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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38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 온 창식이는 뜻밖의 인물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 아버지?”

아버지가 거실 쇼파에서 아줌마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창식이 왔냐.”

“아버지가 어쩐 일이세요?”

“시골에서 할머니가 김치를 보내셨는데, 너무 많아서 너하고 하숙집 식구들도 좀 먹어보라고 갖고 왔지 뭐냐.”

“그냥 택배로 보내시면 될 걸 번거롭게 직접 들고 오셨어요?”

“너 맡겨 놓고 그 동안 한 번도 못 왔는데 여기 여사님한테 인사도 드릴 겸 겸사겸사 올라 왔지.”

“창식이도 차 한 잔 할래?”

영애가 창식이에게 물었다. 

“아뇨, 전 괜찮아요. 그런데 아버지 안 내려가세요? 좀 있으면 차 엄청 막히는데.”

“이 놈은 오랜만에 아버지를 봐놓고는 못 쫓아 보내서 안달이네. 자고 갈거야 이 놈아.”

“아휴, 뭘 주무시고 가세요. 내일 출근 안 하세요?”

“자고 아침 일찍 나가면 되지. 야, 안 앉을거면 여사님하고 얘기나 더 나누게 방해하지 말고 너 볼 일 봐라.”

“아유, 아줌마 귀찮게 왜 그러세요. 그냥 가세요.”

창식이는 뜬금없는 아버지의 방문이 쑥스럽고 부끄러워 빨리 아버지를 집으로 돌려 보내고 싶었으나, 영애는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는지 연신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괜찮아. 창식이 아버님 덕분에 오랜만에 웃는데 뭘. 참 재밌으시네요 김사장님. 호호호.”

“그런가요 조 여사님? 허허허. 요새 이런 저런 일 때문에 많이 힘드시다고 들었는데 기분이 좀 풀어지셨다니 다행입니다. 허허허.”

창식이는 죽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이 왠지 신경 쓰였지만, 아줌마가 상관 없다는데 딱히 뭐라 할 수도 없어 가방을 방에 던져놓고 밖으로 나갔다.

“야, 어디 가니?”

아버지가 창식이에게 물었다. 

“약속 있어요.”

“야, 여사님하고 나가서 저녁 먹게 일찍 들어와.”

“늦을지도 몰라요. 먼저 드세요.”

“으이구, 그 놈 참. 여사님, 하나뿐인 아들놈인데 저 놈이 숫기가 없어서 참 걱정입니다 제가. 사내놈이 좀 시원시원하고 사교성도 좀 있고 그래야 되는데 원.”

“호호호. 창식이랑 아버님이 성격이 좀 다르긴 하네요. 그래도 창식이가 남 신경써 줄 줄도 알고 친구들한테도 인기 있고 그래요. 괜히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참 다행이네요 허허허.”

창식이는 대문 밖을 나서서 영숙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거는 중에도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아버지와 아줌마 두 사람의 웃음 소리가 끊임 없이 귀에 들려왔다. 창식이는 그게 이상하게 귀에 거슬렸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담. 참 내.’

신호음이 울리고 영숙이가 전화를 받았다. 

“어, 김창식.”

“어디냐?”

“나? 친구들이랑 과방에서 놀고 있는데?”

“같이 저녁이나 먹게. 나와라.”

“응? 니가 사게?”

“아니, 얻어 먹게.”

“싫어, 나 집에서 밥 먹을거야.”

“이야, 하여간 있는 애들이 더 무섭다니까. 알았다, 알았어. 내가 살테니까 나와.”

“나 친구랑 같이 있는데 같이 가도 되지?”

“나 돈 별로 없는데.”

“됐네 됐어. 내가 산다 사. 뭐 먹을까?”

“글세, 뭐 먹지? 생각을 안 해 봤네.”

영숙이가 잠시 조용하였다. 핸드폰 너머로 조그맣게 웅성거리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친구와 어디 갈지를 얘기하는 것 같았고,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우리 간만에 꽃등심이나 먹으러 갈래?”

“응? 야 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아 맞다. 내가 뭔 헛소리를 하하하. 사주면 나야 고맙지.”

영숙이한테 무리라는 말을 하다니. 우리 나라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잣집 따님한테 참 쓰잘데기 없는 걱정을 했다 싶었다. 

“나 지금 나갈 테니까 정문 앞에서 보자.” 

전화를 끊고 학교 정문으로 걸어갔다.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숙이가 한 친구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창식이는 손을 들어 도착했음을 알렸다. 

“금방 왔네. 야, 인사 해. 여긴 내 친구 박은애. 저 번에 OT 때 본 적 있지?”

“안녕.”

영숙이 옆에 있는 여학생이 수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 안녕. 앗.”

창식이는 뒤늦게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여학생이 오늘 낮에 영숙이가 말했던 그 은애라는 것을 깨달았다. 

‘뭐냐, 미팅 때 데리고 나온다더니 뜬금 없이.“

은근히 낯을 가리는 편인 창식이는 갑작스런 은애와의 만남이 좀 쑥스러웠다. 인사를 나눈 세 사람은 학교 근처에 있는 고기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깃집에 도착한 창식이는 은애를 먼저 들여 보내고 영숙이에게 물었다. 

“야, 미팅 때 보기로 해 놓고 갑자기 데리고 나오면 어떡해?”

“그냥 너한테 전화가 왔을 때 옆에 있어서 같이 왔어. 미리 보면 덜 어색하고 좋지 뭘 그러냐? 나 자기 얘기 너한테 한 거 은애 모르니까 모른 척 해라. 알았지?”

영숙이는 말을 마치고 먼저 들어갔다. 

‘하여간 이 기집애. 지 맘대로라니까.’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영숙이와 은애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창식이는 맞은 편에 앉았다. 

“주문 하시겠습니까?”

“네, 저희 꽃등심 5인분 먼저 주세요.”

영숙이가 주문을 하자, 옆에 앉은 은애가 걱정스럽게 말하였다. 

“영숙아, 너 너무 무리하는거 아냐? 나도 같이 낼게.”

“얘, 괜찮다니까. 나 과외비 받은 걸로 쏘는 거니까 그냥 맛있게 먹기나 해.”

“그래도.”

“맛있게 먹고 모자라면 더 시켜. 나 오늘 부자니까. 알았지?” 

‘과외비? 얘 무슨 알바 하나? 아!’

영숙이는 자기가 재벌집 딸인 것을 친구들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다. 순간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했던 창식이도 곧 영숙이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장단을 맞춰 주었다. 

“영숙이 얘 과외 엄청 많이 해. 집에서 생활비도 많이 보내주시는데 하하하. 신경 쓰지 말고 맛있게 먹자.”

창식이가 은애에게 말을 걸자 은애는 수줍게 웃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두 뺨이 수줍음을 많이 타는 그녀의 성격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 때 OT에서 같이 놀 때는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진짜 자기를 좋아해서 그러는 건가 싶은 창식이었다. 

“나 잠깐. 영숙아 같이 갈래?”

은애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 난 다녀왔어.”

은애를 화장실로 보내고 영숙이가 창식이에게 물어봤다. 

“어때? 예쁘지?”

창식이는 화장실로 걸어가는 은애의 뒷모습을 슬쩍 바라봤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긴 생머리를 뒤로 넘기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잘록한 허리와 길쭉한 다리는 보너스였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은애의 키가 꽤나 커 보여 신경이 쓰였다.  

“괜찮긴 한데, 쟤 너무 큰 거 같은데? 나랑 별 차이 안 나.”

창식이는 170이 간신히 넘는 키의 소유자였는데, 아무리 작게 봐도 70은 족히 될 것 같은 은애의 키가 살짝 부담스러웠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뭐 어때. 신경 쓰지 마.”

“그런가.”

“뭐야? 너 벌써 반했냐?”

“그런 거 아니거든. 하여간 기지배 넘겨짚는 버릇은.”

“그런데 키는 왜 신경 써.”

“야, 원래 남자들은 자기보다 키 큰 여자는 괜히 신경 쓰이는거야. 야 온다.”

화장실을 다녀온 은애가 자리에 앉았다.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재밌게 해? 니들 내 얘기 한거 아냐?”

은애가 웃으며 말하였다. 웃을 때 살짝 파이는 보조개가 인상적이었다. 지금 보니 얼굴도 꽤 귀엽지 않은가. 이런 멋진 여자가 자기에게 관심이 있다니 창식이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주문한 꽃등심이 나왔고, 종업원이 고기를 굽기 시작하였다. 영숙이가 창식이에게 물었다. 

“야, 그런데 갑자기 저녁을 먹자고 전화를 했냐? 동거하는 사이끼리 집에서 먹으면 되지?”

“아버지가 오셔갖고 아줌마랑 얘기 중이시더라구. 불편해서 그냥 나왔지.”

“아버지께서? 왜?”

“몰라. 김치 갖고 오셨다는데 그냥 좀 가시지 저녁 드시고 주무시고 가신대.”

“야, 오랜만에 오셨는데 그냥 같이 있으면 될 걸 너도 참 유난이다. 얘가 좀 유별 나.”

창식이가 은애에게 말을 걸었다. 

“아 참, 영숙이가 너네 과하고 우리 과 4:4로 미팅하자는데 은애 너도 나오니?”

창식이는 모르는 척 은애에게 미팅에 대해서 물었다. 

“어, 그럴려구. 창식이 넌 미팅 많이 해 봤어?”

“아니, 난 처음이야. 너는?”

“나도 처음이야. 재밌겠다 얘.”

“그러게 하하하.”

“야, 멤버는 다 정했냐?”

“야, 미팅 한다고 하면 개떼처럼 덤벼드니까 걱정 하지 마.”

“누가 쪽수 못 채울까봐 걱정 하냐? 너 아까 내가 한 말 기억하지? 하여간 약속 꼭 지켜라.”

“알았어, 알았어. 걱정하지마.”

“자, 이제 드셔도 됩니다.”

종업원이 고기를 굽고 자리를 떠났고, 세 사람은 맛있게 고기를 먹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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