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의 그녀들 시즌 2
9부-화인선의 생일.
"으으음.."
'여기가 어디야..'
머리가 시큰할정도로 아팠다.
익숙한 방....귀여운인테리어..그리고 내 옆에 있는 짧은 퍼머머리의 하얀얼굴...
"지..지혜?"
나는 문득 이불을 살짝 들어 내 몸을 보았다.
예상대로 내 몸은 알몸이었고, 지혜 역시 살짝 가슴이 보이는걸로 봐선 나체의 상태였다.
"오빠..일어났어요?"
지혜가 살짝 기지개를 켜며 싱긋 웃는다.
"나왜...왜 여기에 있는거야?"
내 물음에 지혜는 어처구니 없다는듯 웃는다.
"어제 오빠가 내방으로 돌격하더니...무슨소리에요."
"돌격?"
"그리고는 옷 벗기고..막.."
지혜는 살짝 얼굴이 빨개진 모습이었다.
강하루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나는 바로 상호녀석의 연락을 받았었다.
'아...미친듯이 부어라 마셔라 해댔었구나...'
왜 인진 모르지만 나는 저녁때까지 강하루와 있다가 상호를 만나 술을 마셨었다.
인사불성이 될때까지 마시고 놀았던것은 기억나는데 그 이후로는 완전히 필름이 끊겨 있었다.
"아씨..어떻게 된거야 도대체..내가 어제 너한테 실수했어?"
내 물음에 지혜는 곰곰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음...글쎄요...뭐랄까..조금..저돌적이었던거 빼곤..."
"에엥?"
저돌적이라...나는 술에 취해 내방이 아닌 지혜의방으로 뛰어들었고 또 덮치듯 섹스를 했던 모양이다.
"근데오빠..중간에...그만 뒀었어요."
"왜?"
"오빠가..그냥 잠들어 버렸는걸요..하지만 전 좋았어요."
지혜는 싱긋 웃으며 이불로 가슴을 가렸다.
하기야...술먹고 덮쳤으니 제대로된 섹스가 이루어졌을리 없다.
애무를 하고 자지를 꼽는등의 과정을 거치다가 지쳐서 퍼져버린 모양이었다.
"미안해..어제 좀 진상이었지."
"아..아니에요! 오빠 얼마나..귀여웠다구요."
내가 머리를 움켜쥐고 누워버리자 지혜는 내 품에 더 파고들었다.
'이러다가 걸리면 큰일이긴한데..'
"오늘 무슨요일이니?"
"일요일이에요."
"아..."
확실히 기억이 잡혀간다...금요일날 회식하고 토요일날까지 강하루와 있었다.
우리는 모텔에서 두번의 섹스를 나눴고 나는 상호의 연락을 받아 술자리를 갔었다.
뻔한 일이었다...우린 또 진탕 마셔댔고 나는 술에 취해 지혜의방에서 잠든 것이다.
하지만 일요일이란 말에 난 조금 느긋해졌다.
한영은 일요일에 촬영이 종종 있었고, 화인선은 무용연습실로 나간다.
뭐 승희와 소명의 스케쥴까지는 모르지만, 두명이 없는것만으로도 심적부담은 적었다.
"어제 오빤..나 꼭 안아줬어요..너무 기뻤다구요."
지혜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거렸다.
그녀의 성격상 내가 술먹고 덤벼드니 허락하지 않았을리 없다.
난 어제 간만에 큰 실수를 한것이다.
'그렇게 섹스를 해대고 술먹으니 또 발정난 개가 되었던 모양이군.'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쯤, 방안에 요상한 박스하나가 보였다.
"저게 뭐지?"
"몰라요..어제 오빠가 가져온건데..약 비슷한거 같은데.."
지혜는 내가 볼새라 이불속에서 살금살금 속옷을 입으며 대답했다.
-통마늘과 장어엑기스-
눈을 부라려 박스에 적힌 프린트를 보고 나는 잠시 멍해지다가 조금씩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상호녀석의 아버지가 장어양식을 하셨다.
상호는 항상 자신의 정력의 원천은 장어라고 늘상 자랑을 해댔었지...
-얌마..요새 그 양기 뺏어먹는 하숙집땜에 몸이 허하지?이거 하루한봉씩 먹어라..살아날꺼다..-
상호가 내게 건내주며 했던말이 머릿속에 울렸다.
"해..핸드폰이 어딨지?"
내가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찾자 옷을 다입은 지혜가 핸드폰을 건내 주었다.
부재중 전화는 모두 화인선의 것이었다. 내가 늦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급히 문자메세지를 눌러보았다.
-오빠....왜 늦는거야...내일 무슨날인지 몰라?-
-술먹고 안들어오는거면...나 진짜 화낼거야-
두개의 문자 역시 유화인선이 보낸 문자메세지였다.
'오늘이 무슨 날이라는 거지..'
나는 도무지 알수 없었지만 괜히 지혜에게 물어볼순 없었다.
거 때문에 들통이나서 지혜를 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지혜는 내 핸드폰을 확인하는 의부증적 증세는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평소에 걸릴것을 대비하여 '오빠는 사생활을 중요시 한단다' 라고 침이마르게 정신교육을 한것이 덕을 본 모양이다.
나는 핸드폰의 일정검색버튼을 눌렀다.
-2월 20일 유화인선 생일-
'맙소사....'
나는 정말 실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헌신적인 그녀의 생일은 잘 챙겨주겠노라고 다짐했건만...
나는 그걸 잊은것은 물론이요, 술을 진탕먹고 지혜와 또 몸을 섞은 것이었다.
욕실로 들어가는 지혜를 살짝 눈치를 보고,통화버튼을 눌렀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나의전화를 피하는건지,화인선은 몇번을 눌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간은 아침 열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서둘러야 겠다...'
나는 욕실에 있는 지혜에게 약속이 있어 나간다고 해두고는 서둘러 내 방으로 돌아왔다.
'선물..선물...뭘 사야하지..'
화인선을 정말 사랑하지는 않았지만,그녀의 마음을 짓밟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욕망에 눈이 멀어 이성을 헌신짝 처럼 버리는 나지만...마지막 양심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섹스경험은 많아도 연애경험은 거의 초보라 해도 과인이 아닌 나다.
나는 서둘러 양치와 세수를 하고는 옷을 챙겨 입었다.
화인선이 직접 밤을 세가며 짜준 스웨터를 잊지 않고 챙겨입고는 밖으로 튀어나갔다.
내가 처음 들른곳은 보석상이었다.
갖가지 보석들이 즐비했지만, 남자인 나에겐 감흥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어떤거 찾으세요?여자친구분 선물?"
점원이 싱긋 웃으며 나를 반겼다.
"아..네..오늘이 생일인데..뭐 괜찮은거 없을까요?"
"그럼 이 커플링은 어떠세요? 아직 안만드신거 같은데.."
점원은 내 왼손 손가락을 보며 친절하게 반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커플링했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하려고..'
지금 상황에서는 커플링이 쥐약이다.
사실상 이나마 비밀유지가 되는것도 내 예상과는 달리 하숙집여자들끼리 그닥 친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하숙집이 말이 하숙집이지. 원룸이 모인 빌라같은 형태였다.
밥만 모여서 먹을뿐, 각각의 집이 굳건히 철문이 닫혀 있고 욕실도 방마다 있으니 하숙집이라는 말은 좀 무색한 개념이었다.
소명의 말로는 이 집이 하숙집가격에 자취처럼 사생활도 보장되어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 개인적인 공간이 보장되어 있다보니 그닥 친해지지 않을만도 했다.
"아뇨...반지는 제가 좀...다른것은 없을까요?"
점원은 내 말에 곰곰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면..여자친구분 생일이면 귀걸이는 좀 가볍고.."
그녀가 꺼낸것은 자줏빛의 유색 목걸이였다.
"자수정 목걸이는 어떠세요? 2월의 탄생석이라는 의미도 있어서 좋구요."
"탄생석이요?"
나는 점원이 내미는 목걸이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네..줄은 14k로 되어있구요..컷팅도 꽤 잘된 제품입니다. 자수정이 얼마나 이쁜보석인데요.."
나는 문득 화인선의 벗은 몸을 생각해 보았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때문에 신경을 써보진 않았지만. 그녀는 늘상 같은 큐빅팬던트의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음..이걸로 주시겠어요?"
내 차는 정신없이 화인선과 처음 몸을 섞었던 그녀의 학교로 달리고 있었다.
목걸이를 사고 좀 부족함이 있나해서 나는 꽃가게에서 생전 처음으로 꽃까지 샀었다.
무용과 과실로 날아가듯 내달리자 조금은 숨이 찼다.
생각대로 우와한 클래식음악이 밖에 까지 들려왔다.
개강전이라 조금씩 학교를 찾는 여학생들이 전보다 조금 많았다.
하지만 이런 날까지 나와 연습을 하는 아이는 아마 유화인선이 유일할 것이리라...
"어머..남자친구가봐..누군진 몰라도 좋겠다.."
내 꽃을 보고 수근거리는 소리들을 무시하고는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예상대로 한명만이 연습하고 있을뿐이었다.
그녀는 빙글빙글 돌고있었다. 음악에 몸을 맡긴 인선의 몸은 깃털마냥 가벼워 보였다.
무용을 하고 있던 그녀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살짝 손을 흔들었지만 그녀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연습을 계속했다.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인선은 나에게 삐진 마음을 조금도 열 생각이 없다는듯 음악에만 열중했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어우러진 클래식의 선율과 그녀의 무용은 묘한 조화를 이루며 내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딸칵.
연습이 끝났는지 그녀는 말없이 시디플레이어의 전원을 눌러 껐다.
"저기.."
이마에 송글송글맺힌 땀을 닦으면서도 그녀는 눈길한번 주지 않는다.
'단단히 토라진 모양이군..'
"미안해.인선아..정말 미안해."
그녀는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등뒤에 감춘 꽃다발때문에 자세가 매우 어색했다.
"어젠..사정이 있었어..그래서.."
"그래봐야 술약속일뿐이잖아."
말을 딱 잘라버리는 그녀의 대답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나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 평소에 인선이가 내게 준 사랑은 항상 섹스에만 집착하는 나를 반성하게 했다.
"회사 회식이었어..환영회라 빠질수 없었어.."
"1박2일동안 회식을 했어?"
나는 인선의 냉랭한 되물음에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그건 아니지만...토요일에는 사정이 있었어..고향친구가 날위해 올라와서.."
순식간에 나보다 3년먼저 서울에 온 상호가 날위해 올라온 고향친구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았다.
무언가가 잔뜩 불만이 있는듯 그녀의 입은 삐죽나와있었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그깟 술때문에..내 생일인줄은 알았어?"
"내가 왜 까먹어 바보야..니 선물은 일주일전에 사뒀었다고.."
아까의 점원이 들으면 박장대소를 할 일이다.
나는 숨겨두었던 꽃을 내밀었다.
지극히 여성스러운 화인선...역시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지는것이 느껴졌다.
나는 특별히 핑크빛으로 계량된 장미를 잔뜩 사왔고, 나름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너무..너무 이쁘다.."
그녀는 꽃을 받아들고는 황홀한듯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게 너무 귀여웠다.
"이제 풀린거야?"
내 말에 인선은 또 바로 나를 노려보며 표정이 바뀌었다.
"안풀려! 이바보!"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바로 뇌에서 감이 오는게 느껴졌다.
"미안해 인선아..미안해..내가 널 얼마나 생각했는데."
내가 끌어안자 한참 뒤에 내 허리에 그녀의 팔이 둘러지는 감촉이 느껴졌다.
"키스할까?"
"싫어."
화인선은 바로 풀리는게 민망한지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귀여워.."
내가 볼을 살짝 쓰다듬어도 나를 노려보는 눈은 여전했지만 아까같은 냉랭함은 없었다.
"이거보고도 그런 표정 지을래?"
"이게 뭐야?"
"풀어봐."
내가 내민 보석상자를 연 화인선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날아갈듯이 환해졌다.
"와아..이쁘다..자수정이잖아.."
"2월의 탄생석이라길래...맘에 들어?"
"너무 이뻐.."
나는 직접 화인선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녀의 하얀목은 키스하고픈 충동을 일으켰다.
"잘 어울리네?주인을 잘만났어."
"고마워 오빠..정말 난 내생일 잊고 있는줄 알았어.."
"그럴리가 없잖아..바보."
그녀가 살짝 내게 입맞추는것이 느껴졌다.
"이제 다 풀린거야?"
"응...밥까지 사주면 100프로 풀릴거 같아."
너무나 귀여운 화인선의 말은 나를 살짝 웃게 만들었다.
"맛있는거 사줄게..어서 가자."
그녀는 내손을 잡고 나가면서도 연신 꽃향기를 맡으며 싱글벙글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화인선의 귀여움은 늘상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 귀여움은 늘상 지혜와 함께 오버랩되며 나를 괴롭게 했다.
이제 이 하숙집 여자들중에 나와 자지 않은 여자는 없다.
회사의 강하루까지 정복하고 나서는 이제 회사여자들을 따버릴까 하는 호기어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때마다 내 맘한구석에 강하게 각인되는 두 여자는 화인선과 지혜였다.
'나는 유화인선을 사랑하고 있는걸까?'
나도 답을 내릴수 없는 물음이었다.
사실 사랑처럼 내게 사치스럽고 불필요한 감정은 없다. 아니 없다고 믿어왔다.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면 일말의 망설임없이 다른여자와 몸을 섞을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그녀를 볼때는
다른여자들과는 다른 가슴의 애틋함이 느껴졌다.
그것을 난 항상 늘 죄책감이라 포장해 오곤했다.
"뭘 그리 생각해?"
화인선은 연신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도 생일인지라 나는 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 그녀를 데려왔다.
"아냐..그냥 화인선은 어쩜 이렇게 이쁠까 뭐 이런생각?"
그녀는 피식 웃더니 포크를 물고는 앞의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근데 나 이런거 먹음 진짜 살찌는데..."
하긴 무용하는 학생에게 있어서 살찌는것은 최대의 적이다.
하지만 화인선의 몸매는 훌륭했다.풍만한 가슴과 대조되는 가냘픈 허리.
그리고 아름답게 뻗은 다리는 섹스를 할때마다 역시 무용학과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넌 날씬해서 괜찮아."
"피..거짓말"
그래도 생일이라고 그녀는 조금씩 맛을 보기 시작했다.
"넌 나 사랑하니?"
내 뜬금없는 질문에 그녀는 포크를 문채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유학간 남자친구한테 메일보냈어...나 사랑하는 사람 생겼다고.."
인선은 말끝을 살짝 흐리며 포크를 내려놓더니 나를 바라본다.
맑은 눈망울이 죄 많은 나를 비추는것같아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랬구나.."
"오빠는?"
"응?"
"오빠는...어떠냐고...우린 연인사이잖아..."
"나는...나는 말이야.."
쉽게 말을 이을수 없었다.
사랑한다고 말했다가는 다시는 다른여자와 자지도 못할지도 몰라...하는 빌어먹을 욕망이 꿈틀대었다.
화인선은 묵묵히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초조해 하는 듯했다. 대답이 길어지면...뭔가 석연치 않은 법이다.
"나도...나도 당연히 너를.."
띠디디딩...
일부로 잘 알아듣기위해 효과음으로 벨소리를 해놓은 내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잠깐만..."
핸드폰을 꺼내들어 액정을 바라보았다.
'5775?'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지만 생소하지 않는 뒷자리에 난 잠시 주춤할수 밖에 없었다.
"왜그래?누군데?"
화인선은 대답듣는것도 잊은듯 나를 보며 말했다.
'5775......뭐더라....낮익은번혼데...'
나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듯한 충격이 들었다.
불현듯 한 여자의 얼굴이 사진처럼 번뜩 내 머리를 스쳐갔다.
'이런 제길...왜 하필 이럴때에....'
당황한 나와 그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화인선...그리고 벨소리만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