡만 쏘아냈다.
양이 많으면 수룡과 화룡은 싸움을 벌일 것이다.
물론 지리적인 이점을 안고 있는 수룡이 훨씬 유리하지만 조금의 손상도 없이 화룡만 없앨 수는 없다. 화룡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수룡도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루검비처럼 아주 적은 양만 들여보낼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수십만 대군 앞에 두세 명이 달려들어 봐야 주먹 한 번 쓰지 못하고 순식간에 짓밟힌다.
루검비는 그 점을 노렸다.
유화의 몸안에 들어간 화룡은 죽는다. 허나 그 순간, 유화는 수룡의 존재를 의식한다. 수룡이 있음을 알고 의식 안에 끌어들여 조정해 나간다.
어떻게든 시작만 하면 된다.
수룡의 존재를 인식하면 그 순간부터 사람이 달라진다. 어떻게든 수룡을 다시 보려고 목을 맨다. 수룡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죽어야만 수룡을 볼 수 있다고 하면 목숨까지도 버릴 것이다.
그만큼 성신이 주는 환희는 지극하다.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밝아진다. 세상이 즐겁고 아늑한 곳으로 변모한다. 머리칼을 스치는 작은 바람도, 세상을 뒤엎을 듯한 광풍폭우도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
루검비는 화룡전이를 통한 포교(布敎)를 염두에 두었다.
유화는 성공했다.
그녀는 옛날의 악감정을 잊었다.
수룡을 보았을 때와 보지 않았을 때는 믿음이 달라진다. 믿음이라는 게 그래서는 안 되지만 눈으로 보고 난 후에야 믿게 되는 게 인간의 속성인 걸 어쩌랴.
유화에게 수룡을 느끼게 해주자 그녀는 끝없는 환희에 몸을 떨었다. 너무 기뻐서 한없이 울었다.
환희교? 좋아한다. 이제는 욕하지 않는다. 세상사람 모두에게 환희교를 믿으라고 강요라도 하고 싶단다.
그녀는 교주가 말한 ‘성신을 아는 진정한 환희교도’가 된 것이다.
“뭐해? 빨리 해.”
루검비는 망설였다.
그녀는 잘못 알고 있다. 자신이 모초권의 기도에 눌려 의기소침한 것으로 안다.
아니다. 환희밀공을 키우기 위해서는 음양화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고뇌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마찬가지다.
화룡이 그렇다면 수룡도 그렇다.
본인이 느끼고 조정하게 되면 더 이상 이런 수련은 필요 없다. 화룡전이는 본인이 수룡이라는 존재를 의식할 수 있을 때까지 잠깐 도움을 줄 뿐이다.
결국은 정사로 넘어가야 한다.
유화의 어깨가 보인다. 하얀 목덜미도 보인다.
‘정사…… 정사……’
유화의 나신을 떠올랐다. 그 순간, 루검비는 흠칫 하며 고개를 파딱 쳐들었다.
환희밀공에도 심마(心魔)는 있다.
지금과 같은 경우다.
그는 급히 화룡을 이끌어 미량을 퉁겨냈다.
‘흠……!’
유화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어찌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녀는 루검비보다 음양이치에 대해서 밝다. 환희교도가 되면서 형당에 들기 전까지는 많은 사내를 만나보기도 했다. 그들의 땀 냄새와 입 냄새가 역겨워 구역질까지 해봤다.
루검비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리 없다.
단순한 욕정으로 자신을 탐하는 것이라면 서로를 위해 물러서는 게 좋다. 나이차도 크고, 무엇보다 두 사람은 그럴 사이가 아니다. 서로에 대해서 친분은 있지만 남녀 간의 사랑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사는 수련의 일종이다.
지금처럼 몸속에 화룡이 투입되면, 수룡은 이유를 묻지 않고 물어 죽인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룡과 화룡은 물과 불로 서로 섞일 수 없다.
반면에 운우지락을 통해 서로 기운을 돌고 돌리면 상충이 아니라 상생작용을 일으킨다.
기운은 몸을 따라간다.
몸이 좋아하는 상대를 만나면 반갑게 맞이한다. 즐거운 기분으로 찾아온 손님과 흔쾌히 즐긴다. 수룡과 화룡은 서로 얽히면서 사악한 기운을 씻어준다. 서로를 정화시킨다. 맑은 성신이 되도록 닦고 또 닦아준다.
그만한 이치쯤은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깨닫고 있었다.
‘나로써 괜찮다면…… 한 번 해보지.’
그녀는 버릇처럼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늦은 밤, 그녀는 루검비의 침소를 찾았다.
그는 절대 먼저 찾아오지 않는다. 일을 벌이려면 그녀가 찾아가야 한다.
“무슨 일……”
루검비의 눈이 부릅떠졌다.
촛불을 켜자 유화가 보였다. 매미날개처럼 얇은 옷을 입고 수줍은 듯 서있다.
“무슨 일입니까?”
루검비가 다소 냉랭하게 말했다.
유화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 당연한 반응이다. 요즘 루검비의 화두(話頭)는 환희교와 다접이다. 이 숙제를 풀지 못하는 한, 개교(開敎)는 있을 수 없다는 점도 안다.
그렇기에 그는 금욕(禁慾)에 가까울 만큼 절제를 하고 있다.
“나도 알아. 환희밀공.”
“……”
“해보려고.”
“안됩니다.”
“왜화창부? 소월신투? 내가 그 다음 할게. 나까지만 어떻게 안 될까? 아까 낮에…… 이상한 기분 느꼈거든. 화룡을 쏘아주기 전에.”
유화는 말을 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아이를 낳았으면 아들 뻘 밖에 안 되는데, 이 무슨 추태인가. 색에 미친 것도 아니고, 수룡을 절실히 키워야 하는 것도 아니고. 루검비가 좋아서 죽는 것도 아니고.
단지 환희밀공이 정사를 통해서만 키워진다면 자신이 희생하자는 생각뿐이었다.
좋게 생각했다. 수룡을 알게 해준 보답이라고. 수문위가 되었으니 수문장을 위해 잠 한 번 같이 자주는 거라고. 옛날 환희교도에게는 늘 있었던 일이지 않은가.
“괜찮겠습니까?”
루검비는 의외로 사양하지 않았다. 냉담한 표정으로 물리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사박사박 걸어갔다.
그녀의 옷자락이 뱀허물처럼 벗겨지고 있었다.
2
루검비는 더 이상 고평에 있지 못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퍼질대로 퍼져서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보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아픈 사람들 중에서도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병자는 더욱 소수다. 일부는 그를 비호했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따가운 눈총을 보내왔다.
“저……”
아침부터 찾아온 객잔주인은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머뭇 거렸다.
“방을 비워줘야겠군요.”
“죄송합니다.”
객잔주인은 말 나오기 바쁘게 급히 말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챙길 것도 없으니 바로 비워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이거 받으십시오.”
객잔주인은 진정으로 미안해하며 전낭(錢囊)을 내밀었다.
“아닙니다. 어떻게 이런 걸……”
“소인의 정성이라 생각하고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어르신을 쫓아낸 놈들 약 오르게 본때 나게 사람들을 고쳐주십시오.”
객잔주인이 억지로 전낭을 쥐어주었다.
루검비는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객잔주인의 몸은 멍투성이다.
얼굴은 깨끗한데, 보이지 않는 곳은 엉망진창이다.
때릴 줄 아는 자가 때렸다. 루검비를 쫓아내지 않는다고 몰매를 가한 것 같다.
“가죠.”
루검비가 유화에게 말하며 먼저 일어섰다.
“다접이 무슨 상관이지? 방금도 당했으니 알겠지? 돈 한 푼 안 받고 자기들을 고쳐줬는데 쫓아내잖아. 이게 인심이야. 이런 사람들을 뭐 하러 신경 써?”
객잔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다.
그녀와 루검비는 정사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랐다. 다른 환희교도들처럼 날마다 정욕을 불태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유화는 환희교 형당에 있을 만큼 성(性)에 개방적이다.
또한 환희교는 세상과 어울리지 않았다. 산속에 둥지를 틀고 환희교도끼리만 살을 맞대고 살았다. 세상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솔직히 요즘 들어 환희밀공이 부각되는 바람에 환희교가 알려졌지, 그 전에는 환희교에 대해서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 기껏 환희교에 대해서 안다는 사람은 절곡에 모여 살던 환희교도가 전부였다.
그 안에서 웃고 떠들고, 이놈저놈 갈아치우고, 옷 벗고 난리를 쳐도 세상은 아무 것도 몰랐다.
무엇이 문제인가?
수룡을 알게 된 지금도 루검비의 고민이 이해되지 않는다.
다접? 상관치 않는다.
세상의 인습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져야 한다. 인간의 육체는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그곳에 성신이 깃들이 비로소 인간이 된다.
정사를 하면 쾌락을 느낀다. 그리고 끝난다. 이것이 인간이다.
환희교도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완벽하게 깨끗해진 수룡은 극도의 환희를 느낀다.
그것은 육체의 쾌락에 비유할 바가 아니다. 환락산(歡樂散) 같은 약물은 발뒤꿈치도 못 따라온다.
어젯밤은 그녀가 살아온 인생 중에서 최고로 즐거운 날이었다.
즐겁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온 몸 가득히 무엇인가 꽉 들어찬 느낌, 자신이 더 이상 완벽해질 수 없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것은 쾌락이 아니라 환희였다.
그녀는 루검비와 긴 밤을 꼬박 밝혔다.
아직도 그녀의 몸에는 지난밤의 여운이 남아있다.
기쁘고, 떨리고, 두렵다.
수룡을 알게 되어 기쁘고, 수룡이 하루아침에 부쩍 커버리니 떨리고, 이러다가 수룡을 잃으면 어쩌나 싶어 두렵다.
쾌락만 추구하는 정사는 원치 않는다. 허나 수룡을 발전시키는 정사는 언제든 환영이다.
유화는 그렇게 변했다.
사내와 몸을 섞기가 싫어서 형당 화녀까지 되었는데, 이제 성신을 이해하는 사람과는 관계를 가져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환희교의 교리는 흠잡을 데가 없다.
성신을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 어떻게 될까?
예전 환희교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랑과 화녀가 스스럼없이 어울릴 것이다. 옛날에는 가담하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면 유화 자신도 그들 중 일부가 되는 데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