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몸살 (20/21)

몸살

저벅저벅, 복도를 가로지르는 걸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바로 코앞에, 장지문만 열면 녀석이 있다는 걸 다 알면서, 그럼에도 늘 이 순간만 되면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확인하는 것이 두려우면서, 동시에 한시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오셨습니까.”

리 샤오의 귀가 소식을 듣고 마중을 나온 집사가 허리를 굽혔다. 그러면서도 리 샤오의 앞을 가로막지 않기 위해 옆으로 비켜서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제 주인이 겉으로는 태연해 보여도 속마음은 그 어떤 때보다 초조하고 조급한 상태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옷이 찹니다.”

내내 말없이 뒤따르던 집사가 리 샤오의 걸음을 저지한 것은 장지문 바로 앞에서였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리 샤오는 저항하지 않고 걸음을 멈췄다. 그 모습이 꼭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처럼-심지어 리 샤오가 어릴 때도 그런 모습은 보지 못했다-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니리라. 노인이 황급히 리 샤오의 탈의를 도왔다. 건네받은 코트에서 달고 들어온 겨울바람 냄새가 훅 풍겼다.

“행여 고뿔이라도 들면 큰일이 아닙니까.”

차가운 기운은 갓난쟁이에게도, 몸이 약한 환자에게도 좋지 않았다. 물론 집사의 염려는 전자에게 좀 더 기울어져 있었지만 리 샤오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데는 후자가 더 확실한 역할을 한다는 것 역시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화수는?”

“내내 주무시다 좀 전에 깨셨습니다. 지금은 애기씨를 보고 계세요.”

리 샤오의 미간이 못마땅하다는 듯 일그러졌다.

“더 쉬게 두지 않고.”

“화수 님께서 보고 싶다 하셔서.”

“…….”

이번에도 구겨진 미간처럼 입술이 꾹 닫혔다. 슬그머니 올라가는 입술을 집사가 꾹 눌렀다.

받아 든 코트를 뒤따라 온 시종에게 건넸다. 코트를 든 시종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그 시점까지도 리 샤오는 여전히 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옷만 벗어 던지면 곧바로 문을 열어젖히고 방 안으로 튀어 들어갈 것 같던 리 샤오가 머뭇거리고 있는 이유를 집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차가워진 몸의 온도를 높이고 있는 거였다. 물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스스로는 춥다는 생각조차 한 적 없는 이가 방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위해서 당장이라도 달려 들어가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고 있는 중이었다. 허나 상대는 그리 인내심이 많지 않았다.

드륵.

“뭐 하십니까?”

열린 문 사이로 화수의 모습이 드러났다.

“들어가려던 참이었는데.”

퍽 불량스럽게도 고개까지 까딱이며 묻는 화수에 리 샤오가 태연히 대답했다. 너를 생각해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는 변명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런 리 샤오를 대신해 변명을 해줄까 싶었지만 노인도 이내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들어올 거면 빨리 들어오세요. 찬바람 듭니다.”

정작 문을 열어젖힌 쪽은 화수였지만 리 샤오는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재빨리 걸음을 내딛는 리 샤오에 화수가 뒤로 물러섰다.

“이리 줘.”

문지방을 넘어선 리 샤오가 화수의 품에서 아이를 데려갔다. 물론 그런 리 샤오의 손길을 화수는 거부하지 않았다. 이제 두 사람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전개였다. 대신 아이를 넘겨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장지문을 닫았다.

탁. 허리를 숙인 채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집사가 이내 발길을 돌렸다. 주인이 돌아왔으니, 저녁을 준비할 차례였다. 역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전개였다.

“무겁게 왜 안고 있어.”

사실 내내 눕혀놓았던 아이를 안아 든 것은 장지문 너머 리 샤오를 확인하러 나가면서였다. 순한 아이는 혼자 뉘어놓아도 보채는 법이 없었다. 방싯방싯 웃다, 끙끙거리다, 또 조용해져서 보면 색색거리며 잠이 들어 있었다. 울거나 칭얼대면 몸이 약한 화수의 옆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종들은 아이가 벌써부터 기특하게 엄마를 편하게 한다고 칭찬했지만 사실 화수는 그것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나마 다행한 점은 리 샤오와 있을 땐 아이가 맘껏 보채거나 칭얼대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리 샤오에게 아이가 순하다는 화수의 말은 전혀 먹히질 않아 곤란할 때가 많았다.

바로 지금처럼.

“으에에엥.”

리 샤오에게 안겨 있던 갓난쟁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당황한 화수가 손을 내밀며 다가섰지만 리 샤오는 말없이 한 발 물러서면서 아이를 고쳐 안았다. 아이의 얼굴을 다 덮을 만큼 커다란 손이 통통한 엉덩이를 토닥였지만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배가 고픈 모양이군.”

오물거리는 입술로 연유를 알아차린 리 샤오가 문 쪽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 뒤를 화수가 쪼르르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울음소리를 듣고 이미 기다리고 있던 양양댁이 리 샤오에게서 아이를 받아 들었다. 안 그래도 배고플 시간이 되었다 싶어 데리러 온 길이었는데 한발 늦었다.

“밥 많이 먹고 와.”

한 시진마다 젖을 먹는 아이에게서는 늘 달큰한 젖냄새가 났다.

우느라 시뻘게진 아이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린 화수가 한 발 뒤로 물러서자 양양댁이 아이를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지른다. 젖어멈에게 향하는 그녀의 걸음이 조급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탓이었다. 그 모습을 복잡한 기분으로 보고 있으려니 머리 위에서 내뻗어진 손이 탁, 하고 장지문을 닫아걸었다.

“찬바람 들어와.”

화수가 눈으로 항의했지만 리 샤오는 태연히 제 할 말만 할 뿐이다. 이내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 화수를 그대로 당겼다. 화수도 저항하지 않고 리 샤오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끌려갔다.

“그래서.”

턱을 끌어 올린 리 샤오가 제 바로 아래 있는 화수를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잘 다녀왔냐는 인사는?”

처음엔 불안해하는 리 샤오를 위해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화수가 깜빡하고 하지 않으면 리 샤오가 챙겨 받는 인사가 되었다. 별것 아닌 그 인사가 리 샤오는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어깨를 으쓱인 화수가 순순히 입술을 열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그런 화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리 샤오도 조용히 대꾸했다.

“다녀왔어.”

이상도 하지. 겨우 한나절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왜 이리도 애틋한 기분이 드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더 오랜 시간 그리워만 하던 시간도 있었는데 말이다. 눈빛을 교환하던 리 샤오가 천천히 화수의 턱을 놓았다.

아. 떨어져나가는 손길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 손을 붙들지는 않았다. 묘하게 거리를 두는 리 샤오를 화수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눈치채고 있다고 해서 민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젖어멈을 새로 구한다네요.”

문득 생각난 아무 말이나 내뱉은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래?”

대답을 하긴 했지만 사실 크게 관심 있는 주제는 아니었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꾸한 리 샤오는 이미 세 번째 단추를 끄르는 중이었다.

“젖이 둘을 먹이기엔 부족한 모양이에요.”

젖어미는 비슷한 갓난쟁이가 있는 여인들 중에서 뽑는 터라 어미의 젖이 적으면 한 아이는 굶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경우 보통은 자신의 아이를 굶기고 젖어미로 들어간 집안 아이를 우선하곤 했는데 화수는 영 그것이 내키지 않았다. 다행히 집사도 젖양이 적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른 젖어미를 찾겠다고 한 것. 새로 올 이는 이번에 여섯 번째 아이를 낳은 이라 모유가 부족할 일은 없을 거라는 집사의 말을 들었지만 화수는 아이에게 젖동냥을 시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도 젖이 나오면 좋을 텐데.”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화수 역시도 말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내뱉은 것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하지만 이리 딱 잘라 안 된다는 소리를 들으면 불뚝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차피 일어나지도 않을 일인데, 뭘 그리 정색을 하는지.

“어차피 나오지도 않습니다.”

“혹 나오더라도 안 돼.”

고개를 튼 리 샤오의 표정이 험악했다. 건성으로 대답하던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이제 겨우 기운을 차렸는데, 젖까지 물렸다간.”

험악하던 눈매가 괴로운 기색으로 바뀐 것은 순식간이었다. 바로 눈앞의 화수를 보고 있지만 사실 리 샤오의 시선은 그날의 화수에 닿아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화수가 변명하듯 말했다.

“이젠 안심해도 된다고, 홍 의원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

화수의 말에 조금 누그러지긴 했지만 괴로운 기색은 그대로였다. 화수도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리 샤오의 기분을 덜 거슬리게 한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공기가 무거웠다. 팽팽히 당겨진 공기에 화수도 난감해하고 있을 때였다.

“누구야.”

장지문 너머 인기척을 느낀 리 샤오의 반응이 날카로웠다. 허공을 부유하던 화수의 시선도 문 쪽을 향했다.

“죄, 죄송합니다. 시, 식사 준비가 다 되어서…….”

얇은 종잇장을 넘어 들려온 시종의 목소리에 솔직히 안심한 것이 사실. 화풀이 대상이 된 시종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제가 잘못했으니, 그만 밥 먹으러 가시죠.”

어깨를 으쓱인 화수가 한발 물러났다. 하지만 리 샤오는 여전히 날카로운 기운을 어쩌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쯤 되면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배고픕니다.”

작게 한숨을 내쉰 화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리 샤오의 걸음이 앞으로 내딛어졌다. 잘못했다는 말보다, 그 말이 더 리 샤오를 움직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 역시 경험으로 터득한 터였다.

“아직 결정을 못 하셨습니까.”

집사의 물음에도 가시를 바른 생선살을 화수의 숟가락 위에 올려주는 움직임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수저를 입으로 가져가던 화수가 고개를 들어 집사와 눈을 맞췄다. 덕분에 갓 지은 밥 위에 기름이 자르르 도는 굴비가 올려진 수저가 공중에서 멈췄다.

결국 리 샤오의 시선도 집사를 향했다. 살짝 짜증이 난 눈빛을 읽은 집사가 급히 뒷말을 잇는다.

“애기씨 이름 말입니다.”

아. 집사의 말을 들은 화수의 눈이 조금 커졌다. 범부의 집안의 아이는 보통 돌이 될 때까지는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 갓난쟁이가 원인 모를 병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아주 흔한 일이었으므로. 아이가 제 발로 걸어 다닐 때까지도 이름이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연히 부잣집도 사정이 비슷하리라 싶었는데, 아니었던 모양.

“오늘 본가에서 인편으로 애기씨 이름으로 하면 좋을 이름들을 뽑아 보내주셨는데, 혹 마땅한 것이 없으시면-”

“필요 없어.”

이름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는 화수와 달리 리 샤오는 시큰둥한 얼굴로 딱 잘라버린다. 그러고는 허공에 멈춰 있는 화수의 손을 살짝 밀었다. 엉겁결에 입안으로 들어오는 밥을 삼키고 화수가 그것을 우물우물 씹었다. 짭조름한 굴비의 간이 흰 쌀밥에 딱 맞았다.

맛있네. 상황도 잊고 잠시 감탄을 하던 화수가 뒤늦게 입안의 것을 재빨리 씹어 삼켰다. 하지만 이번에도 리 샤오가 한발 빨랐다.

“우리가 알아서 정할 거니까.”

덕분에 왜 필요가 없냐, 라는 항의의 말은 그대로 화수의 입안으로 사그라졌다. 대신 다른 의문이 생겼지만.

“알겠습니다.”

리 샤오가 그리 나오니 집사도 더 이상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싶었는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대신 상황을 지켜보던 화수가 슬그머니 물었다.

“그 우리라는 데, 저도 포함되어 있는 겁니까?”

“왜. 싫어?”

툭, 하고 내뱉듯 물으면서도 리 샤오는 발라진 굴비를 수저 위에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다기보다는.”

제가 까막눈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게다가.

“제가 지은 이름,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거 아닙니까?”

되묻는 화수에 리 샤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듯 되묻는다.

“내가?”

“아명 말입니다.”

왠지 억울한 기분에 황급히 대꾸하자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았는지 리 샤오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물론 리 샤오의 미간이 구겨진 건 조금 다른 연유에서였지만.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

물론 말로 한 적은 없지만 분명 제가 샤샤, 라는 이름을 되뇌었을 때 묘하게 굳던 리 샤오의 얼굴을 놓치지 못했다. 아마도 멋대로 자신의 이름을 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어렴풋이 그런 짐작을 한 뒤로는 혼자 있을 때 말고는 그 이름을 되뇐 적이 없었다.

“아명이 있으셨습니까.”

그러니 집사가 놀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리 샤오가 한발 빨랐다.

“그래서, 부르지 못했던 건가?”

“…….”

“내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꼭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화수의 말끝이 점점 흐려진다. 그런 화수를 보는 리 샤오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분명 조금 전보다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뭔가 변명을 하려 입술을 벌렸던 화수가 이내 눈치를 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괜히 기분만 상하게 하느니 차라리 입을 다무는 쪽이 나았다. 허나 이번엔 열릴 것 같지 않던 리 샤오의 입술이 툭, 하고 열렸다.

“샤샤.”

“예?”

다만 그리 말하는 리 샤오의 시선은 화수가 아닌 집사에게 향해 있었다. 영문을 몰라 눈만 굴리고 있는 집사를 위해 설명이 이어졌다.

“녀석의 아명 말이야.”

“……아.”

다소, 불친절한 설명이긴 했지만 집사도 그 말이 조금 전 자신이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연유를 알아차린 뒤에도 집사의 표정에는 여전히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아명이네요, 도련님과.”

샤샤라는 아명은 리 샤오의 아명이기도 했던 것.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집사의 말에 화수의 눈매가 기름해졌다.

“리 샤오 님의 아명도, 샤샤였습니까.”

되묻는 화수에 오히려 집사가 되묻는다.

“모르셨습니까?”

전혀. 그런 이유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당황해서 지은 표정이었을 거야. 싫어서가 아니라.”

하지만 덧붙이는 리 샤오의 말에 화수의 표정이 불퉁해진 것은 당연한 수순.

“그런 거면, 말씀을 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내 이름이 샤샤라고 내 입으로 말하는 게 썩 내키지 않아 그런 것뿐이야.”

“그렇긴, 했겠네요.”

그 변명을 듣고 나니 화수도 조금 누그러졌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리 샤오의 아명이 이리 귀엽고 깜찍한 것일 줄. 물론 맹수도 새끼는 귀엽고 깜찍하긴 하지만, 눈앞의 사내는 어렸을 때조차 이런 표정과 분위기를 풍겼을 것 같달까.

“나쁘지 않았어.”

“…….”

“아니, 오히려 좋았어. 네 입에서 샤샤라는 이름이 나오는 거.”

그 이름을 화수의 입으로 들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뿐. 리 샤오의 솔직한 고백에 화수의 귀가 천천히 벌게진다.

“아까운 짓을 했네요.”

“그러니까.”

화수의 말투는 여전히 퉁명스러웠지만 리 샤오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앞으론 괜한 눈치 같은 거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

“참말이십니까.”

“그래.”

“나중에 딴말하시기 없습니다.”

거듭 확인하는 화수에도 리 샤오는 가만히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화수의 표정도 천천히 누그러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조용히 시선만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 사이를, 내내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집사가 결국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그래도 이름은 지으실 거지요?”

아명은 아명이고, 이름은 이름이 아닌가. 이대로 두었다간 샤샤라는 아명이 이름이 될 기세라 집사도 어쩔 수 없었다.

“어쩌고 싶어?”

하지만 집사의 재촉에도 리 샤오의 시선은 화수에게 향했다. 리 샤오의 질문에 집사의 눈치를 살피던 화수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아까우니까, 한동안은 샤샤로 부르다가 나중에…….”

지금 이름을 지어버리면 샤샤라는 아명은 더 이상 부를 일이 없을 것이 아닌가. 무려 리 샤오가 좋다고 한 것인데. 아쉬운 마음에 말끝을 흐리자 리 샤오는 더 이상 화수가 아닌 집사에게 시선을 틀었다.

“그렇다는데?”

“……알겠습니다.”

의견을 묻는 것 같지만, 알아들었으면 뒤로 물러나라는 의미임을 집사가 모를 리 없었다. 고개를 숙인 집사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앞으로 애기씨를 부를 이름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원하는 동안은 샤샤라 불러도 되니까. 이제 그만 수저 들어.”

리 샤오의 말에 화수가 순순히 수저를 들었다. 배가 이미 차긴 했지만 리 샤오가 생선살을 발라주는 그 다정함이 좋았다. 뭐, 한두 수저 정도는 괜찮겠지. 그리 생각한 화수가 수저로 흰 쌀밥을 듬뿍 떴다. 그 위로 잘 발린 굴비 한 덩이가 기다렸다는 듯 얹어졌다.

* * *

“왜.”

잠결에 낸 목소리일 텐데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선명했다. 아닌 척 숨을 죽여보지만 이미 리 샤오가 내뻗은 손은 화수의 이마에 닿아 있었다.

“뭐야.”

닿은 손바닥이 서늘했다. 반사적으로 눈을 가늘게 감으며 낮은 숨을 내쉬는 화수와 달리 리 샤오는 자리에서 튀어 오르듯 벌떡 일어났다.

“너 열 있잖아.”

사실 리 샤오의 손이 서늘한 것이 아니었다. 체온이 높아 한겨울 추위에도 온몸이 뜨끈뜨끈한 리 샤오의 손이 차가울 리가 없었다.

“그냥 좀, 체기가 있는 것뿐입니다.”

별것 아닌 듯 말하고 싶었지만 제가 들어도 그리 말하는 제 목소리가 썩 좋게 들리지 않았다.

“언제부터?”

게다가 안심하라고 꺼낸 변명이 잠자리에 들기 전부터 이미 몸이 좋지 않았던 것에 대한 고백이 되고 말았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늦었다.

“대체 언제 말할 생각이었지?”

“…….”

사실 들키지 않았다면 끝까지 모르게 하고 싶었다. 안 그래도 저를 깨지는 유리조각 취급하는 리 샤오가 아닌가. 조금 과식을 한 정도로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더 최악의 상황이 되었지만.

“이야기는 나중에 해. 지금은 홍 의원을 부르는 것이 먼저니까.”

이를 악물고 말한 리 샤오가 몸을 일으켰다. 물론 그러면서도 화수의 목까지 이불을 여며주는 것은 잊지 않았다.

“부르고, 금방 올 테니까.”

제게 매달리는 화수의 불안한 눈빛을 알아차리고 리 샤오가 한 번 더 화수의 이마를 손으로 쓸어주며 나직이 속삭였다. 서늘한 기운에 화수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고작 체한 것뿐인데 이 새벽에 홍 의원까지 부를 필요가 있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리된 마당에 그런 말을 해봐야 리 샤오가 그 말을 들을 리도 없었고 솔직히 몸 상태가 좋질 않았다.

꼭 몸살이라도 온 것처럼 열이 들끓고,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무엇보다 꽉 막힌 듯이 답답하던 가슴께가, 이제는 누가 꽉꽉 쥐어짜는 듯이 통증까지 일었다. 이쯤 되니 화수도 덜컥 겁이 났다.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조그만 아이를 떠올리니 두려움은 배가 되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세상 무서울 것 없던 화수가 아니던가. 죽는 것도 두렵지 않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고작 몸이 조금 아프다고 이리 겁이 나고, 무서운 기분이 들다니.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변화였다.

그것이 새끼를 가진 어미의 마음임을, 누구도 가르쳐준 적이 없으니 경험으로 깨닫는 수밖에 없었다.

화수가 한기가 드는 몸을 웅크리며 이불을 여몄다. 화가 난 리 샤오라도 얼른 돌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혹 가슴에 통증은 없으십니까?”

진맥을 짚던 손을 내려놓고 홍 의원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리 샤오의 눈치를 살피면서 화수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자 흐음, 하고 홍 의원이 묘한 소리를 냈다.

“왜. 심장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리 샤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단숨에 험악해진 기세에 홍 의원이 황급히 고개를 내젓는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 것이 아니면?”

“그것이…….”

허나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묘하게 뜸을 들이는 홍 의원의 모습에 리 샤오는 제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또 무슨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눈을 감고 축 늘어진 화수의 모습은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모습이었다.

“홍 의원. 그리 뜸들이지 말고 빨리 좀 고하시게.”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리 샤오에 보다 못한 집사가 재촉하고 나섰다. 그제야 홍 의원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달싹이던 입술을 열었다.

“몸살이십니다.”

아이고. 혹 심각한 병명이라도 나올까 마음을 졸이고 있던 집사가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뱉어냈다. 그리고는 이내 기가 막히다는 듯 따져 묻는다.

“고작, 몸살 가지고 그리 뜸을 들였단 말인가.”

물론 그것도 안심을 하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여유였지만 말이다. 허나 홍 의원이 그리 뜸을 들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몸살은 몸살인데.”

“…….”

“젖몸살이 오셨습니다.”

책망하던 집사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는 것을 보며 홍 의원이 거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가능한가?”

굳어 있던 집사가 이내 눈매를 가늘게 뜨면서 물었다.

“새끼를 낳았으니, 젖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이치지요. 다만 그동안은 몸이 다 회복이 되지 않아 젖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고, 이제는 확실히 안심해도 될 정도로 회복이 되신 모양입니다.”

“그렇구만. 허면 애기씨에게나 화수 님에게나 다 잘된 일이 아닌가.”

“뭐가 잘된 일이라는 거지.”

잘되었다며 반색하는 집사와는 달리 나직이 중얼거리는 리 샤오의 목소리는 순간 등줄기가 오싹할 만큼 서늘했다. 방 안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먹을 것을 게워낼 만큼 열이 오르고 통증까지 있다는데.”

“사실 그건 산모라면 다 겪는-”

“별것 아니라는 말이라면 닥치는 게 좋을 거야.”

“…….”

홍 의원은 리 샤오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대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서.”

“…….”

“설마 그냥 이리 아프게 두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아, 그것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시금 사나워지는 리 샤오의 기세에 홍 의원이 빠르게 뒷말을 잇는다.

“지금 이리 아픈 것은 제대로 젖이 나오지 못하고 안에서 뭉쳐서 생긴 통증이니, 그것만 해결하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그런 방법이 있는데, 허면 지금까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점점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듯 리 샤오의 등 뒤로 패기가 슬금슬금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물론 제가 할 수도 있습니다만.”

하지만 그런 리 샤오에 홍 의원도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

“그곳을, 주물러주어야 하는데.”

단숨에 리 샤오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그제야 홍 의원이 말하는 곳이 어딘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리 샤오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홍 의원은 화수에게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성적인 리 샤오라면 당연히 제가 위협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화수만 관련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런 홍 의원의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험악한 기세는 여전했지만 리 샤오도 더 이상은 패기를 부풀리지 않았다.

“흠흠, 허면, 우리는 그만 나가보는 것이.”

한 발 물러서 있던 집사가 홍 의원을 향해 신호를 주었다. 화수에게 큰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집사도 더는 미련이 없었다.

“엄청 딱딱하게 뭉쳐 있을 겁니다. 좀 아프더라도 꼭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주물러주셔야 합니다.”

낯부끄러운 소리를 태연히 내뱉은 홍 의원이 왕진가방을 챙겨 들고 앞서 나간 집사의 뒤를 따랐다.

“안 그래도 젖어멈의 젖이 시원찮아 걱정이었는데, 참으로 잘된 일이지 않은가.”

사실 젖어멈의 젖이 시원찮다기보다는 애기씨의 먹성이 대단한 탓이었지만, 집사에게는 애기씨가 배불리 먹는 것만이 제일 중요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집사께서 특히 더 신경을 쓰셔야겠습니다. 애기씨에게 젖을 물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리 샤오 님이 가만있으시겠습니까.”

흘끔, 조금 전 나온 문 쪽을 살피며 중얼거리자 집사도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렴. 그래야지.”

“기운을 돋우는 약재들로 약을 지어 보내 드릴 테니, 조석으로 챙겨 드리십시오.”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가장 좋은 것들로만 부탁하네.”

“그런 걱정은 한 적도 없습니다만.”

그리 대답하는 홍 의원의 얼굴에 웃음기라고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이미 집사는 앞서 걷고 있던 터라 그런 홍 의원의 대꾸를 농이라 여긴 듯했지만.

“이왕 온 김에 애기씨도 봐주고 가시게. 어째 먹는 것이 부실해서 그런가, 좀처럼 살이 오르시질 않는단 말이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집사가 중얼거렸지만 홍 의원은 알고 있었다. 바로 며칠 전에 보았던 애기씨는 어떤 갓난쟁이보다도 통통한 볼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허나 그런 것을 다 알면서도 홍 의원은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고작 며칠 보지 못한 것만으로도 통통한 볼을 가진 애기씨가 눈에 밟히기는 홍 의원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리, 돌아앉아봐.”

어쩔 수 없다는 듯 내뱉는 목소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때문에 화수의 기분도 확 가라앉았다.

“제가, 하면 됩니다.”

하아. 등 뒤에서 들리는 낮은 한숨소리에 화수가 어깨를 흠칫, 하고 떨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하긴 했지만, 이러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

“그만 고집 피우고, 돌아앉아봐.”

“…….”

“화수야.”

“…….”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화수가 미동도 없자 리 샤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나지막이 말했다.

“나보다 홍 의원이 좋다면, 할 수 없지.”

“자, 잠깐, 싫-”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기척에 화수도 당황했다. 하지만 후다닥 몸을 일으키던 화수는 이내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대로 일어나 나가버리는 줄 알았던 리 샤오가 조금 전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기가 막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는 화수에도 리 샤오는 태연했다.

“나도 싫어.”

웃음기라고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툭, 하고 내뱉는 그 말에 결국 화수도 어깨를 늘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읏.”

화수의 입에서 새어 나온 신음에 리 샤오의 손이 멈칫한다. 화수가 숨을 죽였다. 하지만 이대로 그만두는 게 아닐까 걱정한 것과 달리 리 샤오의 손은 물러나지 않았다.

“아프면 말해.”

오히려 그리 말한 뒤 제게서 떨어지려는 듯 앞으로 쏠린 화수의 몸을 좀 더 제 쪽으로 당겨 안았다.

지금 두 사람은 자세는 자리를 잡고 앉은 리 샤오의 두 다리 사이에 화수가 등을 보이고 상태였다.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자세보다 낫지 않을까 싶어 그리한 것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괜한 짓을 했다 싶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몸의 모든 감각이 다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맨살이 닿은 가슴께보다도 등 뒤로 닿은 단단한 가슴께가 더 신경이 쓰였다. 숨결이 느껴질 때마다 목덜미의 솜털들이 바짝 섰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아-.

제대로 자리를 잡은 리 샤오가 다시금 가슴께를 천천히 쥐었다. 여인만큼은 아니어도 확실히 예전보다 쥐는 살집의 부피가 달랐다. 커다란 손으로, 손가락으로 쥐었다 놓기를 반복하자 단단하게 뭉친 것이 느껴졌다. 뭉친 근육을 확인하듯 그것을 손가락으로 더듬자 품 안의 몸이 긴장하듯 뻣뻣해진다.

“쉬.”

그런 화수를 달래듯 부드럽게 궁글리자 그제야 긴장했던 어깨가 천천히 주저앉는다. 하지만 단순히 문지르는 것만으로는 뭉친 곳이 풀릴 리가 없었다. 끌어안고 있는 몸이 뜨거운 열로 들끓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리 샤오가 경고했다.

“좀 아플 거야.”

반항은 없었다. 어느새 목덜미를 훌쩍 넘긴 머리칼이 땀에 젖어 있었다. 안쓰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으응-!”

단단하게 뭉친 가슴을 꽉 쥐었다가 부드럽게 문지르고, 또다시 꽉 쥐었다가 부드럽게 둥글리는 것을 반복했다. 맞닿은 등줄기가 땀으로 척척했다. 하지만 리 샤오는 주무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럴 땐 머뭇거리는 쪽이 오히려 더 괴롭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신 가슴을 쥐었다 놓기를 반복하던 리 샤오의 눈에 평소보다 훨씬 크게 부풀어 있는 젖꼭지가 눈에 들어왔다.

“힉.”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엄지와 검지로 그곳을 꼬집듯이 쥐자 화수가 거친 숨을 들이켜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지만 리 샤오는 이미 그럴 것을 예상했다는 듯 앞으로 고꾸라지는 몸을 꽉 끌어안고는 조금 전보다 더 센 강도로 젖꼭지를 쥐어짰다.

새까만 돌기에 반투명한 흰색의 물방울이 맺혔다.

“아, 아파.”

한 번 더 쥐어짜려고 하자 화수가 헐떡이며 통증을 호소했다. 잔뜩 예민해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앞으로 돌아앉아봐.”

웬만큼 아파서는 이리 아프다는 소리를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라 리 샤오도 더 이상 힘으로 쥐어짜는 방법은 포기했다. 대신 다른 방법이 떠올라 화수를 돌려 앉혔다.

“뭐, 뭘 어쩌려고.”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화수 역시 리 샤오가 이끄는 대로 뒤돌아 앉았다. 하지만 흐린 눈으로 되묻던 화수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새된 신음에 가까운 숨소리였다.

히-익.

그도 그럴 것이 고개를 숙인 리 샤오가 예고도 없이 화수의 가슴을 입으로 콱 물었던 것. 그제야 화수도 리 샤오가 자신을 돌려 앉힌 이유를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자, 잠, 아, 응-!”

물론 이를 세워 물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부푼 가슴께를 입술을 크게 벌려 무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온몸이 긴장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미 리 샤오의 단단한 두 팔이 화수의 가는 허리를 둘러 옴싹달싹할 수도 없는 상황. 살덩이를 물었던 입술이 천천히 끄트머리로 미끄러졌다. 그러고는 유난히 부푼 젖꼭지 부분을 이로 잘근잘근 씹었다.

물고 있는 젖꼭지에서 젖내음이 났다. 하지만 혀끝으로 겨우 느껴질 만큼만 찔끔찔끔 새어 나올 뿐이다. 안 되겠다 싶어진 리 샤오는 손으로 가슴께를 모아 쥐어짜듯 움켜쥐며 입으로 가슴을 쭉쭉 빨았다. 젖꼭지가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흣-, 응-”

어깨를 짚고 있던 화수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옷 너머로도 손톱이 살갗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지만 리 샤오는 젖꼭지를 빠는 짓을 멈추지 않았다. 뽑힐 것처럼 잔뜩 도톰해졌던 젖꼭지에서 수도꼭지가 터지듯 툭, 하고 젖이 쏟아져 나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울컥, 입안에 가득 퍼지는 진한 젖내음.

입술을 뗀 리 샤오가 옆에 있던 명견을 가슴에 대고 주무르자 하얀 명견이 투명하게 젖어들었다.

“아직이야.”

이제 됐겠지 하고 뒤로 물러서려는 화수를 리 샤오가 붙들었다. 그 말을 들은 화수의 미간이 일순 찌푸려졌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쪽 젖꼭지를 입에 무는 리 샤오를 막을 수는 없었다.

슥.

축 늘어져 있는 화수의 이마에 리 샤오의 손등이 닿았다.

“열은 내렸네.”

닿은 손이 따뜻한 것을 보니 그런 모양이었다.

“통증도, 가셨습니다.”

숨을 헐떡이던 화수도 가만히 되뇐다. 확실히 젖이 제대로 돌기 시작하니 가슴을 쥐어짜던 통증은 순식간에 사라져 있었다. 솔직히 몸도 가볍고, 온몸에 기운이 다 빠진 것 말고는 지금 화수의 몸 상태는 아주 좋은 편에 속했다.

“다행이군.”

그리 말하면서도 가만히 화수를 살피는 리 샤오의 눈동자에는 염려가 한가득이었다. 그리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큰 소용은 없을 듯해 그만두었다.

열만 확인하면 떨어져나갈 것 같던 커다란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볼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쓸어주고 볼을 가볍게 더듬는 손길. 그 손길이 좋아 화수가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 화수의 반응에 움찔, 하긴 했지만 리 샤오의 손은 그대로 화수의 볼을 감쌌다. 체온이 저보다 두 배는 높은 것 같은 손바닥의 열기가 볼을 데우고, 귀를 데우고, 천천히 몸 아래로 퍼져 간다.

“조금 나른하긴 하지만, 저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리 샤오 님은 어떠십니까?”

하지만 실로 오랜만의 그런 분위기에 마음이 설레는 것은 화수뿐인 모양이었다. 은근하게 유혹하는 화수의 물음에 리 샤오는 천천히 손을 물린 뒤 이불을 끌어와 그의 목까지 여몄다.

“그만 자둬.”

그러고는 그대로 일어나버리려는 리 샤오에 화수가 맥이 탁 풀린 목소리로 되물었다.

“혹 이제, 저한테 정떨어지셨습니까?”

“무슨.”

일어선 리 샤오가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기가 막히다는 리 샤오의 표정에도 화수는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계집이 아이를 낳고 나면, 관심을 잃는 사내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제 몸이 좋지 않아 그런 것이라고 애써 위안했지만 이쯤 되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불안이 자꾸만 뱃속에서 똬리를 틀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들었군.”

“아닙니까?”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리 샤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마주한 눈동자에 거짓은 단 한 톨도 없었다.

“허면, 그만 빼고, 좀 하시죠.”

“…….”

“솔직히 이리 달콤한 냄새를 흘리면서 먹지 말라니, 말이 됩니까.”

“……내가 할 말을 하는군.”

화수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저한테도 냄새가 납니까. 무슨 냄새요?”

슥. 화수의 손을 제 코끝으로 가져가 리 샤오가 냄새를 맡았다. 킁킁. 마치 야생의 맹수가 먹잇감의 냄새를 맡는 것처럼 냄새를 맡던 리 샤오가 나직이 내뱉는다.

“통째로 씹어 삼키고 싶어지는 냄새.”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은 그 말이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다행이네요.”

그런 화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리 샤오의 한쪽 눈썹이 슬쩍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화수의 그 말은 진심이었다. 사실 통째로 씹어 삼켜지는 것보다 리 샤오가 더 이상 자신을 원하지 않는 것이 더 괴로웠다.

그런 화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마주한 맹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대체 너는 어찌 이리 겁이 없는 거지?”

비꼬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 묻는 것이 분명한 눈동자에 화수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죽다 살아나봐서 그런가.”

“…….”

물론 화수 나름의 진지한 대답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런 화수를 리 샤오가 가만히 응시한다.

제 손으로 툭 치면 그대로 나가떨어질 것 같은 약해빠진 녀석이. 전장을 누비던 자신보다 더 겁이 없었다.

“너는 내가 원망스럽지도 않아? 나 때문에, 내 아이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

아아. 담담하게 묻고 있었지만 괴로움이 묻어나는 눈빛, 그리고 목소리에 그제야 화수도 조금은 리 샤오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괴로워했는지를 알아차렸다. 어쩌면 직접 겪은 자신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했던 리 샤오가 더 괴로웠을지도 모른다는 걸 이제는 조금 이해했다.

“녀석 때문에 그리도 괴로웠는데, 죽을 고비까지 넘겼는데, 그 녀석이 뭐가 예쁘다고.”

“…….”

화수가 아이를 예뻐하는 모습을 보면 안심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저라면 저도, 아이도 다 싫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리 샤오는 두려웠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선택한 겁니다. 만삭의 몸으로 도망까지 쳤던 거 잊으셨습니까?”

“…….”

단 한 번도, 살고 싶어 산 적은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에 불과한 무의미한 시간들. 그러니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고, 아무렇게나 살아왔었다. 그런데 이제는 살고 싶어졌다. 제 목숨보다도 소중한 이가, 아이가 생겼다. 그것은 무섭기도 하지만 더없이 행복한 일이기도 했다.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단 한 번도 내본 적 없는 욕심도 내보았다. 그 욕심으로 인해 리 샤오도, 아이도 제 것이 되었다. 그런데 후회할 리가 없잖은가.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터였다.

“허나, 지금은 솔직히 조금 후회되네요.”

“…….”

자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데, 더 이상 행복할 수 있을까 싶게 좋은데, 정작 리 샤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로 괴로워하고 있었다니. 아까운 짓을 했다 싶었다. 화수가 눈꼬리를 접었다. 화수의 눈 밑에 난, 눈물점이 짙어졌다. 마주한 시선이 욕망으로 들끓었다.

“계속 그리 보고만 계실 겁니까.”

그것을 다 알면서도 화수가 도발하듯 턱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하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린 두 다리 사이로 리 샤오가 거칠게 들어왔다.

쓸데없는 생각이 많을 땐, 몸을 혹사시키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었다. 만고의 진리였다.

“아-, 응……!”

리 샤오의 손이 화수의 것을 쥐고 흔들었다. 찌꺽찌걱, 어느 때보다 뜨거운 손바닥에 얇은 살갗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끙끙.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꽉꽉 쥐었다 놓을 때마다 질척거리는 야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향유를 잔뜩 머금은 살덩이가 그것을 움켜쥔 손안에서 꾸직, 꾸직, 소리를 내며 미끄러졌다.

“힉. 익-”

엄지손가락이 귀두 끝을 눌렀다. 도톰한 손가락 끝으로 빙글이자 눈앞이 하얗게, 새까맣게 변했다. 아랫배가 동그랗게 올라붙는다.

“가, 갈-, 것 같, 아-.”

급히 손으로 리 샤오를 밀며 헐떡였지만 그는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가도 괜찮다며 다정히 귓가에 속삭일 뿐. 물론 쥐어짜듯 아래를 흔드는 손은 전혀 다정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시, 싫습니다.”

하지만 그런 리 샤오의 허락에도 화수는 고개를 내저었다.

“혼자, 가는 건, 싫, 습니다.”

싫다는 말에 순간 리 샤오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하지만 곧바로 덧붙여지는 뒷말에 그 기세가 조금 누그러진다.

“부추기지 마. 겨우, 참고 있으니까.”

나직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억눌린 것처럼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이 화수는 꼭 짐승의 그르렁거림 같아 좋았다.

“참을 필요, 없는데요.”

눈 밑을 발갛게 물들인 채 속삭이듯 말한 뒤 화수가 마른 아랫입술을 혀로 축였다. 안 그래도 붉은 입술이 생기를 더했다. 물면 그대로 과육이 배어나올 것 같은 입술. 그것을 보면서도 리 샤오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저는 그리 약하지 않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네가 약해서가 아니야.”

“…….”

“내가 소중하게 대하고 싶어서 그래.”

“…….”

예상치 못한 기습공격에 굳었던 화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리 샤오는 굳이 한 번 더 확인사살을 한다.

“안 되나?”

“……안 될 리가 없잖습니까.”

제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리 샤오의 의지를 읽고 화수는 결국 고개를 외로 꼬며 대꾸했다. 드러난 귀가 시뻘겠다. 그것을 보는 리 샤오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도발했다가 이럴 땐 또 부끄러움을 타는 것이 화수의 귀여움이기도 했다.

커다란 손으로 사타구니를 움켜쥐었다. 기둥 아래 두 개의 구슬까지 모두 한 손에 쥐고 꽉꽉 주물렀다. 주륵, 주륵, 손가락 사이로 구슬이 삐져나올 때마다 벌어진 허벅지 안쪽이 벌벌 떨렸다. 자꾸만 오므려지는 허벅지에 두 다리를 이번엔 위로 끌어 올려 어깨에 얹게 하자, 엉덩이 골이 드러났다.

“히익-”

올라붙은 구슬을 만지던 손가락이 천천히 그 아래 옴폭한 부분을 손톱으로 긁어내리자 화수가 자지러졌다.

“아, 으. 응-”

이번엔 손가락살 부분으로 귀두의 여린 살을 빙글이자 손안의 기둥이 퍼드득 튀어 올랐다. 집요하게 그 부분을 빙글였다. 마치 그곳에 숨겨진 구멍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곳을 찔러댔다.

아래쪽 입구가 스스로 벌렁일 때까지.

하아.

손가락으로 집요하게 찔러대던 여린 살을 놓아주자 화수의 입에서 절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 아래 오물거리는 주름을 더듬는 손가락에 화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주름이 조여들었지만 이번에도 리 샤오가 한발 빨랐다. 향유에 전 손가락은 저항도 없이 주름을 파고들었다. 푹, 하고 박혀 들어오는 감각에 화수가 엉덩이를 조였다.

하지만 그 순간 앞섶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으아-”

뒤로 빠지려던 엉덩이에 손가락이 더 깊이 들어왔다. 굵은 손가락 하나를 마디 끝까지 삼킨 아랫입이 뒤늦게 꽉꽉 조여들었다. 슥슥슥, 달라붙는 내벽을 떨치며 손가락이 들락였다.

“아, 아, 아.”

물론 앞을 문지르는 손도 동시에 움직였다.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앞과 뒤가 동시에 문질러졌다. 같은 방향으로 문질러질 때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 문질러질 때도 있었다. 손가락이 어느새 두 개로 숫자가 늘어났지만 그런 것은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아래가 벌렁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아랫배가 뭉쳤다 풀어졌다를 반복했다.

“아, 으, 으, 아.”

“가도 좋아.”

어쩔 줄 모르고 헐떡이던 화수가 리 샤오의 허락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사정했다. 눈앞이 확 꺼졌다. 허공에 떠 있던 발가락이 옹송그렸다. 투둑, 투둑, 리 샤오가 쥐어짤 때마다 점액질의 액체가 화수의 납작한 배로 흩뿌리듯 떨어졌다.

주륵.

아래를 쑤시고 있던 손가락이 뒤로 빠졌다. 어느새 아래를 벌리고 있던 손가락은 세 개가 되어 있었다. 색색거리며 숨을 고르는 사이 리 샤오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졌다.

리 샤오의 두 다리 사이에서 완전히 기립한 성기가 보였다. 불툭, 불툭, 누가 봐도 한계라는 듯 거대한 살덩이는 핏줄까지 선 채 꺼떡거렸다.

저런 상태로 저리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하도 여유로워 보여 살짝 걱정한 것도 사실이었다.

슥.

그 때 리 샤오가 제 배 위에 화수가 잔뜩 쏟아놓았던 정액을 제 것에 치덕치덕 발랐다. 벌겋게 핏발이 선 살덩이가 화수의 정액으로 번들거렸다. 그것을 자각하니 안 그래도 한계까지 서 있던 성기가 아플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기둥 끝부분을 잡고 화수의 엉덩이골 사이를 문질렀다. 훅, 델 듯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 위협적인 기세에 벌렁거리던 주름이 다시 오므라들었다. 단단한 끄트머리가 주름을 몇 번 쑤시다 이내 뒤로 물러섰다.

대신 손가락이 다시 앙다문 주름을 쑤셨다.

츠윽.

안으로 파고든 손가락을 구부려 입구를 벌리자 딱 달라붙어 있던 젖은 살덩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벌겋게 드러난 속살에 귀두를 댔다. 거친 숨을 내뿜는 생물이 살덩이를 문질렀다. 뜨거운 기운에 안 그래도 연약한 안쪽 살이 숫제 녹아내릴 것 같았다.

“화수야.”

그 때 리 샤오가 어깨 위에 얹어두었던 화수의 두 무릎 아래로 손을 넣어 그대로 밀었다. 굽혀진 무릎이 화수의 가슴팍에 닿았다. 화수에게 완전히 체중을 실지 않았지만 사실 제 위에 리 샤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화수에게는 체중과는 또 다른 압박감이 느껴졌다.

말 그대로 거대한 짐승에게 덮쳐진 기분이랄까. 물론 그 짐승이 제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이건 뭐랄까.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야생동물에게서 느끼는 본능적인 두려움에 가깝달까.

그건 야생의 맹수에게서 느끼는 아름다움과도 비슷했다.

“배에 힘을 줘.”

리 샤오가 다정히 속삭였다. 물론 그 말의 내용까지 다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화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리 샤오가 시키는 대로 아랫배에 힘을 주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밀었다.

꾹.

꾸욱.

리 샤오가 입구를 벌리고 들어왔다. 오랫동안 집요할 정도로 넓혀놓았던 곳이지만 워낙 리 샤오의 것이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리 샤오의 것이 이기리라는 건 리 샤오도, 그의 것을 받는 화수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으. 아.

리 샤오가 천천히 체중을 실어 눌렀다. 맞닿은 살덩이가 뜨거웠다. 입구가 열리지 않으면 그것이 입구를 녹이며 박혀 들어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버티던 입구가 툭, 하고 벌어지자 그 뒤는 순식간이었다. 확실히 리 샤오가 공들여 넓혀놓은 보람이 있었다.

한계까지 벌어진 입구를 통과한 성기는 그대로 안쪽 깊숙한 곳까지 밀고 들어왔다. 천천히 안이 벌어지는 감각에 화수가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발목을 붙들린 탓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저 열 개의 발가락뿐이었다.

하아.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시간에도 끝은 있었다. 리 샤오의 까끌한 음모가 엉덩이에 닿았다. 겨우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때까지 자신이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리 샤오를 물고 있는 안이 성기 모양으로 꽉꽉 조여들었다. 한 치의 틈도 없었다. 등 아래가 땀으로 척척했다. 아니, 사실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목욕을 하고 나온 것처럼 머리도 잔뜩 젖어 있었다.

슥.

리 샤오가 손을 뻗어 화수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발갛게 달아오르다 못해 퉁퉁 부운 눈가를 보며 그가 난감하다는 듯 눈매를 구겼다.

“미안.”

“…….”

“나도 이제 한계야.”

그리 말하는 리 샤오의 목소리가 잔뜩 갈라져 있었다. 짐승의 그르렁거림 같은 목소리에 등줄기가 오싹했다.

쯔윽.

리 샤오가 허리를 크게 궁글렸다. 한 치의 틈도 없이 달라붙어 있던 내벽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적나라했다. 천천히 허리가 뒤로 빠졌다. 딸려 나갔던 내벽이 도로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전에 다시금 푹, 하고 성기가 박혀 들어왔다.

아아아.

이번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진저리를 쳤다. 물고 있는 내벽이 마구 요동쳤지만 리 샤오는 다시 한 번 뒤로 뺐던 성기를 질러 넣었다. 긴 성기가 미끄덩거리며 깊이 박혀 들어왔다. 마구 달라붙던 내벽도 점점 단단하게 길이 났다. 달라붙는 것이 없으니 움직이기도 수월해졌다.

“힉. 익-, 힉…….”

푹, 푹, 접힌 무릎을 고정시킨 채로 몇 번이고 체중을 실어 삽입하던 리 샤오가 이번엔 자세를 바꿨다. 가슴에 닿을 정도로 구겨놓았던 무릎을 펴서 두 발바닥이 자신의 가슴께를 딛도록 했다. 가슴을 누르던 압박은 사라졌지만 대신 들락이는 속도가 빨라지는 자세였다. 들어오는 각도도 바뀌었다. 위에서 아래로 체중을 실어 찍어 누르던 각도에서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는 각도로 허리를 움직였다.

“응……, 읏…….”

이상한 일이었다. 발을 디딘 가슴께를 밀 때마다 리 샤오가 더 깊이 들어와 박혔다.

퍽, 퍽, 퍽, 거칠게 몸이 꿰뚫린다. 쳐올리는 힘에 자꾸만 몸이 위로 밀렸다. 손을 내뻗은 리 샤오가 이불을 움켜쥐고 있던 화수의 손에 깍지를 꼈다. 손가락이 얽히는 감각이 좋았다.

단단히 화수를 붙든 리 샤오가 다시금 끝까지 뺐던 성기를 한 번에 집어넣었다. 튕겨져 나가려던 몸이 도로 아래로 딸려 내려왔다. 주욱, 내벽을 긁어 올린 성기 끝이 깊은 곳을 찔렀다.

“으아.”

화수의 목이 뒤로 꺾였다.

반동 때문인지 기둥은 점점 더 깊은 곳까지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러다 배가 뚫리는 것이 아닐까, 겁이 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속도도 제멋대로였다. 빨랐다가 느렸다가 다시 빨라지는 박자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가슴께가 크게 들썩였지만 리 샤오는 허리를 쳐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읏, 으, 아, 응, 아으…….”

사타구니가 마구 엉덩이를 두들겼다. 그때마다 들어오는 성기를 내벽이 꽉꽉 물었다. 하지만 이미 물이 흥건한 내벽은 빠르게 들어왔다 나가는 기둥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들락이는 곳에서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아, 아-, 아.”

점점 엉덩이 안쪽이 묵직해진다. 이미 한 번의 사정으로 축 늘어져 있던 화수의 것도 슬그머니 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ㄱ자로 껶여 있던 다리를 리 샤오가 양옆으로 벌렸다. 덕분에 물고 있던 입구가 조여들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성기를 물고 있던 주름 사이로 점액질의 액체가 뿌직거리면서 새어 나왔다.

눈앞이 아찔했다. 뜨거운 살덩이 사이에서 비벼지며 점성을 잃은 정액이 거품처럼 부글거리면서 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땀과 뒤섞여 엉덩이 아래가 척척했다.

눈도 뜨지 못하고 부르르, 허리를 떨고 있는 사이 리 샤오는 멈추었던 허릿짓을 다시 시작했다.

“자, 잠-”

사실 화수도 리 샤오가 멈출 거라고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신음과도 같았다. 사실 이대로 그만두면 괴로운 것은 오히려 화수였다.

“……으응-”

스윽, 스윽, 밑에서 위로 긁어 올리듯 들어오는 삽입에 화수의 것도 완전히 섰다. 끝을 번들거리며 바짝 머리를 세운 화수의 것이 리 샤오의 움직임에 맞춰 튕겨 올랐다. 눈앞에서 화르륵 불꽃이 튀었다.

숨이 턱 끝에서 맴돌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그 간단한 일도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가슴이 부풀었다. 산 채로 물 밖으로 끌려 나온 물고기처럼 가슴이 할딱댄다. 귀가 먹먹했다. 모든 감각이 둔감해졌다. 대신 리 샤오와 연결된 곳만은 예민했다. 몸의 신경이 오직 그와 연결된 그곳에만 남은 것처럼 들락이는 살덩이, 부글거리는 정액, 벌렁거리며 딸려 나갔다 다시 밀려 들어오는 내벽의 세세한 것들이 모두 느껴졌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화수야.”

그래서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는 사실도 곧바로 자각하지 못했다. 흐릿한 눈을 몇 번 깜빡이자 새까만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젖은 속눈썹이 성가셨다. 하지만 두 손은 리 샤오에게 붙잡힌 채라 연신 눈을 깜빡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좋아?”

퍽. 묻는 것과 동시에 다시금 안이 가득 찼다. 화수의 벌어진 입술에서 신음이 쏟아졌다.

“좋으냐고, 화수야.”

푹, 푹, 연신 그것도 화수가 자지러지는 곳에 귀신같이 찔러 넣으며 리 샤오가 거듭 물었다. 질문을 할 거면 대답할 틈을 주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리 따져 묻고 싶었지만 헐떡이는 숨 사이로 내뱉을 수 있는 건 고작 이뿐이었다.

“네, 좋아, 요. 좋습, 니다.”

좋았다. 이리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뜨거운 성기로 휘저어지고 있는 것은 아래인데 머리가 녹아내리는 듯했다.

“허니, 제발, 어떻게 좀.”

그리 애원하면서 화수가 아래를 꽉 조였다. 사실 더 조일 수도 없을 만큼 가득 차 있었지만 그 조임에 순간 리 샤오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너-.”

이내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아래가 위로 들렸다. 상체를 굽힌 리 샤오가 두 손을 화수의 어깨 위로 짚었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선 맹수가 목덜미를 콱 물며 경고했다.

“사람 돌게 하지 마.”

등줄기가 오싹했다. 물론 겁이 나서는 아니었다. 묘한 기대감으로 온몸에 솜털이 다 섰다. 그 중에서도 다리 사이의 것이 가장 바짝 섰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힉, 익-, 익.”

푹, 푹, 푹, 기둥처럼 단단한 두 팔로 몸을 지탱한 리 샤오가 허리를 쳐올렸다. 근사한 팔 근육과 등 근육이 짐승의 것처럼 꿈틀거렸다.

“아, 아-”

웅크린 엉덩이 안을 가득 채우고도 만족할 수 없다는 듯 이미 박힌 것을 짓이기듯 뒤흔든다. 견딜 수 없는 기분에 자지러지는 신음이 쏟아졌다. 그러자 그 벌어진 입안으로 혀가 쑥 들어왔다.

성기만큼이나 리 샤오는 혀고 크고 굵었다. 젖은 살덩이로 입안이 가득 찼다. 머뭇거리는 화수의 살덩이에 리 샤오가 제 것을 마구 비볐다. 고양잇과 동물처럼 까슬한 혓바닥이 민감한 입안을 휘젓자 목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각도를 달리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겹쳐졌다. 두 살덩이가 마구 뒤엉킨다. 으깰 듯 짓이기다 살살 굴리고, 그러다가도 목구멍까지 밀고 들어와 입천장을 마구 비볐다.

으응-

호흡이 엉켰다. 사실 이미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어그러진 지 오래였다. 다 삼키지 못한 침이 입안에 고였다. 그것을 리 샤오가 빨았다. 질척대는 젖은 소리가 났지만 그것이 입에서 나는 소리인지 삽입된 다른 곳에서 나는 소리인지 구별할 수는 없었다. 혀가 들락일 때마다 아래도 마구 쑤셔졌다.

푹, 푹, 푹, 거친 삽입에 몸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어지러운 느낌에 화수가 리 샤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반사적인 행동이었으나 사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제게 매달려오는 화수의 모습에 리 샤오의 허릿짓이 더 거칠어졌다.

아아, 아.

자꾸만 두 다리가 오므라들었다. 그를 뒤로 도망치는 것으로 여겼는지 리 샤오가 양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아예 양쪽으로 활짝 벌린 채 허릿짓을 해댔다. 안을 쑤시는 리 샤오의 숨결도 거칠었다.

꽉 감은 눈 안으로 물기가 차올랐다. 들락이는 뒤쪽이 근질근질했다. 몇 번 단단한 리 샤오의 배에 문질러졌을 뿐인데 화수의 것은 바짝 서서 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화수의 배도 척척했다.

갈 것 같아.

머릿속으로 떠올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리 샤오가 짚고 있던 손을 내려 화수의 것을 쥐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구부려 이미 젖은 끄트머리를 막았다. 화수가 진저리를 쳤다. 한껏 벌어진 허벅지가 벌벌벌 떨렸다.

“좀만 버텨봐.”

귓가에 속삭여지는 갈라진 목소리를 듣고서야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엔 같이 가야지.”

턱을 벌벌 떨면서도 화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화수에게는 선택권이 없기도 했고.

푹, 푹, 경고하듯 말한 리 샤오가 다시금 안을 벌리고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아래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엉덩이가 빠듯했다. 뜨겁고 단단한 살덩이가 불에 달궈진 쇠몽둥이 같았다. 안 그래도 커다란 것이 안을 빠듯하게 벌리고 들어올 때마다 내장이 녹아내리는 불안감이 일었다. 입구며 내벽이며, 흐물흐물거리면서 리 샤오가 벌리면 벌리는 대로 벌어졌다. 허공에 뜬 발이 애처롭게 흔들렸다.

“화수야.”

나른한 숨소리를 닮은 목소리와.

“아흐으-”

진저리를 치는 화수의 신음소리가 뒤섞여 방 안 공기가 질척했다.

“가고 싶어?”

“아, 아, 응-, 가, 가고 싶-”

“그리 가고 싶으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헐떡이는 화수와 달리 속삭이는 리 샤오의 목소리는 달콤하기만 했다. 사람을 홀려 영혼을 빼앗아가는 악마의 속삭임이 이러했으리라.

“불러봐, 내 이름.”

“아, 아-.”

“이름으로 불러봐.”

사실 화수는 리 샤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 샤오가 하라는 대로 하는 편이 좋다는 것만큼은 화수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리.”

미칠 것 같은 열기가 아랫배 안쪽에서 들끓었다. 배뿐만 아니라 밑이 절절 끓는다. 엉덩이, 허벅지, 발가락까지 지나가는 혈관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 같았다.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는 힘을 빼고 싶어도 되지가 않았다.

“리.”

제발.

숫제 애원하듯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제발, 어떻게 좀.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화수는 그리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무것도 모르겠는 자신과 달리 리 샤오는 방법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한 순간 눈앞이 쑥 꺼졌다.

“아, 아. 으-, 아…….”

신음이 쏟아졌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칠고 빠른 삽입이었다. 푹, 하고 유난히 느끼는 곳을 긁어 올리자 화수가 허리를 뒤틀었다. 화수도 어쩔 수 없는 반사적인 반응이었지만 리 샤오가 그런 것을 용납할 리가 없었다. 체중까지 실어 웅크리는 몸을 꽉 붙들고 그대로 안을 쑤셨다.

꽉꽉 터질 것 같이 부푼 엉덩이에 옴폭한 보조개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숨이 차올랐다. 내뱉지 못한 숨이 몸 안에 가득 찼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화수가 리 샤오의 팔에 매달렸다.

“리-!”

그리고 마지막 숨을 내뱉듯 리 샤오의 이름을 쏟아내는 그 순간, 화수가 사정했다.

“흣.”

확 조여드는 내벽에 리 샤오의 입에서도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리 샤오가 허리를 잡아 뺐다.

“으, 아.”

내장이 다 딸려 나가는 느낌에 화수는 어쩔 줄 모르고 벌벌 떨었다. 그런 화수의 귓가에 리 샤오가 이름을 되뇌었다.

“화수야.”

동시에 기둥이 퍽, 하고 안을 채우고 들어왔다. 화수가 허리를 떨었다. 쏟아져 나온 정액이 안을 빠듯하게 채웠다. 들끓던 안이 더 뜨거운 것으로 가득 찼다. 허공에 뜬 발가락이 꽉 오므라들었다. 리 샤오를 물고 있던 안도 조여들었다. 내벽이 리 샤오의 모양대로 한 치의 틈도 없이 다물렸다. 덕분에 고여 있던 정액이 꾸직꾸직, 틈새를 비집고 나왔다. 골을 타고 흘러내린 정액이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하아. 하아. 하아.

탈력감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어 색색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던 화수가 뒤늦게 뭔가를 깨달았다. 아직 제 안에 있는 리 샤오의 것이 전혀 부피가 줄지 않았다는 사실을. 평소에도 리 샤오가 절륜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정을 한 직후에도 이리 전혀 기세가 줄지 않은 적은 화수도 처음 보았다.

“걱정 마.”

그런 화수를 향해 리 샤오가 고개를 내저었다.

“더는 안 할 거니까.”

그러고는 허리를 뒤로 뺐다. 아래 들어와 있던 성기가 천천히 뒤로 빠지며 안에 들어차 있던 정액도 주르륵, 딸려 나온다. 내벽이 부들부들거렸다. 그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몰라 잠시 멍하니 있던 화수가 황급히 아래를 조였다.

“윽.”

반쯤 나오던 성기가 그대로 붙들렸다. 미간을 찌푸린 채 내려다보는 리 샤오에 화수는 전혀 겁을 집어 먹지 않았다.

“멋대로 빼는 법이 어딨습니까.”

“하.”

“한 번 정도는 더 할 수 있습니다.”

당당하게 덧붙이는 화수에 리 샤오의 입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간다. 물론 마주한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지만.

“한 번으로 끝날 것 같나 보지?”

“…….”

아. 뒤늦게 아차 싶었진 화수가 미간을 살풋 찌푸렸다.

“기껏 사람이 잘해주려고 했더니.”

“힉-”

반쯤 뺀 채로 물려 있던 성기가 다시 푹, 박혀 들어왔다. 그 잠깐 사이에 부피를 늘린 기둥이 안을 빠듯하게 채웠다. 꾸직꾸직, 기둥에 밀려 삐져나온 정액이 이제는 숫제 물처럼 흘러내렸다.

“으으…….”

아무래도 제 발등을 제가 찍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몸이 조금 힘든 것 정도는 리 샤오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 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아…….”

젖꼭지를 깨물린 화수가 허리를 떨며 신음했다. 리 샤오를 물고 있던 안도 확 조여들었다.

“읏, 조이지 마.”

곧바로 리 샤오의 나직한 경고가 내려졌지만 사실 화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미 제 몸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빼지도 않고 그대로 한 번, 숨을 고르기도 전에 발딱 뒤집혀서 내리 뒤로만 두 번을 사정했다. 그리고 지금은 리 샤오를 문 채로 그의 무릎 위에 마주 앉아 있는 중이었다.

“아……, 응.”

밑은 이미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리 샤오가 한 번 갈 때마다 혼자 두세 번은 사정해-그마저도 화수가 기억하는 숫자에 불과해, 아마 실제로는 더 높은 횟수로 갔을 터였다- 더 이상은 나올 것이 없을 만큼 탈탈 털린 제 성기가 다시금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비단 이상한 일이 그 하나뿐인 것도 아니지만.

할짝.

조금 전 깨물었던 젖꼭지를 이번엔 달래듯 혀로 할짝였다. 퉁퉁 부은 젖꼭지를 혀끝을 세워 빙글이자 돌기가 더 바짝 섰다. 평소보다 훨씬 진해진 젖꽃판까지 혀로 더듬으니 얇은 피부가 오소소, 돋아났다.

힉.

커다란 손으로 가슴께를 그러모아 살집 채로 콱 깨물자 화수가 자지러지며 리 샤오의 어깨를 밀었다. 물론 이미 다른 한 손으로 결박하듯 붙들고 있던 몸은 리 샤오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바르작거리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가는 몸을 붙들고 리 샤오가 본격적으로 가슴을 빨았다. 쭉, 하고 우유가 빨려나오던 조금 전과 달리 이번에는 한두 방울 맺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사실 젖이 다시 차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 아파요.”

그럼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깨물거리자 결국 화수가 우는 소리를 냈다. 벌겋게 잇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고서야 리 샤오도 미련을 버렸다. 물론 젖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는 것일 뿐 젖꼭지 자체에 대한 미련까지 모두 버렸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익-”

손가락으로 잇자국이 남지 않은 반대쪽 돌기를 비틀자 화수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쏟아졌다. 돌기가 비틀릴 때마다 마치 전기라도 통하듯 등줄기가, 엉덩이 안쪽이 찌릿거렸다. 까치발로 바닥을 딛고 있던 발가락이 곱았다.

츠윽.

반대쪽 돌기를 지분거리던 입술이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쇄골, 목덜미, 턱까지 깨물며 올라온 입술이 결국 화수의 도톰한 윗입술을 깨물었다. 들려 올려진 윗입술 아래로 혀를 집어넣었다. 기다렸다는 듯 아래가 마구 조여들었다. 물론 이미 흐물흐물해진 내벽은 그리 위협적이지는 못했다. 오히려 흉포한 짐승을 자극하기만 할 뿐이다.

입술은 떼지 않은 채 리 샤오가 화수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양쪽으로 갈라 벌리자 제 것을 물고 있던 아랫입이 벌어졌다. 리 샤오가 잘게 허리를 쳐올렸다. 벌어졌던 입구가 꽉 조여들었다. 붙잡고 있던 엉덩이가 단단하게 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잘게 흔들던 허리를 이번엔 조금 강하게 쳐올렸다.

화수의 체중까지 실려 기둥이 더 깊은 곳까지 박혀 들어갔다. 화수의 몸이 들썩였다. 리 샤오의 어깨를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리 샤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두 손을 겨드랑이 사이로 집어넣어 고정시킨 리 샤오가 본격적으로 허릿짓을 하기 시작했다. 반동을 이용해 튕겨져 나가는 몸을 도로 아래로 끌어 내렸다.

맞닿은 입안으로 신음이 쏟아졌다. 견갑골이 도드라졌다. 옴폭 파인 등에 땀이 잔뜩 배어났다.

찌꺽찌꺽, 맞닿은 결합 부위에서 젖은 소리가 났다. 체온이 낮은 주제에 저를 받고 있는 안은 미친 듯이 뜨거웠다. 꼭 끓는 물속에 저를 집어넣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야해빠진 몸이었다.

리 샤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느새 그를 밀어내던 화수의 두 손이 리 샤오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애처롭게 부들부들 떠는 손가락이 제게 매달려오는 것이 기분 좋았다.

측.

입술을 뗀 리 샤오가 화수의 몸을 제 쪽으로 바싹 당겨 안았다. 등을 감싸 쥔 채 그대로 뒤로 밀었다.

“힉.”

몸이 뒤로 넘어가는 감각에 화수가 기겁을 해서 리 샤오에게 매달렸다. 두 팔뿐만 아니라 제 것을 물고 있는 곳이 쫀득하게 조이며 매달려온다. 이거 습관 될 것 같은데. 나른하게 웃으며 되뇐 리 샤오가 끌어안은 화수의 몸을 이불 위에 내려놓았다.

등이 바닥에 닿자 안심이 되는지 제 것을 물고 있던 곳이 느슨해졌다. 박혔던 것이 반쯤 삐져나왔다. 화수가 의도하고 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으……, 응-!”

퍽, 하고 쳐올리는 강도가 거칠었다. 아마도 천천히 들어올 거라 예상했다가 한 번에 꿰뚫리자 화수의 몸이 퍼드득, 튀어 올랐다. 튀어 오르는 배를 꾹, 누르며 허리를 쳐올렸다.

“왜-, 으, 아-. 아…….”

이유는 몰라도 리 샤오의 기분이 갑자기 나빠졌다는 건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의아해하는 눈동자를 보면서도 리 샤오는 거칠게 흔드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상냥하게 굴고 싶었는데.

그게 잘 되질 않는다.

소중하게 다루고 싶은 마음과 부서트리고 엉망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늘 공존했다. 누구보다도 자신은 이성적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상하게 눈앞의 사내에게는 그것이 전혀 되질 않았다. 애초에 화수를 앞에 두고 느긋하게, 라는 것이 될 리가 없었다.

“아, 아, 으.”

굵고 긴 기둥이 몇 번이고 안을 쑤셨다. 거칠게 푹, 푹, 쑤셔대다 이번엔 각도를 바꿔 다시 죽죽 긁어 올렸다. 단단한 귀두가 흐물거리는 내벽을 마구 긁어댔다. 들락일 때마다 잔뜩 고여 있던 정액이 부글거렸다. 꽉 감은 화수의 눈꼬리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화수는 리 샤오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리 샤오가 하는 대로 흔들리고 신음할 뿐.

관자놀이를 타고 내린 눈물은 그대로 머리칼로 스며들었다. 조금 말랐던 머리칼이 다시 젖어들었다. 퉁퉁 부은 눈 밑이 발갰다. 고개를 숙인 리 샤오가 그곳을 혀로 핥았다. 혀에 닿은 속눈썹이 파르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애처롭고, 또 사랑스러웠다.

“리-.”

헐떡이는 숨 사이로 화수가 리 샤오의 이름을 되뇌었다.

“리 샤오-”

달콤했다. 그 이름이 자신의 이름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래가 확 조여들었고, 리 샤오도 그대로 사정했다. 몇 번째인지도 모를 사정이었다.

축, 늘어진 몸에서 리 샤오가 제 것을 빼냈다. 후회가 몰려왔다. 이리 밀어붙이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심지어 분명 사정했다고 여겼던 화수의 것은 아무것도 토정하지 않은 채 늘어져 있었다. 쓰게 웃으며 한 발 뒤로 물러서려고 할 때였다.

-!

리 샤오가 멈칫했다. 그대로 기절해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던 화수가 가늘게 눈을 뜨고 있었다.

“이제, 자도 돼.”

혹 안심이 되지 않아 그런 것인가 싶어 나직이 속삭였지만 화수는 고집스럽게 버텼다.

“기분.”

달싹이는 입술을 타고 나온 목소리는 다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화수는 말을 잇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좋으셨습니까.”

당연히 뭐 때문에 그리 기분이 상했느냐고, 물으려는 것인 줄 알았다. 왜 갑자기 화가 난 거냐고, 따지려는 것인 줄 알았는데. 비꼬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것이 분명한 그 물음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리샤오를, 오해한 모양이었다.

“별로였습니까.”

“아니. 좋았어.”

염려가 섞이는 눈동자에 리 샤오가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엉겁결에 내뱉은 그 말에 화수가 안심했다는 듯 눈을 감았다. 사실 지금까지도 겨우 버틴 거였다.

“좋으셨으면 됐습니다.”

까무룩 정신을 잃으면서도 다행이라는 듯 중얼거리는 화수에 리 샤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었는데. 하지만 이번에도 사과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늘 그랬다. 늘 비겁한 쪽은 자신이었다.

슥.

리 샤오가 손을 내뻗어 화수의 볼을 쓰다듬었다. 마지막 기운까지 다 써버린 탓인지 리 샤오의 손길에도 전혀 미동도 없었다. 그런 화수를 가만히 보던 리 샤오가 저도 모르게 툭, 하고 마음을 내뱉었다.

“사랑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

그리고 깨닫는다.

누군가를 은애한다는 마음은 부서트리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누르고 눌러 소중하게 대하는 것임을. 그러니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괴로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몸살이었다. 리 샤오에게는 화수가.

미칠 것 같은 열기가 늘 들끓었다 식었다 하는 것을 반복했다. 잠깐 앓고 지나가는 열병도 아니었다. 평생을 이 들끓는 열기와 함께하리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리 외면하고 싶었던 건지도.

누구도 말해준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 것이 이리도 괴로운 일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설사 평생을 들끓는 불덩이를 삼키고 있어야 한다고 해도, 그럼에도 리 샤오는 화수를 놓을 수 없었다. 아니, 놓고 싶지 않았다.

축 늘어진 몸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소중하고 소중한 것을 다루는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화수를 끌어안은 리 샤오가 젖은 이마를 눌렀다.

내 꽃.

내 어여쁜 꽃.

“사랑해, 화수야.”

바다 냄새가 났다. 화수에게도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리 샤오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다 먹었어?”

젖꼭지를 밀어내는 것을 보니 배가 다 찬 모양이었다. 미리 옆에 두었던 깨끗한 명견을 집어 젖으로 흥건해진 통통한 입술부터 닦았다. 꼼꼼히 아이의 입술을 닦은 것과는 달리 정작 자신의 가슴께는 대충 한 번에 훑어 닦고는 이내 옷섶을 여몄다. 그리고 녀석을 안고 일어섰다.

이제는 젖을 먹이고 나면 바로 눕히지 않고, 트림을 할 때까지 일으켜 세워두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숙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숙지하기 전까지 몇 번의 뼈아픈 경험이 있었지만.

잘 가누지 못하는 목을 어깨에 기대게 하고 다른 손으로 천천히 등을 쓸어내렸다. 어린아이의 체온이 이리 높은지 화수도 처음 알았다. 따끈따끈한 아이에게서 달큰한 우유냄새가 났다. 방 안을 왔다 갔다 하기를 몇 번 반복하자 녀석의 입에서 거억, 하는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예쁘다, 우리 샤샤.”

엉덩이를 토닥이며 중얼거리자 녀석도 기분이 좋은지 꺅꺅, 소리를 냈다. 화수의 입꼬리도 말려 올라갔다. 조금 전보다 느긋해진 걸음으로 화수가 방 안을 배회했다. 그사이 어깨에 이마를 댄 녀석이 칭얼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늘 순하게만 굴던 녀석이 화수에게 칭얼대기 시작한 건 그가 젖을 먹이고 난 뒤부터였다. 젖이 나와 좋은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토닥토닥. 칭얼거리며 잠투정을 하던 녀석이 어느새 색색거리면서 고른 숨을 내쉰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통통한 엉덩이를 토닥이던 손길이 느릿해졌다가 이내 멈췄지만 고른 숨소리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엔 일렀다.

숨을 죽인 화수가 천천히 녀석을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 위에 내려놓았다. 가끔 이러다 잠든 녀석을 깨운 전적이 있는 터라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됐다.

다행히 이번엔 성공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화수가 소리 없는 환호성을 내지른 그 순간.

끄응.

그런 초보 엄마를 비웃듯 아이가 몸을 뒤척였고, 화수는 그대로 일시정지. 눈동자만 굴리며 숨을 죽였다. 다행히 아이는 그대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화수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그 옆에 모로 누웠다.

갓난쟁이는 일분일초마다 자란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제 손가락 마디보다 작던 손이 이제는 제 손가락을 꽉 쥘 수 있을 정도로 자라 있었다. 키도 처음에 비하면 거의 두 배는 자란 것 같았다. 물론 그리 말하는 화수에게 양양댁은 애매한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지만.

통통한 볼과 오뚝한 코. 시원시원한 눈매. 귀여운 발가락까지. 어느 것도 화수를 닮은 구석은 없었다. 집사의 말에 따르면 샤샤는 큰 샤샤의 어릴 적을 빼다 박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화수는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혹여나 태어난 녀석이 저와 같은 곤일까 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다행히 그것 역시 리 샤오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아.

그래도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내아이 치고는 길고 풍성한 속눈썹. 그것만큼은 화수를 닮아 있었다. 물론 그것이 사내 녀석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오물오물.

뭐 맛있는 거라고 먹는 꿈을 꾸는 걸까. 연신 입술을 오물거리는 녀석을 보며 화수가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그대로 일시정지. 다행히 이번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 꽤나 깊이 잠이 든 모양이었다. 젖냄새를 풍기며 잠든 녀석을 보고 있으려니 화수의 눈꺼풀도 점점 무거워졌다.

끔뻑이던 눈이 이내 스륵, 감겼다. 어느새 화수의 입에서도 색색거리는 고른 숨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평화로운 오후, 장지문 너머로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길고 긴 겨울이 드디어 끝이 나고 있었다.

* * *

“화수는?”

현관을 들어서며 리 샤오가 가장 먼저 묻는 것은 늘 한 가지였다.

“깊이 잠드신 것 같아, 그냥 두었습니다.”

코트를 받아 들던 집사 역시 기다렸다는 듯 대꾸했다.

“이 시간에?”

아직 해가 남아 있는 시각. 가볍게 잠든 것도 아니고 깨워도 일어나지 못할 만큼 깊이 잠들었다니, 불쑥 불안감이 스쳤다.

“샤샤 님 젖 먹이시다 같이 잠드신 모양입니다.”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리 샤오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분명 젖어멈을 구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미 구해두었습니다. 화수 님의 몸에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하루에 두세 번 정도만 먹이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리 샤오만큼이나 화수의 건강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집사였다. 화수의 안위가 리 샤오의 안위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리 샤오가 무너지는 모습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이건, 뭡니까.”

뒤늦게 건네받은 코트 주머니에서 부스럭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집사가 물었다. 물론 물으면서도 손은 이미 주머니 속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군밤.”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툭, 하고 단어 하나만 내뱉는 무성의한 대꾸에도 집사는 곧바로 대충의 상황을 파악했다.

“화수 님이 먹고 싶다 하셨습니까.”

이 역시도 이제는 익숙한 일이었다.

“껍질을 까서 가져가겠습니다.”

“됐어. 그냥 이리 줘.”

내미는 손에 집사도 순순히 종이봉투를 돌려주었다.

“식사는 어찌할까요.”

복도를 가로지르는 리 샤오의 뒤를 따르며 집사가 물었다.

“이따가.”

“허면 목욕물은.”

“그것도 이따가.”

“알겠습니다.”

뒤따르던 집사가 걸음에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지금은 자신이 리 샤오에게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시간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멈춰 선 집사가 그대로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키는 그 잠깐 사이에, 리 샤오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드르륵.

리 샤오가 장지문을 열었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평생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초저녁. 아직 불을 켜지 않아 방 안은 어두웠다. 리 샤오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눈으로 바닥을 훑었지만 그곳엔 흐트러진 이불만 있을 뿐, 화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곧장 방 안쪽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두어 걸음 내딛던 리 샤오의 걸음이 그대로 멈췄다.

-!

정원으로 나갈 수 있는, 지금은 봉인해둔 장지문 앞에 놓인 흔들의자. 샤샤가 태어나기 전, 배가 부른 화수를 위해 특별히 주문한 것이었다. 그곳에 화수가 잠들어 있었다. 역시나 잠든 아이를 가슴팍에 올려놓은 채로.

그 모습을 홀린 듯 보고 있던 리 샤오가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리 샤오의 기척을 먼저 알아차린 건 샤샤였다.

끙끙거리며 품 안의 샤샤가 칭얼대자 눈도 뜨지 않은 채 화수가 그런 녀석의 엉덩이를 토닥인다. 그러다 문득, 기척을 느꼈는지 눈을 떠 리 샤오를 보았다.

“언제, 오셨습니까.”

마주한 눈동자에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누군가 가슴을 꽉, 쥐었다 놓는 기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는 리 샤오를 향해 화수가 다시 물었다.

“그거, 군밤입니까?”

대답은 없었지만 이미 화수는 군밤 냄새를 맡은 뒤였다.

“안 그래도 먹고 싶었는데.”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화수에도 리 샤오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제야 화수도 리 샤오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 샤오 님.”

“…….”

“왜 그러십니까?”

“…….”

“제가 또 무슨 실수라도-”

“잘못했어.”

툭, 하고 저도 모르게 내뱉은 진심. 마주한 새까만 눈이 조금 커졌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지 않고는, 그것을 토해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번만큼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은 똑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잘못했어, 화수야.”

뜬금없는 사과에도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질문은 돌아오지 않았다. 리 샤오가 지금 무엇을 사과하고 있는 것인지, 화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거라면 사과할 생각 없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테니까.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냐고 묻지는 않았다. 자신도 그랬으니까.

너무 소중한 것이 생기면 알게 되는 것이었다.

너무 소중해서, 그것을 잃을 뻔했음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미안해지는 그 마음을 화수도 경험했다. 그것을 이제야 리 샤오도 알게 된 것이리라. 다행이었다. 리 샤오에게도 그 어떤 것보다도, 자신의 자존심 같은 건 상관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 생겼다는 거니까.

아프지만, 또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고 있기에. 화수는 그제야 안도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로운 표정의 리 샤오를 올려다보던 화수가 가만히 손을 내뻗었다. 그 손이 닿도록 리 샤오가 무릎을 굽혀 앉았다. 화수의 손이 리 샤오의 볼을 감쌌다. 괜찮다는 듯, 엄지손가락으로 리 샤오의 볼을 문질렀다. 그리고 나직이 속삭인다.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리 샤오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책망조차 않는 제 반쪽이 안쓰러워서. 이제야 깨달은 제가 너무 어리석어서. 부끄러워 화수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지만 늘 그랬듯 이번에도 화수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오늘도 잘 다녀오셨습니까.”

천천히 리 샤오가 눈을 떴다. 화수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샤샤의 조막만 한 손도 가볍게 흔들며. 그제야 리 샤오는 깨달았다. 자신은 눈앞의 사내를 당해낼 수 없다는 걸. 아니,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

리 샤오가 고개를 앞으로 기울였다. 화수의 이마에 입술을 꾹 눌렀다. 그리고 나직이 속삭였다.

“다녀왔어.”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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