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60)

3화

집에 돌아온 지찬은 후들거리는 다리가 진정이 되질 않았다. 무슨 정신으로 산에서 내려와 집까지 도착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정해진 순서처럼 집에 도착해 샤워하고 밥공기에 밥을 푸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시장에서 사 온 반찬 몇 가지와 밥이 덩그러니 놓인 식탁을 바라보자 정신이 차려졌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지찬이 한숨을 내쉬자 떨리는 속까지 함께 내뱉어진 기분이었다.

‘그냥 미친놈인 줄만 알았지.’

“……그게 뭐야.”

더위를 먹어서 정신이 나갔던 거라고 믿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사람 외의 존재라 하면, 지금까지 그 미친놈! 아니, 그 미친 자, 아닌데. 미친 님이 떠든 소리로 추측해 보건대…….”

지찬은 혼자 중얼거리면서도 혹시 듣는 이가 있지 않을까 사방을 둘러보고 눈치를 봐야만 했다.

“개? 그럼 그 노파가 진짜 개가 맞는…… 거야? 백호면, 호랑이 그 백호? 새가 사람으로 변하고, 슈트를 입고 그 험한 산을 오르고, 근데 하나도 안 더러웠잖아? 걸어 다니기는 하는 거야? 아니지, 그럼, 연회는 뭐야. 반려? 내가? me?”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으면 비명이 나올 것 같았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동물이라니! 개, 새, 호랑이! 그중에 호랑이의 반려라니!’

운명이라고 떠들던 그놈의 주둥이가 괜히 나불거리는 게 아니었던 거다.

“아, 아니. 이런 개새……. 그럼 지금 내가 호랑이 반려라고?”

남자도 괜찮다고 했던 첫날의 그 목소리가 BGM처럼 지찬의 주변을 맴돌았다.

‘난 상관없어. 네가 남자든, 게이가 아니든.’

‘난 상관없어. 네가 남자든, 게이가 아니든.’

‘난 상관없어. 네가 남자든, 게이가 아니든.’

입을 틀어막던 지찬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였다. 그리고 큭큭거리는 웃음이 손 아래에서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눈가에 눈물방울을 매달며 엄청나게 재미있다는 듯 한참이나 웃은 지찬이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와, 설지찬, 드디어 미친 거냐. 꿈을 꾼 거지. 꿈이지, 호랑이가 뭐야.”

아무래도 요 며칠, 날이 엄청 덥더니 잠깐 더위를 먹어 해괴한 꿈을 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곱게 누웠다.

“자고 나서 기분 좋게 저녁 드라마 보자. 꿈에선 꿈 깨야지. 하하, 이게 무슨, 진짜 상상력 풍부하다. 설지찬 최고네. 자자.”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적이 휘몰아쳤다. 이불을 목 끝까지 덮은 채 눈을 감은 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온몸을 휘감는 정적이 기분을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혹시나 눈 뜨면 큰일이라도 날까 싶어 감은 눈에 더 힘을 줬다.

딩동!

‘또 뭐가 나오려고 친절하게 벨이야. 저는 이제 잠에서 깨야 하기 때문에 바쁩니다.’

어차피 택배여도 반응 없으면 집 앞 편의점에 맡기고 갈 터였다.

더군다나 집으로 찾아오는 지인 하나 없었다. 절친이라고는 해외로 파견 나가 있는 그놈 하나뿐이니, 지찬은 늘 모든 일상이 단조롭고 평화로웠다.

심심하긴 했지만, 혼자 지내기는 나쁘지 않았다. 늘 혼자였으니까. 가족마저 사라진…….

딩동, 딩동.

“아! 진짜, 엄청 끈질기네.”

잠깐 혼자만의 독백을 즐겨 보려던 지찬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벨 소리에 이불을 걷어차 내고 일어섰다.

딩동,

“네네, 갑니다. 가! 누구세요!”

“나일세.”

현관문을 열던 지찬의 손이 굳었다. 저 목소리, 저 해괴한 말투.

잠에서 깨려고 안달복달한 이유의 근원지였다.

“집 잘못 찾으셨습니다.”

겁도 없이 열어젖히려던 제 손을 거둬 코를 움켜잡고 자체 음성 변조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엔 기필코 장롱 깊숙이 숨어 있는 헤드셋을 꺼내 헤비메탈이라도 들으며 잠들겠노라 결심하며 등을 돌릴 때였다.

딩동.

꿈속의 허상이 자꾸만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누구세요.”

“그대의 반려지.”

“그런 사람 모릅니다.”

그놈의 반려.

“이솝 우화도 아니고,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냐.”

행여나 작은 소리라도 문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겁이 나 모기 같은 소리로 중얼거리는데 바깥이 조용했다.

드디어 돌아간 건가 싶어서 지찬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다시 한번 벨이 울렸다.

딩동.

“아, 그런 사람 없다고요! 반려고 나발이고 난 몰라! 모른다니까!”

“프라이드 하나 주겠나.”

참을 수 없는 짜증에 소리를 빼액 지르던 지찬이 들려오는 한성의 목소리에 넋이 나갔다.

‘아니, 이 미친놈이!’

그리고 정말 제 성질에 못 이겨 문을 벌컥 열었다.

“가정집에서 왜 프라이드를 찾아!”

진짜 이 빌어먹을, 성미 급한 제 성격을 저주해야만 했다. 문을 열자 웃고 있는 한성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프라이드 주문하니 네가 나오는군.”

‘세상, 하늘에 계신 신님.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십니까. 꿈이라기엔 너무 조잡하고 난잡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지찬은 앞에서 찡긋, 윙크까지 하며 웃는 한성을 바라보며 생전 믿지도 않는 신을 다시 찾고야 말았다. 최악의 그 날에도 찾지 않던 신을.

“꿈이 아니니까, 얘기 좀 하지. 그대도 어찌 된 영문인지 자초지종을 알아야 할 것 아닌가.”

* * *

절대적으로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대로 문을 닫으려고 했던 지찬은 한성의 힘에 못 이겨 그를 집안까지 들이고야 말았다. 그리고, 뚱한 표정으로 식탁에 마주 앉아 있었다.

반찬을 대충 냉장고에 처박아 두고 커피를 탈까 싶다가, 호랑이가 커피를 마신다는 소리는 못 들은 듯해 그냥 사발에 냉수를 따랐다.

그리고 그를 호랑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자신에게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다.

‘정신 차려, 꿈이라고 너무 쉽게 인정하지 마!’

팔짱을 낀 채로 앉아 있던 지찬이 올곧게 마주하는 한성의 시선에 헛기침했다.

“할 말이 뭡니까. 빨리 하고 가세요. 빨리 자야 합니다.”

‘1분 1초라도 빨리 이 기묘한 꿈에서 나가야겠어.’

피식, 웃는 한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호랑이가 아니고, 사방신(四方神). 사방신의 백호, 한성이다.”

“청룡, 백호, 뭐 그런 거 말하는 거예요?”

“기본적인 부분은 네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진 않을 거야.”

“그럼, 어떤 부분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데요? 반려? 사람의 탈을 쓴 백호?”

황당하다는 듯 묻는 지찬의 모습에 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애초에 신으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야. 그렇기에 힘이 생기고 나면 뜻하지 않게 폭주하거나 세계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왕왕 있지. 나라의 전생이나 전염병, 자연재해라고 불리는 것들처럼. 그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 사방신들의 힘을 반으로 나누어 놓고, 반려에게 봉인시킨다.”

“당신의 힘 반쪽이 반려에게 있고, 그 반려가 바로 나라는 소립니까?”

“정확해.”

“그럼 힘을 가져가요. 난 필요 없어. 봉인은 어떻게 풀죠?”

지찬은 애초에 신을 믿지도 않는다. 예전부터 그래 왔다. 빌어먹을 신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말로 신이 존재했다면…….

다른 쪽으로 빠지려던 생각을 멈추고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꿈은 현실을 반영한다던데, 이건 정말 말 그대로 ‘개꿈’이었다. 이토록 황당하고 어이없는 꿈이라니, 꿈에서 깨면 꼭 소설이라도 써 보리라 다짐했다. 이 정도의 상상력이라면 대박 치겠다고. 막장이나 병맛으로 최고 아닌가.

“반려의 뜻을 알고 있나.”

“알죠. 반려(伴侶)와 반려(返戾), 근데 얘길 들어보니 반려자보단 반환이라는 반려의 뜻인 것 같아 다행이네요. 내가 갖고 싶어서 봉인된 것도 아니니 다시 가져가세요.”

자꾸 반려, 반려 거려서 ‘오, 나의 동반자’라고 하는 줄 알고 내심 얼마나 식겁했던지. 하는 말 보니 그저 힘을 되찾게 해줄 반려일 뿐인 것 같아 지찬은 속으로 안심했다.

“틀렸어.”

“뭐가요?”

“인간에게도 반려가 있지. 인생의 반려자라고도 흔히 얘기하는 그런 거. 신에게도 마찬가지의 의미야. 신생(神生)의 반려(伴侶)”

“하…….”

너무 황당해서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 지찬이 입을 벌린 채 굳었다.

‘뭐야, 이 기똥차게 또라이 같은 스토리는.’

“신이 원하는 건, 반쪽짜리의 힘이 아니야. 온전한 하나로 되길 원하는 거지.”

“……그럼, 날 뭐, 흡수라도 하신다는?”

꿈인데 뭔들 어떠하랴, 황당무계한 스토리는 이미 진절머리 났고, 그냥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까짓거 사방신에 백호 님이 흡수해 주신다는데 나쁠 거 뭐 있나 싶었다.

“각인이지. 각인의 의식을 치르면, 그대의 각성이 시작되고, 그리고 죽을 때까지 내 비호 아래 살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그 각인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초야를 보내야지.”

“뭐요?”

“초. 야. 신랑과 신부의 첫날밤 말일세.”

“신랑과 신부가 아니잖습니까! 애초에! 누가 남자랑 남자가 평생 반려를! 아니, 신이라며!”

“신이지.”

한성이 ‘음, 신 맞지’ 중얼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기서 속이 터지는 건 지찬뿐인 듯했다.

그야말로 대 환장 파티 중인 지찬은 답답한 듯 가슴을 쳐 댔다.

“애초에 반려를 왜 남자로 정하냐고요! 그쪽 여자예요?”

말을 하고도 기가 막혔다. 실눈을 뜨고 바라봐도 한성은 사지 멀쩡한 데다 심지어 얼굴도, 몸매도 훌륭한 건장한 남자 아닌가.

“우리네 생의 반려는 신랑과 신부가 아니지. 그저 함께하는 동반자라고 생각하면 쉬워. 반쪽과 반쪽이 만나 평생을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공생하는 관계.”

지찬은 한성 앞에 있는 대접을 들어 그대로 물을 마셔 댔다. 이 짜증과 갈증을 해소하려면 빨리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절실하게 깨달았다.

빈 대접을 보며, ‘차라리 이걸로 머리를 세게 쳐서, 기절해 버릴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꿈에서 기절하면 잠은 깨겠지 싶던 차였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그대가 여자든 남자든 상관하지 않아. 높은 곳, 그 어딘가에 있는 신의 뜻까진 내가 이해하기엔 부족하니까. 하나, 그대가 나의 반려로 이 세상에 나타난 순간부터, 그대는 내 사람이다. 그건 변하지 않아. 내 모든 힘을 다해 아껴 줄 것이야.”

프러포즈하듯 진지하게 말을 건네는 한성을 바라보는 지찬은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