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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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2

그렇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현관문을 나섰고, 두 사람이 나가자 하숙집 주인이 창식에게 물었다. 

“창식이 학생 밥 먹었어요?”

“네 오기 전에 먹었습니다.”

“그렇구나. 다른 하숙생들은 아르바이트 하고 약속도 있고 해서 이따 저녁 때 쯤에 들어올 테니까 그 때 인사하기로 해요. 창식이 학생처럼 신입생도 있으니까 친하게 지내면 되겠네.”

하숙집 주인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웃을 때마다 살짝 접히는 눈가의 주름이 참 매력적이었다. 지금 보니 얼굴이 탤런트 김성령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방에 들어가서 짐 정리하고 푹 쉬고 있어요. 이따가 저녁 시간 되면 부를게요.”

“네” 

하숙집 주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창식은 자기 방으로 돌아와 가져온 캐리어에서 옷가지를 꺼내 옷장에 걸었다. 컴퓨터라든가 다른 쓰던 물건들은 택배로 며칠 후에나 도착할 예정이라 별로 정리할 것은 없었다. 창식은 낮잠을 자기 위해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워 팔베개를 하였다. 천장 중앙에 형광등이 보였다. 내일부터 아르바이트도 구하고, 학교도 가 봐야지, 다음 주에 OT 가야 되는데, 수강신청도 하고 할려면 참 바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펼쳐질 학교 생활과 하숙 생활에 들떠서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며 한참을 뒤척이다가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야 잠에 든 창식이었다. 

얼마나 잤을까, 창식은 잠결에 자기를 부르는 것 같은 소리에 눈을 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이미 방 안은 어둑어둑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불을 켜니 노크 소리와 함께 창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 아줌마였다. 

“네”

창식이 문을 열었다. 

“피곤했구나. 창식이 학생. 피곤하더라도 밥 먹고 자요. 다른 학생들도 다 와 있으니까 인사도 하고 응?”

“아 예, 금방 나갈게요.”

창식은 문을 닫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7시였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창식은 서둘러 이부자리를 걷어내고 거울 앞에 섰다. 자느라 눌린 머리를 대충 손으로 빗어내고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주방으로 향하였다. 주방에는 이미 하숙생들이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왁자지껄 한 것이 서로가 꽤 친해 보였다. 창식은 그들을 보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앉아 있는 학생들도 창식에게 인사를 건넸다. 창식은 빈자리를 찾아 자리에 앉았다. 식탁에는 찌개와 여러 가지 반찬들이 올라와 있었고, 가운데에 메인으로 놓여 있는 제육 볶음이 매콤한 냄새로 식욕을 당기고 있었다. 주인 아줌마는 학생들에게 국을 담아 나눠 주고 있었다. 감았던 수건을 푼 아줌마의 머리는 귀 밑으로 약간 내려오는 웨이브 진 짧은 단발머리였는데,  형광등 불빛을 반사하는 칠흑 같은 풍성한 머리카락이 하얀 얼굴색과 꽤 잘 어울려,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오늘부터 같이 지낼 창식이 학생이야. 잘들 지내 알았지?”

주인 아줌마의 당부에 학생들이 합창하듯이 “네”하고 대답하였다. 대답을 한 후 창식의 맞은 편에 앉은 남학생이 아줌마에게 말하였다. 

“아줌마도 식사하세요.”

“어 난 됐어. 맛있게들 먹어.”

말을 마친 아줌마는 거실로 가서 쇼파에 앉아 TV를 보기 시작하였다. 남학생은 국을 한 술 떠 먹으며 창식에게 말을 걸어왔다. 

“신입생이에요?”

“네, 이번에 사회과학부 12학번 입학하는 김창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창식에게 질문한 남학생의 이름은 박민용, 나이는 올해 스물 둘, 체대 태권도 학과 10학번이었다. 짧은 스포츠 머리에 구릿빛 피부, 짙은 눈썹과 약간 각진 듯한 얼굴이 마초적인 인상을 풍겼고, 걸걸한 목소리와 표준어를 쓰지만 말투 곳곳에서 느껴지는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인상적이었다.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딱 벌어진 어깨에 180은 족히 되어 보이는 큰 키와 다부진 체격이 보는 창식으로 하여금 내심 부러움을 느끼게 하였다. 창식은 170을 갓 넘기는 키에 남자 치고는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이 콤플렉스였기 때문이었다. 민용의 옆에 앉은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여학생이 창식에게 말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오세란, 집은 서울인데 학교까지 통학하기가 귀찮아 입학하자마자 이 곳에서 3년째 하숙을 하고 있는 여학생이었다. 머리가 좋아서 입시학원도 다니지 않은 채 독학으로 사시 1차에 패스한 재원으로, 쌍꺼풀 없는 큰 눈에 뽀얀 피부와 갸름한 턱선, 안경을 받춰 주는 오똑한 콧날에 도톰한 입술이 차도녀의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맞은 편에 떨어져 앉아 있음에도 검은 색 긴 생머리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린스 냄새가 창식의 코를 간질이고 있었다.   

“아 신입생이구나. 어차피 앞으로 계속 보게 될 텐데 말 편히 해도 되죠? 난 법대 10학번 오세란이고, 얘는 박민용, 태권도 학과고 나랑 동갑.”

세란이 곁눈질로 민용을 가리켰다. 밥을 먹던 민용이 살짝 고개를 들어 창식에게 말하였다. 

“잘 지내자.”

“네 형.”

세란이 창식의 옆에 앉아 있는 여학생과 밥상 머리 쪽에 앉아 있는 여학생을 차례대로 소개하였다. 

“창식이 옆에 앉아 있는 애는 무용과 민정이. 한 살 누나네.”

“안녕, 잘 부탁해.”

창식의 오른 편에 앉아 있는 여학생이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이 여학생의 이름은 한민정, 강원도 출신으로 무용과에 재학 중인 11학번 학생이었다. 조막만한 얼굴에 가느다란 목선, 160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키에 긴 팔과 긴 다리가 딱 봐도 무용과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몸매의 소유자였는데, 자그마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이 꼭 연예인처럼 섹시하였고, 긴 팔다리를 자랑하기라도 하듯 아직 추운 날씨임에도 짧은 나시에 반바지 차림이 늘씬한 몸매를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네, 누나라고 부를게요.”

민정의 예쁜 목소리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는 창식이었다. 세란이 창식의 왼쪽 밥상머리 쪽에 앉은 여학생을 소개 하였다. 

“저기 쟤는 이영숙, 창식이랑 동갑이야 인사해.”

“안녕 잘 부탁해.”

창식이 그 녀에게 먼저 인사하였고, 물을 마시고 있던 영숙은 숟가락을 쥔 오른손을 들어 손을 쥐락펴락 까딱까딱하며 인사하였다. 이 학생의 이름은 이영숙으로 집은 창식이와 같은 인천이었다. 일찌감치 수시에 합격하고,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재밌게 놀기 위해 1월에 일찌감치 이 하숙집에 들어온 친구이다. 약간 통통한 체구에 키는 160이 될까말까 한 아담한 체구로, 짙은 갈색으로 염색한 단발머리 샤기컷 아래로 보이는 뽀얀 얼굴은 마치 귀여운 곰인형을 연상케 하였다. 얼굴에 가득한 장난끼에 아직은 서투른 화장이 그녀를 더욱 귀엽게 해주었는데, 그런 얼굴과는 반대로 최소 C컵은 되어 보이는 큰 가슴에, 노브라로 착각할 정도로 흰 면티 위로 도드라진 젖꼭지가 인상적이었다. 

“야 이 가스나야, 인사 똑바로 해야지 그게 머고?”

인사를 성의 없이 한다고 민용이 영숙에게 면박을 주었다. 물을 다 마신 영숙이 그런 민용에게 투정 부리 듯 대꾸 하였다. 

“인사 했는데 왜?”

“처음 인산데 예의 바르게 해야지. 따라해 봐. 처음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민용이 양 손을 배에 얹고는 90도로 목례하면서 말하였다. 그런 모습을 본 영숙이 코웃음을 치며 말하였다. 

“웃기시네. 됐거덩? 근데 넌 무슨 과야?”

“어 나? 난 사회과학부지.”

“재수 아니지?”

“어 현역이야.”

“어 그럼 나랑 동갑이네. 우리 나중에 과팅이나 하자.”

“그래 그러자.”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민용이 혀를 차며 영숙에게 말하였다. 

“하여튼 이 기지배는 남자 엄청 밝혀요. 아직 개강도 안 했는데 너 미팅 할라고 하숙집 들어왔지?”

민용의 말에 영숙이 발끈하였다. 

“뭔 소리셔? 내가 미팅을 하면 얼마나 했다고 그러셔? 오빠가 봤어? 남자나 소개 해 주고 그런 말씀을 하셔.”

영숙의 말에 민용이 갑자기 생각난 듯 말하였다. 

“아 맞다. 너 경철이 전화 왜 안 받냐? 걔가 묻더라. 너 죽었냐고.”

경철이는 민용이 지난 주에 영숙과 소개팅을 시켜 준 친구였다. 그 얘기를 듣자 영숙은 밥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무표정한 얼굴로 민용에게 물었다. 

“오빠!”

“왜?”

“숟가락 살인마라고 들어봤어?”

“그게 뭔데?”

“담에 또 그런 친구 델꼬 나오면 오빠 죽을 때까지 이 숟가락으로 뒤통수 때릴 줄 알아. 알았어?”

영숙은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고는 민용의 얼굴로 들이밀었다. 그런 영숙의 반응에 민용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하였다. 

“야 니가 아직 어려서 진정한 남자의 매력을 모르는 거라니까? 걔 소개시켜 달라는 애가 체대 앞에 줄을 섰어요 줄을.”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민정이 민용을 흘끔 보며 말하였다. 

“그 사람 혹시 작년에 나 소개시켜 줬던 오빠 같은 과 친구 아냐?”

“기억하네 민정이, 갸 괜찮지 않드나?”

민정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양손에 젓가락을 쥐며 말하였다. 

“앞으로 오빠한테 소개팅 받을 일도 없겠지만, 혹시라도 담에 또 그런 친구 데리고 나오면 나는 젓가락을 오빠 이마에 꽂아서 메뚜기로 만들어 주겠어.”

민정은 민용의 얼굴에 젓가락을 쥔 손을 흔들어 댔다. 그런 두 여자의 반응이 억울한 민용이었다. 

“하여간 니들은 아직 남자의 진정한 가치를 몰라보는구나. 경철이 걔가 얼마나 의리 있고 괜찮은 놈인데. 니들한텐 경철이가 아깝다 아까버.”

민용의 말이 끝나자 영숙이 기가 막히다는 듯 말하였다. 

“내가 여태 수 많은 남자를 만나 봤지만 그렇게 매너 없는 남자를 본 적이 없어요. 첫 소개팅에 나이도 내가 동생인데 더치페이를 하자고 해? 그렇다고 얼굴이 잘 생기길 했나, 얼굴은 농사 짓다 온 것처럼 까매갖고 각진 게 아! 생각만 해도 열 받는다. 아니 어떻게 그런 사람을 나같이 귀여운 신입생한테 소개시켜 줄 수 있어?”

그런 영숙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민정은 밥을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숙의 말에 민용이 반박하려는 찰라, 세란이 말리고 나섰다. 

“애들은 새 친구 왔는데 지들 얘기만 하고 있어. 그만 좀 해. 창식이는 집이 어디야?”

“네? 아 저 인천이요.”

깍쟁이처럼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세란은 배려심이 많은 것 같았다. 혼자서 어색해 있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세란이 고맙게 느껴지는 창식이었다. 창식의 말을 듣고 자신과 집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된 영숙은 반갑게 창식에게 물었다. 

“어! 너도 인천이야? 너 인천 어딘데?”

“나 가정동”

“나 동인천인데. 너 고등학교 어디 나왔어? 나 인성.”

“어 나 광성인데. 근처네?”

그 때부터 영숙은 자기 친구 누구 아느냐며 창식에게 질문 공세를 퍼붓기 시작하였다. 자칫 어색할 수 있는 식탁에서의 첫 대화가 같은 지역 출신인 영숙이 때문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 되었다. 한참을 식탁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다가 민용이 제안을 하였다. 

“야 우리 창식이 왔는데 환영회 해야지? 어? 나가자 한 잔 하러.”

“그럴까. 그러지 뭐. 니들은 어때?”

세란이 영숙과 민정에게 물었다. 

“난 콜!”

영숙은 기분 좋게 대답하였으나, 민정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 요새 다이어트 중이라 밤에 뭐 먹으면 안 되는데.”

그런 민정에게 민용이 말하였다.

“야 그냥 잔만 받으면 되지. 너 빠지면 무슨 재미고? 갑시다 민정씨 응?”

“언니 같이 가자. 언니 음료수만 마셔.”

민정은 민용과 영숙의 끈질긴 꼬드김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알았어 알았어. 대신에 나 술 주면 안 돼. 마시겠다고 하면 말려. 알았지?”

“알았다 알았다. 야 빨리 옷 입고 나가자.”

하숙생들은 다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 통에 옮겼다. 세란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아줌마에게 가서 바깥에서 환영회를 한다고 말하였다.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말고, 키 가지고 가. 알았지?”

“네 다녀올게요 아줌마.”

옷을 다 갈아 입은 학생들은 아줌마에게 인사를 하고 근처 술집을 찾았다. 그러나 집에서 신분증을 갖고 오지 않은 창식이 때문에 몇 군데의 술집에서 뺀찌를 먹고 난 후에, 민용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학교 앞 실내포차에서 간신히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다이어트 중이라던 민정은 한참을 빼다가 다른 친구들의 끈질긴 권유에 술을 마시기 시작하자, 1차가 끝나갈 무렵에는 이미 인사불성이 되어 있었고, 이들은 2차로 노래방에 가서 12시를 넘어 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까지 놀고 나서야 하숙집에 귀가 하였다. 거실에서 서로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남기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는데, 헤어질 때는 마치 몇 년을 같이 산 형제와 남매처럼 친해져 있었다. 창식은 입고 있던 옷을 대충 벗고 빤쓰 바람으로 이부자리를 펴고는 불을 끄고 누웠다. 커텐을 쳐서 달빛도 들어오지 않는 방안은 깜깜하였다. 들떠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창식이도 술기운에 스르르 잠에 빠져 들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후에 펼쳐질 황당한 일은 상상도 하지 못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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