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비 레인-6화 (6/101)

#6

“주, 주인님……!”

아까 눈치를 보고 빠졌던 집사가 노크하고 대답도 듣기 전에 문을 열어젖혔다. 그 순간 라일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해진은 눈을 가리고 있어 보지 못했겠지만, 라일은 반사적으로 그의 나신을 가리도록 재빠르게 앞을 가로막고 섰다.

“저, 급한 소식이…….”

그걸 깨닫자 불쾌함이 잠식했다. 자신이 제 오메가를 보호하려는 알파처럼 행동했다는 사실이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불쾌감이 짙게 깔려 있던 그의 페로몬을 날카롭게 벼렸다. 고작 열성 알파인 집사는 막강한 우성의 페로몬 앞에서 숨통이 막혀 사색이 되었다.

“방해하지 마.”

짧게 일갈한 라일은 문을 닫아 버렸다. 급하게 저택으로 돌아온 탓에 그의 비서진이 연락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마 바로 러트가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겠지.

그러나 이미 러트가 와 버린 이상 어떤 일이든지 뒤로 미룰 수 있었다. 집사가 알아서 판단해서 보고하리라.

한번 떠오른 불쾌함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덕분에 라일은 거칠게 발걸음을 돌려 여태 얌전히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해진의 두 팔을 묶었다. 줄에 멍이 가려지니 훨씬 나았다.

이 모멸적인 사전 준비는 이전에 계약했던 오메가 때문에 생긴 것이다. 라일에게 대체 뭘 기대한 것인지 놈은 자꾸만 결합을 핑계로 라일에게 엉겨 붙었다. 덕분에 처음부터 묶인 해진은 라일에게 손을 뻗을 기회조차 없었다. 애초에 그럴 기회를 안 주는 건 기업 경영에서도 드러나는 라일의 방식이었다.

“읏.”

손속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이런 한심한 짓거리를 평생 해야 하는 제 우성이라는 형질도 혐오스럽다. 라일은 거칠게 끓어오르는 속을 조절하며 해진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며칠 뒤엔 아주 중요한 협상이 있었다. 비서진이 뒤늦게 저택까지 쫓아온 것도 그 이유이리라. 그러니 차라리 잘되었다. 지금 러트가 왔으니 이 이상 반응을 일으키는 뇌를 빨리 원래대로 돌려야 했다. 그러면 아주 맑고 제대로 된 정신으로 협상을 성공리에 끝낼 수 있겠지.

“엎드려.”

차갑게 굳은 목소리로 라일은 해진에게 명령했다. 흠칫 놀랐던 해진은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순순히 움직였다.

머릿속으로는 쉴 새 없이 생각을 거듭했다. 양부모님의 안위가 제일 걱정이었으나 아까 들은 라일의 말을 떠올리며 애써 반항심을 내리누른다.

그의 말대로 해진의 사인은 그저 형식에 불과했다. 게다가 명목상 베르무스 가문의 환자이니, 서명이 하루 이틀 늦어진다고 문제가 생기진 않으리라.

다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불행이 사람의 숨통을 틀어막기도 했다.

마치 그의 행복을 통째로 앗아간 트럭처럼.

***

“으윽.”

원래도 라일과의 관계는 쉽지 않았으나 이번엔 유난히 힘에 부쳤다. 이것이 러트라는 걸 고려해도 어딘가 허릿짓이 사납다. 아래쪽은 이미 질척하다 못해 찌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라일 때문에 해진은 숨 돌릴 틈도 없이 흔들렸다.

덕분에 그는 온 힘을 다해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신음마저 막을 수는 없어서 오늘은 차라리 재갈을 물려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 될 정도였다.

“후…….”

양손으로 잡으니 대부분 가려지는 해진의 허리를 보면서 라일은 흉포하게 끓는 본능을 내리누르려고 노력했다. 해진은 모르겠지만 라일은 나름대로 러트 때마다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다만 오늘은 그 노력이 무색하게 자꾸만 몸에 힘이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것처럼 해진의 몸은 앙상하니 말라 있었다. 그 사실을 인식하고 보니 아까 묶을 때 봤던 녀석의 손목이나 발목에도 뼈가 좀 더 도드라진 것 같았다.

라일은 그 사실이 못내 거슬려 인상을 썼다. 역시 이 러트가 끝나면 계약에 따라 몸 관리를 똑바로 하라고 을러 줘야겠다.

“흣, 읏, 윽.”

평소와는 다르게 해진의 몸을 직접 잡고 있어서 접촉이 늘어났다. 뒤로 묶인 손도 보이지 않으니 마치 제대로 된 성행위인 듯 기만적인 느낌이 들었다.

흘러가는 정염 속에서 라일은 애써 건조한 러트를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질척하게 성기를 감싸는 해진의 내벽은 금방 그의 정신을 흐트러트렸다. 조금씩 그 감각에 침식되던 그는 이윽고 홀린 듯 해진의 몸을 뒤집었다.

거의 몇 달 만에 침대에서 똑바로 누운 자세가 된 해진이 안대 속에서 눈을 껌뻑였다. 평소 효율을 중시하는 라일은 이틀에 한 번 정도 빠르게 뒤로만 박아 페로몬 해소를 하는 걸 추구했다.

그러나 러트 때는 그런 제어나 효율이 썩 말을 듣지 않았고 아무래도 다양한 자세를 하게 마련이었다. 덕분에 해진은 거친 손속에 휘둘려 이리저리 침대 위를 굴러다녀야 했다.

어느 쪽이 더 비참하냐고 묻는 건 의미가 없었다. 다만 해진은 차라리 엎드린 채로 견디기만 하면 끝나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래도 자신의 마음을 죽이며 도구라고 생각하면 버틸 만했으니까. 어차피 그들이 하는 건 연인 간의 행위가 아니었다.

“……읏…….”

이불을 물고 버티던 해진은 그조차 여의치 않아지자 이를 악물었다. 양쪽으로 활짝 벌어진 다리가 허공에서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라일이 대체 어떤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지 해진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해진이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라일은 조금씩 이성을 잃어 갔다.

안대가 슬쩍 비뚤어져 해진의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검은 머리칼이 나부끼는 걸 보면서 라일은 이번엔 어렵지 않게 해진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유려한 콧대 아래에는 헐떡이면서도 꾹 다물고 있는 입술이 보였다. 하얗게 되도록 꽉 깨문 입술에 시선이 박혀 든다. 라일은 저도 모르게 서서히 그 입술로 다가갔다.

러트 기간에도 그는 해진을 거칠게 움직이긴 했으나 애무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건 강한 정신력으로 가까스로 걸어 둔 금제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오늘은 정신을 잡고 있는 것이 영 버거웠다. 한쪽이 거칠게 갈라진 입술 근처까지 홀린 듯 다가갔던 라일은 마지막 순간에 가까스로 얼굴을 꺾었다.

그러나 그뿐, 자제심은 결국 무너졌다. 크게 입을 벌린 그는 그대로 해진의 목을 물었다.

“으읏……?”

화들짝 놀란 해진이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그걸 들으니 이상하게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목을 문 채로 라일은 본능적으로 얼굴을 부볐다. 오메가의 페로몬 샘이 있는 대표적인 부분 중 하나가 목이었다.

평생 익숙해질 리 없다고 생각했던 해진의 페로몬이 미약하게 흘러나왔다. 열성인 그는 이렇게 직접 자극해야 겨우 페로몬이 흘러나오곤 했다. 평소 저택에 오메가의 페로몬이 맴도는 것을 질색하던 라일에게는 좋은 조건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라일이 가까스로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제가 남긴 흔적을 발견하니 또 짜증이 피어오른다.

제 아래에서 거세게 흔들리고 있는 해진은 한껏 당황한 얼굴이었다. 살짝 긴 검은 머리칼이 바람처럼 나부끼고 있다. 그 눈이 가려져 있는데도 왜인지 표정이 똑똑히 보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표정은 금세 달빛 아래 서러운 그것으로 바뀌었다.

“…….”

허리를 끊임없이 움직이던 라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심장이 거세게 뛰다 못해 터질 것 같은 기분이다. 등 뒤로는 세포가 낱낱이 거꾸로 서는 기이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상상 속 해진의 얼굴과 시선을 곧게 마주한 라일은 순간적으로 자제심을 잃었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이성이 절벽 아래로 뚝 떨어지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아래쪽에서는 이변이 시작되었다.

“아, 아……!”

“읏…….”

억지로 신음을 삼켜내던 해진도 이 순간만큼은 제어하지 못하고 큰 소리를 냈다. 녀석의 안에서 생생하게 부풀어 오르는 제 성기를 보고 당황한 건 라일도 마찬가지였다.

왜 지금 노팅이.

그러나 이미 시작된 노팅은 그만둘 수가 없었다. 억지로 그만두면 양쪽이 크게 다치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라일은 몸을 천천히 이완시키며 제가 성기를 파묻고 있는 해진에게 집중했다. 그의 성기는 끝부분이 주먹 크기로 부풀어 오르며 해진의 안을 가득 채웠다. 절대 빠지지 않겠다는 집요함을 담은 알파의 노팅은 강한 집착의 상징과도 같았다.

가끔은 임신이 목적이 아니라 유희로 노팅을 자주 하는 한심한 알파들이 있었다. 그들이 음담패설을 하며 오메가의 안쪽에 가득 채워 넣는 쾌락에 대해 논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코웃음을 쳤으나 놀랍게도 그 묘사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느끼는 환희와 의문이 뒤섞여 라일의 안을 진창으로 만들어 버린다.

“아, 아파, 아흑, 아……!”

비뚤어진 안대 사이로 크게 떠진 해진의 눈이 슬쩍 보였다. 그 짧은 마주침에서도 느껴지는 혼란은 꼭 라일의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는 노팅은 오메가에게는 고통이다. 그래서 해진은 저도 모르게 계속 몸부림을 쳤다. 덕분에 라일은 하는 수 없이 두 팔로 해진을 꽉 끌어안은 채 있어야 했다.

맞닿은 녀석의 배가 조금씩 부피감을 키워 갔다. 그 생경한 감각은 곧 라일이 느끼는 쾌감의 크기와 비례했다. 그를 쓸어버릴 듯 다가오는 쾌감 속에서 라일은 간신히 휩쓸리지 않도록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게 기나긴 러트는 시작부터 이변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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