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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12
“우와! 벤츠다”
평소에 차에 관심이 많은 창식은 외제차로 다가가 여기저기를 구경하였다.
“이거 우리나라에 몇 대 없다고 그러던데 이런 동네 골목에서 구경을 다 하네.”
창식이는 느끼지 못 했으나, 외제차를 본 영숙이의 표정은 순간 굳었고 창식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하였다.
“야 김창식! 그만 보고 빨리 가자.”
“왜? 잠깐만. 구경 쫌만 더 하고.”
“야 외제차 처음 봐? 빨리 가자니까.”
“어, 나 처음 보는데? 조금만 더 볼게.”
“아 몰라! 나 먼저 갈거야.”
“췟 그래라.”
창식이를 남겨두고 영숙이는 돌아서서 집으로 먼저 가려고 하였다. 그 때였다. 까맣게 썬팅이 되어 실내가 보이지 않았던 외제차의 운전석 창문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엇!”
안에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여기저기 만지작 거리며 구경하던 창식이는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 민망하기도 하고 비싼 차를 허락도 없이 만지작 거려서 주인이 뭐라고 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나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의 관심은 창식이가 아니었다.
“아가씨!”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남자는 서른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영숙이 쪽을 쳐다보며 아가씨를 외쳤다.
‘응? 아가씨?’
창식이의 시선이 남자에서 영숙이에게로 옮겨갔다. 이미 창식이와 수십미터 떨어진 곳까지 걸어간 영숙이는 남자의 부름에 순간 멈칫했으나 다시 하숙집으로 걸어가려고 하였고, 그런 영숙이를 남자는 재차 불러 세웠다.
“아가씨! 잠깐만 얘기 좀 듣고 가시죠. 회장님께서 말씀 전하라십니다.”
영숙이는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더니 남자에게로 걸어오기 시작하였다. 걸어오는 영숙이의 표정이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영숙이는 남자에게 오자마자 소리를 빽 질렀다.
“내가 사람들 있는데서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아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했네요. 기분 푸세요 영숙양.”
남자가 웃으며 영숙이에게 말하였다.
“일단 차에 타시죠. 잠깐이면 됩니다.”
“됐어. 그냥 얘기해.”
“그럼 그럴까요?”
“창식아, 너 먼저 집에 가.”
영숙이가 창식이에게 말하였다.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 같기는 한데 썩 좋은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아가씨라니? 창식이는 영숙이가 걱정 되어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어? 무슨 일인데? 얘기 해. 나 저 쪽에 있을게.”
창식이는 영숙이 옆에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영숙이는 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재촉하였다.
“글쎄 신경 쓰지 말고 집에 먼저 가라구.”
창식이는 영숙이가 걱정이 되었으나 영숙이의 완강한 태도에 더는 말할 수가 없었다.
“어 알았어. 너 괜찮은거지?”
“괜찮아. 먼저 들어가.”
창식이는 남자에게 대충 가벼운 목례를 하곤 집으로 돌아갔다. 남자는 창식이가 멀어지자 말하기 시작하였다.
“아가씨 회장님 전화를 안 받으신다면서요?”
“바쁘니까 안 받았겠지. 그것 때문에 온 거야?”
“네 걱정하셔서요. 그것도 그렇고 이번 주 토요일에 가족 모임 있으니까 6시 전에 꼭 집으로 오시랍니다.”
“내가 그 집 가족이긴 해? 밥은 지들끼리 알아서 먹으라고 해!”
영숙이는 계속 화를 내며 큰소리로 말을 하였지만, 영숙이의 그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여유있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 말씀 회장님이 들으시면 많이 서운해 하시겠네요. 그럼 저는 말씀 전했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전화 받으세요. 회장님이 아가씨 걱정이 많으십니다.”
남자는 말을 마치고 차를 운전하여 골목을 빠져나갔다. 영숙이는 떠나가는 차를 쳐다보며 두 주먹을 꼭 쥔 채 떠나가는 자동차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느새 영숙이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영숙이는 잠시 후 집에 돌아왔다. 영숙이가 걱정이 되었던 창식이는 쇼파에 앉아 영숙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왔어?”
창식이는 영숙이의 안색을 살폈다. 많이 어두워진 안색에 눈가와 볼에 남아 있는 눈물자국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어, 너 밖에 없어?”
“아냐, 나 밖에 없어. 아줌마 방금 전에 나가셨는데 못 봤어?”
“어, 나 방에 올라갈게.”
영숙이는 창식이를 뒤로 하고 서둘러 방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무슨 영문인지 궁금했던 창식이는 영숙이를 불렀다.
“영숙아!”
영숙이는 계단에 멈춰 서서 고개를 떨군 채 말하였다.
“창식아.”
“어?”
“지금 나 기분이 좀 그렇거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줄래.”
“어? 어 그래. 알았어. 쉬어.”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줄래? 부탁이야.”
영숙이의 목소리는 많이 가라 앉아 있었고, 등을 돌리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등 뒤로 풍겨오는 분위기에서 뭔가 말할 수 없는 사정이 느껴졌다. 창식이는 물어 보는 것을 단념하였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그래, 고마워.”
영숙이는 방으로 올라갔고, 창식이는 쇼파에 주저 앉아서 방금 전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가씨? 남자가 분명히 영숙이한테 아가씨라고 했는데. 영숙이가 무슨 재벌집 딸 같은건가?’
창식이 혼자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사이 초인종이 울렸다. 세란이었다.
“누나.”
“어 창식이 집에 있었네. 너 밖에 없어?”
“영숙이 방에 있어요. 수강 신청은 잘 하셨어요?”
“우리는 그저께 먼저 했지. 신입생 수강신청은 좀 늦게 하잖아.”
“아 맞네.”
두 사람은 쇼팡에 나란히 앉았다. 창식이는 민정이에 대해서 물었다.
“누나.”
“어 왜?”
“민정이 누나 요새 알바해요? 영숙이가 그러던데.”
“어 그렇다네? 주말에만 한다던가 그럴걸?”
“아 그래요? 평일엔 안 하는구나.”
“왜?”
“혹시 민정이 누나 일하는 데 알바자리 있나 물어보려구 했죠. 학교 근처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구요.”
“학교 근처는 치열하지. 그만 둘 때도 자기 아는 사람 소개시켜 주고 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구하기 힘들어. 아 참, 민용이한테 함 물어봐. 민용이 학교 근처에서 알바 많이 했었어.”
“그래요? 이따가 형한테도 물어 봐야겠네.”
“아 나 좀 씻어야겠다. 몸이 왜 이리 찌뿌둥 하지. 몸살이 오려나?”
세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씻을래?”
세란이 돌아보며 창식에게 말하였다. 하여간 이 아가씨는 참. 세란의 농담에 익숙해진 창식이가 받아쳤다.
“그럴까요? 나 비누칠 잘 하는데.”
“하하하. 다 컸네 창식이. 누나 올라간다.”
“네. 아 맞다 누나?”
“응 또 왜?”
“저기...”
창식이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영숙이에 대해서 물어 보려고 했으나, 말하지 말아달라던 부탁이 생각나서였다.
“아니에요. 들어가세요.”
“실 없기는. 난 같이 씻자고 조르는 줄 알았네. 누나 올라간다.”
세란은 방으로 올라갔고, 쇼파에 앉아 있던 창식이는 영숙이 방에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호기심이 많은 창식이는 혹시나 영숙이의 기분이 풀렸으면 무슨 일인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똑똑’
“네”
영숙이의 목소리가 들렸고, 문을 열고 들어간 창식이의 눈에는 베게에 얼굴을 묻은 채 엎드려 있는 영숙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는거야, 우는거야?”
창식이는 엎드린 영숙이 옆으로 다가갔다.
“남이야 울든 자든! 왜 들어왔어?”
영숙이는 그대로 엎드린 채 볼 멘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울고 있었던 것이다.
“야! 이상한 놈 만나고 와서 온 종일 눈물바다인 친구를 어떻게 모른 척 냅두냐? 너 나 몰라? 내가 그렇게 매정한 놈이 아니잖아 안 그래?”
영숙이가 슬쩍 고개를 돌려서 창식이를 쳐다봤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뻘겋게 충혈 되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걱정 돼서 들어 온거냐? 아니면 궁금해서 들어 온거냐?”
“2 대 8 ?”
“으이구, 니가 그럼 그렇지.”
영숙이가 베개를 집어던지며 침대에 양반다리로 앉았고, 창식이는 날아오는 베개를 받아 침대에 내려 놓으며 영숙이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아까 누구 온거야?”
“어, 세란이 누나.”
“너 혹시 내 얘기 한 거 아니지?”
“야! 나 입 무거운 놈이거든? 걱정하지 마. 아무한테도 얘기 안할 테니까.”
“도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야, 아까 그 사람 누구야? 누군데 너한테 아가씨라고 불러? 혹시 그 사람이 성수냐?”
“으이그”
영숙이가 베개를 다시 집어 창식이의 머리를 내리쳤고, 창식이는 팔로 날아오는 베개를 막았다. 수차례 베개를 휘두르던 영숙이는 지쳤는지 베개를 제 자리에 놓고 말하였다.
“하 힘들어. 야, 성수라는 이름 다신 얘기하지 마. 알았지?”
“어, 알았어.”
성수라는 이름만 나오면 정색하는 영숙이가 궁금했지만 더는 물어보지 않기로 하였다. 영숙이가 말을 이어 나갔다.
“아까 그 사람이 왜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엉, 그 사람 뭐 하는 사람이야?”
“그 사람 우리 아빠 비서야.”
“비서?”
창식이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설마 했었던 상황이 눈 앞에 현실로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