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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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33

창식이는 약속한 커피숖에 들어가 내부를 살폈다.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민용을 발견한 창식은 맞은 편에 가서 앉았다. 

“형, 무슨 일이에요?”

“어, 왔냐? 일단 뭐 좀 시키자. 뭐 마실래?”

“음, 전 까페라떼요.”

“디저트는 뭐 먹을래?”

“전 괜찮은데.”

“야, 기왕 사 줄 때 먹어라. 블루베리 치즈케잌 먹어라. 저번에 먹었는데 맛있더라.”

“그래요? 그럼 그거 먹죠 뭐.”

“앉아 있어.”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가 나오자 둘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야 미안하다. 하숙집에 온지 세 달이 넘도록 밥 한 번 사 준적이 없었네. 많이 서운했지?”

“에이 아니에요. 형 바쁜 거 다 아는데요 뭐. 저야말로 형한테 잘 해드린 것도 없는데요 뭐. 국가대표 안 되신 거 들었어요. 힘내세요. 다음에 또 기회가 오겠죠.”

“내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 건데 뭐. 이제 접어야지. 어차피 그 쪽으로 계속 나아갈 것도 아니라서 별로 아쉽지도 않아.”

“네? 형 태권도 잘 하신다면서요. 대표선발전 2위면 엄청 잘 하는 거 아닌가. 더 열심히 하셔서 다음 올림픽 때 나가시면 되죠. 그 동안 해 온 게 아깝지 않으세요?”

“솔직히 말하면 올림픽에서 메달 따서 군대 안 갈려고 한 거야. 그냥 어렸을 때부터 쭉 해 온 거, 주변에서 잘 한다 잘 한다 하니까 여기까지 온 거지, 나 태권도에 목 메고 그러진 않거든.”

“아, 그래서 갑자기 군대 가기로 결정하신 거군요.”

“그런 거지. 너도 얼마 전에 여자친구랑 헤어졌다며? 애들 얘기 들으니까 많이 힘들어 했다고 그러던데 이제 좀 괜찮냐?”

“툭툭 털어야죠 뭐. 이제 다 지난 일이에요.”

“그렇구나. 다행이네. 그런데 창식아.”

창식이를 보는 민용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비록 같은 하숙집에 살긴 하지만 세란이나 영숙이에 비해선 별로 말 할 기회도 없었고, 얘기할 꺼리도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자신을 불러낸 것이 의아했었는데, 이제 용건을 본격적으로 얘기할 참인가 싶었다.

“네, 말씀하세요.”

“너 다 알고 있지?”

“네?”

“그거 말야. 나하고 영애 누나 일.”

‘영애 누나? 영애 누나가 누구지. 헉! 설마 하숙집 아줌마?’

순간 창식이의 목덜미와 이마에 식은 땀이 흘러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아무 말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아줌마가 민용이에게 자기가 둘의 잠자리 장면을 몰래 훔쳐 본 것을 얘기한 것이 틀림 없었다. 심지어 두 번째 몰래 훔쳐 봤을 때는 둘의 정사 장면을 보며 딸딸이까지 치지 않았는가. 아니 그보다 더 큰 걱정은 혹시나 아줌마가 자기하고 있었던 일까지 민용이에게 말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설마 그 것 때문에?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면서 창식이의 안색은 창백해져갔고, 먹던 케잌 조각을 손에 든 채로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 

“아, 그, 그거요. 그게 제가 몰래 보려고 한 건 아니구요. 그게요. 저, 죄송해요.”

뭐라 변명이라도 하려고 했으나, 결국 사과의 말과 함께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러나 언짢아할 줄 알았던 민용이의 반응은 생각과 달리 쿨하였다. 

“야, 야,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오히려 내가 고맙다. 비밀 지켜 줘서.”

민용이가 웃으며 말하자, 창식이도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네? 아 네. 뭘요. 하하”

창식이는 냅킨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렸다. 민용이의 표정이나 말하는 것으로 적어도 자신과 아줌마 사이에 있었던 일은 모르는 듯 하여 창식이는 한 숨 돌릴 수가 있었다. 

“군대 가기 전에 해명이라도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일단은 사실을 말해 두는 게 낫겠다 싶어서 부른거야. 충분히 오해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오해요?”

“솔직히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나하고 누나가 그러는 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잖아. 야, 너도 솔직히 좀 이상했지?”

“아, 아니 뭐, 전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해 보진 않아서.”

“사실 누나하고 나 서로 좋아하는 사이야.”

“아, 그러셨구나. 네? 아아, 네. 네.”

가만히 민용의 말을 듣고 있던 창식이는 깜짝 놀랐지만, 애써 그런 기색을 감추었다. 괜히 민용이가 기분 나빠할까 싶어서. 하지만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는 민용의 말이 주인집 아줌마와 하숙생이 섹스를 하는 상황보다도 더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아니, 둘이 나이 차이가 얼만데 서로 사랑하는 사이야. 이 형도 미쳤네 미쳤어. 그 것보다 자기 말고도 아줌마가 나한테도 그런 거 알면 충격이 크겠는걸.“

자기와 있었던 일을 떠올리니 민용이 왠지 측은해 보이는 창식이었다. 

“내가 먼저 누나 좋아해서 그렇게 된 거니까 누나 너무 이상하게 보지 마. 알았지?”

“네, 그럼요. 이상하게 안 봐요 전혀.”

“이거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나 좀 난감 했는데 막상 말 하고 나니까 속이 후련하다.”

민용이 기지개를 활짝 켰다. 민용의 말마따나 처음 커피숖에서 본 표정보다 한결 가벼워진 얼굴이었다. 창식이가 조심스레 민용에게 물었다. 

“형.”

“어, 왜?”

“형은 아줌마가 그렇게 좋으세요?”

“그건 왜 묻냐?”

민용이 웃었다. 

“사실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나잖아요. 형은 그런 거 상관 없으세요?”

“응, 우리가 좀 나이 차이가 좀 나긴 하지.”

민용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창식이에게 물었다. 

“창식아.”

“네.”

“너는 여자 볼 때 뭐를 먼저 보냐?”

“음, 몸매?”

“하하하 몸매? 이 자식 보기 보다 밝히나보네 하하하.”

‘너님만 하시겠어요.’

스무 살 넘는 아줌마와 섹스라이프를 즐기는 민용이가 남한테 밝힌다는 말을 하다니. 창식이는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쯧! 

“나는 말야.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이 좋더라. 그런 면에서 누나는 누구보다도 나한테 딱 안성맞춤인 사람이야.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나를 반겨 주고, 기다려 주고. 볼 때마다 즐겁고 행복한 사람? 누나는 나한테 그런 사람이야.”

아줌마 얘기를 하는 민용의 얼굴에 웃음꽃이 한 가득 피었다. 말을 하면서도 영애의 얼굴을 떠올리며 연신 싱글벙글 하는 민용의 표정 만으로도 그가 그녀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었다. 그런 민용이 창식이는 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형만 기다리는 건 아닌 거 같더라구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괜한 분란을 만들기가 싫어 꾹 참기로 하였다. 

“사실 나는 누나가 기다려만 준다면 군대 다녀와서 곧바로 결혼을 할까도 생각 중이야.”

점입가경이었다. 결혼이라니.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바람난 아줌마하고?

‘오 마이 갓! 저기요 형님, 군대보다 병원 먼저 좀.’

민용의 말에 괜히 자기 속이 타들어가는 창식이는 남은 까페라떼를 원샷하였다. 

‘아니 그런데 이런 부담 가는 소리를 왜 나한테 하는 거야 도대체. 내가 대나무 숲이냐 머냐. 왜 나한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는 건데? 응?’

“저기 아줌마도 아세요?”

“결혼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자기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는 알지. 계속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아줌마는 뭐라는데요?”

“대답을 안 해 주네. 난처해 하는 거 같기도 하고. 하긴 그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세상 사람들이 보면 다들 누나를 욕할 테니까. 정신 나간 여자라고.”

민용의 표정이 씁쓸했다. 

‘잘 아시네요. 그나마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형님.’

민용이의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세 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창식이는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 저 수업 때문에 슬슬 일어나봐야겠어요. 미안해요.”

“어 그래,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쓸데 없이 시간 뺏은 거 아닌지 모르겠다.”

“에이, 아니에요. 어차피 공강이었는데요. 형 커피랑 케잌 잘 먹었어요.”

“그래.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에헤이. 별 말씀을. 형 군대 가시기 전에 같이 술이나 한 잔 해요.”

“그래, 들어가. 난 좀 더 있다가 갈거야.”

“네, 그럼 집에서 봐요.”

창식이는 학교로 들어가면서 영애와 민용이 두 사람에 대해 생각하였다. 저런 사랑도 가능한 것일까? 세상 사람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그런데 두 사람은 자기들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의식이 전혀 없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창식이의 기준에서 두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단지 쾌락을 위해 섹스를 하는 사이인 줄 알았는데 정말 좋아한다고? 스무 살이 넘게 차이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 민용이나 아들뻘 되는 남자를 좋아하는 아줌마의 심리 상태나 모두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영숙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불륜, 그리고 잊고 싶었던 진영이와 그 남자의 일들이 떠올랐다. 창식이는 정말 남녀 간의 일은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랑은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일까?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아도 서로만 좋다면 행복한 일이란 말인가? 민용이의 말을 듣고 창식이는 이래저래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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