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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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26

“어, 영숙 양. 오랜만이야.”

“안녕하세요 아저씨. 별 일 없으시죠.”

“나야 뭐 항상 똑같지. 하하하 그래, 무슨 일로 갑자기 전화를 주셨을까. 우리 아가씨께서?”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내일 좀 뵐 수 있을까요? 아, 아니다. 아저씨 제가 동영상 하나 보내 드릴게요. 우선은 좀 봐 주세요.”

“동영상? 무슨 동영상?”

“제가 지금 바깥이거든요. 한 시간 안에 집에 도착하니까 좀 이따가 다시 전화 드릴게요. 우선 동영상 좀 봐주세요.”

“그래요. 일단 보내 봐.”

“네 아저씨. 이따가 전화 드릴게요.”

영숙이는 전화를 끊고 이 실장에게 동영상을 전송하였다. 집으로 가는 내내 영숙이는 주머니 안에 넣어 놓은 성수의 쪽지를 만지작 거렸다. 당장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첫 글자만 읽어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기에 꾹 참고 집에 가서 읽기로 마음 먹었다. 

“다녀왔습니다.”

집에 돌아 온 영숙이를 차 집사가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아가씨.”

“아빠는요?”

“아직 안 오셨습니다. 밖에서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얼굴이 한결 좋아 보이네요.”

영숙이는 말 없이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자기 방으로 올라 갔다. 

“아가씨, 식사는요. 위로 올려 드릴까요?”

“생각 없어요.”

방에 들어 온 영숙이는 문을 잠그고 이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영숙양.”

“아저씨, 제가 보내드린 동영상 보셨어요?”

“네 보긴 봤는데, 누구죠?”

“모르시는 사람이에요? 전 비서실 직원인 줄 알고 아저씨한테 물어본 건데.”

“비서실 직원이라뇨?”

“오늘 일이 있어서 외출 했는데 저를 살펴 보고 있더라구요. 처음 보는 얼굴에 느낌이 이상해서 혹시나 싶어 확인 좀 하려고 전화 드린거에요.”

“아 그랬구나. 저는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비서실 직원일 수도 있어요. 저 이번에 비서팀에서 다른 부서로 보직이 바뀌었거든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왜요?”

“다 말씀 드리기는 어렵고, 여튼 저 뿐만 아니라 비서팀 전체가 다 바뀌었어요. 자주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면 얼굴 잘 익혀 두세요.”

영숙이는 어린이집 시절부터 자신을 돌보고 지켜봐 온 이명훈 실장이 하루아침에 비서실에서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는 것이 이상하였다. 이 것이 혹시나 성수가 갑자기 떠나야만 했던 이유와 어떤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싶은 영숙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하였다. 

“아저씨.”

“네 말씀하세요.”

“아저씨, 성수 잘 아시죠?”

“그럼요. 왜 모르겠어요. 영숙 양 남자 친구잖아요 하하.”

“성수가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졌어요. 온 가족이 함께.”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사흘 전에 저한테 한 마디 말도 없이 떠났다구요. 학교에는 전학 간다고 하고, 자기 다니던 기획사에도 한 마디 상의 없이.”

“흠, 그런 일이 있었군요.”

“혹시 짐작 가는 거 없으세요?”

이명훈 실장 역시 영숙이의 말을 듣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성수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온 가족이 함께? 이 실장은 본능적으로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이 회장의 모종의 지시가 있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날 영숙이와 성수의 사진을 보고 분노하던 이 회장의 일그러진 표정을 이 실장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때의 상황으로 보아 이 회장의 성격상 분명히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였다. 그렇다면 영숙이가 보낸 동영상의 남자는 이 실장이 그 동안 추측만 해왔던 영숙이를 감시하던 또 다른 라인이란 말인가. 이 실장은 머릿 속에서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를 퍼즐을 맞추듯 하나씩 하나씩 짜맞춰 가고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

“아 네, 제가 잠깐 딴 생각을 했네요. 미안해요.”

“혹시 뭐 아시는 거 없으세요.”

“글쎄요, 저도 그 일에 대해선 아는게 없군요.”

“네, 그렇군요.”

핸드폰 너머로 영숙이의 풀 죽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증으로는 이 회장이 꾸민 일임에 틀림이 없었지만 아직 밝혀진 증거도 없거니와, 괜히 사실을 알아 봐야 영숙이만 깊은 상처를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 실장은 이 일에 대해서 굳게 입을 닫기로 하였다. 

“미안해요 영숙양, 도움이 못 돼서.”

“아니에요 아저씨. 그럼 지금은 어디 계시는 거에요?”

“네, 지금 회장님 지시로 안성에 있는 물류창고에 내려 와 있어요.”

“아 그래요. 출근하기 힘드시겠다. 아저씨 집 서울이잖아요.”

“운전하면 금방이에요 하하하. 뭐 바쁘지도 않고 좋네요. 회장님이 배려해주신거죠 뭐. 그나저나 한 동안 우리 영숙양을 못 볼텐데 서운해서 어쩌지.”

“그러게요. 아저씨가 사 주시던 파스타 맛있었는데.”

“다음에 그 쪽 갈 일 있으면 또 파스타 먹으러 갑시다. 성수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별 일이야 있겠어요. 조만간 연락 올 거에요.”

“그렇겠죠? 고마워요 아저씨. 덕분에 좀 힘이 나네요.”

“다행이네요. 그럼 힘 내고 우리 다음에 또 연락해요.”

“네 아저씨, 감사합니다.”

영숙이는 전화를 끊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상하다. 아빠 밑에서 별 일 없이 오래 일해 온 사람인데 왜 갑자기 비서실에서 내보낸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이 실장이 성수 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과, 오늘 낮에 봤던 수상한 사람은 비서팀에 새로 온 직원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이 실장 아저씨가 아무 것도 모르는 걸로 봐서 아빠는 이번 일하고 무관할거야. 아저씨는 나한테 거짓말 할 사람이 아니니까.’

영숙이는 아버지가 성수가 사라진 일과 어떤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딸의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아빠 성격에 행여 딸의 남자 친구가 못 마땅해서 무슨 일을 벌인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던 차에 이 실장의 말을 듣고 나니 가슴 속의 무거웠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가 있었다. 영숙이는 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성수의 편지를 꺼내어 읽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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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영숙이에게.

영숙아, 얼굴 본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니 얼굴이 보고 싶어, 아니 어쩌면 한동안 너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더 그리운 거라고 생각해. 니가 이 편지를 볼 때쯤이면 아마 너는 말 없이 떠난 나를 한참 욕하고 있겠지? 우리 영숙이는 욕쟁이니까 ^^ 

미안해. 아무 말 없이 떠나서. 처음 너를 기획사에 데려갔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그 때 니가 나를 얼마나 생각해 주는 지 알 수 있었어. 처음에 널 봤을 때 넌 어딘지 어둡고 외롭고 힘들어 보였어. 그래서 내가 이 여자를 지켜주고 힘이 돼 줘야겠다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받기만 하고 너에게 참 해 준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게다가 항상 부족하고 앞날이 불안한 내게 너는 변함 없이 기다리겠다고 말 해 줬었어. 너는 모를거야. 너의 그 말이 얼마나 내게 힘이 돼 주었는지. 우리가 아직 어리지만, 나에 대한 너의 감정은 우리의 나이보다 훨씬 더 성숙한 것이라고 믿어. 나 또한 그렇고. 비록 지금은 내가 왜 너를 떠나야만 하는지 말해 줄 수 없지만, 다시 만나게 될 그 날이 오면 우리 영숙이 두 팔 가득 껴 안고 웃으며 다 말해 줄게. 우리 영숙이는 뚱뚱하니까 ^^ 

영숙아 영숙아 영숙아 나는 종이 위에 적힌 너의 이름만 봐도 마음이 설레어. 영숙아 영숙아 영숙아 밤새 적어도 못 다 적을 이름 우리 영숙아. 많이 보고 싶고,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다시 보고 싶을 영숙아.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 오해 하지 말아 줘. 우린 꼭 다시 만날 거야. 제발 나를 믿고, 지금의 나를 미워하지 말아줘. 아니다 죽을 만큼 미워해도 좋으니까 잊지만 말아 줘. 영숙아 미안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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