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8 / 0093 (8/93)

0008 / 0093 ----------------------------------------------

[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8

OT 첫 날의 술자리는 서로간의 어색함 때문에 다소 서먹했지만, 이튿날의 술자리는 전날보다 한층 부드럽고 화기애애 하였다. 취기가 슬슬 올라오면 술 마시기 게임 보다는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간의 속 깊은 얘기를 나누게 되는데, 걔 중에는 수능을 망쳐서 이 학교에 왔다고 징징 짜는 친구들도 있고(꼭 있다 이런 애들.) 분위기 파악 못하고 게임 하자고 졸라대며 혼자서 열심히 술을 들이붓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그새 짝짜꿍이 맞아 새내기CC 1호에 도전하는 친구 등 모두가 한데 뭉치기 보다는 OT 기간 동안 친해진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되기 마련이다. 창식이는 초반에 게임에 자꾸 걸려서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사람들과 떨어져 벽에 기대어 앉아 쉬고 있었다. 그 때 핸드폰 문자 하나가 도착하였다. 영숙이었다.

‘술 많이 마셨냐?’

‘ㅇㅇ 쫌.’

‘니네 방에 사람들 많냐?’

‘아직 많아. 왜? 오게?’

‘ㅇㅇ 사람 많으면 좀 그렇다. 니가 와라.’

‘나 좀 피곤한데;;;’

‘야 OT 마지막 날인데 그냥 잘려구? 빨리 넘어와. 2115다. 나랑 친구들밖에 없어.’

‘ㅇㅇ 지금 감.’

창식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영숙이 있는 방으로 가기 위해 문을 나섰다. 혼자 갈까 하다가 친구들과 같이 있다는 영숙이의 말이 생각나서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지들끼리 신나게 술을 마시고 있는 친구1, 2호를 조용히 불러내어 함께 문을 나섰다. 영숙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영숙이와 여자애 3명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창식이네가 들어오자 서로 인사를 하고 영숙이네의 사이사이에 끼어서 앉았다. 영숙이가 먼저 친구들을 소개 하였다. 

“자 인사해. 얘는 김신영”

“안녕”

“쟤는 조진애고.”

“안녕”

“얘는 박은애.”

“반갑다”

“그리고 나는 오영숙. 우리 다 국문과반이야. 만나서 반갑다”

영숙이네의 소개가 끝나자 창식이가 친구들을 소개 하였다. 

“얘는 박명수고 얘는 유재석이야. 나는 김창식이고. 우리는 행정학과반. 반갑다.”

한 자리에 모인 남녀 일곱 명이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꼭 미팅을 하는 분위기였다. 어제부터 영숙이 영숙이 노래를 부르던 명수가 영숙이에게 말을 걸었다. 

“너 아까 대동제에서 노래 불렀지? 와 진짜 잘하더라.”

“잘 하긴 뭘. 고마워.”

옆에 있던 재석이가 거들었다. 

“난 진짜 아이유 부른 줄 알았다니까? 우리 다음에 노래방 같이 가자.”

재석의 제안에 명수가 맞장구를 쳤다. 

“야 그러지 말고 지금 가자. 호텔 앞에 노래방 있더라. 그런데 니들은 술 안 마셔? 어째 방에 술병이 하나도 없다?”

명수의 물음에 진애가 대답하였다. 

“응 여긴 과에서 조용히 쉬고 싶은 사람 쉬라고 따로 빼놓은 방이야. 우린 술 마시다가 일찍 일어났어.”

“OT 마지막 날인데 너무 멀쩡한 거 아냐? 그러지 말고 시간도 안 늦었는데 우리 노래방 가서 놀자. 

“그래, 그러자.”

명수와 재석의 제안에 여자애들은 눈빛을 교환하였고, 잠시 후 은애가 말하였다.   

“그냥 오늘은 얘기나 하자. 니들 술 많이 마신 거 같은데.”

“그래, 노래방은 다음에 가자.”

은애의 말에 여자애들이 맞장구를 쳤다. 그럼에도 명수와 재석은 노래방에서 술 한 잔 하면서 놀자고 분위기를 몰아갔지만 여자애들의 반응은 영 시큰둥하였다. 생각처럼 일이 진행이 안 되자 명수는 창식에게 헬프를 청하였다. 

“야 창식아 뭐 하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놀러 가자 응?”

명수의 속마음을 알고 있는 창식이지만 오늘은 피곤해서 별로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야 다음에 가자. 얘들도 피곤한가보네.”

“그래. 그러자”

여자들은 술을 마시기 보다는 방에서 더 얘기하고 싶어했다. 그때부터 명수는 끈덕지게 영숙이에게 말을 걸었고, 창식이와 재석은 다른 여자애들과 대화를 나눴다. 작정하고 작업을 걸기로 했는지 명수는 노래 참 잘 한다, 춤이 귀엽더라, 얼굴이 참 예쁘다 등등 영숙이 마치 나라라도 구한 것처럼 떠받들기 바빴고, 명수의 과한 칭찬에 영숙은 대수롭지 않은 척 했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창식이도 영숙이가 공연을 참 잘 했다고 생각했지만 명수의 칭찬에 영숙이 슬슬 거드름을 피워대자 마음에도 없는 핀잔을 주었다. 

“이 자식은 아이유가 속초 앞바다에서 미역 따는 소리 하고 있네. 아까 삑사리 난 거 못 들었냐? 나 얘 3단 고음 듣고 나 한참 웃었잖아. 이~이~임 뒈박 큭큭”

영숙이가 발끈하며 말하였다. 

“야! 나 원래 되거든? 어제 술 많이 마셔서 그런 거거든?”

“웃기시네.”

“야 너나 잘 해. 이 변태 새꺄!”

창식과 영숙은 티격태격 하며 말다툼을 하였지만, 서로가 기분이 상할 수준은 아니었고, 오히려 둘의 아옹다옹 하는 모습은 구경하는 다른 친구들에겐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은애가 얘기를 듣다가 끼어들었다. 

“니들 진짜 웃긴다. 근데 둘이 같은 하숙집 산다며? 그래서 그런가. 되게 친해 보인다.”

“친하긴 개뿔! 창식이 얘가 어떤 놈인데? 니들 내가 왜 얘를 변태라고 부르는지 모르지. 내가 왜 변태라고 부르냐면 웁! 우웁!”

은애의 말을 들은 영숙은 정색을 하였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창식이가 자신의 팬티를 훔쳐 봤던 얘기를 꺼내려고 하였다. 이에 화들짝 놀란 창식은 영숙의 입을 손으로 틀어 막으며 크게 웃었다. 

“아우 얘 이거 취했나보네. 영숙아 피곤하지? 자 방에 들어가서 자자.”

창식이 영숙의 입을 틀어막은 채 침실로 들여보내려고 일으켜 세우려 하자, 영숙은 창식의 손을 깨물었다. 

“아얏! 야 너!”

“나 하나도 안 취했거든. 이게 불리하니까 수 쓰고 있네.”

씩씩대는 영숙을 보며 여기 더 있다간 본전도 못 찾겠다 싶은 창식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였다. 

“야 그러지 말고 우리 노래방 가자. 응?”

방금 전까지도 안 간다던 창식이 갑자기 말을 바꾸자 명수는 좀 황당하였다. 

“야 다음에 가자며? 그냥 앉아서 얘기나 해.”

“아냐, 분위기가 너무 가라 앉았어. 우리 술 마시자 응?”

그러자 아까까지 나가지 말자던 은애도 갑자기 말을 바꿨다. 

“그럴까? 우리 답답한데 나가자.”

은애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가자고 친구들을 설득하였고, 그들은 호텔 앞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며 놀았다. 방 안에서는 조용하게 놀던 여자애들도 술이 들어가자 점점 더 화끈하게 변해갔다. 노래 한 곡 부르고 맥주 한 캔 완샷 하고, 또 한 곡 부르고 완샷 하기를 몇 번 반복하자 술이 약한 영숙이는 슬슬 정신줄을 놓기 시작하였다. 속이 안 좋은지 친구 손에 이끌려 화장실을 몇 번씩 들락날락 하였고, 울다가 웃다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가 하면 혼자 중얼중얼 방언을 쏟아내지를 않나, 완전 광년이가 따로 없었다. 영숙이가 너무 취해서 모두들 그만 놀고 일어나려고 하였으나, 명수가 분위기 깨지 말고 영숙이를 호텔에 데려다 놓고 올테니 더 놀자며, 영숙이를 부축해 나가려 하였다. 그러나 왠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든 창식은 한사코 자기가 데려다 주겠다며 우기는 명수를 자리에 주저 앉히고 영숙을 들쳐 업고 호텔로 걸어갔다. 알다시피 몸이 축 늘어진 사람은 원래 몸무게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창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영숙을 업고 호텔로 걸어갔다.  

“아우 내가 이 기지배 때문에 이게 무슨 개고생이야. 야! 술을 못 마시면 알아서 빼야지 이 정신 빠진 기지배야!”

인사불성인 영숙은 창식이 뭐라건 말건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성수야, 성수야”

‘성수?’

그러고 보니 저번 환영식 때도 영숙이가 술에 취하자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중얼중얼 대던 이름이 아닌가?

“성수는 또 누구야? 니 남자친구냐? 야! 야! 정신 차려 봐.”

창식이가 불렀으나 영숙이는 대답이 없었다. 간혹 성수란 이름만 되뇌일 뿐이었다. 어느새 호텔방에 다다른 창식은 영숙이를 침대에 던지고 자리에 주저 앉았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창식은 그냥 자기 방에 가서 쉬기로 마음 먹었다. 영숙이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침대 위에 널부러져 있는 영숙이를 보니 좀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침대에 가지런히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눈을 감고 있던 영숙이 눈을 뜨고 창식을 게슴츠레 쳐다 봤다. 

“성수야”

창식이를 성수라는 사람과 착각한 모양이었다. 

“성수야”

영숙이 재차 불렀다. 

“야 정신 차려. 나 창식이야. 성수는 누구길래 술만 마셨다 하면 찾아대냐?”

창식이 물었으나 영숙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성수라는 이름을 부르며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었다. 

“성수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영숙이 울먹이며 서 있는 창식에게 힘겹게 손을 뻗었다. 꼭 가지 말라는 것 같았다. 서 있던 창식은 마지 못해 침대 맡에 앉았다. 앉은 창식의 뺨을 쓰다듬으며 영숙이 말하였다. 

“성수야 미안해.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아서, 다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가지 마라 응? 내가 정말 미안해 흑흑”

영숙은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영문을 모르는 창식은 어리둥절 하였으나, 일단은 재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수인 척 하기로 하였다. 

“그래, 알았으니까 자. 내일 얘기하자.”

창식은 영숙의 얼굴을 가린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정돈해 주었다. 영숙은 창식의 손을 잡고는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 반복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스르르 눈을 감았다. 창식은 영숙이 완전히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방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만히 잠든 영숙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뽀얀 피부에 통통한 얼굴이 꼭 아기 같았다. 맨날 자기를 골탕 먹이는 영숙이었으나, 잠든 얼굴은 천사처럼 착하고 귀여워 보였다. 

“아이구 안 돼지. 정들겠다 정들겠어.”

창식이는 눈을 감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속으면 안 돼! 이 기지배는 악마야! 라고 생각한 창식이었다. 

“야 이 기지배야. 성수는 어따 내팽개치고 맨날 소개팅 타령이야 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