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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34
창식이가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민용이는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민용이는 기분이 울적하였다. 창식이의 눈과 표정에서 자신이 마주하게 될 현실을 봤기 때문이다. 창식이는 애써 감추려고 노력하였지만 민용이는 그의 표정과 말투 곳곳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읽을 수 있었고, 부정하고 싶지만 그 것은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는 현실을 새삼 확인 했을 뿐이었지만, 이제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민용이에게는 더욱 답답한 현실로 다가올 뿐이었다.
‘내가 정말 이상한 걸까?’
민용이는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래, 이상한 놈일지도 모르지. 우리 엄마하고 열 살도 차이 안 나는 여자한테 목을 매다니.’
민용이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민용이는 알고 있었다. 이 사랑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누구의 강요가 아닌 자신의 선택이기에. 그 선택이 자신의 목을 죄어 올 올가미가 될 지라도 그 고통 달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시선, 창식이가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이 무서웠다. 세상 모두가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민용이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욕심과 고집으로 인해 영애가 감당해야 할 비난과 고통, 그 슬픔의 무게가 민용이를 견딜 수 없도록 만들었다. 민용이는 영애도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망설이는 이유는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라고 생각하였다. 조금만 용기를 내준다면 내가 그녀의 작은 어깨를 감싸줄 텐데, 영애를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천이면 천, 그 숫자가 얼마가 되었든 창식이를 만난 것처럼 일일이 만나 민용이 자신이 원한 것이었노라고 말할 자신이 있는데, 선택 그 후에 다가올 잔인한 현실에 겁을 먹은 그녀가 한 발짝 더 다가서기를 망설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니면 혹시라도 자신의 진심을 의심하는 것일까. 내 정성과 표현이 부족했던 것일까? 새로운 가능성에 민용이는 진지하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고, 아홉시가 다 되어갈 무렵에 커피숖을 나서서는 근처 호프집에 술을 마시러 들어갔다.
자리를 옮긴 후에도 민용이의 고민은 계속 되었다. 스스로에게 끊임 없이 물어보는 질문은 영애에 대한 스스로의 마음이 진심일까. 혹시라도 그 진심이 부족해서 그 녀에게 마음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 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소주잔을 비울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수 십 번, 시간은 어느 새 자정이 다 되어갔고, 만취한 민용이는 비틀대며 호프집을 나섰다. 술에 잔뜩 취해 정신이 없었지만 민용이의 머릿 속엔 영애의 생각으로 가득하였다. 빨리 집에 가야지. 영애가 보고 싶은 민용이었다.
“끅, 그래, 내가 잘 하면 돼지. 씨발 나만 잘 하면 되는거야 끅. 어우.”
민용이는 혼잣말을 중얼 거리며 하숙집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데 건너편 도로에서 환한 불빛이 느껴져 그 쪽을 바라봤다. 불빛의 정체는 빵집의 LED 램프 불빛이었다. 민용이는 빵집의 쇼케이스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먹음직스런 케잌들이 한 가득 진열 되어 있었다.
“아, 우리 누나 케잌 좋아하는데.”
민용이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저절로 빵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케잌 사 갖고 가야겠다. 우리 누나랑 같이 먹어야지. 끅. 어우 죽겠다 씨발. 그래, 나만 잘 하면 되는 거야, 나만 잘 하면”
영애가 좋아하는 우유케이크를 사 들고 나온 민용이는 비틀거리며 4차선 도로의 한 복판을 걷고 있었다. 그 때였다. 어디선가 환한 불빛이 자신을 비추기 시작하였다. 민용이는 그 자리에 멈춰 선 채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환한 불빛을 뚫어지게 응시하였다. 동그랗게 널리 퍼져가는 환한 불빛 속에서 민용이는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영애의 얼굴을 발견하였다. 영애는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얼굴에 입을 맞추고 싶다. 그 녀의 뺨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 민용이는 그 불빛을 향해 걸어가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누나.”
다음 날, 한 대학 병원의 영안실에 한 젊은이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사인은 보행자의 무단 횡단과 운전자의 전방부주의에 따른 교통사고. 너무도 갑작스레 찾아 온 젊은이의 죽음 앞에 가족들은 오열하였고, 그를 아는 지인들 모두 충격과 슬픔에 잠겨 빈소를 방문하였다. 연락을 받은 하숙집 식구들 모두 젊은이의 빈소를 방문하였다. 그들도 역시 슬픔에 잠겨 젊은이의 부모님에게 위로를 전하고, 젊은이의 영정에 절을 하였다. 사진 속에 젊은이는 자신을 찾아 온 사람들의 슬픔을 전혀 알지 못 하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3일째 되는 날, 젊은이는 화장장을 치뤘고, 하숙집 식구들 모두 장지까지 따라가 젊은이가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해 주었다.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가고, 젊은이를 떠나 보낸 슬픔을 가슴 깊이 묻어둔 채 남은 사람들 모두 각자의 일상 속으로 빠르게 적응해 가고 있었다. 세란이는 늦게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보통 때면 모두 자기 방에 들어가 있어서 캄캄할 하숙집인에 웬일로 주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세란이는 주방으로 걸어갔다. 영애가 혼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줌마.”
“응, 세란이 왔니?”
세란이가 맞은 편에 앉았다.
“한 잔 할래?”
영애가 세란에게 마시던 술잔을 건넸다. 그 녀의 표정이 한 없이 어둡고 슬퍼 보였다. 세란이는 그런 그 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네, 저도 잔 가져 올게요. 오늘은 아줌마랑 술 한 잔 해야겠네요.”
세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찬장에서 소주잔을 꺼내왔다. 영애는 세란이의 술잔을 채워 주었고, 두 사람은 나란히 각자의 술잔을 비웠다. 세란이 말을 꺼냈다.
“많이 힘드시죠?”
세란의 물음에 영애는 한쪽 뺨을 손에 괸 채로 말 없이 웃어 보였다. 며칠 째 잠을 못 잔 건지, 그 녀의 얼굴은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세란아, 넌 알고 있었지?”
“네?”
“민용이한테 들었어. 민용이하고 나하고 어떤 사이인지, 너한테는 얘기를 했다고 그러더구나.”
“네.”
세란이는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아줌마 많이 욕했지? 젊은 남자 건드리는 년이라고. 생각 없는 년이라고.”
세란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영애는 자신의 빈 잔에 술을 가득 채워 마셨다. 그리고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나 섹스 중독이야. 들어 본 적 있니? 정말 지저분하고 몹쓸 병이지. 섹스를 안 하면 외롭고 불안하고. 섹스를 해야 자기 존재를 느낄 수 있다니 참 기가 막힌 병이지 뭐니.”
영애는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정신병원도 가 보고, 약물 치료도 받아 봤는데, 이 놈의 병이 도저히 고쳐지지를 않더라. 그래, 이게 내 업보다. 이게 숙명이라면 받아들이자. 어차피 죽으면 썩어문드러질 몸. 즐기면서 살자 싶었지.”
세란이 영애와 자신의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영애는 손에 쥔 술잔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민용이가 처음 내 방에 들어 온 날이 생각 난다. 그 때 민용이 많이 취해 있었지. 처음엔 강간 당하는 거 같아서 많이 반항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은 그렇지가 않더라. 보니까 어느 새 그 놈을 껴안고 있더라구. 이 놈의 빌어먹을 몸뚱이. 훗, 참 기가 찰 노릇이지. 일 끝나고 민용이 이 놈 시끼 옆에서 코 골면서 자는데 콱 죽여 버릴까도 생각 했었거든.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참을 앉아 있는데 이 놈이 잠에서 깨더니 울면서 잘못했다고 싹싹 빌더라. 그래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 그냥 용서를 해 준거야 내가. 그런데 이 놈도 참 웃기더라. 며칠 후에 내 방을 또 찾아 온 거야. 그리고 며칠 후에 또, 또 며칠 후에 또. 그것도 맨 정신으로 말야. 그런데 참 웃기는 게, 몇 번 그러고 나니까 내 몸이 아니라 마음도 민용이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하는 거야.”
영애는 손에 쥔 잔을 비우고 술병을 집어 들었고, 세란이는 영애의 손을 말리며 자신이 술을 따라 주었다.
“천천히 드세요. 너무 빨라요.”
“고맙다 세란아.”
영애는 받아든 잔을 앞에 내려 놓았다.
“참 많은 남자를 거쳤지. 그 중에서는 날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고, 내 몸뚱이만 탐내는 사람도 있었어. 그런데 민용이는 참 뭔가 새롭더라. 때로는 남편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또 어떤 때는 아들처럼 말야. 잊고 있었던 감정들,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했던 감정들을 나한테 선물해 줬지.”
영애가 지긋이 눈을 감았다.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조용한 숨소리는 불규칙하였다. 울음을 참고 있는 것이었다. 감정을 진정시킨 후 영애가 말하였다.
“난 민용이가 잘 되길 바랬어. 사실 나랑 그러면 안 되는 아이였지. 나는 민용이가 그냥 순수하게 나를 즐기는 대상으로 바라봐주길. 그냥 지나가는 여자로 생각해 주길 바랬어. 그런데 나는 그 아이의 마음이 점점 진심으로 바뀌어 가는 걸 알면서도 내 몸을 어루만지는 그 손을 뿌리치지 못 했지. 내 부질없는 욕심 때문에.”
“민용이가 아줌마 정말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세란이 자신 앞에 놓인 술잔을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