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2. (3/21)

02.

“쉿.”

꺄르륵, 꺄르륵,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청소를 하랬지 누가 수다를 떨라고 했더냐.”

오늘은 홍매루의 1년에 한 번 있는 대청소 날. 오늘만큼은 유곽의 누구도 예외 없이 마른걸레 하나씩을 들고 나무 바닥을 닦아야 했다. 물론 손보다는 입이 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쪽은 됐으니까 저 뒤쪽으로 돌아서 계속 닦도록 해.”

흘끔, 아직 불이 들어오지 않은 방을 본 집사영감이 새라도 쫓듯 손을 휘휘 젓자 몇몇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투덜거린다. 여설이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분이시라고, 깰까 봐 청소도 못 하게 한대?”

그녀의 시선 역시 불이 들어오지 않은 방을 향해 있었다.

“왜 그래요, 언니.”

함께 있던 초하가 여설을 말리고 나섰다. 하지만 오히려 그녀의 불같은 성격에 기름을 붓는 결과만 초래했다.

“아니, 그렇잖아. 지가 잘나가면 뭐 얼마나 잘나간다고. 너도 나와서 이렇게 걸레질을 하는데 저는 뭐라고 이 시간까지 저렇게 처자빠져 자고 있냔 말이야.”

“목소리 좀 줄여요. 다 들리겠어요.”

“왜 줄여? 들으라고 하는 소린데?!”

일부러 들으라는 듯 더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애초에 장지문은 소리를 막는 데 그리 효율적인 방어막은 아니었다.

“내 말이 틀려? 우리가 이 시간까지 자고 있었어봐. 한조 어른이 가만히 뒀겠냔 말이야.”

-!

결국 방 안 두꺼운 솜이불이 꿈틀거렸다. 꾸물꾸물 살아 있는 거대한 덩어리처럼 움직이던 이불이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더니 이불 속에서 불쑥, 손이 튀어나왔다.

더듬더듬. 바닥을 더듬는 손에 누군가 자리끼를 쥐여 준다. 혹 손가락이 닿을세라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스으윽.

바닥에 납작 붙어 있던 이불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두꺼운 솜이불을 둘러쓴 채 얼굴만 내놓은 화수가 물그릇을 입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화수가 물로 목을 채우는 중에도 밖에서는 분노에 찬 목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도대체가 저 녀석이라면 무조건 싸고도는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그것도 굳이 저런 천한 천족을.”

탁. 자리끼를 내려놓은 화수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문 쪽으로 향했다. 자는 동안 흐트러진 무명 침의가 바닥에 질질 끌렸다.

“여기 처소도 그래. 왜 가게에서 가장 크고 좋은 방을 저 녀석 혼자 차지하냐구요.”

“쉬- 쉬.”

집사 영감이 소리를 낮추라는 신호를 주었지만 소용은 없었다. 사실 겨우 그런 소리에 그만둘 거였다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 때였다.

드르륵.

예고도 없이 불쑥 열린 문에 여설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 하고 움츠렸다. 화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뭐, 뭐!”

따질 테면 따져봐라.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 그런 각오로 턱을 치켜 올린 여설이었지만 정작 화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가볍게 한마디 했을 뿐이다.

“비켜.”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던 여설이 곧바로 무시당한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어여쁜 얼굴이 사나운 살쾡이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너-!”

저를 무시한 채 앞을 스쳐 지나가는 화수에 여설이 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화수에게 닿지 못했다. 어느새 끼어든 류가 그 앞을 막아섰던 것.

“넌 빠져!”

여설이 빽 소리쳤다. 하지만 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랑은 상관없으니까, 넌 비키라고!”

힘으로 류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네가 그런다고 저 새끼가 너 거들떠나 볼 줄 알아? 너 혼자 그렇게 충성해봐야 저 새끼는 너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고, 멍청아.”

탁!

짜증이 난 여설이 머리에 꽂아두었던 작은 뒤꽂이를 뽑아 내던졌다. 화수를 향해 던진 것이지만 그마저도 막아선 류 때문에, 류의 얼굴에만 작은 생채기를 내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발을 내딛던 화수의 걸음이 멈춘 것은 그 때였다.

“괘, 괜찮아?”

하지만 정작 당황해서 류의 상태를 살핀 사람은 여설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쾡이처럼 사납던 얼굴이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게 쓸데없이 왜 나서서.”

오히려 핀잔을 준 쪽은 화수였다. 성가시다는 듯 살풋 미간을 찌푸린 화수에 울 것 같던 여설의 표정이 다시 사나워졌다.

“저런 인간을 대체 넌 뭐가 좋다고-”

그 때였다. 기가 막혀하는 여설의 등 뒤로 불쑥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뭣들 하고 있는 거지?”

장승처럼 우뚝 선 채 노려보고 있는 이는 분명 한조였다. 소란에 모여들었던 이들이 사사삭, 벌레 떼처럼 물러났다.

“청소하라고 했지, 모여서 쌈박질이나 하라고 피 같은 시간을 빼놓은 건 줄 알아?”

“…….”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그사이 뱀처럼 차가운 눈동자로 류의 얼굴에 난 상처와 바닥에 떨어진 뒤꽂이, 그리고 그 뒤편으로 서 있는 화수까지 찬찬히 훑은 그는 그것으로 대략의 상황을 파악했다.

“잘했다.”

류를 향한 가벼운 칭찬을 끝으로 곧바로 차가운 눈동자로 여설과 초하를 향해 명령했다.

“청소는 됐으니, 너희는 그만 처소로 돌아가.”

어차피 크게 청소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니 그냥 처소로 돌려보내기로 한 것. 하지만 여설은 쉽게 납득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조 어른!”

사실 제가 잘못한 바가 있어 가만히 있었지만 이대로 그냥 넘어가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또 화수만 감싸고도십니까?”

“그게 무슨. 대체 누가 누굴 감싸고돈다는 게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린 처음 들어본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는 한조였지만 그마저도 여설의 눈에는 편애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화수만 대청소에서 빼주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다구요.”

“…….”

“청소뿐인가요? 저렇게 재수 없이 굴어도 늘 화수만 편애하시잖아요. 처소도, 류까지도!”

부들부들 떨면서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토로하던 여설이 결국 흑,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초하가 그런 여설의 어깨를 토닥였다. 서러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데려가.”

작게 한숨을 내쉰 한조가 고개를 까딱였다. 사실 할 말은 많았지만 굳이 자신이 하지 않아도 여설은 충분히 괴로워 보였다.

초하와 다른 여인들이 여설을 부축해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화수의 앞을 스쳐 지나갈 때였다. 그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화수가 툭, 하고 입을 열었다.

“편애든 뭐든 저 방은 절대 양보 못 해. 가져가려면 류를 가져가든지.”

돌아보는 여설을 향해 화수가 덧붙였다.

“가져갈 수 있다면 말이지만.”

“사람 놀리는 거야?!”

섧게 눈물을 뚝뚝 흘리던 여설이 빽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사실 화수의 시선은 그녀에게 있지 않았다.

“류가 나 좋으라고 붙여놓은 호위 같아?”

“……무슨.”

화수의 시선이 닿은 곳은 한조였다. 화수와 한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는 여설의 눈에서 어느새 눈물이 멈춰 있었다. 여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그녀들의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사실 유곽의 여인 대부분은 류가 화수에게만 주어진 특혜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이런 시기와 질투를 받으면서도 화수는 단 한 번도 아니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누구도 의심의 여지없이 그런 것이라고 오해했었고.

“류는 감시자야. 노예가 감히 도망치지 못하도록 붙여놓은 감시자.”

“…….”

여설의 시선이 이번엔 류를 향했다. 이게 정말이냐고, 믿을 수 없다는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지만 류의 고개는 아래를 향해 있었다. 다시 저를 향하는 여설의 시선에 화수가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그러니 허락은 내가 아니라 저 영감한테 받아.”

쥐 죽은 듯 조용해진 복도를 화수가 가로질렀다. 늘 화수의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류도 이번엔 그의 뒤를 따르지 못했다.

* * *

그날은 유난히 날이 좋았다.

지난밤 질 나쁜 손님을 받느라 지쳐 쓰러져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화수가 말도 없이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린 때는 짧은 해가 지고 그 자리를 어스름한 어둠이 대체해갈 즈음이었다. 사실 다른 아이들이라면 몰라도 화수가 도망을 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들 잠시 어디 외출이라도 나갔으려니 가볍게 생각했다. 그전에도 종종 혼자 외출하는 일은 있었으므로.

하지만 어둠이 완연히 짙어지고, 부슬부슬 내리던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을 때 모두는 화수가 도망쳤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겁이라고는 없는 화수가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것이 천둥이었기에, 단순히 외출했을 뿐이라면 이리 비가 오는데도 돌아오고 있지 않을 리 없으니까. 주인어른은 조용히 사람을 풀었다. 산 채로 잡아오면 좋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죽여도 괜찮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그리고 자정이 다 되었을 때쯤, 화수가 제 발로 돌아왔다. 내리는 비를 피하지도 않고 다 맞았던지 온몸은 흠뻑 젖고, 눈처럼 새하얀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서.

그렇게 돌아온 화수는 대문을 통과하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꼬박 일주일을 앓았다. 보기엔 비리비리해 보여도 그 흔한 고뿔 한 번 걸린 적 없는 아이가. 반쪽이 되어서 깨어난 화수에게 주인어른도 더 이상은 잘못을 추궁하지 않았다. 그저, 류를 붙였을 뿐이다.

하지만 류를 붙인 것이 무색하게도 그 뒤로는 화수가 그런 시도를 하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갈 곳이 없었겠지.

대부분 이곳에 팔려온 아이들이 그러하듯. 그저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게 벌써 7년이 지났나. 이제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유곽의 여인들은 금방금방 물갈이가 되니까. 인기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그리 오래 한곳에 머무는 것도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이리 인기가 많은 녀석이. 머리를 올려도 수백 번은 더 올렸을 터였다. 지금도 그러겠다는 사내들이 줄을 서서 대기 중이었다.

그저 본인이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게 문제였다. 어차피 팔려가는 건 똑같다고, 그럴 바에는 지금이 누구와도 잘 수 있으니 더 자유롭다고 말하는 화수였다.

“왜.”

빤히 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술잔을 기울이던 화수가 손을 멈추고 물었다. 집사 영감이 곧바로 고개를 내젓는다.

“적당히 마시는 게 좋을 거야. 주인어른 아시면 경을 치실 테니.”

아직 손님도 받지 않았는데 술판이라니. 한조가 알면 술을 가져다준 자신까지도 무사하지는 못할 터였다. 그걸 다 알면서도 집사영감은 화수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마실 술인데, 미리 좀 마시면 어때서 그러는지.”

쪼르륵. 이미 술병을 기울이는 화수에게는 별 소용없는 잔소리에 불과했다. 그럴 것을 예상 못 했던 것도 아니라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집사영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갖다주지는 마.”

화수에게는 말해봐야 소용없으니 류에게 일러두기로 했다.

“너무하시네.”

화수가 투덜거렸지만 집사영감은 그대로 나가버렸다. 더 있다가는 화수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또 한 번 술 심부름을 하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툭. 화수가 장지문에 몸을 기댔다. 화수는 지금 정원 쪽으로 난 장지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 사이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 평소보다 늦게 가게 문을 여는 덕에 실로 오랜만에 누리는 호사였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밤. 봄이라지만 아직은 날이 쌀쌀했다. 말없이 대기하고 있던 류가 두꺼운 호복胡服을 가져와 화수의 어깨를 덮었다.

“류.”

그를 부르는 중에도 화수의 시선은 앞을 향해 있었다.

“가서 이거 한 병만 더 가져와봐.”

화수가 그새 비어버린 작은 술병을 흔들며 말했다.

“꽃놀이에 술이 빠질 순 없잖아.”

“…….”

그 말에 류의 고개도 화수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꺾였다. ㄷ자 형태로 된 정원 한가운데 심어진 오래된 홍매화는 올해도 어김없이 꽃을 피워냈다. 세월의 흐름만큼 굽이굽이 굽은 가지마다 사람 주먹만 한 붉은 꽃송이가 잔뜩 매달려 있는 모습은 류가 봐도 절경이었다.

화수가 굳이 넓기만 할 뿐 해도 잘 들지 않고, 유곽에서 가장 낡은 별채인 이곳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였다.

“왜. 내가 이 방과 너를 바꾸겠다고 한 것 때문에 서운해서 그래?”

“…….”

묵묵부답인 류를 도발해보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장승처럼 서서 표정에 미동도 없는 류에 작게 한숨을 내쉰 화수가 몸을 일으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어깨를 가만히 누르는 류의 손이 아니었다면.

“이거 먹으면, 갖다준다고?”

그러고는 조용히 상에 놓인 화전 그릇을 앞으로 미는 류에 화수가 확인하듯 되물었다. 그러자 류가 다시 한 번 그릇을 화수 쪽으로 더 밀었다. 화수는 색색의 화전들 중에서 진달래꽃이 장식된 화전을 집어 들었다.

됐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화전을 반쯤 베어 문 화수가 술병을 다시 흔들었다. 그제야 류가 그것을 받아 들고 방 밖으로 사라졌다.

우물우물, 화수가 입안에 가득 든 화전을 씹는 동안에도 붉은 꽃잎이 하나씩 둘씩, 바람에 나부끼는 눈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툭. 화수가 다시 한 번 장지문에 머리를 기댔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조용히 눈이 쏟아지는 소리처럼, 꽃이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웠다.

봄이었다.

* * *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제 거의 다 됐습니다요.”

낑낑대며 바퀴를 만지고 있던 인력거꾼이 얌전히 계단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화수를 향해 소리쳤다. 거의 다 되었다는 저 말만 벌써 몇 번째 반복되고 있었지만 화수는 대꾸 없이 대충 손을 휘휘 내저었다. 어차피 급할 일도 없었다.

그 때였다.

저벅저벅.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린 것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던 화수가 휙, 하고 고개를 바로 했다. 하필이면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저벅저벅저벅.

주인만큼이나 거침없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화수가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하지만 그런 화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대는 그대로 화수를 스쳤다. 마치 화수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대기하고 있던 검은 자동차가 계단을 다 내려온 리 샤오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미리 차에 타고 있던 카이가 내려서 뒷좌석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안으로 리 샤오가 올랐다. 탁, 하고 차 문을 닫은 카이가 조금 전 내렸던 운전석 옆 좌석으로 올라탔다.

벌컥.

그리고 막 차가 출발하려던 찰나였다. 겁도 없이 불쑥, 뒷좌석 문을 열어젖힌 누군가가 아니었다면.

“좀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어차피 자리도 비어 있는 것 같은데.”

화수였다.

마치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차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운전사도, 카이도, 숨을 죽인 채 뒷좌석에 앉은 리 샤오의 눈치만 살필 뿐이다. 의외로 리 샤오는 미간을 찌푸린 채 화수를 보고 있을 뿐,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작 그런 리 샤오를 마주하고 있는 화수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빨리 가게로 돌아가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발이 묶여버려서요.”

무슨.

고개를 까딱이는 화수에 그제야 카이의 시선도 창문 너머를 향했다. 그제야 바퀴가 빠져 쓰러져 있는 인력거가 보였다. 하지만 밖을 살피는 카이와 달리 리 샤오는 미동이 없었다.

아무래도 차를 바꿔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가죽 시트에 피가 묻으면 잘 지워지지도 않는데. 공들여 공수한 차 시트를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카이의 얼굴 위로 짜증이 번졌다.

“안 됩니까?”

하지만 정작 지금 모든 사태의 원흉인 화수는 그런 사태의 심각성 같은 것은 전혀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표정만 봐선 그저 지나가던 사람에게 길이라도 묻는 모양새였다.

하긴, 그러니 그 험한 꼴을 당하고도 이리 겁 없이 굴 수 있는 거겠지. 카이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면서 리 샤오의 표정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다시 침묵을 깬 것은 화수였다.

“죄송합니다.”

차라리 화라도 내면 미친 척하고 뭉개보겠지만,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는 데에는 천하의 화수도 방법이 없었다.

뒤늦게 내가 무슨 짓을 했나, 후회가 몰려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왜 그랬지, 싶지만 애초에 무슨 깊은 생각을 하고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앞뒤 재지도 않고 들이대는 건 평소의 화수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것도 저라면 얼굴만 봐도 이런 경멸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사람에게.

싫으면 관두라고, 나도 나 싫다는 사람에게 볼일 같은 건 없다고 평소에는 그렇게 돌아서버리는 화수가, 이상하게 이 사람에게는 그게 되질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뒤늦게 이성이 돌아온 화수가 막 문을 놓고 물러서려고 할 때였다.

“타.”

불쑥, 차 안에서 들려온 나직한 목소리. 처음엔 제가 환청이라도 들은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차 안에 앉은 리 샤오는 조금 전과 다르지 않은 차가운 얼굴로 앞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워달라며.”

하지만 잠시 멍청한 얼굴로 눈만 깜빡이고 있으려니 이번엔 좀 더 분명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엔 분명 제대로 들었다. 화수의 눈이 조금 커졌다.

“타시죠.”

“아, 네.”

사실 제가 태워달라고 억지를 부리긴 했지만 정말로 탄다는 전개는 전혀 예상에 없었던 터라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으려니 그사이 차에서 내린 카이가 아예 화수를 차 안으로 집어넣었다.

탁. 하고 닫히는 문소리가 마치 철창소리 같아 반사적으로 화수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사이 차는 천천히 속도를 높이며 출발했다. 이젠 뛰어내리는 것도 요원해 보였다.

“어느 쪽이지?”

갈림길에서 리 샤오가 묻는다. 그래도 다행히 이상한 곳으로 데려갈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어느 쪽.”

잠깐 머뭇거렸을 뿐인데 리 샤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사실 리 샤오는 두 번 말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화수가 황급히 대답했다.

“오른쪽, 이요.”

차가 부드럽게 방향을 틀었다. 그 바람에 화수의 몸이 살짝 옆으로 기울었다. 황급히 몸을 바로 했지만 어깨가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온몸이 긴장했다. 어깨가 닿았던 부분이 뜨끈했다. 온 신경이 어깨에만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번 자각하니 신경이 쓰여 미칠 듯했다. 몸을 비빈 게 처음도 아니고,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짓까지 했으면서, 겨우 어깨 조금 닿은 이게 뭐라고, 입안이 바싹 말랐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제 심장소리가 옆자리까지 들리면 어쩌나, 그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오늘은 누구였지?”

불쑥, 미칠 것 같던 침묵을 깬 리 샤오의 질문에 안도하기도 잠시.

“뭐가, 말입니까.”

“추가금까지 내고 불러들인 손님 말이야.”

“…….”

한 박자 늦게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린 화수가 얼굴을 찌푸린다. 확실히, 성격이 나빴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어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화수에 리 샤오가 고개를 틀었다.

“내가 지금 질문하는 것 같아?”

“……아니요.”

그가 하고 있는 건 명령이었다.

“그럼 대답은?”

사실 화수도 굳이 대답을 피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일을 부끄러워하는 화수도 아니었고. 그저 조금 전 저 혼자 긴장하고 두근거리고 있었던 것이 우습고, 기가 막혀서 잠시 머뭇거렸을 뿐. 게다가 정작 물어놓고 대답을 들으면 기분 나빠할 상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총감님이요.”

하지만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눈꼬리를 접은 화수가 질문에 대한 답을 돌려주었다.

“기운도 좋으시군.”

“…….”

제 아버지뻘인 정무총감을 떠올리고 리 샤오가 얼굴을 찌푸린다.

“그래 봬도 웬만한 젊은이보다 나으신걸요. 매번 제가 진이 빠져서 항복을 외쳐야 겨우 놔주시는-”

“거기까지 나불대라고는 안 했어.”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질문이 아니라 명령인 줄 알아서.”

“까불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건 질문이십니까, 명령이십니까.”

“…….”

결국 리 샤오의 한쪽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하지만 화수는 태연했다.

오히려 보고 있는 사람이 더 아슬아슬한 기분이었다. 험악해지는 리 샤오의 눈동자를 확인한 카이가 급히 끼어들어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여기서는, 어디로 가면 됩니까.”

“아, 여기서 그만 세워주세요. 여기서부터는 걸어가면 됩니다.”

물론 아직 목적지까지는 한참 남았지만 이쯤에서 내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또 목이 졸리는 건 사양이었다.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화수의 대답에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걸어가기엔 제법 먼 거리인데요.”

“위치, 모르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사이, 화수는 뭐 상관없다는 듯 차 문고리를 잡았다. 그 때였다.

“그냥 있어.”

“…….”

“급하다고 한 말이 거짓말이었던 게 아니라면.”

“…….”

이젠 내리겠다고 하면 거짓말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화수의 손이 천천히 붙잡고 있던 문고리를 놓았다. 화수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카이.”

“네.”

“출발해.”

멈췄던 차가 리 샤오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사했습니다.”

홍매루 앞에 차가 멈춰 섰다. 평소 화수였다면 들렀다 가지 않겠냐고 권하기라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리 화수라도 더 이상은 무리였다. 멍청한 짓은 한 번이면 족했다.

탁.

카이가 문을 열어주려고 차에서 내렸지만 이미 화수는 제 손으로 차 문을 열고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막 발을 내딛으려는 찰나, 내뻗은 팔이 화수의 팔을 붙들었다.

“너 말이야.”

일순 화수의 동공이 조금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리 샤오의 얼굴이 바로 화수의 얼굴 앞으로 바싹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코끝에 달큰한 향이 확 끼쳐 들어왔다. 그럴 리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물론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착각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마주한 눈동자는 새파랗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 일렁이는 눈동자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경멸과 분노였다.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화수가 몸을 뒤로 물렸지만 팔을 움켜쥔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수를 더 가까이 끌어당겨 바싹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댄 리 샤오가 나직이 속삭였다.

“네 녀석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다른 새끼 냄새를 잔뜩 풍기면서 내 앞에서 얼쩡거리지는 마. 역겨우니까.”

“그게 무슨-”

화수가 되물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화수의 되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붙잡혔던 팔이 그대로 밀쳐졌다. 몸이 차 밖으로 기울었다. 다행히 밖에 서 있던 카이가 붙잡아준 덕에 바닥을 나뒹구는 건 면했다.

“괜찮으십니까?”

이런 일쯤은 흔하다는 듯 묻는 카이의 얼굴은 평온했다. 오히려 카이에게는 조금 전까지의 상황이 예상 밖의 일이었다.

“네? ……네에.”

“조심하셔야죠.”

균형을 잡고 제 발로 선 화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의미심장한 충고를 한마디 한 카이도 그대로 차에 올랐다. 뒤늦게 화수의 고개가 뒷좌석을 향했지만 유리창 너머로는 리 샤오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무심한 차는 그대로 출발했다.

시야를 가리는 뿌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사그라들 때까지도 화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걸음을 떼지 못했다.

“화수야?”

마침 대문을 열어두러 밖에 나왔던 집사영감이 그런 화수를 발견할 때까지.

“집사영감.”

“왜, 왜.”

봇짐이라도 도둑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던 녀석이 이번엔 또 갑자기 험악한 기세로 다가서자, 순간 그 기세에 놀란 집사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화수가 정무총감의 체스 상대를 하러 외출하는 날이었다. 대결이 언제 끝날지 모르고, 끝이 나면 무려 정무총감의 차로 가게 앞까지 데려다주는 덕에 류 없이 화수 혼자 외출하는 유일한 날이기도 했다.

매번 밤늦게나 귀가하던 화수가 웬일로 해도 지기 전, 이리도 일찍 돌아왔나 의아하긴 했다. 설마 정무총감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한 건 아니겠지. 물론 머리 좋은 녀석이라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화수의 잔뜩 화가 난 얼굴을 보니 불쑥 그런 걱정이 머리를 디밀었던 것.

하지만 그런 집사의 염려와는 달리 화수가 불쑥 물어온 것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였다.

“내 몸에서 냄새나?”

“무슨.”

“무슨 냄새 안 나냐고.”

답답하다는 듯 아예 제 몸을 들이미는 화수에 집사영감이 킁킁, 냄새를 맡았다. 한참을 킁킁거리던 집사영감이 결론을 냈다.

“좋은, 향기밖에 안 나는데?”

“그렇지?!”

“왜. 정무총감께서 무슨 안 좋은 냄새라도 난다고 한 게야?!”

집사영감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물론 화수의 귀에는 이미 다른 사람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했지만.

“싫으면 싫다고 할 것이지.”

“…….”

“이젠 별 시비를 다 거네.”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어쩐지 풀이 죽어 있었다.

누군가 저를 싫어한다고 해서 화수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이라 집사영감도 조금 당황했다.

“왜, 정무총감께서 네가 싫다신 게야?”

“…….”

집사영감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별일이네, 싶다가도 정무총감 정도면 풀이 죽을 만도 하지 싶어 집사영감이 화수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게 고분고분하게 굴라고 내 그리 일렀잖느냐. 너처럼 그렇게 멋대로 굴다간 큰코다친다고 몇 번을- 아이쿠!”

위로를 빙자한 잔소리를 늘어놓는 집사영감의 품으로 묵직한 뭔가가 날아들었다. 뒤늦게 그 비단 주머니의 입구를 열자 어린아이 주먹만 한 은자 두 덩이가 얌전히 들어앉아 있었다.

“큰코다치긴 대체 누구 코가 다친다는 거야.”

“암, 그렇지. 고분고분한 화수는 매력이 없지.”

“…….”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 집사영감에 화수가 얼굴을 찌푸리며 가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은자가 든 주머니를 소중히 소맷자락에 챙겨 넣은 집사영감이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정무총감이 아니면, 그럼 대체 누가 싫어한다고 한 것이지? 뒤늦게 문득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영감!”

누군가 자신을 찾는 외침 한 번에 이미 그런 의문은 집사 영감의 뇌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 * *

“썅, 어딜 도망가.”

꺄악-

험악한 목소리와 동시에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좁은 복도를 울렸다. 드르륵드르륵, 옆방과 맞은편 방 문이 열리고 그 문틈으로 다들 삐죽삐죽 머리만 살짝 밖으로 내밀어 상황을 살핀다.

“싫어!”

복도 한가운데 바닥에 주저앉은 여설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벌게진 볼은 잔뜩 부어 있었고 잘 빗어 올린 머리는 산발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섣불리 나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여설을 쫓아 나와 머리채를 움켜쥔 사내가 이미 가게 안에서는 유명인사였기 때문이다.

홍위.

돈 많은 부자 아비를 등에 업고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거들먹거리며 온갖 잘난 척을 하고 다니는 것에 비해, 가진 재능은 비루하여, 괜스레 약한 이들을 괴롭히고 화풀이하는 데 인생을 허비하는 사내였다. 그나마 씀씀이가 헤프고 그래도 비위를 잘 맞추면 이 정도로 개차반으로 구는 일은 없기 때문에 다들 조심해서 상대하곤 했는데, 아무래도 한 성격 하는 여설이 참지 못하고 비위를 거스른 모양이었다.

“사, 살려줘!”

여설이 손을 내뻗었지만 다들 두려움에 차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저 방으로 다시 끌려 들어간 여설이 이번엔 무슨 꼴을 당할지 안 봐도 알 일이었지만 제 목숨들이 더 중요했다.

야차 같은 얼굴을 한 홍위가 바둥거리는 여설의 머리채를 잡고 조금 전 뛰쳐나온 방 안으로 질질 끌고 들어가는 모습은 말 그대로 지옥도地獄道의 한 장면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한조 어른!”

다행히 막 문을 통과하기 직전, 유곽의 주인인 한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살았다는 듯 여설이 그의 이름을 애달프게 불렀지만 한조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은 오직 손님인 홍위에게였다.

“저희 집 아이가 무슨 결례라도.”

“아, 별일 아니야. 손님 받는 교육이 덜 되어 있길래 내가 친히 버릇을 가르치고 있던 참이었어.”

홍위가 붙잡고 있던 새까만 머리채를 거칠게 흔들었다. 여설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지만 한조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그러셨습니까.”

“왜. 기분 나빠?”

오히려 차분한 한조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조금 전보다 홍위의 표정이 더 싸늘해졌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대로 교육되지 않은 아이를 내놓은 것은 전적으로 제 불찰인 것을요.”

“그럼 하던 거 계속해도 되겠지?”

“이건 제 불찰이니 이후 훈육은 제가 직접 맡도록 하겠습니다.”

정중한 말투였지만 결국 그만두라는 말이었다.

“깨진 내 흥은 누가 보상해주고?”

하지만 다행히 사내의 기분은 크게 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의외로 순순한 반응에 한조가 재빨리 대답했다.

“당연히 홍위 님께는 제대로 교육된 아이로 다시 넣어드리겠습니다.”

“누구?”

홍위가 휘, 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 시선을 피해 문밖으로 고개만 내밀고 있던 여인들이 황급히 방 안으로 몸을 숨긴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설이 당한 꼴을 보고도 저길 들어가겠다고 나서는 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제정신 박힌 인간이라면.

사내가 순순한 이유가 있었다.

“거봐. 없잖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 홍위가 다시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설의 머리채는 여전히 움켜쥔 채. 더 이상 한조도 자신을 구해주지 않으리란 걸 직감한 여설이 눈을 감았다. 고여 있던 눈물이 퉁퉁 부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때였다.

“저는 어떠십니까.”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사내였다. 사내가 걸음을 멈췄고, 머리채를 잡아당기던 힘이 누그러진 것을 느낀 여설이 뒤늦게 감았던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였지만 누군지 한눈에 알아봤다.

오히려 상대를 확인한 여설의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화수가 거기 서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어딜 다녀오는 길인지 화수는 평소 가게에서 입는 옷이 아닌 평범한 양복 차림이었다.

“네가 그 소문의 남창이로구나?”

“소문이 어찌 났던가요.”

묻는 말투는 평범했지만 홍위의 안광은 반쯤 미친 사람의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오히려 더 소름이 끼쳤다. 그걸 정면으로 보고 있으니 모를 리 없을 텐데, 되묻는 화수의 얼굴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내새끼 주제에 아랫구멍으로 사내 받아먹는 재주가 기가 막히다고.”

“그럼 아마도 제가 맞을 것 같군요.”

저를 욕보이려고 하는 말에도 화수는 전혀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눈꼬리를 접어 웃으면서 순순히 인정하는 화수에 말을 꺼낸 홍위의 얼굴이 더 험악해졌다.

“혹시 그 구멍이 거칠게 박아주면 더 환장해서 아주 질질 싼다는, 그런 소문은 없던가요.”

“…….”

“실제로, 그렇거든요.”

꿀꺽. 나른하게 웃는 화수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던 홍위가 곧바로 얼굴을 확 찌푸린다.

“난 사내새끼 구멍엔 관심 없어.”

“물론 알고 있습니다.”

“알면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짜증난다는 듯 홍위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하지만 화수는 태연했다.

“하지만 거친 건 좋아하시잖아요.”

“…….”

흉흉한 안광이 더 험악해졌다. 사실 살살 비위를 맞춰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더 화를 돋우고 있으니 보는 이들은 꼭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화수는 그런 살얼음판을 늘상 걸어왔다. 이제는 하얗게 언 빙질만 보아도 그곳이 얕은 곳인지 아닌지를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게다가 겨우 그 정도로 화가 풀리시겠습니까?”

“…….”

화수의 시선이 닿은 곳은 머리채를 붙잡힌 여설이었다.

“조금만 험하게 다루어도 금방 망가져버리는 여인네보다야 사내가 낫지 않겠습니까. 나쁜 기분을 떨쳐버리기에는요.”

“꼴에 너도 사내라 이건가?”

“그것도 확인해보시면 될 일이지요.”

그리 말한 화수가 걸음을 내디뎠다. 한 번 망설이지도 않고 걸음을 내딛는 화수에 오히려 이번엔 사내가 당황했다. 바싹 다가선 화수에 움켜쥐고 있던 여설의 머리채를 놓았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화수가 그대로 사내를 밀어붙였다.

“너 이 새끼.”

그대로 몇 걸음 뒷걸음질 치던 사내의 정신이 돌아온 건 이미 방 안으로 들어온 뒤였다. 험악해진 사내가 손을 내뻗었다. 악귀처럼 다가오는 사내의 손을 보면서도 화수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눈을 감았을 뿐이다.

쾅.

짧은 머리채를 움켜쥔 사내가 그대로 화수를 바닥에 내리눌렀다. 얼굴이 맨바닥에 짓이겨졌다.

“화수야!”

커다란 소리에 놀란 한조가 방 문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곧바로 반쯤 고개를 든 화수와 눈이 마주쳤다. 오지 마. 화수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오지 마.

“계속 그러고 구경하고 있을 건가, 주인장?”

멍하니 서 있는 한조에게 홍위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콱. 화수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바닥에 짓이겨졌다.

“아닙니다.”

드르륵. 한조가 천천히 몸을 뒤로 물리면서 문을 닫았다. 원망 섞인 탄성이 들려왔지만 한조가 고개를 돌리자 곧바로 다들 꿀 먹은 벙어리들처럼 입을 꼭 다물었다.

“데려가.”

한조의 나직한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인들이 달려와 여설을 부축했다.

“괜찮을까요.”

눈치를 보고 있던 집사영감이 닫힌 장지문을 걱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한조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괜찮겠지.”

제 입으로 괜찮다고 했으니.

사실 괜찮지 않다고 해도 데리고 나와줄 수 없었다. 애초에 유곽이란 그런 곳이었다. 돈만 내면 뭐든 해도 되는 곳. 그러니 그만큼의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는 것이었다. 오늘 여설은 운이 좋았다. 물론 그 불운을 고스란히 받아간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지켜보고 있다 비명소리라도 들리면 그땐 들어가도 좋아.”

한조의 허락이 의외였던지 류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하지만 한조에게도 화수는 소중한 가게의 자산이었다. 망가져서 못 쓰게 되면 곤란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으나 이미 류의 고개는 장지문을 향해 움직인 뒤였다. 언제고 비명소리만 들리면 문을 박차고 들어갈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비명은커녕 작은 신음소리조차 새어 나오지 않는 장지문을 류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입 다물고 소리 내지 마.”

뒷덜미를 움켜쥔 손이 경고하듯 힘을 주어 눌렀다. 힘을 뺀 채 반항하지도 않는 몸을 바닥에 콱 누른 사내가 그 위로 올라탔다.

“사내새끼가 내는 신음소리 같은 거 듣고 싶지 않으니까.”

사내새끼가 내는 신음소리 같은 건 듣고 싶지 않다면서 엉덩이골 사이를 문지르는 사타구니는 바짝 서 있었다. 바지 너머로도 그 뜨끈한 열기가 생생했다.

사내의 숨이 거칠었다. 이미 몸이 달아 있었다.

배 아래로 들어온 손이 바지 버클을 풀고 속옷까지 한 번에 끌어 내렸다. 유일하게 살집이 있는 엉덩이가 드러나자 사내의 숨이 더 거칠어졌다. 거칠게 엉덩이를 치켜세운다.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바싹 댔지만 다 벗겨지지 않은 바지 때문에 자세가 나오질 않았다. 씩씩거리는 사내에게 그때까지 사내가 하라는 대로 움직이고만 있던 화수가 입을 열었다.

“아래를 다 벗어야-”

“닥치라고 했지!”

짝!

커다란 손이 허공을 갈랐다. 단숨에 볼이 부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귀가 멍해 눈만 깜빡이고 있으려니 휙, 하고 몸이 뒤집혔다. 선명해진 시야에 천정이, 그리고 사내의 얼굴이 들어왔다.

“내가 분명 조용히 있으라고 했잖아.”

화수의 무릎을 가슴께까지 밀어 올린 사내가 엉덩이를 더듬는다. 손가락이 단숨에 구멍을 찾아 안으로 파고들었다. 푹, 푹, 아무것으로도 적시지 않아 메마른 구멍에 굵은 손가락이 거칠게 드나든다. 입구가 금세 붉어졌다. 그마저도 몇 번 드나든 것이 다였다.

“넌 입 닥치고 다리나 벌려.”

마음이 급해진 사내가 곧바로 제 물건을 꺼내 들었다. 잔뜩 성이 난 것이 하늘을 향해 바짝 서 있었다. 뿌리 끝을 잡고 몇 번 골 사이를 문지르던 사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대로 힘을 주어 구멍에 콱, 밀어 넣었다.

버티던 주름이 밀어 넣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벌어졌다. 푹, 하고 박혀 들어오는 감각에 화수가 진저리를 쳤다. 내벽이 부들거렸다. 파드득, 접힌 다리가 튀어 올랐다. 반사적인 반응이었지만 사내는 그 움직임이 도망치려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던지 아예 무릎을 놓고 발목을 움켜쥐었다. 각도가 바뀌자 다시 한 번 내벽이 조여들었다.

“씹, 뭐가 이렇게 쫀득해.”

오물오물 씹어대는 내벽에 사내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싫지는 않지만 인정하기 싫다는 듯 사내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허리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거칠게 잡아 뺐다가 다시 끝까지 박아 넣는다. 발목을 붙든 채 들락이다 보니 각도가 제멋대로였다.

푹, 푹, 거칠게, 움직일 때마다 달라붙은 내벽이 성기를 따라 밖으로 딸려 나왔다. 밑이 뽑혀 나가는 느낌에 화수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신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뭐야, 이렇게 박히면서도 여길 세우는 거야?”

중얼거리는 사내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은 화수의 사타구니였다.

반쯤 일어선 화수의 것을 보고서도 사내는 기분 나쁜 기색보다는 기가 막히다는 기색이 더 짙었다. 눈을 뜬 화수가 헐떡이며 대꾸했다.

“거칠게 박아주면, 질질 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이번에는 멋대로 입을 열었다고 화를 내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그럴 틈을 화수가 주지 않았다.

“물론 제가 말한 건 앞이 아니라, 여기.”

화수가 엉덩이를 조였다. 반쯤 박힌 사내의 것이 파드득, 튀어 올랐다.

“뒤지만요.”

그리고 사내의 눈도 뒤집혔다. 너무나 예상대로라 우스울 정도였다.

허리 아래쪽이 휙 들렸다. 발가락이 화수의 어깨 너머를 딛고 있었다. 어찌할 틈도 없이 그대로 사내가 체중을 실었다.

푹, 푹, 푹, 거칠게 몸이 꿰뚫린다. 엉덩이가 들린 채라 뒤로 물러설 수도, 위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저 사내가 박고, 찌르는 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엉덩이 안쪽이 묵직해졌다.

화수가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안으로 물기가 차올랐다. 물론 아래도 젖었다. 들락이는 살덩이가 점점 물기를 머금어 반질거렸다. 젖은 입구가 근질거렸다.

거친 게 좋다는 말은 그냥 해본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상대가 거칠수록 화수의 몸은 더 빨리 젖었다. 아마 어딘가 망가져버린 게지. 아니, 애초에 망가진 채 태어난 거겠지만.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사내와 자는 걸 업으로 가진 사람에게 그보다 더 최적의 조건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을 낳은 어미에게 유일하게 감사하는 일이었다.

사내가 발목을 놓고 허리를 움켜쥐었다. 퍽, 퍽, 더 깊은 곳까지 한 번에 치고 나갔다. 안이 벌벌 떨렸다. 점점 조이고 푸는 박자를 놓쳤다. 허릿짓이 빨라졌다. 사내의 숨이 거칠었다.

화수가 눈을 감았다. 배 속이 뜨끈해졌다. 사내의 빠른 사정에 화수의 것은 그냥 그대로 수그러들었다.

“설마 임신하는 건 아니겠지?”

사정감에 나른해진 사내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내는 제 것을 빼지 않았다.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다 싶었지만 화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화수라도 맞는 건 한 번이면 족했다.

* * *

“저기.”

멍하니 문에 기대 있던 화수가 문득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틀었다. 그 얼굴을 본 여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돌아보는 화수의 얼굴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입술은 터졌고, 이마에는 멍이 시퍼렇게 들어 있었다. 물론 정작 본인은 별 감흥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러 온 거면 관둬.”

“…….”

“그런 건 취미 없으니까.”

화수의 시큰둥한 태도에 여설도 발끈해서 받아치고 말았다.

“누가 미안하다는 소리 하러 온 줄 알아?”

“…….”

그럼 뭐 하러 왔는데. 눈으로 묻는 화수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여설이 홱, 하고 뭔가를 던졌다. 그렇게 날아온 물건이 퍽, 하고 화수의 가슴팍을 치고 그대로 그의 손 위로 툭, 하고 떨어졌다.

“이게 뭔데?”

손바닥에 놓인 작은 종지를 물끄러미 보던 화수가 물었다. 물론 이미 마음이 상한 여설의 입에서 좋은 대답이 나올 리 없었다.

“바르든지 말든지!”

“…….”

그제야 화수도 그게 연고라는 걸 알아차렸다. 아아, 하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아래로 돌린 사이 여설이 그대로 획, 몸을 틀었다.

“언니!”

함께 왔던 초하가 말릴 틈도 없었다. 그녀와 화수, 그리고 다시 그녀를 번갈아 보다 화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라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온 거예요. 언니가, 많이 고마워했어요. 저도.”

“고마울 것 없어. 돈 많은 손님이라 대신 들어간 것뿐이니까.”

“…….”

딱 잘라 말한 화수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렇게 못되게 굴어요?”

당연히 돌아갔으려니 했던 초하가 아직 가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화수의 고개가 다시 뒤쪽을 향했다.

“사이좋게 지내면 좋잖아요.”

“…….”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 화수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다들 친해지고 싶어 하는데, 늘 그렇게 날 세우고 곁을 안 주니까, 더 미움받는 거잖아요.”

사실 사람들은 애초에 관심 없는 이에게는 시비도 걸지 않는다. 이야기하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데 늘 난 너희와 달라, 라는 태도로 눈길도 안 주니, 거기에 기분이 상하고 괜스레 미움을 받게 되는 거였다. 애정과 애증은 같은 의미라고 하지 않은가. 나름 안타까운 마음에 해준 충고였지만 그런 것에 신경이나 쓸 화수도 아니었다.

“상관없어.”

말없이 앉아 있던 화수가 툭, 하고 한마디 내뱉었다.

“예?”

“미움받아도 상관없다고. 애초에 잘 수도 없는데 사이좋게 지내는 거 성미에 안 맞아.”

자는 인간들과도 그리 사이좋게 지내지 않지만. 가볍게 화수가 덧붙인 말에 초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세상 달관한 태도가 상대로 하여금 자신에게 더 매력을 느끼게 한다는 걸 본인만 모르니, 더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리고 그날 일은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그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을 거예요. 류만 아니었다면.”

애초에 사과 같은 건 필요 없다니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고개를 갸웃거린다. 초하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언니가 류를 마음에 두고 있었거든요.”

화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데려가라니까? 영감한테 말해서.”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설명을 하려던 초하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왜 말을 하다 말아?”

“…….”

갸웃. 고개를 기울이면서 화수가 기분 나쁜 기색을 드러냈지만 초하는 어색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설명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게재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 속은 귀신같이 읽어내면서, 정작 이런 평범한 감정 같은 건 또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초하야!”

복도 끝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틀었던 초하가 문을 놓고 물러섰다. 하지만 그대로 발길을 돌리기 전에 한마디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그거, 멍 빼는 데 좋은 거니까, 버리지 말고 발라요.”

탁.

장지문이 닫혔다. 가만히 닫힌 문을 보고 있던 화수가 고개를 바로 했다. 그리고 손에 들린 종지를 열어 연고를 손가락에 찍었다. 그리고 이마에 문지른다.

슥슥슥.

하필 바람이 화수가 앉은 방 쪽으로 불어 들어와 쾌쾌한 연고 냄새가 진동했지만 화수는 문지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 * *

“부장.”

이렇다 할 반응이 없는 리 샤오에 카이가 흘끔 뒤를 살핀다. 혹시나 깜빡 잠이라도 들었나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도 리 샤오의 고개는 창밖을 향해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하긴 애초에 초대에 응한 것부터 무슨 생각으로 응했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제가 아는 대장은 진 사장 같은 부류를 싫어했다. 아니, 정정해야겠다. 싫어하는 수준이 아니라 경멸했다. 물론 더 경멸하는 부류가 바로 화수 같은 사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 샤오는 진 사장의 초대에 응해 여기 홍매루 앞에 와 있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리 샤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리 샤오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 카이조차 짐작할 수가 없었다.

“돌아갈까요.”

카이의 질문에 그제야 리 샤오의 고개가 이쪽을 향했다. 무슨 소리냐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리 샤오에 카이는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밖을 보고 있는 리샤오에게서 사나운 패기覇氣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저지만 운전석에 앉은 운전병이 자신이 뭐 잘못하기라도 했나, 하는 표정으로 굳어 있는 모습을 보고 한 말인데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것이었던 모양.

그 때였다.

끼익-.

때마침 들려온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앞을 향했다. 그들이 타고 있는 자동차 바로 앞에 멈춘 차 뒷좌석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풀려 있던 양복 단추를 잠그고,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걸어오는 이는 바로 진 사장이었다.

“제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야 했는데요.”

“약속 시각에 늦는 건 질색이셔서.”

마주 내린 카이가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급히 뒷문을 열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진 사장이 한발 빨랐다. 열린 문으로 군화를 신은 발이 내디뎌졌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잘난 얼굴이었다.

“어서들 오십시오.”

리 샤오가 차에서 내려서는 때를 맞춰,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한조가 대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잘 모시게, 주인장. 귀한 손님이니.”

“아무렴이요. 안 그래도 연락받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들어가시죠.”

진 사장이 앞을 양보했다. 리 샤오는 미간을 살풋 찌푸린 채로 걸음을 내디뎠다.

“……안 가십니까?”

따라 걸음을 옮기려던 진도현이 발을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카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저는 이런 자리는 불편해서. 밖에서 있겠습니다.”

“그럼.”

진도현도 더 이상은 권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리 샤오니까.

“그런데 화수가 안 보이네?”

입구로 들어서던 진도현이 이상하다는 듯 묻는다. 물론 리 샤오가 화수를 고르는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설 화수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나와 있을 줄 알았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심 기대하기도 했고. 진도현도 성격 나쁘기로 치면 누구 못지않았다.

“그것이, 화수는 몸이 좋지 않아서요.”

한조가 변명했다. 그러면서 혹 새로 온 제3 부장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싶어 황급히 리 샤오의 안색을 살핀다. 하지만 리 샤오의 표정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차갑고 무표정했다. 크게 관심이 없는 기색이라 안심한 것도 잠시.

“별일이네.”

진도현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 사실 사람이 몸이 좋지 않아 쉬는 게 특별할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보기엔 약해 보여도 은근 독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라 그 흔한 감기 한 번 앓는 걸 못 봤는데 몸이 좋지 않아 얼굴도 내밀지 않다니. 설마 미리 연락까지 했는데 다른 손님을 받고 있는 건 아닐 테고.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화수만큼이나 인기 좋은 아이로 준비해뒀으니, 그만 들어가시지요.”

“대체 얼마나 아프길래.”

어떻게든 화제를 돌리려는 한조의 노력에도 진 사장의 관심은 거둬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로 아픈 것 말고는 이유가 없어 보이는 상황이라 이젠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던 것.

“나 때문인 게지.”

그때까지 말 한마디 없던 리 샤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당황한 한조가 황급히 고개를 내젓는다.

“그럴 리가요. 아니요. 아닙니다. 리 샤오 님. 정말로, 지금 녀석이 손님 앞에 나설 몰골이 아니라-”

“이리 가면 되나?”

하지만 정작 말을 꺼낸 리 샤오는 전혀 화가 난 기색이 아니었다.

“예? 아, 예. 이리로.”

굳어 있던 한조가 냉큼 앞장을 섰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몰라도 리 샤오의 기분이 상하지 않았으면 되었다.

쪼르륵.

초하가 조용히 리 샤오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주로 대화는 진 사장이 이어갔다. 리 샤오는 적당히 대꾸하거나,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비웠다. 오고 가는 대화는 주로 본국의 정세나 리 샤오가 승리를 이끌었던 전투 등, 비교적 가벼운 주제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방 분위기는 무거웠다.

탁.

잔이 다시 비어져 내려왔다. 초하가 다시 술잔을 채우려고 술병을 들었다.

슥. 제 쪽으로 옮겨지는 시선이 느껴졌다. 별다른 의미 없는 시선이었지만 답지 않게 긴장했다.

그런 것을 알 리 없는-알았더라도 크게 상관하지도 않았겠지만- 리 샤오가 술잔을 들었다. 마저 따르라는 듯, 술병 앞에서 멈춘다.

왜일까. 그동안 수많은 손님들을 상대해본 초하이지만 지금 자신의 옆에 앉은 사내는 이상하게 어려웠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긴장한 탓일까, 술병을 기울이던 초하의 손이 살짝 경련했다.

“앗!”

그 탓에 좀처럼 하지 않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술이 왈칵, 술잔을 넘쳤다. 넘친 술은 그대로 리 샤오의 손을 적시고, 바짓단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본 진도현도 일순 놀라 반쯤 몸을 일으켰다.

“괜찮으십니까.”

“죄, 죄송해요!”

당황한 초하가 급한 마음에 제 옷자락으로 바짓단을 훔쳤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건들지 마. 경고하듯 내민 손이 아니었다면.

사실 조금 전 술이 넘쳤을 때보다 오히려 지금 리 샤오의 표정이 더 싸늘했다. 얼어붙어버릴 것 같은 그 시선에 초하가 그대로 굳었다. 그런 초하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고개를 든 리 샤오가 물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지?”

“복도 끝에 있습니다.”

진도현이 곧바로 대답했다.

“실례하지.”

몸을 일으킨 리 샤오가 장지문을 열었다. 쿵쿵쿵, 마룻바닥을 딛는 발소리가 멀어지기 무섭게, 하아, 하고 진도현이 낮은 숨을 내쉬었다. 내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던 것과는 달리 그 역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 만났을 때도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방 안으로 들어선 뒤에 알았다. 그건 아주 기분 좋은 상태였다는 걸.

“어, 어쩌지요?”

초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조금 전보다는 확연히 풀어진 얼굴로 진도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지, 뭐.”

“하지만 기분이 많이 상하신 거 같던데요.”

“아마, 지금 그 기분의 절반쯤은 화수가 원인일 거야.”

주제에 감히 자신을 피했다는 것에 기분이 상한 게지. 자신이 경멸하고 무시하는 것과는 별개로. 리 샤오와 같은 유형의 인간들의 특징이었다.

“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보며 진도현이 웃었다. 그런 게 있어. 아무튼 너무 걱정할 것 없어. 그렇게 덧붙이자 초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화수는 정말 몸이 좋지 않은 건데요. 혹, 오해하시는 걸까요.”

초하는 화수와 리 샤오가 이미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터라 단순히 오늘의 일만으로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오해를 풀어줄 만큼 진도현은 다정한 사내가 아니었다. 게다가 정작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감기라도 단단히 걸린 게야?”

“그런 것이 아니라. 어제, 가게에 소란이 있었거든요.”

“……무슨 소란?”

“그게, 홍위 님이…….”

긴 설명은 없었지만 그 이름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진도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진도현도 그가 어떤 사내인지는 알고 있었다. 아마도 모르는 이가 더 드물 것이다.

“대체 얼마나 심하게 당했기에, 밖에도 못 나와.”

“…….”

사실 아침나절엔 멀쩡히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던 터라 초하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번졌다. 하지만 그런 것을 다 말할 순 없으니 초하는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잠시 보고 올게.”

“자리를 비우시려구요?”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진도현에 초하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러면서 흘끔, 빈자리에 시선을 준다. 초하를 따라 시선을 주었던 진도현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털썩.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결국 진도현은 자리에 도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화수보다 리 샤오가 우선이었다.

찰박.

그릇 가득 따라놓은 물로 손을 씻어낸 리 샤오가 옆에 놓인 영견을 집어 들었다. 꼼꼼히 손가락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바짓단도 닦아냈다. 물론 이미 다 스며들어 닦아낼 것도 없었지만 조금 전 멋대로 닿았던 불쾌한 손길을 털어내기라도 하듯 몇 번 더 꼼꼼히 털어냈다.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 거지.

리 샤오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세상 무서운 것 없이 건방지게 굴던 녀석이 제 앞에 얼쩡거리지 말라는 경고를 제대로 알아들었으니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그런데 어째서 이토록 기분이 가라앉는 것인가.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리 샤오가 들고 있던 영견을 내던지고 밖으로 나왔다. 돌아가는 게 좋겠다. 애초에 여길 오는 게 아니었어. 그렇게 후회하며 리 샤오가 걸음을 내딛으려고 할 때였다.

멈칫.

발을 내딛던 리 샤오가 걸음을 멈췄다. 순간 코끝에 닿은 잔향 때문이었다.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뭐야. 정말 피한 거였잖아. 게다가 제가 홍매루에 방문한 걸 뻔히 알면서 겁도 없이 여기까지 와 돌아다니다니. 기분이 확 상했다.

방향을 바꾼 건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붙잡아서 어쩔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건방지고, 괘씸한 녀석을 붙잡아야 한다, 그런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걸음이 빨라졌다.

꺾인 복도를 나서는 순간 반대편 복도 끝에서 사람의 옷자락을 보았다. 하. 겁이 없는 녀석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겁이 없을 줄은 몰랐다.

걸음이 더 빨라졌다.

이상하게 자꾸만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지척에 있는데, 조금만 더 속도를 높이면 잡을 수 있는데도, 그런데도 입안이 바싹 말랐다.

열어놓은 장지문을 통과하자 ㄷ자로 된 길이 나왔다. 확 트인 시야 속에 동그란 머리통이 박힌 듯 들어왔다. 하아. 그제야 겨우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곧 얼굴이 찌푸려진다. 느릿한 걸음을 옮기고 있는 녀석의 모습에서는 어떤 긴장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태평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상했다. 사실 그가 쫓아오는지 모르는 화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 여기까지 초조하게 쫓아온 입장에서는 빈정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타닥.

얼굴을 굳힌 리 샤오가 정원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정원을 가로지른다. 지금 거리라면 조금 돌아간다고 해도 금방 붙잡을 수 있었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몸이 좋지 않아? 이렇게 멀쩡하게 나다니고 있었으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자신이 보이지 말라고 해서 안 나온다고 면전에서 말할 수 없을 테니, 그렇게 둘러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전혀 되지 않아 문제였다. 이 녀석만 보이면 그랬다. 굳이 그렇게 화가 날 일도 아닌데 이 녀석만 보면 거슬려 미칠 것 같았다.

가는 목덜미가 바로 앞에 있었다. 손이 먼저 나갔다. 혹, 녀석이 발소리에 놀라 도망이라도 칠까 봐, 부르지도 못하고 손부터 내뻗었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잡았다.

그제야, 겨우 기분 나쁘게 들척이던 분노가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사내 주제에 한 손에 들어오는 마른 어깨를 붙잡아 휙, 되돌렸다. 무심하던 눈이 이내 휘둥그레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기분이 좋았다.

“너-”

뭐라고 한마디 쏘아붙여줄 요량으로 입을 벌렸던 리 샤오의 표정이 이내 확 굳었다. 그제야 엉망이 된 얼굴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금 가라앉았던 노기가 다시금 들척이고 있었다.

“싫어. 안 나가. 이 꼴로 어딜 나가라는 거야.”

한조의 표정에서 기가 막히다는 기색을 읽었지만 화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한 꼴로도 잘만 나다녔다.

하지만 오늘은 나가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 앞에 이런 꼴로 나서고 싶지 않았다. 경멸당하고, 무시당하는 건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적어도 이런 꼴로는 경멸당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지쳤다.

그런 기색을 읽었는지 한조도 더는 강요하지 않고 물러섰다.

그런데 난 왜 여기에 와 있는 건가.

리 샤오와 진 사장이 있는 방 앞에 선 채 자문하는 화수였다. 물론 대답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였지만.

들어갈까.

이러고 있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 앞에서 몇 번이고 발을 내디뎠다 물리기를 반복한다. 역겨운 냄새 풍기지 말고 꺼지라던, 그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여기 이러고 있는 거지만.

대체 무슨 얘기를 하길래, 이렇게 조용해. 화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 때였다. 안쪽에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초하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뭐야. 분위기 좋잖아. 잘됐다고 생각하면서도 화수의 어깨가 조금 주저앉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멀뚱히 서 있던 화수가 천천히 문에서 물러섰다. 제가 들어가봐야 좋은 분위기만 망칠 뿐이다. 그렇게 체념하니 마음이 편했다.

슬금슬금, 문에서 뒷걸음질 친 화수가 이내 방향을 틀었다. 잘됐는데, 다 잘됐는데,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걸음이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느릿한 걸음이 아예 거북이걸음이 되었다. 시선은 발끝에만 있었다.

뒤쪽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으나 유곽에서 어린 시종들이 뛰어다니는 일은 흔한 일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발소리가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겠지만 풀이 죽은 화수에게 그런 것에 기울일 주의는 없었다. 으레 자신을 스쳐 지나가려니 하고 옆으로 살짝 비켜 길을 터주려던 찰나.

턱.

단단한 손이 어깨를 붙잡았다. 거칠게 당기는 힘에 몸이 휙, 하고 돌아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심코 시선을 주었던 화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 어깨를 움켜쥔 채 서 있는 이는 믿을 수 없게도 리 샤오였다. 이게, 대체. 무슨. 좀처럼 놀라는 법이 없는 화수도 지금만큼은 깜짝 놀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방 안에 있던 리 샤오가 어째서 지금 여기에 서 있는 걸까. 좀처럼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곧, 정신이 돌아왔다.

“너-”

죽일 듯 노려보고 있는 눈동자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들켰구나. 아무래도 문 앞에 있다 물러날 때 들킨 모양이었다. 분명 제 눈앞에 보이지 말라고 경고했음에도, 또다시 근처에서 얼쩡거린 것이 자존심을 건드렸을까. 평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분노로 일렁이는 눈동자를 보고 화수가 쓰게 웃었다.

퍽 난감하게 되었다.

“거기 얼쩡거린 게 아니라 그냥 지나는 길이었는데-”

말을 하던 화수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았던 게 생각난 탓이다. 이래저래 진퇴양난이었다. 이렇게까지 실수하는 일은 흔치 않은데. 몸이 안 좋긴 안 좋은 모양이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럴 땐 그냥 얌전히 사과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평소라면 애초에 변명 같은 걸 할 리도 없었다. 부러 상대를 도발할 때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앞의 상대에게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리 샤오가 화가 난 것에 당황했고 그래서 어쭙잖은 변명을 늘어놓았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지고 있었다.

지금도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냥 화가 좀 풀리면 좋겠다, 나한테도 조금은 웃어주면 좋겠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사과를 하고 있었다.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너.”

리 샤오가 얼굴을 찌푸렸다. 심기가 불편한 기색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화수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순간 자신에게서 또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먹잇감이 도망치는 걸 그냥 둘 짐승은 없었다. 물러서는 화수의 팔목을 리 샤오가 거칠게 붙잡았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가는 팔목이었다.

“빌어먹을.”

짓이기듯 욕설을 내뱉은 리 샤오가 그대로 화수를 확, 끌어당겼다. 또 목이라도 졸리는 걸까. 바싹 다가오는 리 샤오에 반쯤 포기한 화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곧바로 눈이 떠졌다.

입술을 거칠게 누르는 감각. 믿기지 않는 느낌에 눈을 뜬 것도 잠시, 이내 거칠게 파고드는 살덩이에 화수가 저도 모르게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쩔 줄 모르고 있던 손이 리 샤오의 옷자락을 겨우 움켜쥐었다.

화수답지 않게, 참, 서툰 반응이었다.

츕, 츄읍. 쯔윽, 츳.

맞닿은 입술 틈으로 젖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과 달리 리 샤오의 입안은 델 듯이 뜨거웠다. 그 뜨거운 살덩이가 화수의 입안을 휘저었다. 입안이 살덩이로 가득 찼다.

입맞춤은 아래를 꿰뚫리는 것과 닮아 있었다. 멋대로 침입해서 안을 채우고, 문지르고, 휘젓는다. 채 삼키지 못한 타액이 고인다. 그것으로 더 질척해지고, 입안이 흐물해진다. 상대의 살덩이가 내 침으로 젖는다. 보이진 않지만 분명 들락이는 살덩이도 젖어 맨질맨질해져 있을 터였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빠졌다. 근사한 근육으로 뒤덮인 단단한 팔이 주저앉으려는 화수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시 각도를 달리해 입술을 겹친다.

그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도 없는 금욕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으면서 아주 집요하고, 능숙하기까지 한 입맞춤을 한다.

츕, 츕, 츄읍.

몇 번이나 각도를 달리해 입술이 겹쳐졌다. 혀가 들어와, 입안을 휘젓고 입천장을 긁어 내렸다. 화수는 반응은커녕 서툴게 그가 하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게 고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실 입맞춤을 시작한 순간부터 화수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 상태였다.

한 대 맞는다고 생각한 순간, 입맞춤이라니. 갑자기 뒤돌아선 제 앞에 리 샤오가 서 있었을 때보다도 더 현실성이 없었다. 그것을 리 샤오는 오해한 모양이었다.

“여유롭네.”

나직하지만 날 선 어조. 입술이 떨어졌는지도 몰랐다. 이번에도 한 박자 늦게 그 말을 이해한 화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내저으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파고든 입술에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읏.”

변명하려고 벌린 입 안으로 다시 한 번 살덩이가 가득 찼다. 목구멍 깊은 곳까지 밀고 들어왔다. 침이 고인다. 혀가 문질러졌다. 츠윽, 츠윽, 문질러지는 살덩이가 질척거리며 야한 소리를 냈다. 젖은 점막이 서로 맞닿는 소리만큼 야해빠진 소리는 없었다.

옷자락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주름 하나 없이 빳빳하게 다려진 장교복이 잔뜩 구겨졌지만 리 샤오는 그 손을 쳐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손이 물러서지 않도록 더 거칠게 입안을 헤집었다.

말 그대로 통째로 삼켜질 것 같은 입맞춤이었다.

“어디야.”

조금 더 낮아진 목소리가 들렸을 때에야 화수는 입술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헐떡이던 화수가 뒤늦게 시선을 들어 올리자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마주한 검은 눈동자가 새파랗게 일렁이고 있었다.

“어디냐고. 네 방.”

“…….”

이상했다. 분명 귀로는 들리는데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멍청하게 눈만 깜빡이고 있으려니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인내심이 바닥난 리 샤오가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길의 끝 모서리에서 몰래 훔쳐보고 있던 시종을 향해 물었다.

“이 녀석 방이 어디야.”

“이, 이리로.”

흠칫, 하고 놀랐던 시종이 곧바로 종종걸음으로 앞장을 섰다. 리 샤오가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물론 그의 손엔 화수의 손목이 붙들려 있었다. 처음엔 그의 힘에 끌려가던 화수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제 발로 걸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앞서서 걷는 뒷모습을 보면서 화수가 속으로 되물었지만 짐작도 되질 않았다. 다시 찢어진 입술에서 피 맛이 났다.

“여긴가?”

가게 가장 깊숙한 곳. 다른 곳에 비해 오래된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방 문 앞에서 시종의 발걸음이 멈췄다. 멈춰 선 시종이 눈치를 보며 서 있자 리 샤오가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휙, 하고 내던졌다. 날아오는 것을 반사적으로 받아 들었던 시종이 이내 손바닥에 놓인 은전을 확인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요, 대장님.”

은전 한 닢을 꽉 움켜쥐고 시종은 몇 번이고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손님 시중을 들지 않는 어린 시종에겐 흔치 않은 횡재였다.

“가봐.”

점점 표정이 안 좋아지는 리 샤오를 본 화수가 작게 손을 내저었다. 후다닥, 왔던 길을 되돌아 사라지는 아이를 보고 있으려니, 곧바로 휙, 하고 몸이 당겨졌다.

드르륵.

반항할 틈도 없이 마치 제 방인 양 멋대로 문을 열어젖힌 리 샤오가 그 안으로 화수를 밀어 넣었다. 거칠게 밀쳐진 탓에 잠시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사이, 탁, 하고 문이 닫혔다.

굳게 닫힌 문 앞에 리 샤오가 서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저만 밀어 넣고 돌아갈 리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같은 공간에, 그것도 자신의 방에 그와 단둘이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꿀꺽. 마른침이 삼켜졌다.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하지도 않을 시답지 않은 인사말을 꺼내고 말았다.

“차라도-”

“벗어.”

물론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대로 묵살돼버렸지만.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깜빡깜빡.

이번엔 한 번에 알아들었다. 위아래로 몇 번 느릿하게 움직이던 속눈썹마저 움직임을 멈췄다. 자신을 향한 시선이 차가웠다.

“아. 넌 강제로 벗겨지는 쪽이 더 좋다고 했던가?”

“…….”

슥. 한 발 다가서는 발에 화수가 뒷걸음질 쳤다.

“제가.”

의아해하는 눈동자를 향해 화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버석하게 입안이 말라서 그런가 짧은 말을 내뱉는데도 목 언저리가 조금 아팠다.

“제가, 하죠.”

내딛어지던 걸음이 멈췄다. 곧 팔짱을 끼고 해보라는 듯 화수를 응시한다. 화수가 손을 들어 옷자락을 묶어놓았던 띠를 풀었다. 사실 오늘은 손님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화수는 잘 때 입는 수수한 명주로 된 긴 침의寢衣 차림이었다.

하필이면. 화수가 속으로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이면 이런 초라하기 짝이 없는 차림일 때라니. 기가 막혔다. 전혀 그럴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이대로 돌아가버리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마저 들었다. 물론 겉으로는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티가 전혀 나지 않았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무심한 얼굴로 띠를 당겨 푼 화수가 이번엔 천천히 그것을 젖혀 벗었다. 풀썩. 옷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았다. 방 안이 지나치게 적막한 탓이겠지만 심장이 얕게 떨렸다.

게다가 얇은 침의 안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파르르, 마른 어깨가 안쓰럽게 떨렸다.

“내키지 않으십니까.”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노려보고만 있는 리 샤오에게 화수가 물었다. 턱을 살짝 치켜세운 화수의 얼굴은 어느 때처럼 자신만만해 보였다. 하지만 사실 화수의 손끝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저릿한 손가락을 화수가 꽉 움켜쥐었다.

“허면 입으로-”

“물러서.”

한 발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화수에 곧바로 리 샤오의 나직한 경고가 떨어졌다. 걸음이 멈췄다. 하지만 돌아갈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툭.

리 샤오가 제복 단추를 풀었다. 목까지 채워져 있던 단추를 풀어 두꺼운 겉옷을 벗었다. 흰 셔츠 차림의 상체가 드러났다. 셔츠 너머로도 실전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훅, 수컷의 향이 코끝으로 끼쳤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의도적으로 뿜어내는 것도 아닌데 붕鵬의 패기가 방 안에 진동했다. 뇌가 녹는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화수는 깨닫는다. 붕들 중에는 패기를 뿜어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뇌를 터트려버릴 수 있는 이가 있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던 모양이다.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도 잊고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리 샤오는 어느새 화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는 화수를 그대로 밀었다.

풀썩.

뒷걸음질 치던 화수가 정리되지 못하고 펼쳐져 있던 이불에 걸려 넘어졌다. 두껍게 깔아놓은 요 덕분에 엉덩방아를 찧고도 아픔은 느끼지 못했지만 사실 요가 없었다고 해도 아마 아픔을 느끼지 못했을 터이다. 맹수에게 목이 물어 뜯길지도 모르는 판에 그런 것이 느껴질 리가 없었다.

일렁이는 눈동자를 피해 화수가 엉덩이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몇 걸음 가지 못해 곧바로 발목을 붙잡혔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리 샤오가 붙잡은 발목을 그대로 쭉, 당긴다. 압도적인 힘에 그대로 몸이 끌려왔다. 다리 사이에 리 샤오가 자리를 잡았다. 화수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번졌다. 그도 그럴 것이 벌어진 사타구니가 딱 리 샤오의 정면이었다.

“엎드려서-”

화수가 몸을 틀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두 발목을 붙잡은 손이 더 꽉, 발목을 붙잡아 몸을 돌리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리 샤오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멋대로.”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아진 목소리. 등줄기가 확 섰다.

“도망치지 마.”

“…….”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도망치려던 게 아니라 그저 자세를 바꾸려고 했다는 변명도 하지 못했다. 눈앞의 눈동자는 변명이 통할 상태가 아니었다. 화수의 발에서 힘이 빠졌다.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발목을 잡고 있던 손이 허벅지로 올라왔다.

거칠게 허벅지를 움켜쥔 손이 그대로 허벅지를 잡아 벌렸다. 사타구니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곳을 응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긴장으로 단단해진 배가 둥글게 올라붙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 와중에도 제 것이 흥분해 반쯤 고개를 드는 게 느껴졌다. 아니,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그 노골적인 시선에 선 것이었다.

“그만 보시죠.”

어쩐지 견딜 수 없는 기분에 팔로 얼굴을 가린 화수가 한마디 했다. 사내가 발기한 것 처음 보십니까. 그렇게 물으려던 건 관두었다. 생각해보니, 처음 보는 것이긴 하겠다 싶었던 것.

하지만 그런 화수의 부탁에도 시선이 거두어지는 일도, 그렇다고 그가 허벅지를 놓고 물러나는 일도 없었다. 허벅지를 움켜쥔 손의 악력에 피부가 아플 지경이었다. 대체 어떤 얼굴로 보고 있는 걸까. 차마 무서워서 눈을 가린 팔을 내릴 수가 없었다. 침묵이 무서웠다. 물속에 빠진 것처럼 귀가, 목이 꽉 막혀왔다.

“안 할 거면, 그만- 흣…….”

말을 하던 화수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순간 예민한 곳을 움켜쥐는 손의 감촉 때문이었다. 화수가 고개를 내렸다. 제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리 샤오가 제 것을 잡고 있었다.

“무슨, ……읏, 응…….”

반쯤 몸을 일으키던 화수가 도로 머리를 바닥에 떨궜다. 거칠게 흔드는 손길에 벌어진 입에서 수습하지 못한 신음이 속절없이 흘러나왔다. 허벅지 안쪽이 벌벌 떨렸다.

“읏……. 그, 아…… 아, 읏…….”

그만두라는 말은 제대로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다. 겨우 몇 번 가볍게 흔든 것뿐인데 사타구니가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눈앞이 쑥, 꺼졌다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아랫배가 동그랗게 올라붙었다. 갈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거짓말처럼 제 것을 자극하던 손이 물러섰다.

-!

몸을 웅크린 채 부들부들 떨던 화수가 눈을 떴다. 흐린 시야에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잘생긴 얼굴이 들어왔다.

“설마, 가게 해줄 줄 알았어?”

“…….”

“웃기지도 않는군.”

화수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졌다. 하지만 눈을 가늘게 뜬 상태였고, 물기가 차올라 흐릿해진 탓에 티가 나지는 않았다.

멍하게 누운 화수를 놓아둔 채 리 샤오가 옷을 벗었다. 셔츠를 벗자, 몸이 드러났다. 얼굴만큼이나 근사한 근육들이 뒤덮인 몸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왔다. 평생 전장을 누볐던 군인답게 몸 여기저기 자잘한 상처부터, 제법 치명상이었을 것 같은 찢어졌다 아문 상처들이 잔뜩 있었지만 전혀 흉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답고 근사한 몸이었다.

물론 좀 더 아래쪽에 자리 잡은 사내의 물건은 근사하다고 감탄만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지만.

-!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내렸던 화수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다리 사이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크기의 물건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잔뜩 발기해서 검붉은 핏줄이 투둑투둑, 튀어나와 있는 물건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왜. 아픈 게 좋은 거 아니었어?”

핏기가 가신 화수의 얼굴을 이상하다는 듯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리 샤오가 조금 전 놓았던 발목을 붙잡았다. 반사적으로 파드득, 튀는 발목을 꽉 움켜쥐고 그대로 양옆으로 벌렸다. 그리고 살짝 들린 엉덩이골에 허리를 바싹 붙였다.

뜨끈하고 단단한 그것. 리 샤오의 물건이 엉덩이골 사이에 문질러졌다. 짓이기듯 힘으로 밀어붙이자 살덩이가 엉덩이 사이를 찌르다 주룩, 미끄러졌다.

힘을 빼야 했다. 몸에 힘을 빼고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게 잘 되질 않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동안 어떻게 했더라. 마치 누군가 머릿속을 통째로 날려버린 것처럼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나마 제 것을 보고 식어버리진 않았구나, 안심한 것이 고작이었다.

꾹, 단단해진 끄트머리가 엉덩이골을 문지르다 이내 옴폭한 곳을 찾아 눌렀다. 꾸욱, 꾸욱, 누를 때마다 화수의 엉덩이가 긴장으로 조여들었다.

“읏……, 아…….”

리 샤오가 뿌리를 잡고 그대로 체중을 실어 눌렀다. 화수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게 입구가 열리지 않았다. 화수답지 않게 서툴게 굴기도 했지만, 워낙 리 샤오의 것이 컸다.

제대로 풀어주지도 않고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주름진 입구는 몇 번이고 받아들일 듯하다가도 결국 리 샤오의 것을 튕겨냈다. 꼭 고무공 같았다.

“그, 냥. 그냥, 밀어 넣으면-”

화수가 헐떡이며 말했다. 이러다 그만두기라도 할까 봐, 역시 사내는 별로라고 그냥 이대로 돌아가버릴까 봐, 겁이 났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냥, 거칠게 해도 되니까, 그렇게 말하는 화수를 내려다보던 리 샤오가 쳇, 하고 혀를 찼다. 일순 화수의 몸이 굳었다.

하지만 그런 화수의 걱정과 달리 리 샤오는 그만둘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그럴 수도 없었다. 이렇게 아플 정도로 발기한 건 리 샤오도 오랜만이었다.

“기름 같은 거 없어?”

리 샤오가 물었다. 그 말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뒤늦게 말을 이해한 화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그런 게 필요한 적도 없었고, 그런 걸 친절하게 쓰게 해주는 손님도 없었다.

제기랄. 욕설이 머리 위에서 쏟아졌다. 흐릿한 눈으로 올려다보자 찌푸려진 얼굴이 더 구겨졌다.

“빨아.”

입안으로 손가락이 들어왔다. 화수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그것을 빨았다. 붉은 혀를 날름거리면서 손가락 끝을 핥아 올렸다. 검을 쥐는 군인의 손답게 크고 단단했지만 의외로 손가락은 길고, 선이 유려했다.

그 손가락을 마디 끝까지 삼키고 침을 잔뜩 묻히고 있는데 갑자기 손가락이 쑥 빠졌다. 멍하니 시선을 들자 침으로 번들거리는 손가락이 성급하게 아래로 향했다.

젖은 손가락이 거칠게 주름진 항문을 문질렀다. 어쩐지 조금 전보다 여유가 없어진 움직임이었다. 주름 한가운데를 빙글거리던 손가락을 힘을 주어 밀자 푹, 하고 구멍이 열렸다. 손가락이 그렇게 한 마디 정도 들어갔다.

“……읏, 응……!”

붙잡고 있던 발목을 더 벌리며 손가락을 끝까지 밀어 넣었다. 젖긴 했지만 굵은 손가락이 메마른 아래를 벌리면서 들어오는 감각에 화수가 진저리를 쳤다. 발을 버둥거렸으나 손목을 벗어나진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리 샤오의 손가락은 안을 쑤시고 나갔다가 다시 쑤시고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밭은 숨이 쏟아졌다. 푹, 푹, 푹, 안을 쑤시는 소리가 적나라했다. 그럴 때마다 쫀득하게 손가락에 달라붙은 내벽이 딸려 나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마치 그게 매달리는 제 꼴 같아 화수는 귀가 달아올랐다.

쯔윽.

천천히 손가락이 빠졌다. 저도 모르게 화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너무나 짧은 안도였다. 살짝 벌어진 구멍에 딱딱한 살덩이가 닿았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살덩이였다. 느낌이겠지만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커진 것도 같았다.

이번에도 구멍이 조여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리 샤오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손을 내려 구멍을 벌렸다. 쯔윽, 벌어진 입구에 틈이 생기자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밀었다.

“……으-아.”

화수의 입에서 서툴기 짝이 없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색기라고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신음이었다. 하지만 그 색기 없는 신음에 살덩이가 더 터질 듯 부풀었다. 단단한 끝에 물기까지 질질 흘렀고 그 액이 구멍을 적셨다. 델 듯한 열기에 화수가 진저리를 쳤다. 그 바람에 리 샤오의 것이 밀려났다. 하지만 리 샤오는 진저리치는 화수의 몸을 꽉 눌러 고정시킨 뒤 이번엔 체중까지 실어 콱, 쑤셔 넣었다.

-!!!

화수가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개를 꺾었다. 엉덩이가 확 조였다. 하지만 이미 리 샤오의 것은 반쯤 안으로 박힌 뒤였다.

“……흣.”

리 샤오가 낮은 신음을 흘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웅크린 화수의 몸이 벌벌 떨렸다. 숨도 쉬지 못하는 화수의 다리를 리 샤오는 억지로 더 벌렸다. 그리고 허리를 앞으로 밀었다.

“힉-, 아으.”

막혀 있는 것 같던 좁은 길이 툭, 하고 터졌다. 기둥이 모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화수가 앓는 소리를 냈다. 배 속이 살덩이로 가득 찬 기분. 실제로 그렇기도 했고.

“이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조여든 엉덩이를 갈라 벌리면서 리 샤오가 물었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달았다. 물론 제 착각이겠지만. 덕분에 대답이 늦었다. 하지만 리샤오 역시 질문을 하긴 했지만 대답을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화수가 입을 벌리기도 전에 리샤오가 곧바로 뒷말을 잇는다.

“처음인 양, 순진한 척하는 거.”

“…….”

화수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가 이내 작아지고 다시 흐릿해졌다. 하지만 그런 화수의 변화를 리 샤오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물론 알았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을 테지만.

“아, 혹시 이것도 추가비용에 들어가는 건가?”

“…….”

“뭐 상관없지만.”

어깨를 으쓱인 리 샤오가 다시 허리를 뒤로 뺐다. 퍽, 하고 안을 치고 들어오는 감각에 화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정말로 서툴러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차라리 일부러 그런 척하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은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적어도 더는 어쩔 줄 모르겠는 제 속내를 들킬까 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될 테니까. 화수가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눈치채셨습니까.”

역시나. 태연히 받아치는 화수에 리 샤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마터면 깜빡 속을 뻔했다. 여러모로 짜증나는 녀석이었다. 사실 그런 녀석과 이러고 있는 스스로가 제일 짜증스러웠지만.

“이쪽이 더 취향이실 것 같아.”

“…….”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식지 않는 걸 보면 그의 추측이 맞아떨어진 모양이었다. 식기는커녕 미친 듯이 박아 넣고 싶은 기분을 겨우 억누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자신과 달리 여유롭게 눈꼬리까지 접은 녀석이 물었다. 제 아래 깔려 아래를 꿰뚫리고 있으면서도 겁이라고는 없었다.

“그럼 이젠 관둘까요.”

도발하듯 묻는 화수에 리 샤오가 대꾸 대신 허리를 뒤로 뺐다.

쑥, 하고 기둥이 뽑히듯 나왔다. 쫀득한 내벽이 딸려왔다가 투둑, 하고 뜯기듯 제자리로 돌아간다. 안이 쫀득했다. 건방지게 굴던 화수가 진저리를 치는 것을 보니 그나마 가라앉았던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배를 채운 맹수처럼 너그러워진 리 샤오가 나직이 대답했다.

“상관없다고 했잖아.”

물론 푹, 하고 기둥을 박아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꽉 감은 화수의 눈꼬리에 물기가 서렸다.

역시나, 나쁘지 않았다.

오싹오싹.

몸의 모든 신경이 다 서 있는 감각.

가만히 있어도 허리 아래가 앓아 내리는 것 같았다. 허벅지가 활짝 벌려졌다. 반사적으로 화수가 허벅지를 오므렸다. 물론 절대적으로 힘으로 우위인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꽉, 허벅지를 잡아 벌리는 힘이 더 강해졌다. 엉덩이도 양옆으로 갈렸다.

쯕.

그러자 한 치의 틈도 없던 입구가 조금 벌어지고 단단한 성기에 달라붙어 있던 쫀득한 살덩이가 떨어져 나갔다. 물고 있던 기둥이 워낙 커서 느슨해지거나 하는 것까지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강제적으로 벌리자 잘라버릴 듯 조이던 입구에 틈이 조금 생겼다.

찌꺽.

기둥이 잘게 빠졌다. 입구는 떨어졌지만 빠듯하게 달라붙어 있던 안에서 젖은 소리가 났다. 허리를 다시 밀었다. 리 샤오의 사타구니가 화수의 엉덩이를 짓눌렀다. 이번엔 좀 더 깊이 들어갔다.

쯔윽, 내장을 뽑을 듯 빠졌던 기둥이 다시 꾸-욱, 하고 안을 벌리고 들어갔다. 안이 벌려지는 느낌이 생생했다. 오므라졌던 내벽이 기둥의 모양대로 자리를 잡았다.

“으-아…….”

끄트머리가 내벽을 긁어 올렸다. 그 생생한 느낌에 화수가 진저리를 쳤다. 리 샤오가 벌려져 있던 허벅지를 이번엔 위로 밀었다. 몸이 구겨지고 무릎이 가슴팍에 닿았다. 엉덩이가 들렸고 그 바람에 박혀 있던 기둥이 쑤욱, 밖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히익-.”

자세를 바꾼 리 샤오가 빠져나온 기둥을 다시 끝까지 집어넣었다. 조금 전과는 또 다른 각도로 긁어 올리자 화수의 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곧이어 거침없이 쑥, 뽑혀 나간다. 그리고 곧바로 퍽, 하고 체중까지 실은 기둥이 안을 치고 들어온다.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그때마다 각도는 매번 달라졌다.

“아, 아. 읏. 아-.”

벌어진 입에서 밭은 신음이 쏟아졌다. 밑이 빠질 것 같았다. 힘을 빼야 하는데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마치 처음, 사내를 받아들이는 몸처럼. 숨이 엉켰다.

“아, 아, 아, 아…….”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지금의 서툰 몸짓이 저를 올라타고 있는 사내에게는 그저 그런 척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저를 내려다보는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동공이 새까맣다. 새까맣던 눈동자가 탁해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여긴 이유는 그런 생각을 한 동시에 허릿짓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퍽, 퍽, 퍽, 내장 깊은 곳을 두들기는 감각에 화수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아, 아, 아, 으.”

푹, 푹, 뜨겁고 길쭉한 기둥이 안을 찌르고 들어왔다 미끄러지듯 빠져나간다. 쫀득하게 달라붙던 내벽도 점점 단단해지면서 길이 났다. 아랫배가 동그랗게 올라붙었다. 엉덩이 안쪽이 묵직해졌다.

“젖은 건가?”

리 샤오가 중얼거린다. 물론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그 젖은 구멍을 들락이고 있는 게 리 샤오의 것이었으니까.

“사정 봐줄 필요가 없었군.”

“…….”

이어지는 말에 화수의 눈이 찌푸려진다. 도대체 지금까지의 어디가 사정을 봐주고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항의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제대로 된 단어를 내뱉기는커녕 숨을 헐떡이는 것만도 바빴다.

“그럼 더는 봐주지 않고 해도 되는 거겠지?”

“…….”

“대답.”

그냥 그러겠다는 선언이라고 생각했는데 질문이었던 모양이다. 대답을 듣기 전엔 움직이지 않겠다는 듯 가만히 저를 내려다보는 눈동자에 숨을 헐떡이던 화수가 속으로 쓰게 웃었다. 대답을 종용하면서도 리 샤오는 정작 화수가 거절하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늘 누군가의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사내의 눈동자. 입이 썼다. 하지만 화수 역시도 자신이 그 눈동자에 굴복하리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제게 선택지 같은 건 없었다. 그게 두렵고 무서웠다.

“전.”

집요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리 샤오에 화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쪽이 더 취향이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제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이리도 낯선 적이 있나. 혹, 떨리진 않을까, 어색하게 들리진 않을까, 염려했던 것과 달리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너무도 태연했다. 그건 자신의 생각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리 샤오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나? 그 입은 좀 닥치고 있는 게 좋겠다고.”

“글쎄요. 제가 워낙 못 배워먹은 남창이라서요.”

“……그러다 이런 꼴이 되어놓고도 겁이 없군.”

그제야 화수는 자신의 꼴이 어떤 꼴인지를 떠올렸다. 그의 시선이 화수의 시퍼렇고 붉은 멍이 든 이마에 닿아 있었다. 반사적으로 화수가 고개를 꺾었다. 하지만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외로 꺾은 고개 탓에 이번엔 찢어진 입술의 부분이 고스란히 정면에 왔다.

“씀씀이가 크신 손님이시라서요.”

고개를 꺾은 탓에 화수는 보지 못했지만 내려다보는 리 샤오의 동공이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새까매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화수가 주절주절 입을 열었다.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길 가다 똥을 밟은 정도의 재수 없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괜한 동정을 받느니 차라리 경멸받는 쪽이 나았다.

“리 샤오 님도 추가금만 내시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

“……네.”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지만 화수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 말이지?”

무심하게 중얼거리는 말이 더 오싹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러더니 리 샤오가 붙잡고 있던 허벅지를 놓고 얼굴 쪽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눈앞으로 내뻗어지는 커다란 손에 화수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예상한 통증은 없었다. 아니, 있긴 있었다. 꽉, 하고 붙잡힌 턱이 아팠다. 놀란 화수가 감았던 눈을 떴다. 눈을 뜨는 그 순간 고개를 기울인 리 샤오가 입술을 파고들었다. 동공이 커지고 반사적으로 입술이 닫혔다. 물론 아직 박혀 있는 기둥을 살짝 뒤척이자 도로 벌어졌지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혀를 집어넣는다. 입안이 살덩이로 가득 찼다. 위와 아래가 모두 리 샤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니, 배가 동그랗게 올라붙었다. 수그러들었던 화수의 것이 머리를 다시 들어 올리고 있었다.

느긋하게 침입한 리 샤오가 가득 채운 입안을 휘저었다. 핥고, 문지르고, 빨았다. 바짝 말랐던 입안이 단숨에 젖었다. 여유로운 움직임이 마치, 잡아놓은 먹잇감을 발아래 놓고 살짝살짝 이빨을 세워 가지고 노는 맹수의 것을 닮아 있었다. 물론 그 느긋함도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흣…….

밭은 숨이 맞닿은 입안으로 사그라진다. 목이 바짝 말랐다.

아. 아. 아. 아.

혀가 들어왔다. 그러면서 허리도 함께 깊이 찔러 넣는다. 혀와 손가락이 동시에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박자를 맞춰 동시에 들어왔다가, 어그러지고, 다시 맞춰서 들어왔다. 숨이 엉켰다. 깊은 물속에 빠진 것처럼 숨이 차올랐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물리려고 했지만 턱을 붙잡힌 탓에 그마저도 요원했다. 턱을 움켜쥔 손의 악력이 더 세진다. 멋대로 화수의 고개를 기울여 다시 입술을 삼켰다.

혀가 더 깊이 들어왔다. 입안을 빨렸다. 쭉쭉, 화수의 혀뿌리를 뽑아버릴 듯 거칠게 빨았다가 다시 그것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차라리 아픈 쪽이 좋았다. 부드럽게 문지르는 걸 화수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화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리 샤오는 집요했다.

숨이 찼다. 숨이 차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아랫도리가 저릿저릿했다. 엉덩이 안쪽이 묵직했다. 온몸의 근육이 터져버릴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입술이 떨어졌다. 하지만 안심한 것도 잠시.

“악-.”

화수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입안으로 피비린내가 확 풍겼다. 한 박자 늦게야 화수는 입술을 물어 뜯겼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겨우 피딱지가 앉은 곳이 다시 벌어져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면서.”

“…….”

무슨 짓이냐며, 올려다보는 화수에 리 샤오는 태연히 대꾸했다. 또 그 말이 맞아,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억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때릴 거면 차라리 다른 곳을 때릴 것이지 굳이 다친 델 또 깨물 건 뭐란 말인가. 하여간 성격이 나빴다.

잔뜩 찌푸린 화수와 달리 리 샤오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그나마 한 사람이라도 기분이 좋아졌으니, 다행이네, 라고 마치 남의 일처럼 여상히 생각하고 있으려니 리 샤오가 이번엔 화수의 발목을 붙잡았다. 들렸던 엉덩이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기둥이 미끄러져 나왔다. 그것을 다시 긁어 올린다.

“아으……, 읏.”

각도를 달리해 내벽을 주욱, 긁는다. 이제는 내벽이 달라붙지도 않았다. 여자의 것처럼 흠뻑 젖어 흐물흐물해진 내벽은 그의 것이 들어오고 나가는 대로 길이 났다. 퍽, 퍽, 퍽, 리 샤오가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각도를 바꿔가며.

푹, 푹, 뜨겁고 길쭉한 기둥이 안을 찔러 올릴 때마다 화수의 배가 단단하게 올라붙었다. 발을 바동거렸지만 단단한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흐, 읏…….”

허공을 부유하는 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읏, 으……, 응, 응-!”

배가 뜨끈했다. 달궈진 쇠몽둥이가 안을 휘젓는다. 아팠다.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처럼 아프지만 그렇다고 또 아프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엉덩이 안쪽이 묵직했다. 긁어 올리는 부분이 근질근질거렸다.

붙잡힌 발목이 벌어졌다. 무릎을 오므리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속수무책으로 활짝 열렸다. 한계까지 벌어진 허벅지 안쪽이 부들부들 떨렸다.

굵은 기둥을 물고 있는 입구가 고스란히 보였다. 한계까지 벌어진 입구가 퉁퉁 부어 벌겠다.

“아읏-!”

허리를 궁글리자 내벽이 요동을 쳤다. 입구가 쭉쭉, 기둥을 당겼다. 그대로 씹어 먹히고 있는 기분이었다. 주인만큼이나 음란한 구멍이었다.

“조르지 마.”

경고한 리 샤오가 화수가 항의하기도 전에 다시 푹, 푹, 푹, 구멍을 쑤셨다. 화수가 진저리를 쳤다. 발목을 바동거리다, 소용이 없자 손을 내려 리 샤오의 배를 밀었다. 하지만 그 역시 별 소용은 없었다. 힘으로, 그것도 아래를 뚫린 채 힘으로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허릿짓이 빨라졌다.

찌꺽, 찌꺽, 젖은 안에서 차진 소리가 났다. 퍽, 퍽, 퍽, 퍽, 사타구니로 엉덩이를 두들겨 맞으면서 동시에 쇠몽둥이로 배 속까지 쑤셔지고 있었다. 배를 밀어내던 손은 어느새 그가 움직이는 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길을 잃은 부표처럼, 표류했다.

숨이 엉켰다. 배가 아팠다. 숨이 차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뇌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차라리 그래서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흔들리고, 신음하고, 그러다 보면 끝이 나 있을 테니까.

그게 좋았다.

“……응응, ……읏-!”

그런 화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리 샤오가 속도를 높였다.

“힉-”

귀두 끝까지 잡아 뺐던 기둥을 단숨에 다 집어넣었다. 제대로 다 벌어지지도 않은 곳에 억지로 밀어 넣느라 기둥이 터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내벽은 빠듯하긴 해도 결국 벌어졌다. 내벽이 벌어지기 무섭게 리샤오가 다시 뒤로 허리를 잡아 뺐다. 말 그대로 내장이 다 뽑혀 나갈 것 같았다.

화수가 진저리를 쳤다. 꽉 감은 눈꼬리에서 물기가 배어났다. 생리적인 눈물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맹수는 기분이 좋아졌다. 포만감이 일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멈출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었지만.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무간지옥처럼 눈앞의 사내는 먹고 있어도 계속해서 허기를 느끼게 했다. 이걸로는 부족했다. 굳이 여자를 두고 같은 물건 달린 사내에게 발정하는 까닭을 모르겠다 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응, 읏-, 아……, 읏-.”

자꾸만 오그라지는 다리를 붙들어 세운 채 허리를 마구 흔들었다. 손아래에서 옴찔옴찔거리는 피부의 경련을 음미하며 리 샤오가 한 번 더 허리를 찔러 넣었다.

“히-익.”

주욱, 긁어 올리는 감각에 화수가 숨을 들이켰다. 기둥을 물고 있던 내벽이 확 조여들었다. 그리고 화수가 그대로 사정했다. 허공에 뜬 발가락이 꽉 오므라들었다. 눈앞이 쑥 꺼졌다. 온몸의 근육이 다 조여들었다.

하지만 그 사정감이 다 가시기도 전에 리 샤오가 오므라든 엉덩이를 갈라 벌리며 기둥을 뽑았다. 쑥, 하고 내장이 딸려 나가는 느낌에 화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손님보다 먼저 가버리다니. 말도 안 되는 실수였지만 그나마 리 샤오는 크게 문제 삼지 않을 모양이었다. 다행히 벌어진 입구가 닫히기 전에 기둥이 퍽, 하고 안을 채우고 들어왔다.

“흣.”

리 샤오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퍽, 하고 배 속을 두들겨 맞은 감각에 화수가 허리를 떨었다. 동시에 쏟아져 나온 뜨거운 액이 안을 빠듯하게 채웠다. 안을 가득 채우다 못해 한 치의 틈도 없던 입구로 액이 삐죽삐죽 새어 나왔다.

그곳에서 뭔가가 흘러내리는 이질적인 느낌에 화수가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그런 화수를 리 샤오가 용납할 리 없었다.

“으-아.”

엉덩이를 갈라 벌린 리 샤오가 안을 다시 한 번 깊이 뚫었다. 잔뜩 싸놓은 정액이 들척였다. 덕분에 고여 있던 정액이 꾸직꾸직, 틈새를 비집고 나왔다. 줄줄 싸는 기분에 화수가 급히 엉덩이를 조였다. 물론 별 소용은 없었다.

오히려 그 조임에 자극받은 리 샤오의 것이 부피를 늘렸다. 안 그래도 한계치를 넘어선 정액이 숫제 주름 밖으로 줄줄 샜다. 엉덩이 아래 흘러내린 액체로 이불이 흥건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그래도 끝이 나긴 했다는 거였다. 물론 그 끝이, 처음의 끝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휙.

몸이 뒤집혔다. 축, 늘어져 밭은 숨을 내쉬고 있던 화수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 기둥을 넣은 채로 뒤집힌 탓에 고여 있던 정액이 뒤섞였다. 젖은, 정액을 휘젓는 소리가 났다. 금방 사정했다고 믿을 수 없게도 리 샤오의 성기는 단단하게 부풀어 있었다.

“잠-”

잠깐만. 고개를 돌려 말하려던 화수가 그대로 이불에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 순간 몸이 뒤집히며 반쯤 빠졌던 기둥이 단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안쪽에 잔뜩 고인 점액질의 액체 덕분에 거대한 기둥은 저항을 받기는커녕 기름칠이라도 한 것마냥 미끄덩거리면서 안으로 박혀 들어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몸이 단숨에 꿰뚫리는 감각에 화수가 진저리를 치며 이불을 움켜쥐었다. 미끄덩한 느낌 때문에 더 긴장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그대로 진짜 배를 뚫고 나와버리면 어쩌나 겁이 났다. 등줄기의 근육이 바싹 올라붙었다. 등 가운데 옴폭 파인 골의 그림자가 선명했다. 비단이불을 움켜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읏……, 으-.”

잔뜩 젖은 기둥이 미끄덩거리면서 박혀 들어오고 그럴 때마다 더 깊은 곳을 찌른다. 바로 누웠을 때와는 또 다른 각도로 안이 죽죽 긁혔다. 움찔움찔, 온몸의 신경이 다 서는 기분. 허리가 벌벌 떨렸다.

기둥보다 더 앞서서 스며든 정액이 내벽을 매끄럽게 만들자 그곳을 다시 뜨겁게 달궈진 쇠몽둥이가 뚫고 벌린다. 젖는 건 안쪽인데 이상하게 온몸이 젖는 것 같았다.

푹푹, 꽂아 넣는 허리에 화수의 엉덩이가 점점 내려앉았다.

“버텨.”

리 샤오가 명령했다. 하지만 체중까지 실어 누르는데 화수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단단한 팔이 배 아래쪽으로 들어왔다. 엉덩이가 들렸다. 찹쌀떡처럼 차진 엉덩이가 드러났다. 이로 베어 물면 과즙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엉덩이였다. 사내 주제에 잘도 이런 엉덩이를 가지고 있다 싶었다. 뭐 그런 것이 이뿐이겠냐마는.

미간을 살풋 찌푸렸던 리 샤오가 벌어진 화수의 두 다리 사이에 제 다리를 끼웠다. 오므리려고 해도 오므릴 수 없도록 단단히 고정한 뒤,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아, 아-.”

슥, 하고 빠졌다가, 퍽, 하고 질러 넣는다. 앞으로 엉덩이가 밀리면 붙잡은 허리를 잡아 내리고, 다시 위로 도망치면 끌고 내려다 다시 찔러 넣었다. 엉덩이만 치켜세운 채 얼굴을 바닥에 묻은 동물 같은 자세였다. 바닥에 대고 있던 이마가 이불에 쓸렸다. 잔뜩 멍이 든 곳이었지만 그런 것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 아으, 으으-, 응!”

잘게 흔들었다가 푹푹, 꽂아 넣는다. 체중까지 실려 더 깊은 곳까지 긁어 올리고 빠져나간다. 잔뜩 긴장한 엉덩이와 허리의 경계 사이에 옴폭한 보조개가 생겼다가 사라진다. 벌어진 입에서 밭은 숨이 쏟아졌다. 침이 줄줄 흘렀다. 감은 눈 앞이 번쩍거리며 튀어 올랐다. 미칠 것 같았다. 제 힘으로 딛고 있다기보다는 뒤에서 끼운 리 샤오의 다리에 고정되어 바닥에 대고만 있던 발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만. 아니, 잠, 깐만-”

견딜 수 없는 기분에 화수가 오른손을 뒤로 젖혀 리 샤오의 몸을 밀었다. 그만두길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조금, 조금만 쉬었으면 했을 뿐이다. 하지만 반항이라고 생각한 걸까. 크고 단단한 손이 곧바로 화수의 뒷덜미를 잡아 눌렀다. 그리고 상체를 일으키지 못하게 다른 손으로는 등허리를 콱, 눌러 고정시켰다.

꿈쩍도 할 수 없는 화수의 귓가로 고개를 숙인 리 샤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 더는 안 봐준다고 했을 텐데.”

오싹. 말 그대로 등줄기가 올라붙었다.

“아- 응-”

쑥, 뒤로 빠졌던 기둥이 다시 푹, 하고 안을 찌르고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밀려야 하는 상체가 고정된 덕분에 삽입은 더 깊어졌다.

푹, 푹, 찌르고 들어올 때마다 엉덩이만 치켜 올려진 아래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느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안은 빠듯하게 틈 하나 없이 가득 차 있었다. 그나마 젖어 있던 안이 다시 쫀득해졌다.

“앗……, 읏, 읏…….”

어쩔 줄 모르고 벌어진 입에서 앓는 소리가 쏟아졌다.

죽, 죽, 긁어 올리고 빠듯하게 안을 채우는 기둥이 달궈진 쇠몽둥이 같았다. 뜨겁고 단단한 것이 안을 벌리고, 가득 채울 때마다 내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화수의 발이 벌벌 떨렸다. 바닥을 디딘 발가락이 어쩔 줄 모르고 오그라들었다. 어쩔 수 없이 힘이 들어가는 엉덩이 위에 동그란 보조개가 깊어졌다.

아래에서 엉덩이를 밀어 올리듯 박던 것이 방향을 바꿨다. 이번엔 아래로, 찍어 내리듯 박아온다. 각도를 달리해 배를 뚫어버릴 기세로 들어오는 기둥에 온몸이 긴장했다. 상대가 거의 본능적으로 버둥거리는 허리를 꽉 누르며 다시 끝까지 뺐던 기둥을 퍽, 하고 뿌리 끝까지 거칠게 쑤셔 넣었다.

손 아래 피부가 조여드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기분이 좋았다. 한일자로 닫혀 있던 입술 끝이 살풋 위로 말려 올라갔다. 미치게 매력적인 미소였다. 정작 그렇게 기분 좋게 해준 화수는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하아.”

나른한 숨소리와.

“아흐으…….”

화수의 진저리를 치는 신음소리가 뒤섞여 공기의 농도가 단숨에 짙어졌다. 방 안 공기가 질척했다. 달큰한 향과 비릿한 정액 냄새가 잔뜩 섞여 발정한 수컷을 더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아, 아, 아-”

퍽, 퍽, 퍽, 거칠게 허리를 찍어 누른다. 리 샤오가 화수가 허벅지 아래에 꿇고 있던 다리를 빼고 체중까지 싣자 버티던 엉덩이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주저앉는다. 주저앉는 엉덩이를 쫓아가 더 깊이 집어넣었다.

“흣.”

리 샤오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터졌다. 안이 확- 조였다.

터지겠네.

리 샤오가 짧은 감상을 내놓았다. 원래 사내의 구멍이 이렇게 조이는 건가, 아니면 이 구멍이 유난히 쫄깃한 건가. 조금 전 싸놓은 정액으로 그나마 느슨하던 입구가 리 샤오의 것을 잘라버릴 기세로 꽉꽉, 조이고 있었다.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그렇게 결론 낸 리 샤오가 허리를 꽉 눌러 고정시킨다. 벌벌 떠는 엉덩이가 자꾸만 위로 도망치려고 바르작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먹잇감이 도망치려고 하면 더 난폭해지는 것이 맹수였다. 물론 녀석도 다 알면서 그러는 것이겠지만. 닳고 닳은 녀석이 모를 리 없었다.

역시나 짜증나는 녀석이었다.

꾸욱, 혼을 내듯 붙잡은 허리를 아래로 당기며 이미 가득 찬 기둥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 허리를 잘게 떨었다. 짓이겨진 엉덩이가 부풀어 올랐다. 화수가 도리질을 쳤다. 바동거리는 뒷덜미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응, ……읏.”

등줄기 골이 깊어졌다. 사내의 피부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새하얗고 부드러운 살이 땀에 젖어가는 것이 고스란히 보였다. 핥으면 단맛이 날 듯도 했다. 상체를 숙인 리 샤오가 혀를 세워 날갯죽지를 핥았다. 단맛이라면 질색인 리 샤오였으면서.

짰다. 단맛이 날 거란 예상과 달리 실제 혀끝에 닿은 맛은 짠맛이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흠칫, 하고 떨리는 살갗에 떼려던 혀를 도로 내밀었다. 그러고는 슥, 옴폭하게 들어간 부분을 훑어 올렸다. 옴폭한 부분에 그림자가 깊어진다. 이번엔 도톰하게 튀어나온 날개뼈 부분을 이로 긁어 올리자 화수의 입에서 새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히-익.”

부들부들 떠는 몸을 꽉 누르고 이번엔 입술을 빨듯 쭉, 빨아 올렸다. 보기엔 부들부들해서 쪽, 빨릴 것 같았는데 의외로 탄탄해서 쉽게 딸려 올라오지는 않는다. 이를 세워 콱 깨물었다. 별로 세게 물지도 않았는데 금세 자국이 남았다. 살덩이를 베어 문 것처럼 배가 부른 기분이 들었다.

“싫, 읏, 응-”

“거짓말.”

참지 못하겠다는 듯 도리질을 치는 화수에 리 샤오가 곧바로 차갑게 일갈했다.

“아래 입은 싫지 않다고 하는데?”

“…….”

그리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리 샤오의 것을 물고 있는 입구가 오물오물거리며 기둥을 쭉쭉, 빨아 당겼다. 엉덩이 안쪽이 뻐근했다. 화수의 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귓불을 콱 깨물었다. 그에 아래 입이 굳었다가 이내 다시 쭉쭉 빤다. 제가 넣는 것이 아니라 숫제 먹히고 있는 것 같았다.

“거짓말을 하는 입은 어느 입이지?”

“……아-”

쑤욱, 기둥을 뽑자 달라붙어 있던 내장이 뽑힐 듯 딸려 나갔다. 되돌아오기도 전에 푹, 하고 박혀왔다. 뜨거운 살덩이로 배 속이 가득 찼다.

배가 올라붙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쑥, 뽑힌다. 다시 박혀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예상했던 통증은 없었다. 어? 하고 화수가 몸에 힘을 뺀 그 순간, 퍽, 하고 엇박자로 치고 들어왔다.

“아으으.”

엉덩이가 벌벌 떨렸다. 저도 모르게 뒤로 손을 뻗어 휘저었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통증과 쾌감이 뒤섞여 머리가 어떻게 돼버릴 것 같았다. 손끝에 닿는 단단한 허벅지를 밀었지만 소용은 없었다. 허리를 누르고 있던 손으로 화수의 손을 붙잡은 리 샤오가 그 채로 등을 콱, 눌러 고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쳐올린다. 이번엔 엇박이 아니었다.

“하으응, 아읏, 읏…….”

무릎이 접혔다. 엎드린 채 아이처럼 다리를 바동거린다. 허벅지까지 올라탄 리 샤오에게 짓눌려 움직일 수 있는 건 무릎 아래뿐이었다. 둥둥, 허공을 부유하던 두 발이 리 샤오의 엉덩이를 두들겼다. 물론 별 소용은 없었다. 그런 진저리를 치는 화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리 샤오는 제가 원하는 대로, 아니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 집요하게 안을 박고, 쑤셔댔다.

미칠 것 같았다. 아래가 말 그대로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녹아버린 건지도 몰랐다. 녹아서 리 샤오의 것에 달라붙어 버린 듯했다.

질척, 질척, 마찰하는 젖은 소리로 두 개가 달라붙지는 않았음을 짐작할 뿐이었다.

“아, 으, 응, 응, ……으-.”

말 그대로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호흡이 엉켰다. 벌어진 입에서는 신음이 쏟아졌다. 꽉 감은 눈앞으로 물기가 가득 차올랐다.

물에 빠진 것 같은 아득한 기분. 어쩌면 정말 그런지도 몰랐다. 말 그대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은 정말 봐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정도로 절대적인 힘에 우위가 있었다. 물론 체격적인 차이가 있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무서울 정도로 차이를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제, 제발, 아, 응-, 어, 어떻게, 좀. 읏-, 으-”

화수가 애원했다. 제가 생각해도 색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헐떡임이었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사타구니가 터질 것 같았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엉덩이 아래쪽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이대로 몸이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다행히도 그 서툰 애원을 들어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거칠게 누르고 있던 뒷덜미를 놓고 두 손으로 허리를 꽉 붙들었다.

안을 채우던 것이 좀 더 커진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사실, 확신은 없었다. 화수는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리 샤오가 단단한 손으로 엉덩이가 주저앉지 않도록 꽉 붙든 뒤 빠르게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누르던 손이 없어졌지만 화수는 여전히 얼굴을 바닥에서 떼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거친 움직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엉덩이만 들린 채 꿰뚫린다. 그럴 때마다 눈앞이 번쩍번쩍였다. 들린 아랫배가 동그랗게 뭉쳤다 풀어졌다를 반복한다. 이마를 대고 엎드린 화수의 벌어진 입에서 침이 줄줄 흘렀다. 배 속이 축축했다. 질척질척거리는 젖은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퍽, 퍽, 몇 번을 거칠게 쳐올리던 리 샤오가 허리를 잡아 뺐다. 끄트머리까지 다 잡아 뺀 것을 입구가 채 다물리기 전에 퍽, 하고 박아 넣었다.

“아으으.”

화수의 허리가 옴폭하게 들어갔다. 리 샤오가 도망치는 허리를 붙들고 다시 한 번 더 깊이 제 성기를 찔러 넣었다. 눈앞이 쑥, 꺼졌다.

“흣.”

확, 쫀득하게 조여드는 감각에 리 샤오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번엔 리 샤오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조여든 입구에서 제 것을 잡아 뺐다. 의외로 미끄러지듯 빠져나왔지만 당하는 쪽은 내장이 뽑히는 것 같았다. 리 샤오가 다시 한 번 찍어 올렸다. 사정감으로 꽉 오므린 몸이 쪼개지는 느낌이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옴찔옴찔, 떠는 몸을 꽉 끌어안으며 리 샤오가 가는 어깨에 이를 박아 넣었다. 뜨끈한 통증과 함께 안이 뜨거운 것으로 가득 찼다.

“……하, 읏-”

리 샤오는 집요했다.

빼지도 않고 자세만 바꿔서 벌써 몇 번째인지. 네 번째 이후로는 세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아직도 배 속의 물건은 전혀 식지 않은 채 안을 들락이고 있었다. 식기는커녕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 커진 듯한, 말도 안 되는 착각도 들었다.

지금 같아서는 한 번이면 흐물흐물해지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물론 그 한 번은 제대로 박아줬으면 좋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커다란 손이 턱, 하고 머리를 움켜쥐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귀신같은 남자였다. 낮고 날이 선 음성에 자신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한 것이 들켰음을 화수도 눈치챘다.

“이 조그만 머리통으로.”

“아무, 생각도.”

조루 손님 쪽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 일단 화수가 시치미를 뗐다. 가만히 내려다보는 시선을 화수가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뭐 머릿속을 벌려볼 거야 어쩔 거야. 그런 생각으로 시선을 부딪쳤지만 심장이 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눈앞의 남자라면 진짜 그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이내 상관없다는 듯 시선을 물린다. 따끔한 시선이 물러나자 그제야 조금 쪼그라들었던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안도감은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이 정도는 여유로운 모양이군.”

나직이 중얼거린 리 샤오가 제 위에 앉혀두었던 화수를 휙, 하고 뒤로 밀었다. 변명할 틈도 없었다.

“힉-”

그대로 뒤로 밀린 화수의 등이 바닥에 닿았다. 그 위를 리 샤오가 올라탔다. 그 바람에 겨우 박혀 있던 것이 빠져나갔다. 주르륵, 안에 싸놓은 정액이 흘러내렸지만 아래쪽으로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다물어지지 않은 입구에서 정액이 끝도 없이 줄줄 샜다.

“다시는 딴생각 못 하게 해주지.”

“그런 적 없-, 흐읏……!”

화수가 황급히 변명했지만 이미 불이 들어온 리 샤오에게는 닿지 않았다. 한쪽 다리를 접어 올린 리 샤오가 빠진 기둥을 쑥- 집어넣었다.

반쯤 벌어져 있던 입구라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반이나 삼켜졌다. 안이 요동쳤다. 막힌 듯하던 안이 좀 더 힘을 주어 쑤시자 단숨에 벌어지며 끝까지 기둥을 삼킨다. 꾸직꾸직, 점성이 있는 액이 좁은 입구를 삐져나오는 감각은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진저리를 치는 화수를 리 샤오가 꽉 눌렀다. 그리고 잡아 뺐던 허리를 다시 밀어 안을 쑤셨다. 흐물했던 안이 다시 단단하게 길이 나고 있었다. 아랫배로 열기가 몰렸다. 오늘만 벌써 몇 번째인가,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저 리 샤오가 만족해서 그만둘 때까지 흔들리고 신음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 전에 기절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람이었지만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안을 쑤시는 기둥은 여전히 식을 줄 몰랐고, 유곽의 밤은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들어와서 기다리시지요.”

똑똑. 창문을 내리자 다가와 있던 진도현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쉽게 끝이 날 것 같지 않네요. 저보다 카이 비서관께서 더 잘 아실 테지만.”

하지만 카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도현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의 말에 선뜻 동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아는 리 샤오는 여자를 안을 때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쌓인 걸 푸는 정도일 뿐 그마저도 다른 사람과 같이 잠드는 것을 싫어해서 관계가 끝나면 곧바로 여인의 방을 나와버리곤 했다. 그런데 벌써 몇 시진째, 여인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고 있다니. 귀로 듣고서도 조금 믿기질 않았다.

“아니면 돌아가서 기다리시든가요. 제 차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

아차 싶었다. 사람을 세워놓고 너무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던 모양이다. 기다리던 진도현이 한마디 덧붙였을 때에야 카이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말씀은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비서관께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이 가게 사람들은 영 괜찮질 않아서요.”

“…….”

까딱, 고개를 기울이는 진도현에 그제야 카이의 눈에도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가게로 들어가는 발길이 뚝 끊어졌다 싶었더니, 자신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자동차에, 운전석뿐만 아니라 옆좌석에까지 사람이 앉아 지켜보고 있으니 굳이 꿀리는 것이 없는 이들도 그 앞을 통과해서 가게로 들어가기가 쉽지가 않았을 터이다. 도성 내 유곽이 여기뿐인 것도 아니고.

결국 카이가 매고 있던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럼, 잠시 들어가 있죠.”

곧 죽어도 돌아가는 건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가 책임지겠다고 했음에도. 뭐, 상관없었지만. 진도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잘됐군요.”

물론 카이가 그런 데에는 조금만 있으면 리 샤오가 나올 거라고 예상한 이유도 있었지만 진도현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혼자 술잔 기울이려니 심심했는데, 함께 한잔하시죠. 좋은 술도 반병이나 남았거든요.”

걸음을 내딛던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자서, 요?”

왜 굳이 원하는 대로 골라잡으면 되는 유곽에서 심심하게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인지 조금 이상해서 되묻고 말았다. 물론 대답을 들어도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지만.

“제 술상대였던 두 사람이 같은 방에 들어가 있어서요.”

“그게 무슨-”

되물으려던 카이가 일순 말을 멈췄다. 말을 하던 머릿속으로 뭔가가 스쳤다.

“설마.”

“네, 화수를 안고 계시지요.”

빙그레 웃는 얼굴을 찌푸린 얼굴로 마주하던 카이가 되물었다.

“……정말입니까?”

“설마, 제가 리 샤오 님을 억지로 그 방에 밀어 넣었을까 봐요.”

“…….”

그런다고 순순히 들어갈 분이십니까. 뒷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전적으로 맞았다. 대장은 그럴 분이 아니었다. 물론 제 발로 그 사내의 방에 들어갔다는 말이 제일 믿기지 않았지만.

“자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못다 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나누지요.”

멍하게 서 있는 카이를 진도현이 밀었다.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반쯤 정신이 나간 터라 그대로 걸음을 내디딘다.

“끝이 나면 알리러 올 터이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덧붙이는 말에 멈칫했던 걸음이 다시 내딛어졌다. 물론 동틀 녘까지는 오기 힘들 듯하지만, 이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뭐, 제가 말하지 않아도 카이가 더 잘 알 테니까.

“이리로 오시지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집사영감이 화색을 띠며 안내를 시작했다. 더 이상 밀지 않아도 카이는 제 발로 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다. 한 발 정도 뒤처진 진도현은 입구를 들어서기 전 일순 시선을 입구 건물 뒤, 맨 구석진 별채 쪽으로 향했다.

뭐, 카이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게 눈앞에 보이는 것도 싫어하던 사내를, 심지어 자리에 나오지도 않고서도 제 방으로 끌어들이다니. 아마도 그마저도 의도했으리라. 수컷의 본능이란 그런 것이니까. 매번 느끼지만 대단한 녀석이었다. 짜증날 정도로.

그렇게 생각하는 진도현의 얼굴에 그림 같은 미소가 사라졌다.

“진 사장님?”

입구에서 신발을 정리하는 시종이 문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 진도현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진도현이 고개를 틀어 걸음을 내디뎠다. 물론 안으로 들어서는 진도현의 얼굴에는 조금 전 그린 듯한 미소가 다시 번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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