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그들은 서로 등을 맞대어, 옆과 등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전면에서 날아오는 송곳만 처리했다.
철저히 상대를 믿지 못한다면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고, 흔들림은 실수로 이어졌을 게다.
쒜에에에엑!
그들과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날던 송곳들은 쏘아진 방향으로 계속 날았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홍의랑을 여지없이 격타했다.
퍼퍼퍼퍽!
“으윽!”
“크윽!”
절반 가까운 홍의랑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고 쓰러지지는 않았다. 다른 홍의랑이 버티고 서있어서 쓰러지려야 쓰러질 수가 없었다.
홍의랑주도 처참했다.
그는 날아오는 송곳을 막지 않았다. 손을 들어 얼굴만 가렸다. 그때문에 그의 몸은 온통 송곳으로 빼곡했다.
피가 흘러내린다. 폭죽처럼 피어나더니 홍수가 난듯 쏟아져 내린다.
그는 혈인(血人)이 되었다.
“멸진(滅陣).”
그가 담담히 명을 내렸다.
“존명(尊命)!”
“모셔서 영광입니다!”
“조금 있다 다시 모시겠습니다! 하하하!”
홍의랑도는 일제히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조짐이 심상치 않은데?”
노동거사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다 다를까! 홍의랑도가 죽은 동료들까지 이끌며 냅다 치달려 왔다.
그들 전면에는 홍의랑주가 있었다. 그는 루검비를 향해 지쳐왔다.
푸욱!
봉황검이 그의 심장을 찔렀다.
원래는 그의 적검만 쳐낼 생각이었는데, 홍의랑주가 갑자기 적검을 내려놓았고 심장을 내놓았다.
“루검비, 먼저 간다.”
그가 웃었다. 순간!
꽈꽝! 꽈꽈꽈꽈꽝!
엄청난 폭음과 함께 강렬한 열기가 네 사람을 휘감았다.
세상이 죽음으로 뒤덮였다.
사십여 명이 일시에 죽음을 맞이했건만 세상은 그들의 육신조차 내놓지 않았다.
붉은 핏물, 소고기나 돼지고기처럼 조각나 떨어진 살점, 그리고 으깨진 뼈들만 사방에 비산해있다.
“쿨룩!”
노동거사가 거센 기침을 토해냈다.
입으로 핏물이 한 움큼이나 쏟아져 나왔다.
사십여 명을 완전히 공중분해 시켜버린 폭발력은 노동거사의 육신도 무지막지하게 두들겼다.
온 몸이 피투성이다.
살점이 달라붙다 못해 살을 파고 들었다. 남의 살이 살을 뚫고 들어온 것이다. 뼈는 흉기가 되었다. 웬만한 비수도 부러진 뼈만큼 지독한 아픔을 주지는 못할 것 같다.
“빌…… 어…… 먹을!”
낙천가인 노동거사가 욕을 입에 담을 만큼 그의 상처는 중했다.
루검비와 두 여인도 피로 범벅이 되었다. 허나 표정에서 아픔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들의 수룡과 화룡은 이 세상 그 어떤 성보다도 견고하다.
몸을 석벽이나 쇠같이 단단하게 탈바꿈 시키는 일쯤은 성신을 한 번 주시하는 것으로 끝난다. 허면 금종조(金鍾罩)를 수련한 사람보다 더욱 단단한 몸을 지니게 된다.
노동거사까지 혈인으로 만들어버린 폭발이건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절죽원주와 호리수도 멀쩡했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표현이 딱 맞다.
“귀신을 보는 것 같군. 어떻게 그런 폭발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아니, 어떻게 멀쩡할 수 있냐고.”
호리수가 바짝 얼어 잘 열리지 않는 입으로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우리와 같이 있으면 앞으로 놀랄 일 투성일 거예요. 너무 놀라지 마세요.”
류취취가 배시시 웃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름다웠을 웃음이다. 허나 핏물로 목욕을 한 지금은 악마의 웃음 같아서 모골을 송연케 만든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상관 가주만큼은 내버려두면 안 되겠군.”
루검비가 노동거사의 몸에 화룡전이를 하며 말했다.
홍의랑주에게 죽음을 재촉한 상관 가주는 싸움을 지켜보지 않았다.
상관파 취할 전략이라는 건 손에 쥐듯 뻔하다.
사자 천수강막으로 움직임을 줄인 뒤에 멸진을 펼칠 것이다.
상대가 안 된다고 판단하는 자와 싸우기 위해 준비한 것이 멸진 아니던가.
사자천수강막을 펼치는 순간부터 멸진에 이르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일다경(一茶頃)이다.
그동안 할 일이 있다.
그는 상관세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곧장 이제 후원(後園)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눈엣가시가 있다. 아니, 있어야 했다.
“후후후! 죽기는 싫은 모양이군.”
그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아무도 없다. 둘째 상관락의 거처는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듯 텅 비어 있다.
“이리 나오거라!”
고함지르기가 무섭게 무인 두 명이 한 달음에 달려와 부복했다.
이들이 있을 줄 알았다. 안에 누군가 숨어 있는 것을 감지했다. 그들 나름대로는 세심하게 바깥 동정을 살폈던 모양이나 상관 가주의 이목을 속이지는 못했다.
그들은 상관 가주의 눈길이 자신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향하자 발각 당했다는 걸 깨닫고 달려 나온 것이다.
“너희는 본가의 존망과는 관계없는 놈들인 것 같구나.”
“아, 아닙니다! 저희는 둘째 어르신께서 기다리라고 하셔서……”
거짓말이다. 이들은 둘째가 떠나고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싸우기가 무서워서 숨어있었던 게다.
상관 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둘째는 어디 갔노?”
“바깥이 시끌벅적해서 나가보신다고.”
“너희는 나랑 같이 가자꾸나.”
“넷!”
그들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순간, 상관 가주의 양 손이 쭉 뻗어나가 그들의 승장혈을 짚었다.
“가주, 왜?”
“너흰 상관세가를 위해서 성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니 영광으로 생각하고 가거라.”
츠츠츠츠츠츳!
이체관통! 승장혈로 들어간 가주의 진기가 그들의 진기를 수분혈로 몰아붙였다. 진기가 억지로 떠밀려 수분혈에 이르면 또 다시 이체관통, 그의 몸속으로 빨려들어왔다.
“크크크크크!”
상관가주의 웃음소리만이 고요한 전각을 흔들었다.
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온 몸이 칠십 노인처럼 쭈글쭈글 해지더니 고개를 푹 떨궈버렸다.
“그러잖아도 한두 놈쯤 필요했는데, 잘 됐군. 후후후!”
그는 진기를 빨아들일 때와는 사못 다른 웃음을 흘렸다. 그때는 인성을 상실한 괴물의 괴소였으나, 지금은 이성이 멀쩡한 인간의 웃음이었다.
음양합밀공은 큰 단점이 있었다.
채음보양에는 뛰어난 절공이지만 진기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음양화합을 치뤄야 한다는 귀찮은 점이 있었다.
환희밀공은 그런 단점을 말끔히 보완해 주었다.
환희밀공의 무리(武理)는 모른다. 허나 지법 석화를 통해 진기 운용법은 대충 알게 되었다.
승장혈로 진기를 밀어 넣어 수분혈로 빼낸다.
음양합밀공을 그 방법대로 운용하자 과연 운우지락 없이도 진기를 거둘 수 있었다.
좋다. 그럭저럭 만족했다.
그럭저럭이라고 말한 까닭은 환희밀공이 아니기 때문에 진기 회수에 시간이 다소 걸린다는 점 때문이다.
루검비는 손에 닿은 즉시 진기를 빼냈다. 무척 빨랐다. 싸우는 도중에도 흡정대법을 사용했다. 그러니 진기가 끊겨서 패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용검대가 그놈을 잡은 것은 천운이다.
놈이 초식을 몰라서 잡혔지 조금이라도 무공을 쓸 줄 알았다면 용검대가 전멸했으리라.
단점이 하나 더 있다.
음양합밀공으로 진기를 빨아들이면 정사를 벌일 때보다 절반 정도밖에 거둬들이지 못한다. 절반이나 되는 진기가 죽은 육신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도 좋다. 음양합밀공은 여인에게서만 진기를 뽑을 수 있지만 환의밀공의 운용법을 쓰면 강건한 사내의 진기도 흡취한다. 그리고 사내에게서 흡취한 진기는 여인의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강력한 힘을 준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지 않나. 진기를 많이 빨이들이면 어떤가?
이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부분이다.
환희밀공은 이 짓을 할 수 있다. 한 번에 수십, 수백 명의 진기도 빨아먹는다. 허나 음양합밀공은 안 된다. 한 번에 한 명도 다 못 먹는다. 타인의 진기가 자신의 진기와 섞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한계가 지금처럼 하루에 두 명이다.
가주는 환희밀공의 진기운용법을 안 이래, 꾸준히 진기를 불려왔다.
그리고 이제 알에서 깨어나려 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픔을 겪어야 푸른 하늘을 날 수 있다. 사람이나 동물도 마찬가지다. 자궁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집을 벗어난 후에야 진정한 한 개체가 된다.
상관세가라는 알을 깨고 더 큰 세상으로 날아간다.
넉넉잡아 일 년이다.
음양합밀공만 알았을 때는 삼, 사십 년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새로운 진기운용법을 얻었으니 사내만 골라 진기를 빨아먹으면…… 일 년이면 중원에서 그를 따라올 고수는 없을 것이다.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자신보다 훨씬 강해질 가능성이 있는 루검비를 제거해야 한다.
놈의 진기를 빨아먹었어야 하는데. 그랬다면 꿩 먹고 알 먹는 건데. 이제는 그냥 죽이는 것도 힘들어졌으니.
꽈앙! 꽈아아아앙!
엄청난 폭음이 전각을 뒤흔들었다.
‘멸진.’
홍의랑주 상관파가 미련한 일생을 마쳤다.
지놈 딴에는 우직한 일생을 살았다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별로 좋지 못한 삶이다.
그보다는 삼실에서 한참 음양합밀공을 수련하고 있을 아들놈이 훨씬 나을 것이다. 비록 온갖 누명을 뒤집어쓰고 죽을 놈이지만, 그래도 제멋대로 살기는 했으니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끝장내는 일만 남았군. 쯧! 둘째를 끝내고 갔으면 한결 마음이 편하련만.”
그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지 둘째가 살던 전각을 돌아보았다.
“응? 이거 대단하군. 환희밀공은 늘 놀라움을 줘. 어떻게 그런 폭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 가네.”
상관가주가 걸어오며 말했다.
“도주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군.”
루검비가 봉황검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상관가주는 그를 보지 않았다. 노동거사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와 계집들은 환희밀공을 수련했으니 그렇다 치고…… 노동거사는 지금쯤 죽었어야 하지 않나? 육신으로 버텨낼 폭발이 아니었는데? 노동거사가 익힌 비기는 뭔지 궁금하군.”
“생사의라는 절기가 늘 곁에 있죠.”
류취취가 말했다.
“아! 그렇군. 생사의. 죽은 자도 살린다는 자네가 있으니 살아날 수 있었군. 말이 나온 김에…… 그 생사의라는 것 말이야. 자네 진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맞나?”
“맞소.”
“진기 손실이 꽤 크겠는데? 지금도 진기를 넣어줬다면…… 원하면 진기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줄 용의도 있고.”
“괜찮소.”
루검비는 봉황검을 휘휘 휘둘렀다.
상관 가주에게 화룡이 어떻고 저떻고 설명할 생각이 없다. 그가 화룡을 진기로 알고 있으면 그렇게 생각하게 내버려두련다. 어차피 생과 사를 가를 판에 하나를 더 알면 뭐하겠나.
“천수검법이오?”
상관 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넌?”
“괜찮다면 천수검법을 쓰고 싶소.”
“네가? 우리…… 상관세가의 검법을? 후후후! 그렇군. 상관락! 이놈이 봉황검을 갖다 바치더니 천수검법까지 내놨군. 좋아. 써봐. 얼마나 잘 쓰는지 보세.”
가주가 흔쾌히 승락했다.
같은 절기를 평생동안 수련해 온 사람과 이제 막 배운 사람의 대결이다.
누구도 공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싸우는 당사자인 상관가주는 루검비가 이런 제안을 해오자 미친놈이 아닌가 싶어 자신의 귀까지 의심했다.
떠밀어서 시켜도 뒤로 뺄 판에 자기 스스로 천수검법을 쓰겠다니.
쓰지 말라고 하면 그게 잘못된 놈이다.
“환희밀공의 구결은 끝내 함구할 텐가?”
상관가주의 눈길이 두 여인에게 향했다.
루검비 다음에 처리할 생각이다. 루검비가 환희밀공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두 여인은 말할 게다. 음양합밀공의 쾌락을 맛보게 되면 묻지 않아도 술술 불게 될 것이다.
역시 이런 건 사내보다 여인에게서 캐내는 게 쉽다.
루검비가 어찌 상관가주의 속내를 읽지 못하랴.
그는 역겨움에 구토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은 용서가 안 되니…… 진정한 성신을 얻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다지고 또 다져잡아도 한 순간에 흩어지는 게 사람 마음인걸 어쩌랴.’
그는 싸움을 빨리 끝내기로 했다.
“가주.”
“뭐냐?”
“검을 씁시다.”
“뭐? 하하! 흐흐흐! 빨리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쒜에엑!
상관가주가 비호처럼 달려들었다.
천수검법의 정화, 만변천하(萬變天下)가 곧바로 펼쳐졌다.
검 한 자루가 승천하는 용처럼 하늘로 솟구친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검만 보인다. 밝은 서광을 내뿜는 성스러운 검이 하늘 높이 솟구친다.
퍼엉!
맑은 폭음과 함께 밝은 빛이 사방이 비친다.
검은 불꽃이 되어 하늘하늘 떨어진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서 온몸으로 불꽃을 맞이하고 싶다. 불꽃 속에 온 몸을 던지고 싶다.
그때, 한 자루의 검이 유성처럼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