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60)

58화

외전 1

“단아…….”

“이제, 못 하겠어요.”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듯 말하는 단을 바라보는 진운의 얼굴이 굳어졌다.

“단아…….”

“내 하늘이었고, 내 신이었잖아요.”

“많이 아픈 거야? 내 힘을 더 줄게. 조금만 참아. 응?”

“이제, 당신 힘으로 연명하는 이 목숨. 지긋지긋해.”

“네가 아파서 그래. 아파서 지금 잠깐 흔들리는 거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힘을 더 모으면, 그땐 너도 아프지 않게…….”

“……하아. 진운…….”

울컥 울음을 계속 참아 내며 단이 입술을 다물었다. 진운의 어깨에 기대어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에요.’

바보 같은 나의 신은 나를 놓아줄 줄을 몰라서, 자꾸만 나를 어린아이 취급을 한다.

아파서 부리는 작은 투정으로밖에 보질 않아.

진운은 그런 단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거렸다.

‘내 하늘, 나의 신. 나의 목숨도 이젠, 제발 거둬 가 주길.’

수천 번을 빌고 빌어 봐도 닿지 않는 기도는 오늘도 가로막힌 채 단의 울음 속에서 묻혔다.

진운은 울음에 몸을 떠는 단을 일으켰다. 잡히는 팔이 점점 앙상해짐을 느꼈다. 작은 꽃 같다. 언제 휘청이고, 언제 스러질지 모르는 꽃. 어떤 비바람에도 이겨 낼 수 있는 들꽃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온실 안의 꽃처럼 만든 것은 저 자신이니까.

진운은 단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조금 진정 된 단이 욕실장 안 구석에 놓아 둔 약을 털어 넣었다. 침대 옆 좁은 탁자, 작은 방의 서랍 속, 화장실 어느 곳이든 단의 약이 있었다.

언제 어느 때 찾아올지 모르는 고통 때문에 진통제는 늘 그의 곁에 있어야 했다.

침대로 가서 무너지듯 쓰러졌다. 절로 호흡이 거칠어졌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 냈다. 조금만 더 버티면 통증은 가라앉을 것이다.

잠시 까무룩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가 깨어 보니 어느새 진운의 품 안이었다. 익숙한 향기와 온기가 단의 머리를 받쳐 주고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진운…… 그 이야기 들려줘요.”

“또?”

“응, 당신 목소리로 듣는 그 이야기가 너무 좋아.”

혼자 아프고 나면 단은 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처음 만났던 그때의 이야기. 자신을 찾기까지 수십, 수백 년을 되쫓고, 수없이 달려야 했던 그때를.

꼭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듯이.

“……널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을 달리고, 헤매고, 찾아다니며 살았는지 헤아릴 수가 없어. 나중에 마주했을 땐 널 왜 찾아다녔는지, 기억이 나질 않더라.”

“내게 첫눈에 반해서 그런 거죠.”

“맞아. 그랬지…… 힘을 되찾고 싶었어. 어떻게든 지금보다 더 강한 신이 되고 싶었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널 본 순간…… 다른 무엇보다, 널 갖고 싶었어.”

“내 안의 힘이 아닌?”

“응. 네 안의 힘이 아닌.”

팔베개를 한 채 가슴에 기대 누워 있는 단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수척해진 안색을 가리기 위해 늘 염색을 하고, 심지어는 입술의 혈색을 위해 붉은 기가 도는 것을 바른다.

하지만, 비로소 제 곁에 누워 있을 때 편안하게 자신의 가면을 벗는다.

“나를?”

“응, 너를.”

그러곤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 했다. 아직, 그대 곁에 살아 있노라고.

단은 진운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감고 그때를 떠올렸다.

* * *

기가 막힐 만큼 말도 안 되는 소식을 듣고 서늘한 건물 밖을 나서자 단을 반기는 것은 속절없이 덮쳐 오는 화마 같은 더위와 강렬한 햇빛이었다.

바닥에서 이글이글 올라오는 아지랑이처럼 불쑥 솟아나서 가슴의 한쪽을 꽉 조이듯 성급하게 답답증이 몰려왔다.

아무리 깊게 숨을 들이마셔도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더운 공기가 징그럽게 싫었다.

방금까지 건물 안에서 반소매 밖으로 드러난 팔이 춥다고 돋아난 소름을 문질렀는데, 지금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병원 냄새와 앞으로 덮쳐 오는 더운 공기가 역겨웠다.

‘큰 병원으로 가 보시는 게 좋겠어요. 소견서를 드릴 테니, 꼭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능한 의사 새끼…….”

돌팔이 같은 새끼, 하고 중얼거리면서 절로 떨어진 고개가 어느새 하얗게 질린 핏대 선 발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새하얀 구름 몇 점과 새파란 하늘이 멈춰진 시간처럼 정지해 있었다.

이겨 보려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태양을 노려보던 단이 눈을 감았다. 고작 병원을 나선 지 1, 2분도 되질 않았는데도 벌써 땀이 옷 안의 맨몸을 따라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더위 따위, 딱 질색이야.”

“그럼 나랑 시원하게 커피 한잔할래요?”

감았던 눈을 뜨자 태양을 품은 듯 이글이글 올라오는 아스팔트 위에서 해맑게 웃는 남자가 보였다. 햇빛을 노려봤던 탓인지 남자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좋아요.”

스물하나라는 나이도 아깝고, 이 악물고 공부만 한 세월도 아깝고, 홍단 이름 두 자도 아까웠다. 병원 앞에서 커피나 마시자고 헌팅 하는 남자를 따라나선 것도 그냥 가만히 있는 시간이 아까워서였다.

그게, 설령 다단계든 장기 매매든 전부 부질없었다. 왜 저 남자가 같은 남자인 자신에게 커피를 마시자고 했는지, 모든 꿍꿍이인지조차 알고 싶지 않았다.

낯선 남자와 함께 찾은 시원한 커피숍에선 투명한 유리컵에 담겨 송골송골 땀을 흘려 대는 망고 주스만 노려봤다. 갈린 얼음에 푹 담겨 있는 노란 액체가 그냥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얼음이 녹아 투명한 물이 조금씩 주스의 겉을 맴돈다. 갈린 얼음의 생명이 나보다 더 짧고 무능했다. 뭐를 위해 태어났을까. 네가 할 일은 고작 그거였을까.

거북한 노란 액체를 차갑게 만들기 위해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언제부터 이렇게 염세적으로 변한 걸까. 그건 아마도 병원을 나서면서부터.

“정신이 좀 들어요?”

땀이 식은 지는 오래였다. 원래 마시던 커피를 사양하고 주스를 택한 건, 제 몸 안에 있는 암 덩어리에 좋은 양분을 주는 것 같아 찝찝해서였다.

돌팔이 의사 따위가 한 말에 신경이 온통 쏠려 있었다. 마음 한쪽으론 믿지 않으면서도 조금씩 자포자기가 되기 시작했다.

“정신은 아까부터 있었어요.”

“에이, 정말?”

“내가 농담하는 거로 보여요?”

“나처럼 잘생긴 남자를 앞에 두고 주스만 쳐다보길래.”

어깨를 으쓱거리며 능청스럽게 말하는 남자를 바라보다 단은 헛웃음을 흘렸다.

“잘생겨서 참 좋으시겠네. 뭐 하는 새끼야. 남의 속은 뒤집히는데.”

단은 한숨을 푹 쉬고 창밖으로 보려 고개를 돌리다 멈칫했다.

분명, 속마음이었는데 왜 제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지 괜히 불안하던 찰나에 자신이 지칭한 ‘뭐 하는 새끼’가 커피숍이 떠나가라 웃기 시작했다.

“아, 정말…… 끝내준다.”

눈꼬리에 눈물까지 매달고 배를 움켜잡으며 웃던 남자는 여전히 능글맞게 웃는 얼굴로 중간중간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커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런 남자를 바라보는 단은 아랫입술을 씹으며 난처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망할, 이러다 당장 장기 떼러 가자고 그럼 어쩌지. 병 있다고 그럼 그냥 가려나.’

“후아, 그쪽 때문에 진짜 오랜만에 웃어 보네요.”

“그쪽 아니에요. 나.”

“나도 뭐 하는 새끼 아니에요.”

“……죄송해요. 그건, 제가 말실수…….”

“그럼, 이름이 뭐예요?”

“네?”

“그쪽 아니고, 뭐 하는 새끼 아니고. 그럼 우리 이름 불러야죠.”

손바닥을 펴서 단 한 번, 자신 얼굴 밑에 한 번 가리키며 말한 낯선 남자가 웃었다.

“……단, 홍단이에요.”

“외자? 이름 예쁘네. 빨간 꽃 같고. 난 송진운이에요.”

꽃같이 예쁘다며 웃는 남자를 보자 답답하던 숨통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해방감이 느껴졌다. 마치, 뜨겁던 태양 아래 서 있다가 나무가 우거진 숲 안으로 들어와 맑은 공기를 흠뻑 들이마신 것처럼 청량했다.

이때의 자신을 보고 진운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한여름인데도 새하얀 피부, 살짝 상기된 볼, 불만 가득하게 찡그려진 미간으로 어찌나 하늘을 원망스럽게 노려보던지 저절로 눈이 가더라고, 그렇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자신이 그렇게 몇백 년을 찾아 헤매던 반려라는 것을.

* * *

이야기가 끝나고 진운은 눈을 감고 있는 단을 바라봤다. 한숨이 나올 것 같지만, 참아야 했다.

“당신은 만약에…….”

“응.”

“만약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뭐가 되고 싶어요?”

“신.”

“신 말고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입만 들썩이는 단의 얼굴을 따라 쓰다듬었다.

“신 말고는 없어.”

“신이 그렇게 좋아요?”

“널 다시 찾아내야 하니까.”

그 말에 단의 입매가 굳었다. 울음이 목 끝까지 차올라 두 눈이 아프게 저렸다. 감고 있는 눈 사이로 눈치 없는 눈물이 흐를까, 겁이 났다.

숨을 참아 내고, 울음을 다시 삼켜 내고 희미하게 웃었다.

“신으로 태어나지 못한다 해도 또 찾아줄 거죠?”

“응, 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 난 이미 널 찾았잖아.”

“우린 영원하지 못하잖아요.”

“영원할 거야. 조금만 기다려.”

영원을 바라는 것은 재미가 없었다. 힘에 따라 오는 것이 영원이었을 뿐,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 적은 없었다.

당연히 높은 신이 되면 ‘영원’이 따라오겠거니.

하지만, 이젠 ‘영원’이라는 것이 즐겁다. 이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영원이라면.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지 못해도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너에게 지은 죗값은 영원을 살아가며 갚을게. 조금만 기다려 줘.

욕심에 눈이 멀어 널 찾아내고, 멈춰버린 시간 때문에 몸부림쳐야 했던 너의 고통까지 모두 알 순 없지만.

널 아프게 한 모든 벌은 영원을 살아 내며, 너에게 갚을게.

눈꺼풀 아래에 고여 있는 눈물을 알고 있다. 하지만 손을 올려 닦아줄 순 없었다.

나의 아이에게 지은 죄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더 강한 힘을 갖게 된다면, 반려의 아픔도 자연스레 멈추리라 믿었다. 진운이 믿을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이무기의 힘을 주었더니 한동안은 괜찮았다. 아프지 않았고, 늘 웃었고, 그 두 눈이 반짝였다. 단의 행복했던 그 순간을 다시금 되찾아주어야만 했다. 그것만이 나의 아이에게 속죄할 길이라고 믿었다.

“단아.”

“네.”

“너야말로 나의 하늘이야.”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나의 하늘은 오직 너 하나뿐이다. 나를 살게 하는 신, 나를 태어나게 만든 나의 신.

“나의 신, 나의 하늘.”

단의 목소리가 조금씩 옅어졌다. 고통이 끝나고 잠이 들려는 모양이었다. 얇게 호선을 그리는 단의 입술이 살짝 들썩이다 잠잠해졌다.

수마에 빠지며 삼켜진 단의 말 한마디는 끝내 목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를 원망해요.’

나는 당신의 하늘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다음 생이 있다면, 꼭.

그땐 당신의 하늘이 될게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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