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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41
“이여 김창식, 보기보다 안목이 나쁘지 않아?”
정석이가 창식이를 추켜세우자 현식이가 맞장구를 쳤다.
“맞네. 야 애들 다 괜찮다 창식아.”
“거 봐, 내가 뭐라 그랬어. 다 이쁘다니까.”
애들의 칭찬에 창식이는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졌다.
“야 너네는 누가 괜찮냐?”
명수가 묻자 현식이가 대답하였다.
“나는 주연이 괜찮더라. 야, 주연이 내꺼다. 건들지 마라.”
“나는 다 괜찮던데? 니네 찍은 애들 있어?”
정석이가 묻자 창식이가 먼저 대답하였다.
“나는 은애? 걔가 좀 괜찮더라.”
“맞어. 은애 걔도 너한테 관심 있는 거 같더라. 얘기할 때 계속 너만 보더만.”
“쟤 OT 때부터 창식이한테 관심 있었다니깐. 내가 말했잖아.”
명수가 아는 척을 하였다. 정석이가 명수에게 물었다.
“야, 너는 누구 찍었냐?”
“난 당연히 영숙이지.”
“그래? 그럼 난 은혜 골라야겠네.”
“은혜 걔 몸매 장난 아니더라. 가슴이 와우.”
“그렇지? 나도 걔 가슴만 보이더라 큭큭.”
“창식아, 여기 끝나고 어떻게 할 거야? 우리 찢어지자.”
현식이가 3차는 각자 놀 것을 제안하였다.
“그럴까? 니들은 어때?”
“좋지.”
“그러자. 찢어지자 찢어져.”
다른 아이들 모두 현식이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그럼 파트너는 어떻게 나눌까?”
“야 학력고사팅 하자.”
“학력고사팅? 그게 뭔데?”
“남자랑 여자랑 각자 1지망, 2지망, 3지망 써서 주선자한테 주면 그거 보고 나누는 거 있잖아 왜.”
“그거 좋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짝 맞춘 대로 나누기도 좋고. 혹시 또 아냐? 쟤들도 화장실에서 우리처럼 짝 맞추고 있을지.”
“야 영숙이한테 미리 카톡 보내 놔. 협조 좀 해달라고.”
“그래, 카톡 보내라.”
“그럴까.”
창식이가 핸드폰을 꺼내자 마침 카톡이 오고 있었다. 영숙이었다.
“야 누구야? 영숙이 아니냐?”
친구들은 호기심에 창식이의 카톡 내용을 들여다 보려 하였고, 순간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 창식이는 등을 돌리고 혼자 카톡을 보았다. 카톡의 내용은 단 한 줄이었다.
‘두고 보자 김창식.’
창식이는 핸두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렇게 살기가 느껴지는 카톡은 여지껏 받아 본 기억이 없었다. 친구들은 영숙이에게 카톡 온 것 아니냐, 왜 답장 안 하느냐 계속 물었고, 특히 명수가 창식이의 핸드폰을 뺏어 카톡 내용을 훔쳐 보려 하였다. 명수가 자꾸 귀찮게 하자 창식이는 명수의 귀에 대고 조용히 귓속말을 하였다.
“명수야, 안 보는 게 좋아.”
창식이의 말을 들은 명수는 여전히 창식이의 말 뜻을 못 알아 들은 채, 멀뚱하게 창식이를 쳐다 보았다. 잠시 후, 여자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돌아왔고, 안주가 도착하자 본격적인 술판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먼저 안주로 배를 채운 아이들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술 먹기 게임을 하였다. ‘바니바니당근’, ‘끝말잇기’, ‘배스킨라빈스31’ 등 게임이 진행 될수록 빠르게 술잔이 비어갔고 아이들은 취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정신 없는 와중에도 흑기사, 흑장미로 서로가 찍은 파트너와 엮어 주기 위한 노력은 남자, 여자 모두 잊지 않고 챙겼다. 호프 3천 세 개와 소주 6병을 비운 후, 적당히 취기가 오르자 사전에 얘기한 것처럼 찢어져서 놀기로 의견을 모았고, 파트너를 나누기 위한 학력고사팅이 시작되었다. 창식이는 알바생에게 종이와 펜을 달라고 부탁하였고, 종이와 펜을 받은 아이들은 누가 볼새라 몰래 자신이 마음에 둔 사람의 이름을 적어 창식이에게 건네었다. 창식이와 영숙이는 받은 종이를 취합하여 파트너를 나누었다. 다행히 남자쪽과 여자쪽이 적어 낸 이름이 어느 정도 일치하였다. 창식이는 마지막으로 영숙이가 적은 쪽지를 보고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종이에는 딱 한 글 자가 써 있었다.
‘걔’
창식이는 슬쩍 고개를 돌려 영숙이를 보았다. 자신을 뚫어지게 노려보는 영숙이를 보자마자 얼른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한 동안 엄청 시달리겠네 제길.’
2차를 마치고 아이들은 서로에게 재밌었다, 재밌게 놀아라 라는 말을 남기고 각자의 파트너와 찢어졌다. 창식이와 은애는 술도 깰 겸 좀 걷기로 하였다.
“하, 난 이제 죽었다.”
창식이가 한 숨을 푹 쉬었다.
“왜?”
“사실 영숙이가 명수 절대 데리고 나오지 말라고 했거든. 아, 나 이제 완전 죽었다.”
창식이의 말을 듣자 은애가 웃었다.
“사실 나도 명수 보자마자 웃음 참느라고 혼났어. 영숙이가 오늘 나오기 전에 혹시 명수 나오는 거 아니냐고 농담처럼 얘기했었거든.”
“영숙이 표정 보자마자 완전 소오름 돋더라. 한동안 엄청 시달리겠네 제길.”
“호호호.”
은애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창식이가 말만 하면 웃어 주었고, 창식이는 그런 은애가 참 귀여웠다.
“아까 술 많이 마신 거 같았는데 괜찮아?”
창식이가 물었다. 은애가 빨개진 볼에 손 등을 갖다 대며 말하였다.
“내가 게임을 잘 못 해서 게임만 하면 계속 걸려. 니가 흑기사 안 해 줬으면 벌써 쓰러졌을 거야.”
둘은 한 동안 말 없이 길을 걸었고, 은애는 그 동안 궁금했던 질문을 하였다.
“얘기 들었어.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어? 어, 그랬지. 그랬으니까 여기 나왔지 하하하.”
창식이 어색하게 웃었다.
“왜 헤어졌는지 물어봐도 돼.”
난처한 질문이었지만, 은애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궁금할만하다 싶었다. 창식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였다.
“그냥 내가 좀 지겨웠나 봐.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더라구. 그래서 끝났지 뭐.”
“많이 속상했겠다. 지금도 그래?”
창식이는 은애와 시선이 마주쳤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서 안타까움과 자신을 걱정해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은애는 참 배려심이 많구나. 참 멋진 여자구나. 창식이는 저도 모르게 은애의 입술에 키스를 할 뻔 하였지만, 기지개를 쭉 켜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으으으읏 차! 근데 너 기숙사 안 들어가도 돼? 통금 시간 있지 않냐?”
“새벽에 몰래 들어가면 돼. 왜? 너 나랑 있는 거 재미없어?”
은애가 삐친 듯이 곱게 눈을 흘겼다. 창식이는 그녀의 이런 여성스런 행동 하나하나에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아냐, 아냐. 그럴 리가 있나. 그냥 걱정 돼서 하는 말이지. 우리 학교 근처에서 놀까? 어차피 들어가야 되는데 마음 편히 놀면 좋잖아.”
“그래, 그럼 그러자.”
둘은 홍대역에서 2호선을 타고 학교에서 내렸다. 역 근처 술집에서 과일화채를 안주로 가볍게 소주를 한 병 나눠마신 두 사람은 학교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자정이 좀 넘은 시각 두 사람은 학교 기숙사 앞에 도착하여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정말 재밌었어.”
은애가 창식이에게 말하였다.
“재밌었다니까 나도 기분 좋다.”
창식이가 은애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번호 좀 찍어 줄래?”
창식이의 핸드폰을 건네받은 은애는 수줍게 웃으며 자신의 번호를 찍어 주었다.
“이따가 전화 해도 돼?”
은애가 묻자 창식이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전화 할게. 들어가.”
“그래 알았어. 전화 기다릴게.”
은애가 손을 흔들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헤어짐이 못내 아쉬운 듯 계속 손을 흔들며 천천히 계단을 올라서는 그녀는 한참 후에야 모습을 감추었다. 은애를 들여보낸 창식이는 터덜터덜 하숙집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그 때 창식이의 카톡이 울렸다. 영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