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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1
“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세요?”
풍채가 좋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오십 중반 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2층으로 된 하숙집의 현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그 뒤로 남자의 안 사람과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 하는 아들이 한 손에 캐리어를 붙잡고 서 있었다. 문 앞에서 벌써 십 여분 째 초인종을 눌러댔으나, 사람이 나오지도 않고 대답도 없자,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짜증 섞인 어투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이상하네. 오늘 세 시에 찾아오겠다고 분명히 연락했는데 다들 어디 간거야?”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또 다시 신경질 적으로 초인종을 누르며 사람을 찾았다.
“아 거 안 계십니까!”
와이프가 기다림에 지쳐 짜증이 났는지 한심하다는 말투로 남편에게 말하였다.
“당신 주인집 여자하고 오늘 약속 잡은 거 확실해요?”
여자의 물음에 남편도 짜증을 내며 대답하였다.
“아니 이 사람이, 아니 그럼 약속도 안 잡고 왔을까봐? 그저께 오늘 온다고 분명히 전화로 얘기 했다니깐 그러네.”
“아니 그런데 이 여자는 도대체 어딜 간거람.”
“나 원 참.”
여자와 말을 마치고 남자가 다시 초인종을 누르려는 순간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네 지금 나갑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문 너머에서 하이톤의 여자 목소리가 들리고 1분 후 쯤, 현관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그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아유 죄송합니다. 제가 씻느라 오신 걸 못 들었네요. 어서들 오세요. 자 이 쪽으로.”
하숙집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문을 활짝 열어 집 안으로 세 사람을 안내 하였다.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감고 있었는데, 샤워를 마치고 바로 나왔는지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쌩얼이었다. 보통 여자는 나이가 들면 피부가 푸석하고 늙어 보이게 마련인데, 하숙집 주인 여자는 방금 씻은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임에도 피부가 탱탱하고 잔주름 하나 없는 것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외모를 하고 있었다. 짙은 눈썹과 큰 눈, 오똑한 콧날이 매력적이었고, 거기다 160 중반 쯤 되어 보이는 큰 키에, 검은색 스포츠 브라 위로 받쳐 입은 살짝 비칠 듯 말 듯 한 하얀 셔츠와 꽉 끼는 레깅스 바지는 그 녀의 큰 가슴과 툭 튀어 나온 둔부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고 있었다. 거실에 놓여 있는 조그만 탁자로 앞장 서서 안내하는 그 녀의 뒤태는 꽤 글래머러스 하였다. 잘록한 허리 아래로 탱탱하게 씰룩거리는 엉덩이, 그리고 그 아래로 길고 곧게 뻗은 다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감 야릇한 상상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자 이 쪽으로 앉으세요.”
주인집 여자는 탁자에 방석을 깔아주며 앉기를 권하였다.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고, 하숙집 주인이 맞은 편에 앉으며 말하였다.
“죄송합니다. 씻느라 초인종 소리를 못 들었네요. 날씨도 쌀쌀한데 고생 하셨죠?”
여자의 물음에 아버지는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괜찮습니다.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요 뭘 하하하.”
방금 전까지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짜증이 이빠이 났던 아버지였지만, 미모의 하숙집 주인을 대면하고 나니 (거기다 야릇한 의상은 보너스), 불쾌한 감정은 이미 우주 저 멀리 다른 은하계로 날라가고 난 후였다. 그런 아버지를 눈치 챈 어머니는 기분이 더 상해 있었다.
“이 냥반이 십 분이 넘게 기다렸는데 무슨? 저희 남편한테 세 시에 오기로 약속했다고 들었는데 인기척이 없어서 그냥 가려고 했어요. 하필 사람 오기로 한 시간에 씻고 계셨네요.”
어머니가 주인에게 톡 쏴붙였다.
“아유 죄송해요 어머님, 금방 씻고 나온다는 게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네요. 제가 워낙 씻는 걸 좋아해서. 죄송합니다.”
하숙집 주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앉은 자리에서 셔츠의 가슴 부분을 손으로 누르며 고개를 숙여 사과하였다. 이를 본 아버지가 손사래를 치며 말하였다.
“에이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뭐.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하하하”
아버지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아버지의 말에 하숙집 주인의 미안한 표정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아 참, 제가 정신이 없었네요. 마실 거 좀 드려야 될 텐데. 커피 좀 드릴까요? 아님 음료수라도.”
“아이구 번거롭게 뭐 그런 걸. 괜찮으시면 따뜻한 커피 좀 부탁 드리겠습니다 허허허.”
분위기가 험악한 것을 눈치 챈 아버지는 일단 하숙집 주인과 어머니 두 사람을 잠깐이라도 떨어뜨려놔야겠다는 생각에 커피를 부탁하였다.
“예 금방 갖다 드릴게요. 잠시만 앉아 계세요.”
하숙집 주인은 생글생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주인이 자리를 뜨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아얏. 왜 그래 이 여자가”
아버지가 어머니 옆에서 슬쩍 떨어지며 조용하게 말하였다.
“하여간 예쁜 여자라면 정신을 못 차리지 응? 응?”
어머니가 아버지를 또 꼬집으려고 하자 어머니의 팔을 두 손으로 잡으며 아버지가 말하였다.
“아니 이 여자가 또 무슨 헛소리야. 내가 언제? 내가 언제?”
“방금 전까지 나보다 더 짜증 내던 냥반이 주인집 여편네 얼굴 보더니 아주 신이 나서는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네 활짝 폈어. 내 말이 틀려?”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아니 생각을 해 봐 이 사람아, 우리 창식이 반 년 간 보살펴 줄 사람인데 굳이 인상 구겨서 뭐 할거야? 안 그래? 잘 보이면 두루두루 좋지.”
“하여간 말은 잘 해요 쯔쯔. 아니 너는 집에서 그냥 다니면 될 것을 꼭 하숙을 해야 되니? 전철 타고 다니면 되잖아.”
불똥이 창식에게로 튀었다. 창식의 집은 인천이었다. 창식의 집 근처에는 전철역이 없어 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통학 시간이 한 시간 반쯤 걸렸는데, 제법 오래 걸리는 시간이긴 하였지만 다니지 못할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먼 곳에 여행 한 번 다녀본 적이 없었던 창식은 대학교에 입학하면 꼭 집에서 독립해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었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에 보태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간신히 허락을 얻어 학교 근처에 하숙집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유 엄마 그만 좀 해요. 벌써 돈까지 다 입금했는데.”
“그래, 그만 좀 하구려. 이러다 듣겠네 듣겠어.”
“하여간 내가 두 남자 땜에 제 명에 못 살지 못 살아.”
세 사람이 옥신각신 하는 사이, 하숙집 주인이 커피가 든 쟁반을 들고 탁자에 앉았다.
“자, 드세요들.”
“감사합니다.”
창식은 하숙집 주인이 내려놓는 커피잔을 받아서 아버지와 어머니, 자기 앞에 내려 놓았다. 주인집 여자가 말문을 열었다.
“인터넷에 올린 광고하고 제가 보내 드린 사진을 보셔서 대충 저희 집에 대해서는 아실 겁니다. 저희 집 1층은 여기 창식이 학생하고 체대 다니는 남학생 한 명이 살게 될 거구요, 2층에는 여학생 세 명이 살고 있습니다. 화장실은 층마다 한 개씩 있구요. 창식이 학생 방은 저기 현관문 옆에 방 보이시죠? 그 쪽에서 지내게 될 겁니다. 차 드시고 제가 안내해 드릴테니 이따가 차근차근 보세요. 아마 사진하고 차이는 거의 없을 겁니다.”
“아 네, 그렇군요.”
세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하숙집 주인의 말을 경청하였다.
“그리고, 저희 집은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중요한 거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우선 저한테 미리 얘기하지 않으면 친구들 불러서 방에서 재우고 하면 안 되요. 다른 학생들한테 방해가 될 수 있거든. 이성 친구는 절대 재우면 안 되고. 알았죠 창식이 학생?”
“아 네.”
창식이 대답하였다. 하숙집 주인이 창식에게 물었다.
“창식이 학생은 여자 친구 있어요?”
“있긴 있는데요. 그...”
창식이 말 끝을 흐리는 동안 아버지가 끼어들어 말을 하였다.
“이 놈 고등학교 때부터 만나는 아이가 하나 있긴 한데, 걔가 이번에 지방으로 학교를 가서 아마 여기 오고 할 일은 없을 겁니다. 안심하셔도 되요.”
“아 그렇군요.”
하숙집 주인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통금 시간은 따로 없는데, 새벽에 들어올 때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 안 되게끔 열쇠로 현관문 열고 들어와야 되요. 그러니까 꼭 열쇠 가지고 다니세요. 식사는 아침 7시 반, 점심은 오후 1시, 저녁은 7시인데 식사 시간 늦으면 밥 따로 안 차리니까 가능하면 시간 지키구요. 항상 밥솥에 밥하고 밑반찬, 국 냉장고에 있으니까 혹시 늦으면 직접 차려 먹으면 되요. 세탁물은 방 앞에 바구니 보이죠? 거기다 놓으면 내가 모아서 세탁기 돌려주는데, 혹시 직접 하고 싶으면 세탁실 저쪽에 있으니까 사람들 자는 시간 피해서 직접 하면 되요. 창식이 학생 뭐 궁금한 거 있나요?”
“아니에요. 없습니다.”
하숙집 주인이 창식의 얼굴을 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뭐 몇 가지 더 있긴 한데, 같이 살게 되면 차차 얘기하도록 해요.”
“네 알겠습니다.”
창식이 대답하였고, 그 때까지 애기를 듣고 있던 아버지가 하숙집 주인에게 물었다.
“하숙생이 몇이나 됩니까?”
“네 남학생 한 명하고 여학생 세 명이에요. 원래 방이 없었는데 남학생 하나가 갑자기 연초에 군대를 가게 돼서 방이 하나 비었네요.”
“그럼 1층에 남학생 하나, 2층에 여학생 세 명 있는 거군요.”
“네 그렇죠. 학생들끼리 불편하지 않게 위 아래층 섞이지 않게 받고 있어요 호호.”
“그러셔야죠. 잘 하신 겁니다.”
하숙집 주인과 아버지는 주거니 받거니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다. 어머니는 그런 두 사람이 못마땅 하였지만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자 이제 차 다 드셨으면 방 좀 보여드려도 될까요?”
“네 그러시죠. 자 일어나자구.”
하숙집 주인이 세 사람을 창식의 방으로 안내하였다. 창식의 방은 현관문 옆 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방 안에는 컴퓨터를 놓을 수 있는 탁자와 의자, 자그만 옷장이 놓여져 있었고, 옷장 옆에는 작은 거울과 시계가 걸려 있었다. 집의 외벽 방향의 벽에는 커텐이 쳐져 있었는데, 커텐을 걷어내자 환한 햇빛이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보일러를 틀어놓아 방바닥은 따뜻했고, 깔끔하게 도배 된 벽지에 혼자 지내기에는 제법 넓직한 방은 창식의 마음에 쏙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방이 제법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뭐 사진하고 별로 다른 건 없는 거 같네요.”
그때까지 조용하던 어머니가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아버지는 방 구석 구석을 살펴보며 말하였다.
“방이 참 깔끔하네요 허허허. 창식이 넌 어떠냐?”
“네 좋아요 아버지.”
창식은 방도 마음에 들었고, 이제 부모님의 간섭 없이 혼자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화색이 되어 있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하숙집 주인이 웃으며 말하였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하숙비는 출발하기 전에 4개월치 선불로 말씀하신 계좌로 보냈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세요.”
“아 그러셨어요? 감사합니다.”
“저희 아들이 오늘부터 여기서 지내고 싶다고 해서 말씀도 못 드리고 짐을 챙겨 왔는데 그래도 될까요?”
“예 물론이죠. 오늘이 2월 20일이니까 오늘부터 4개월 후면 6월 20일까지로 기간 잡으면 되겠네요. 어떠세요?”
“네 그렇게 하시죠.”
“그럼 저 쪽으로 가셔서 계약서 쓰실까요?”
“아니 뭐 돈도 다 드렸고, 집이 갑자기 사라질 것도 아닌데 굳이 계약서 쓸 거까지 있겠습니까? 허허허.”
“아니 이 양반이? 그래도 계약서는 써야지. 사람 일 모르는 건데.”
어머니가 정색을 하며 말하였다.
“그러세요. 그러시는 게 저도 마음이 편해요. 별 내용 없으니까 읽어 보시고 싸인만 하시면 되요. 자 이 쪽으로 오세요.”
“허 그 사람 참, 사람이 믿고 살아야지 원. 뭐 정 그게 편하시면 그렇게 하시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핀잔을 주며 탁자로 가 앉았고, 하숙집 주인은 자신의 방에서 계약서를 갖고 와 세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내용을 대충 훑어본 후 아버지는 싸인을 하고 말하였다.
“자 그럼 제 아들놈 잘 좀 부탁드립니다. 이 놈이 우리하고 떨어져 살아 본 적이 없어놔서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을 겁니다. 창식이 너 민폐 끼치지 말고 잘 해야 된다. 알았지?”
“그럼요.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아버지, 걱정 안 하셔도 되요.”
“창식이 너 일요일엔 꼭 집에 내려오고, 아르바이트 바로 알아보고 알았지? 엄마가 잘 하나 볼거야.”
“아유 알았어 엄마.”
가만 두면 계속 잔소리를 할 것 같아, 창식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현관문으로 떼밀 듯이 끌고 가서 현관문을 열었다.
“야 이 놈아, 인사는 하고 가야지.”
아버지가 돌아서서 가볍게 허리를 숙여 하숙집 주인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저희 아들놈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도 가볍게 인사를 하였고, 하숙집 주인도 안녕히 가시라는 말과 함께 목례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