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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48
서울을 떠난지 세 시간여만에 세 사람은 부산역에 도착할 수 있었고, 은애에게 전화하여 부산에 도착했음을 알리자 부산역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세 사람이 승강장을 나와 출입구에 다다르자 이들을 발견한 은애가 손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얘들아, 여기야 여기.”
“은애야!”
은애를 발견한 주연이 은애에게 달려가고,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 안은 채 호들갑을 떨었다.
“은애야, 잘 있었쪄?”
“웅, 잘 있었어. 오느라고 힘들었지.”
“아니얌, 아니얌. 이렇게 보니까 진짜 반갑다.”
격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은 두 사람은 남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야, 이리 와.”
천천히 걸어오는 남자들에게 주연이가 소리를 쳤다. 그리워하던 사람을 오랜만에 보게 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 발짝, 두 발짝, 걸어갔다. 두 사람은 마주치자마자 양 손을 마주 잡은 채 말 없이 웃기 시작하였다. 서로를 좋아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니 더 설레이고 어색하고 수줍기만 하는 두 사람은 한 쌍의 예쁜 커플이었고, 시작하는 연인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두 사람은 수줍게 웃으며 말 없이 손을 맞잡고 서 있었고, 현식이와 주연이는 그런 두 사람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영화를 찍는구나. 영화를 찍어.”
부산역을 빠져 나온 네 사람은 먼저 부산역 앞에 있는 모텔에 숙소를 잡았다. 은애가 자기 집에서 자라고 얘기했지만, 불편하기도 하고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현식이의 강력한 주장(?)으로 인해 방을 잡게 된 것이다. 모텔을 빠져 나온 네 사람은 은애를 따라 부산역 근처의 한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은애가 세 사람의 부산 투어를 위해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차를 갖고 나온 것이었다.
“우와, 은애 너 운전할 줄 알아?”
주연이가 놀라운 듯이 은애에게 물었다.
“나 수능 끝나자마자 바로 땄지. 나 운전 잘 해.”
은애가 어깨를 으쓱대며 웃었다.
“너 학교에선 차 안 끌고 다녔잖아. 믿고 타도 되냐?”
현식이가 은애의 운전 실력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나 부산 내려오면 일부러 차 끌고 다녀서 운전 잘 하거든요? 안 그러면 아빠가 나한테 키를 맡기셨겠어? 걱정하지 말고 얼른 타.”
창식이는 조수석에 앉고, 현식이와 주연이는 뒷자리에 앉았다. 은애가 먼저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친구들에게 물었다.
“니들 먼저 가고 싶은 데 있어?”
“아니, 우리 다 부산 처음이라 몰라. 그냥 니가 안내해 줘.”
“그럼 부산도 왔는데 바다나 보러 갈까? 니들 밥 안 먹었지? 태종대 가면 근처에 가면 식당 많거든. 우리 바다 구경하고 거기서 점심 먹자. 어때?”
“콜, 빨리 가자.”
“그래 거기 좋겠다. 출발!”
“자, 그럼 간다.”
은애는 시동을 켜고 주차장을 빠져 나왔고,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영도다리를 건너자 한적한 시골마을의 읍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영도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한 영도 초엽을 벗어나 2차선 도로를 쭉 타고 달리자, 뻥 둘린 해안가의 도로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에는 산이, 오른쪽에는 바닷가가 펼쳐져 있는 해안가 도로의 풍경에 들뜬 아이들은, 초여름의 더운 날씨 때문에 켰던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려 시원한 바람과 바다내음을 감상하기 시작하였다
“와, 진짜 시원하다. 야호!”
오랜만에 보는 시원한 바다의 풍경에 친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기 바빴다.
“은애야 너무 좋다. 아, 부산 오기 진짜 잘한 거 같애.”
“좋아해서 다행이다. 가면 우리 밥부터 먹자.”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흔한 풍경이지만, 호들갑을 떨고 있는 현식이와 주연이를 본 은애도 자연스레 기분이 들떠 있었다. 은애는 말이 없는 창식이를 슬쩍 쳐다봤다. 마침 은애를 쳐다보던 창식이와 눈이 마주친 은애는 깜짝 놀라 앞을 주시하기 시작하였다. 창식이와 은애 두 사람은 부산역에서 처음 만난 후로 지금까지 서로 별 말이 없었다. 서로 전화를 할 때만 해도 보고 싶어 죽겠다던 두 사람이 막상 만나고 나니 왜 이렇게 어색하고 쑥스러운지, 두 사람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은 불안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았다. 이 또한 기분 좋은 설레임이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태종대에 도착한 네 사람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태종대에서 맛집으로 유명한 어느 중국집에 들어가서 짬뽕과 탕수육을 시켜 먹었다. 바닷가라 그런지 짬뽕에 얹은 해산물이 푸짐하고 신선해서 맛이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친 친구들은 바다를 구경하기 위해 푸드트럭에서 파는 커피를 사서 한 잔씩 손에 들고 바닷가로 걸어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탁 트인 파아란 하늘 아래, 쏟아져 내리는 햇빛이 부서지듯 반짝이는 넓은 바다가 네 사람을 반겨주고 있었고, 비릿한 바다내음과 갈매기의 울음소리,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는 ‘우리가 지금 부산 바닷가에 도착했구나’하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주변을 뱅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발 밑에 널려 있는 바위에 부딪쳐오는 차가운 바닷물을 손으로 만지작 거리고 있자니, 바로 곁에 있음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더욱 간절하게 보고 싶어지는 친구들이었다.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어. 그리고 내 곁에는 니가 있어. 환한 미소와 함께 서 있는 그래 너는 푸른 바다야’ 라는 듀스의 노래 가사처럼 지금의 이들을 잘 설명해 주는 말이 또 있을까.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창식이와 은애, 현식이와 주연이, 삶에 있어 가장 빛나게 기억될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두 커플은 마치 자석처럼 서로에게 이끌려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낸 네 사람은 저녁시간에 맞춰 서면으로 장소를 옮겼다. 서면은 서울의 홍대나 명동처럼 부산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다양한 놀거리와 먹을거리들로 인해 부산을 찾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라면 꼭 한 번은 방문하게 되는 핫플레이스이다. 네 사람은 서면의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자리를 옮겨 술을 한 잔 한 후에 오랜만에 몸 좀 풀자는 주연이의 제안으로 어느 유명 나이트클럽에서 신나게 춤을 추었다. 신나는 댄스 타임이 끝나고 부르스 타임이 되자 아이들은 자리로 옮겨 건배를 하였다.
“진짜 재밌다. 오랜만에 춤 추니까 스트레스가 팍 풀리네.”
주연이가 이마에 땀을 닦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런 주연이를 보고 현식이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야 박주연, 너 수상하다. 혹시 클럽 죽순이 이런거 아니지? 춤 추는 모양새가 영 수상한걸.”
현식이의 말에 주연이 팔짝 뛰며 말하였다.
“웃기시네. 나 클럽 딱 세 번째 와 본거거든? 춤 잘 춘다고 무조건 죽순이일거라는 그런 편협한 시각을 버려. 알았어?”
“네,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아옹다옹 하는 모습에 은애가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주연이는 클럽매니아였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뻑하면 클럽에 가자고 졸라대는 주연이는 학교 친구랑 가든, 동네 친구랑 가든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클럽에 가야지 직성이 풀리는 친구였다. 그것을 알고 있는 은애는 거짓말을 하는 주연이의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스테이지에는 많지 않은 커플들이 부둥켜 안은 채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현식이가 주연이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왜?”
주연이가 현식이에게 물었다.
“왜긴, 춤춰야지?”
“싫어. 나 쑥스럽단 말야.”
“야, 춤 추라고 나오는 음악인데 쑥스럽긴 뭐가 쑥쓰러워. 빨리 나가자.”
주연이는 못 이기는 척 현식이의 손에 이끌려 스테이지로 나갔다. 두 사람은 가볍게 서로를 끌어안고 음악에 맞춰 천천히 몸을 흔들기 시작하였다. 주연이는 자기들을 쳐다 보는 은애에게 너희들도 나오라며 손짓을 하였다. 춤추는 두 사람을 보며 은애도 나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쑥쓰러워서 용기가 나질 않았고,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 있는 창식이를 보았다. 눈치 없는 창식이는 그런 은애의 마음도 모른 채, 웃으며 춤을 추는 현식이와 주연이를 바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