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으흑, 하, 으응…….”
“응? 해진.”
그냥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그 중독성 있는 쾌감에 정신이 흘러가도록 내맡긴 해진이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쾅 하고 거대한 쾌감이 뇌를 후려쳤다.
“아……!”
“하…….”
그걸 시작으로 연신 쾌감이 쾅, 쾅, 해진을 사정없이 잠식했다. 라일이 허리를 크게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에 단단한 그의 장골이 부딪혔다. 끝까지 차오른 그 성기가 배를 뚫고 나올 듯 거칠게 속을 헤집었다. 그 모든 충격과 접촉이 한없는 쾌감으로 느껴진다.
“하, 흐, 라일, 이상, 이상해. 라일, 라일.”
“응. 응. 여기 봐봐. 해진. 응?”
다무는 법을 잊은 듯 크게 벌어진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그걸 수습할 정신도 없는 해진은 계속해서 중얼거리듯 라일의 이름을 불렀다. 제 위에 있는 게 라일이라는 걸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배 속을 가득 채운 이 성기가, 그를 안은 뜨거운 두 팔이, 그리고 방을 숨 막힐 정도로 가득 메운 따스한 페로몬이.
어색하게 걸치고 있던 두 팔이 어느새 라일의 목에 사정없이 매달리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도 떨어질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조금 더, 조금 더 그와 살을 맞대고 싶었다.
“후…….”
아예 그의 등 뒤로 팔을 밀어 넣은 라일이 거의 들어 올리듯 해진을 지탱했다. 덕분에 손쉽게 가슴이 맞닿을 정도로 밀착한 해진이 그의 귓가에 앓는 소리를 연신 흘려보냈다.
화답하듯 라일은 계속 해진의 볼에, 귀에, 턱선에 입맞춤을 쉴 새 없이 해 주었다. 가물거리듯 깜빡이는 검은 속눈썹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아, 아, 흐……! 읏, 아!”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천장의 화려한 무늬가 뭉개져 보일 때까지 돌더니 이윽고 새하얗게 변했다. 그 순간 해진은 아까 치밀었던 것과 비슷한 사정감이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그걸 어찌 참아 볼 겨를도 없이 울컥 성기에서 정액이 솟았다. 라일이 그의 안을 깊게 쳐올릴 때마다 흔들리던 해진의 성기가 그 단단한 배에 사정없이 비벼진 탓이다.
“바, 방금, 그만, 흐, 아……, 너무, 흐윽…….”
그가 절정에 달했는데도 라일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애원하듯 라일의 어깨에 얼굴을 비볐는데도 어째 움직임이 더 거칠어지기만 했다. 무언가 잘못될 것만 같아 덜컥 겁이 났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쾌감이 가라앉을 줄을 모르고 해진을 계속 자극했다.
“흐윽, 흐, 아, 라, 일, 흐, 아…….”
거의 백치처럼 말을 내뱉는 자신이 낯설었다. 척추를 따라 내달리는 쾌감이 기어코 그의 숨통을 틀어막을 것 같아서 무섭기도 했다.
미친 사람처럼 허리를 쳐올리면서도 라일은 행동과는 다르게 더없이 달콤한 목소리로 귓가에 고백을 쏟아부었다. 꼭 꿀 같은 말로 해진을 찐득하게 가둬 버리고 싶은 사람 같았다.
“해진, 좋아해. 해진, 읏, 해진.”
동시에 예전에도 경험했던 그 짙은 애정 페로몬이 팍 공간을 메운다. 그게 꼭 라일을 중심으로 세상이 빛으로 가득해지는 착각마저 느껴졌다. 페로몬이 눈에 보일 리가 없는데도.
멍하니 정신없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시선을 라일에게 보냈다. 땀에 한없이 흐트러진 그 머리칼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파란 눈은 줄곧 해진에게 향해 있었다.
제게 떨어지는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해진은 눈을 깜빡였다. 쾌감이 실제로 밀려 나온 듯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 순간 라일이 한층 미친 듯이 더 거세게 움직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가를 슬쩍 찡그리며 해진의 안에 뜨거운 애정을 쏟아부었다. 페로몬이 한층 자욱하게 해진을 감쌌다.
흔들리던 몸이 멈추자 침대로 쑥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해.”
그 순간까지도 해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던 라일이 천천히 미소를 피워 올렸다. 예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환한 미소였다. 살포시 접히는 금빛 속눈썹이, 그 속에 담긴 호수 같은 눈동자가 해진에게 애정을 외쳤다.
그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찰나에 해진은 라일의 진심 어린 애정을 느꼈다. 영혼까지 깊게 쏟아지던 비처럼.
***
“아…….”
“정신이 들어?”
눈이 뻑뻑했다. 마치 밤새 울기라도 한 것처럼. 그 어색한 감촉을 더듬던 해진은 자신이 실제로 밤새 우느라 이런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적나라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재빠르게 지나간다.
“아! 으흣……!”
“가만히. 근육통이 조금 있는 모양이야.”
“……으읏.”
조금 당황해 몸을 움직이던 해진이 그제야 등에 닿는 딱딱한 감촉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어딘가 한층 더 상큼해진 것 같은 라일의 금발이 시야에 들어온다.
분명 하루 가까이 정신없이 몸을 섞었고, 그다음엔…….
“해진. 정신 차려 봐.”
목덜미에 닿는 웃음이 간지러웠다. 그제야 라일이 등 뒤에서 저를 끌어안은 자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왜, 라일은…….”
당황을 숨기지 못한 해진이 왜 이런 자세로 있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궁금해했다. 히트의 여파로 한없이 엉겨 붙던 자신을 이번에는 똑똑히 기억하는 그였다. 자는 사이에 또 무슨 일이 있었던가.
“팔이 아픈 것 같길래, 조금 주물러 주고 있었어. 곧 깨워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밥 먹어야지, 라며 라일은 다시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순간 목을 바짝 움츠리고 만 해진이 어정쩡하게 몸을 굳혔다. 라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낮게 웃으며 그의 팔을 들었다.
그 뒤로는 정말 성실하게 팔을 주물렀다. 확실히 팔에 근육통이 극심했다. 더 심한 건 다리 쪽이었는데 귀신같이 그 사실을 눈치챈 라일이 곧 다리도 주물러 줄 생각이었다며 변명을 했다.
그제야 이 자세에 퍽 사심이 담겨 있었다는 걸 깨달은 해진이 힘을 풀었다. 툭 뒷머리에 닿는 라일의 단단한 가슴이 익숙하다.
그 애정 서린 페로몬이 저를 잔뜩 둘러싸는 것도 이제 익숙했다.
폭 안도의 한숨이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미미한 열감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히트 사이클은 잘 지나간 것 같았다.
그가 처음으로 제대로 보낸 히트 사이클이었다.
“…….”
“…….”
갑자기 퍽 먹먹한 심정이 된 해진이 침묵했다. 덩달아 라일도 침묵한 채 열심히 그의 뭉친 팔을 풀어 주려고 애썼다. 이윽고 다리까지 봐 주려는 듯 라일이 움직이자 해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어 그런 그를 만류했다.
해진의 머리칼이 가슴에서 살랑이는 것이 꼭 그와 눈 마주칠 때 같다고, 라일은 무심코 생각했다.
“라일.”
“응.”
“우리는 앞으로도 이렇게 지내게 될까요.”
“나는 그러길 바라지.”
불안함을 담은 해진의 목소리에도 라일은 생각보다 퍽 덤덤하게 대답했다. 미약하게 흔들리는 페로몬까지 숨기진 못했지만.
물끄러미 피부에 닿는 그의 거대한 애정을 호흡하던 해진이 오래도록 가슴에 쌓아 둔 응어리를 쏟아냈다. 그냥, 이제는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자꾸 가족에게 죄책감이 들어요. ……내 불행이 온전히 라일의 잘못이 아닌 건 알아도, 그런데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구는 게 힘들어요.”
그의 부모님이 그렇게 된 건, 사실 라일의 잘못은 아니었다. 애초에 해진은 불행에 잔뜩 부서진 채로 이 저택에 들어왔으니까.
다만 그를 학대한 이들이 적절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고 한들 흉터가 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마냥 그를 원망만 할 수도 없게 되었다.
가장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라일이었으니.
“괜찮아.”
“…….”
“멋대로 각인해서 곧 죽을 놈 살린다고, 불쌍해서 봐준다고 생각해. 뭐든 네 마음이 편한 대로.”
자신의 이야기인데도 라일은 퍽 가볍게 말을 이어 나갔다. 흡사 그보다는 해진이 품고 있는 이 무거운 돌이 더 중요하다는 태도였다.
언제든 해진을 쫓아가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처럼.
“……그러니까, 나와 함께 살아가자. 해진.”
그러나 뒤이어 나온 말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이 실려 있었다. 아직도 퍽 두렵다는 듯 양팔에 힘을 준 라일이 해진을 더 깊이 끌어당긴다.
그가 당기면 당기는 대로 그 애정에 조금씩 젖어 가던 해진은 이윽고 툭 풀어지는 제 마음을 느꼈다.
그의 온기를 손에 움켜쥐고 싶다는 욕심이, 기어코 생겨 버렸다.
“그래요.”
이 한마디가 그간 그리도 어려웠더랬다.
먹먹한 가슴이, 빗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는 듯 둔중하게 울렁인다.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으면서 해진은 고개까지 한 번 끄덕여 본다. 다짐이라도 하는 듯이.
“……고마워.”
대답했는데도 한참이나 침묵하던 라일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맨 어깨에 라일의 속눈썹이 아른아른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머뭇거리던 해진도 저를 안고 있는 라일의 손을 가만히 그러잡았다.
앞으로는 무서울 때마다 이 단단한 손을 잡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고마워.”
살짝 떨리는 그의 음성을 들으며 해진은 가만히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분명 히트 사이클이 시작할 때는 비가 오고 있었는데 어느새 환한 햇살이 정원을 비추고 있었다. 이제는 저 창문도 활짝 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그러면 시원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테지.
가까스로 잡은 이 희망을, 해진은 믿어 보기로 했다.
비가 내리는 게 마냥 우울하기만 한 일도 아니었다는 걸 라일 덕에 되돌아볼 수 있었다. 숲에 내리는 비는 싱그러운 내음을 풍기는 법이니까.
무거운 비도 언젠가는 그친다. 오래도록 빗속을 헤매던 해진은 드디어 깨달았다.
헤비 레인(Heavy Rain) 본편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