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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54
창식이가 발기부전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방학 중에도 하숙집에 남기로 한 세란이와 민정이, 영숙이는 각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세란이가 가장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유인 즉 6월 말에 예정되어 있는 사시 2차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세란이는 얼마 남지 않은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도서관과 하숙집을 오가며 책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로스쿨 제도가 도입이 된 터라 사시를 통한 법관 임용의 문은 점차 좁아질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 세란이는 이번 기회에 합격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었다. 그 날도 세란이는 도서관에서 홀로 책과 씨름을 한 후 저녁 늦은 시간이 돼서야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남들은 예상 범위를 뽑아서 스터디 모임과 자율학습을 병행하였지만, 세란이는 혼자 공부하는 것이 편한 까닭에 선배들에게 받은 소스를 바탕으로 혼자 공부를 하였다. 어두운 골목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세란의 눈에 하숙집 근처에 서 있는 낯선 고급승용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엄청 고급차 같은데. 이 동네에도 저런 차를 타는 사람이 있었나.”
세란이 승용차 옆을 지나치는데, 잠시 후 뒤에서 차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 누군가 하고 호기심에 뒤를 돌아보자 그 자리에 낯익은 얼굴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민정아?”
세란이의 목소리를 들은 민정이는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심하게 당황하였다.
“어, 언니.”
민정이가 열려 있는 차문을 서둘러 닫자 차가 출발하였다.
“아르바이트 하고 오는 길이야?”
“응, 언니는? 도서관에서 오는 길?”
“응, 그렇지 뭐. 그런데 요새는 아르바이트 매일 하나 보다. 원래 주말에만 하는 거 아니었었니?”
“응, 방학 해서 요새는 매일 나가. 사장님이 매일 나와 달라고 하시더라구.”
“응, 그렇구나. 그런데, 이야. 너 이렇게 차려 입으니까 정말 예쁘다 얘.”
긴머리를 단정하게 말아 올리고, 슬림한 원피스 정장에 하이힐을 신은 민정이는 하숙집에서 츄리닝 바람으로 돌아다니던 민정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호프집 알바 치고는 옷차림이 너무 과하지 않니? 불편하겠다 얘.”
세란이가 웃으며 말하였다.
“어? 아, 일하는 데가 좀 분위기 있는데라 사장님이 이렇게 입어주셨으면 하더라구.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입는거야.”
“에이씨, 호프집이 분위기 있어 봤자지 자기가 옷 사준다니? 뭐 그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그런대. 그냥 때려쳐라 얘.”
세란이는 민정이의 집이 그렇게 부유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민정이의 차림새를 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도배를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행여 일을 하기 위해 얘가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혹시 이상한 데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마음에 걸렸다. 세란이의 말에 민정이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아냐 언니, 그래도 사장님도 잘 해주시고 시급도 쌔서 할만 해요. 이러지 말고 우리 얼른 들어가자. 언니 피곤하겠다.”
“어이구, 그래 고맙다. 불쌍한 언니 생각해 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집에 들어가니 영숙이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언니, 어서 와요.”
“아줌마는? 주무셔?”
“아뇨, 모임 가셨어요. 오늘 늦으신데요.”
“그래? 나 옷 좀 갈아입고 올게.”
“넹.”
세란이와 민정이는 옷을 갈아 입기 위해 자기 방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거실로 내려와 쇼파에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하숙집 여자 3인방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오랜만이었다. 항상 누구 한 사람이 바빠서 이빨이 빠진 것 같았는데, 이렇게 세 명이 한 자리에 모이자 금새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언니, 우리 야식 먹을까요?”
영숙이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세란이가 반색하며 대답하였다.
“그래, 그거 좋겠다. 요새 공부하느라고 칼로리 소모가 너무 심해 내가. 뭐 먹을까?”
“오랜만에 치맥 할까요?”
민정이가 대답하자, 영숙이가 웃으며 민정에게 물었다.
“언니, 야식 먹어도 돼?”
“그럼, 먹어도 돼지.”
“너 요새 너무 관리에 소홀한 거 아니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500그램만 쪄도 징징대던 애가 요새 너무 터프해? 이거 이래 갖고 어디 무용 할 수 있겠습니까?”
세란이가 군살 하나 없는 민정이의 옆구리를 엄지와 검지로 잡아채며 말하였다.
“헐, 그래도 나보다 날씬하네. 이런 젠장.”
세란이의 말에 세 사람은 크게 웃었고, 영숙이는 냉장고에 붙어 있는 치킨집 전화번호를 보고 주문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치킨 집이죠? 지금 배달 돼죠? 언니, 반반 시킨다? 여기 후라이드반 양념반 갖다 주시구요, 호프 배달 돼죠? 호프 5천 갖다 주세요. 3천 밖에 없어요? 그럼 3천 두 개 갖다 주세요. 네, 여기 주소가요...”
영숙이는 치맥을 주문하고 자리에 와 앉았다.
“창식이 요새 여자 만난다며?”
세란이의 말에 영숙이가 대답을 하였다.
“네, 은애라고 저랑 같은 반 애거든요. 내가 소개시켜 줬어요.”
“그래? 분위기가 좀 어떻니? 잘 돼가는 분위기야?”
“원래 은애가 OT 때부터 창식이한테 관심이 있었거든요. 창식이가 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그래서 기말 고사 전에 소개시켜 줬거든요. 안 물어봐서 잘 모르겠는데, 분위기가 나쁜 거 같진 않던데요?”
“그랬구나. 잘 됐으면 좋겠다. 많이 힘들어 하던데. 아 참, 그런데 걔 여자친구랑 왜 헤어졌다니? 하도 유난을 떨어서 물어보지도 못 했네. 호호호.”
세란이가 웃으며 영숙이에게 창식이가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유를 물었다.
“저도 잘은 모르는데요. 그냥 차여나 봐요. 저도 더 안 물어봐서 잘 몰라요.”
“그래? 둘이 섹스 하고 나서 서먹서먹 했다더니 결국엔 그렇게 됐나 보네. 하여간 속궁합이 잘 맞아야 돼요. 속궁합이.”
세란이의 말을 들은 영숙이가 눈을 흘기며 소리를 빽 질렀다.
“언니! 순진한 스무살 처녀 앞에서 너무 야하신 거 아니에욧! 너무 놀래서 심장이 진정이 안 되네 에휴.”
영숙이의 말을 들은 세란이와 민정이가 큰 소리를 내며 웃었고, 세란이가 영숙이의 옆에 바짝 앉으며 말을 하였다.
“순진? 처녀어? 아이구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기지배야. 그러구 보니 우리 영숙이 하숙집 처음 왔을 때보다 많이 컸네. 진짜 처녀 다 됐는걸? 어디, 어디 우리 영숙이 찌찌 한 번 만져볼까?”
세란이가 응큼하게 웃으며 영숙이의 가슴을 만지려고 하자 영숙이는 웃으며 비명을 질렀다.
“꺅! 언니, 하지 마! 하지 마요! 하하하.”
“어머, 이 기지배 가슴 봐봐. 너 뭘 먹어서 그렇게 큰 거니? 어쩜, 얼굴은 애긴데 몸은 완전 글래머가 따로 없네. 부럽다 얘.”
두 사람의 장난을 옆에서 지켜 보는 민정이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었다.
“하하하, 아이 배꼽이야. 두 사람 그만들 좀 해. 진짜 미치겠다 하하하.”
세 사람은 간만에 유쾌하게 웃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세 사람 모두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였다. 민정이가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말하였다.
“하아, 하아, 너무 웃어서 눈물이 다 나네. 근데 나 모르게 그 동안 이래저래 일이 참 많았네요.”
“언니가 바빠서 그렇죠. 맨날 일만 하지 말고 같이 좀 놀아요 언니.”
가운데에 앉아 있던 세란이 두 팔을 민정이와 영숙이의 목덜미에 걸치고는 번갈아서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우리 동생들, 이렇게 계속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얼굴 보고 웃자. 알았지?”
무남독녀 외동딸인 세란이는 어렸을 때부터 외롭게 자라 형제가 있는 친구들이 항상 부러웠는데, 이 하숙집에 오고 난 후로 그런 외로움과 부러움이 싹 가셨다. 민정이, 영숙이, 창식이 모두가 함께 지내면 지낼수록 깊게 정이 드는 것이, 마치 친동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민정이와 영숙이도 자신들을 친언니처럼 살갑게 대해주는 세란에게 항상 고마움과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네, 언니.”
웃으며 두 사람이 대답하자, 세란이 두 사람의 목을 조르며 웃었다.
“하하하, 언니 아파요. 아파.”
“아야, 숨 막혀. 언니 쫌.”
버둥거리던 두 사람의 힘에 못 이긴 세란이 둘을 끌어 안은 채 뒤로 넘어갔고, 세 사람은 그렇게 누운 채로 한참을 웃었다. 잠시 후 치맥이 도착하였고, 거실 탁상에 치킨과 맥주를 차려 놓은 세 사람은 맛있는 야식을 즐기며 계속 이야기꽃을 피워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