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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28
“너 영숙이 말처럼 여자친구가 하기 싫다는데 억지로 한 거 아니니?”
“아니에요. 절대로.”
창식이는 억울함에 펄쩍 뛰었고, 두 사람에게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차근차근 얘기하였다. 얘기를 다 들은 영숙이가 말하였다.
“흠, 내가 보기엔 니가 좀 별로였나보다. 조루라던가, 물건이 좀 작다던가. 이유는 그 거밖에 없는 듯?”
계속 자신에게 깐족대는 영숙이 얄미운 창식이었지만 더 화를 내기도 귀찮은 심정이었다.
“하, 이영숙. 그만 좀 해라. 나 진짜 심각하거든?”
“그래, 그만 해라. 창식이 울겠다 울겠어. 그리고 창식이가 얼마나 큰데? 호호호.”
“어머, 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알지 왜 몰라. 어떻게 아냐면.”
창식이가 세란의 입을 황급하게 틀어 막았다. 지난 새벽에 몰래 아줌마와 민용이의 섹스를 훔쳐 본 것을 말할까봐 깜짝 놀란 창식이었다. 하여간 뒤가 구린 놈은 이래저래 피곤한 것이 세상 이치!
“퉤퉤 아이 짜. 알았어 알았어. 농담이야 농담.”
세란이 휴지로 입 주변을 닦았다.
“나 진짜 심각한데 누나까지 왜 그래요 진짜.”
창식이가 서운한 표정을 짓자 세란이 웃으며 사과하였다.
“미안 미안. 안 그럴게. 그런데 창식이 니 말 대로면 어쩌면 상실감 뭐 그런 거 때문 아닐까?”
“상실감이요?”
“왜 여자들은 첫경험을 하고 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오랫동안 지켜왔던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거든. 게다가 이래저래 스트레스 때문에 기분이 우울하고 하면 그게 더 심할 수도 있고. 그러면 남자친구인데도 도둑놈처럼 뭔가 훔쳐 간 거 같기도 하고 꼴 보기 싫고 그럴 때가 있다고 하더라. 또 내 비밀을 다 보여준 거 같아서 민망하고 괜히 어색할 수도 있고. 하여간 여자는 좀 복잡해. 다 그런 건 아닌데 그런 사람들이 있어.”
“그래요? 누나도 그랬었어요?”
“난 아니고, 친구 중에 좀 예민하고 우울증 있는 애가 있는데 걔가 그러더라. 이상하게 한 번 하고 나니까 괜히 어색해져서 남자친구를 멀리 하게 되더라고.”
“그 친구는 어떻게 됐어요?”
“오래 못 가서 헤어졌지 아마? 한 번 어색해지니까 힘든 가 보더라구.”
세란의 말을 들은 창식이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날 진영이가 한 말을 미루어보아 왠지 세란이 말한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표정이 많이 안 좋아 보였는데.’
진영이 걱정도 되고 자기가 뭔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아 이래저래 심경이 복잡하였다. 남의 속도 모르는 영숙이는, 아니 알면서 놀리려고 그러는 건지 영숙이는 창식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하였다.
“어서 와. 웰컴 투 솔로 월드. 솔로는 오랜만이지?”
자신의 어깨를 토닥이는 영숙이의 손을 걷어내고 창식이가 물었다.
“야 이영숙. 너도 처음 했을 때 그랬냐?”
“난 노 코멘트.”
“야 난 내 비밀 다 털어 놨는데 넌 머야? 말 좀 해 봐라.”
“니가 왜 내 성생활을 궁금해 하고 그러셔? 신경 꺼라 앙!”
“하여간 도움이 안 되요. 이 기지배는.”
맥이 탁 풀린 창식이는 방으로 들어갔고, 세란이 영숙에게 물었다.
“야 영숙아.”
“네 언니.”
“넌 가만 보면 창식이를 엄청 괴롭히더라? 왜 그래? 너 창식이 좋아하니?”
“네? 창식이를요? 아우 언니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쟤 완전 내 스타일 아니거든요.”
“그런데 왜 그래? 아님 창식이가 뭐 너한테 잘못 하는 거라도 있니?”
“아뇨. 퉁퉁대도 저한텐 잘 하는 편이죠.”
“그럼 왜 그렇게 괴롭혀?”
“재밌잖아요.”
“뭐?”
“애가 놀렸을 때 리액션이 좋거든요. 그 재미죠 뭐 크크.”
“하 말도 안 돼. 그래서 그렇게 짓궂게 구는거야?”
“네. 언니도 해 보세요. 재밌어요.”
“너도 참 너다. 너야.”
영숙이의 말을 들은 세란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저녁이 되어 밥 먹을 시간이 되었지만, 창식이는 방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조용히 방구석에 누워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똑똑똑’
누군가가 방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영숙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야 밥 안 먹어?”
“됐어. 생각 없어.”
창식이는 영숙이에게 돌아 누운 채로 귀찮다는 듯 대꾸하였다.
“아침도 안 먹고 나갔잖아. 학교에서 혼자 맛있는 거라도 먹었냐?”
“아냐. 귀찮으니까 너나 가서 먹어.”
영숙이는 팔짱을 끼며 한심한 듯 창식이를 바라보다가 누워 있는 창식이의 등을 발 끝으로 툭툭 쳤다.
“야, 나 좀 봐봐.”
“아 진짜 왜 그러냐. 귀찮다니까.”
창식이가 짜증을 내며 등을 돌려 영숙이를 쳐다 봤다.
“너 사춘기야? 여자친구가 전화를 안 받는다고 왜 니가 밥을 굶는데?”
“그냥 좀 내버려 두라니까. 넌 왜 이렇게 내 일에 참견이냐?”
“아 이 새끼 진짜 못 나게 구네. 야! 전화를 안 받으면 직접 가면 될 거 아냐. 어디 있는 줄 뻔히 알면서 왜 쫓아갈 생각은 안 하고 미련하게 방구석에 드러누워서 청승인데? 왜 이렇게 한심하냐 너?”
창식이는 영숙이의 말에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세란의 말을 듣고 나서 부쩍 걱정이 늘어난 창식이는 행여 지금 진영이를 만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은 아닐까, 감정이 안 좋은 상태에서 괜히 심한 말이 오가서 사이만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숙이에게 그런 세세한 말까지 해 줄 겨를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 하는 창식이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고, 그런 창식이가 답답한 영숙이는 혀를 찰 뿐이었다.
“에휴 쯔쯔, 그래라. 밥을 먹든 말든 니 맘이지. 밥 굶으면 니놈 손해지 내 손해 아니니까. 알아서 해라 알아서 해.”
영숙이가 몸을 돌려 방을 나서려는데 창식이가 영숙이를 불렀다.
“야!”
“왜?”
“가도 될까?”
답은 정해놓고 너는 대답만 해. 창식이는 진영이가 보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내려가라 잘 될거다 라는 말을 해 주길 원했고, 그러면 용기를 내서 내려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숙이는 창식이의 물음에 고개를 돌려 대답하였다.
“내일 날씨 좋다더라. 내려가 봐.”
“그래, 그래야겠다.”
영숙이가 엷은 미소를 지었고, 창식이도 슬쩍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말은 안 했지만 영숙이가 참 고마웠다.
“밥 진짜 안 먹을거야?”
“그냥 좀 누워 있을래.”
“나오기 귀찮으면 라면이라도 끓여다 줘?”
“미친 놈. 하여간 사람 귀찮게 하지. 기다려 봐.”
영숙이가 문을 닫고 나가자 창식이가 큰 소리로 영숙이에게 말하였다.
“계란 넣고 물 쪼금.”
나갔던 영숙이가 다시 문을 빼꼼히 열었다.
“지랄.”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