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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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47

“어, 현식? 나야, 창식이.”

“어, 창식. 웬일이야?”

“은애한테 전화 했는데 이번 주에 시간 괜찮대. 너 시간 되냐?”

“나야 당근 되지.”

“주연이는?”

“주연이야 내가 부르면 당근 콜이지.”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녀? 한 번 물어봐.”

“당연히 미리 얘기는 해야지. 이번 주 언제?”

“금, 토, 일 2박 3일 괜찮냐?”

“오브 코올스! 주연이한테 전화해 보고 바로 전화할게.”

“어, 알았어. 전화해.”

창식이는 전화를 끊었다. 현식이와는 그냥 얼굴만 아는 반 친구로 지내다가 미팅을 하면서 가까워졌는데, 뻥은 좀 세지만 남자답고 시원시원한 성격이 겪을수록 괜찮은 놈이라는 생각이 드는 친구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 창식이가 집에 도착했을 때 현식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얘, 밥은?”

“과외 하는 집에서 주셔서 먹었어요.”

창식이는 방으로 들어가 현식이의 전화를 받았다. 

“어, 나야. 뭐래?”

“야, 당연히 콜이지. 그런 걸 뭣하러 묻고 그러는겨.”

“잘 됐네. 야, 그럼 우리 아침 일찍 KTX 타고 가자. 어때?”

“그래야지. 가는데 한 서너시간 걸릴걸? 내 점심은 부산에서 먹어 주갔어.”

“하하하, 그래 알았어. 그럼 기차 시간 보고 다시 얘기하자. 일단 금요일 아침 일찍 서울역에서 보는 걸로 알고 있어. 알았지? 나 은애한테 전화 좀 해야겠다.”

“오케바뤼. 그럼 그 때 보세 브라더.”

“오이.”

창식이는 현식이와의 전화를 끊고 은애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은애야. 나야. 밥 먹었어?”

“응, 좀 전에. 너는?”

“나도 먹었어. 방금 전에 현식이랑 통화했는데 금, 토, 일 2박3일 괜찮대. 주연이도 간다더라.”

“안 그래도 나도 방금 전까지 주연이랑 통화했어. 재밌겠다고 신나하더라.”

“우리 못 본지 열흘도 안 됐는데 엄청 오랫동안 못 본 거 같다. 그치?”

“웅, 빨리 보고 싶다.”

전화를 하는 창식이나 은애 둘 다 벌써부터 해운대 밤바다를 같이 거닐 생각에 마음이 잔뜩 들떠 있었다. 둘은 금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저녁까지의 스케쥴을 쭉 짜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오래 통화를 했는지 나중에는 핸드폰이 손난로처럼 뜨거워져서 안 그래도 초여름이라 더운 날씨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통화를 해야 했지만, 마냥 설레이는 둘의 대화는 자정이 넘어서도 끝날 줄을 몰랐다. 

하루가 1년 같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일까? 지루하고 지루하고 지루하고 또 지루하고 지루했던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이 지나고 화창한 금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백팩에 갈아입을 옷과 속옷을 챙긴 창식이는 아침 일찍 서울역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가는 내내 앞으로 펼쳐질 ‘해피해피 부산투어’에 창식이의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일단 도착하면 넷이서 좀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술 한 잔 같이 때리고 찢어져서 로맨틱하게 은애한테 고백을 한 다음에 분위기 봐서 응? 오호호호홍.’

창식이는 아직 은애에게 사귀자고 하지를 않았다. 둘 사이를 말하자면, 서로에게 깊이 호감을 가진 채로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썸을 타는 관계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었다. 창식이는 그런 관계를 끝내고 이번 기회에 확실히 도장을 찍을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커져만 가는 은애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새 사랑이라는 확신으로 마음 속에 깊게 새겨져 있음을 창식이 본인이 깨닫게 된 것이었다. 창식이는 하얀 백사장에 단 둘이 앉아 분위기 있는 밤바다를 바라보며 은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자기의 모습을 떠올리며 헤벌쭉 웃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그런 창식이를 눈여겨 봤다면 지하철 치한으로 오해해서 경찰에 신고를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표정이었다. 성인이 되고 처음 하는, 정확하게 말하면 난생 처음 하는 정식 사랑 고백을 앞두고 창식이의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 두근거리고 있었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KTX 승강장에 걸어가 보니, 현식이와 주연이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뭐가 그리 좋다고 아침부터 부둥켜안고 있다시피 하는지, 둘은 창식이가 자기들 옆에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야, 땀띠 난다. 땀띠 나 이 자슥아. 안녕하세요.”

창식이가 주연이에게 인사를 하였다. 

“야, 그냥 말 편하게 해. 형수님이라고 부르고.”

현식이가 넉살을 부리자 주연이가 웃으며 창식이에게 같은 학번이니 편하게 지내자고 하였다. 

“우리 말 편하게 하자. 앞으로 자주 볼텐데.”

“그럴까? 그래 그럼. 야, 근데 니들은 안 덥냐? 초여름 날씨에 뭘 그렇게 껴안고 있어 

있기를. 너네 이거 풍기문란이야.”

창식이의 말을 들은 현식이가 보란 듯이 주연이의 볼에 뽀뽀를 하였다. 그러자 주연이가 입술을 오므리고 현식이의 입술에 뽀뽀를 쪽쪽 하였다. 창식이는 그런 둘을 보면서 눈꼴이 시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따가 은애만 만나 봐라. 진정한 애정행각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쓸데없는 데에 전의를 불태운 창식이는 기차 시간을 확인한 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잠시 후 도착한 기차에 현식이, 주연이와 함께 올라탔다. 세 사람이 앉은 자리는 마침 한 자리가 비어서, 현식이와 주연이가 함께 앉고 창식이는 마주본 채로 편하게 이야기를 하며 갈 수 있었다. 가는 내내 두 사람이 어찌나 깨가 쏟아지던지 배가 아픈 창식이는 자리를 다른 데로 옮기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좋냐? 그렇게 좋아?”

“그럼, 좋지 안 좋냐.”

현식이가 씨익 웃으며 귀여워 죽겠다는 듯 주연이의 뺨을 두 손으로 어루만졌다.

“아잉, 왜 그래. 창피하게.”

주연이가 얼굴을 붉히자 현식이가 주연이의 어루만지던 뺨을 살짝 꼬집으며 말하였다. 

“챙피하긴 뭐가 챙피하다고 그래에에에에.”

“아잉, 창식이가 보잖아.”

“알았어, 알았어, 이제 그만.”

그런 둘을 보면서 창식이는 어이가 없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이거 참.

“야, 내가 비켜 줘?”

창식이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아냐, 현식이가 장난치는 건데 뭘. 현식아 잠깐만. 나 화장실 좀.”

주연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 주연이가 자리를 비우자 창식이가 현식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야, 야.”

“뭔 얘긴데 그렇게 도둑질 하러 온 놈처럼 속삭이고 그래?”

“니네 했냐?”

“새끼 하하하, 궁금하냐?”

“니네 했지? 벌써 한 거 맞지?”

“아냐 새꺄. 아직 안 했어.”

“진짜로?”

창식이는 현식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둘이 하는 짓은 10년 산 부부인데 아직도 안 했다고?

“오늘 해야지. 야, 내가 오늘을 기대하면서 얼마나 아꼈는데. 몸에서 아주 그냥 사리가 나오겠다 사리가. 내가 성철 스님이여 아주.”

현식이가 말하는 것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듯 하였다. 이번엔 현식이가 창식이에게 물었다. 

“너는 은애한테 사귀자고 말도 안 했지?”

“어, 아직.”

“야, 그렇게 진도가 느려서야 언제 사귀고 언제 빠구리 뛸래?”

“야, 무슨 빠구리 뛸라고 여자 만나냐?”

라고 말은 하였지만, 현식이의 말마따나 진도가 너무 느려서 혹시 못 하고 오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내심 걱정이 앞서는 창식이었다. 창식이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현식이가 지갑에서 뭔가를 꺼내었다. 

“야, 손 내밀어봐.”

“뭔데?”

“글세 내밀어봐.”

창식이가 손바닥을 펴고 앞으로 내밀자, 현식이가 어떤 조그만한 물건을 창식이의 손에 올려 놓았다. 콘돔이었다. 

“뭐,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갖고 있어봐. 0.1밀리 초박형이다. 바나나향.”

“뭐야 이게? 야, 너나 써.”

“넣어둬 넣어둬. 야, 재수 없게 한방에 임신하면 어쩌려고 그래? 바깥에다 싸면 임신 안 할 거 같지? 하다가 좃에서 조금씩 새는 물에도 정액이 있거든? 우리 같이 왕성한 나이에는 조심해야 돼요. 군대 가서 이등병 월급으로 애기 분유값 보탤 거 아니면 넣어둬 넣어둬.”

창식이는 못 이기는 척 콘돔을 주머니에 넣었다. 

“무슨 얘기 했어.”

언제 왔는지 주연이가 자기 자리에 앉으며 두 사람에게 물었고, 창식이는 혹시 현식이와 나눈 얘기를 다 들은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얘기는 무슨, 그냥 부산 가서 뭐 먹을까 얘기했지.”

“창식이 너는 은애 오랜만에 보는 거겠다.”

“응? 어, 그렇지.”

“많이 보고 싶어?”

주연이의 직설적인 질문에 창식이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키득키득, 쟤 얼굴 빨개진 거 봐. 보이지 보이지?”

“왜 그래. 근데 디게 귀엽다.”

현식이와 주연이가 창식이를 보며 키득키득 거렸다. 하아, 아직 대전도 도착 못 했는데 창식이의 몸과 마음은 파푸아뉴기니에 열댓번은 다녀온 것처럼 지쳐 있었다. 

‘그래, 이 꼴 저 꼴 보지 말고 자자.’

창식이는 머리를 창가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덜컹덜컹 조그맣게 울리는 기차 창문이 창식이의 귓가를 간질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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