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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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57

그날도 민정이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펠라치오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김 사장이 민정이를 호텔로 끌고 갔기 때문이었다. 돈이 많다더니 몸에 좋은 것만 챙겨 먹는지, 갖가지 아크로바틱한 체위를 구사하며 몇 시간 동안이나 괴롭힘을 당한 까닭에 민정이는 온 몸이 쑤시고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았다. 이미 불이 모두 꺼져 있는 하숙집의 대문을 열쇠로 열고 민정이는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 때까지 안 자고 침대에 누워 있던 세란이는 민정이 방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민정이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방으로 갔다. 

“왔니.”

“어, 언니. 안 잤어?”

민정이는 옷을 갈아 입으며 대답하였다. 

“옷 다 갈아 입었으면 우리 잠깐 얘기 좀 하자.”

민정이는 세란이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어둡고, 목소리도 차분한 것이 무슨 일이 있나 싶었지만 이야기를 나누기엔 몸이 너무 피곤하였다. 

“언니, 지금 나 일 하고 와서 죽을 것 같이 피곤하거든? 미안한데 내일 이야기 하면 안 될까?”

옷을 다 갈아 입은 민정이 침대에 앉아 세란에게 말하였다. 하지만 민정이는 세란의 입에서 뜻 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일? 무슨 일? 남자한테 술 따르고 그 짓 하는 거?”

세란이는 팔짱을 끼고 난생 처음 보는 차가운 눈빛으로 민정이를 쏘아보고 있었다. 민정이는 세란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한 것에 대하여 깊은 충격을 받았으나, 최대한 태연한 척 하려고 노력하며 둘러대기 위해 애썼다.

“응? 술 따르고 그 짓을 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언니. 나 호프집에서 써빙 하는 거 몰라? 에이 언니 동생한테 농담이 너무 지나치다. 왜 그래? 혹시 나한테 기분 상한 거라도 있어?”

세란이는 솔직하지 못한 민정에게 점점 화가 나고 있었다. 차라리 사정이 이러저러 해서 어쩔 수 없었다 라고 자신에게 이해를 구했다면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구하려 노력이라도 해 볼 것을, 세란은 민정이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라기 보다 자신이 민정이를 친동생처럼 아끼는 것과 달리 자신을 무시해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더 기분이 나쁜 것이었다. 

“야, 한민정. 거짓말 하지 마. 나 오늘 너 신촌에서 봤어. 그 건물로 들어가는 거. 그게 호프집이니? 호프집이야?”

민정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친언니처럼 생각했던 세란에게 들켰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미안한 나머지 할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확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미안한 마음보다 수치스러운 마음이 더욱 커져버린 민정이는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며 세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나한테 무슨 말을 듣기를 원하는데? 다 봤으면 이제 알겠네. 나 피곤하니까 그만 나가줄래?”

“야, 한민정.”

“간섭하지 마.”

민정이가 단호한 말투로 나지막하게 말하였다. 

“내 친언니라도 되는 것처럼 참견하지 말라구. 언니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그래, 나 남자한테 술 따르고 남자가 원하면 잠도 잤어. 이제 됐냐? 내 입으로 직접 들으니까 속이 후련해?”

“야, 민정이 너...”

세란이는 자신에게 모질게 구는 민정이를 보며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민정이는 그런 세란이를 보며 속으로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금방이라도 세란이를 껴안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울고 싶었지만, 만신창이가 돼버린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가슴 속에서 끊임 없이 날카로운 칼들을 끄집어 내야만 했다. 세란이와 민정이 모두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는 칼들은 이제 더 이상 민정이의 의지로는 멈출 수도, 주워 담을 수도 없게 되었다. 세란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문 앞에 서 있었고, 민정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세란을 지켜보고 있었다. 

“민정이 너, 그것밖에 안 되는 애였니? 내가 너를 얼마나 아꼈는데 흑흑. 너 나한테 왜 이러니 흑흑.”

세란이는 최대한 자제심을 발휘하며 말을 꺼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가슴 속에 담아둔 말은 산더미 같았지만, 세란이의 진심은 슬픔이라는 거대한 강물에 막혀 더는 민정에게 전달 될 수가 없었다. 말도 잇지 못한 채 닭똥 같은 눈물만 흘리고 있는 세란을 본 민정이 역시 흐르려는 눈물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결국 세란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리고야 말았다. 

“언니, 그만 나가 줘. 부탁이야.”

“언니들, 무슨 일이야?”

바깥이 소란스러워 잠이 깬 영숙이가 눈을 비비며 둘에게 다가왔다. 

“언니들 울어? 무슨 일이야?”

뜬금 없이 한 밤에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는 두 사람을 본 영숙이가 깜짝 놀라 물었다. 영숙이를 본 세란이는 애써 눈물을 감추고 아무 일 아니라며 영숙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세란이의 나가는 뒷모습을 지켜 보던 민정이는 방문이 닫히자, 그대로 침대에 엎어져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다음날 아침, 영애와 세 사람은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세란이와 민정이는 밤새 운 터라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영문을 모르는 영애와 영숙이는 그런 둘을 이상하게 쳐다 봤다.

“니들 밤새 무슨 일 있었니?”

“아뇨, 아무 것도.”

영애의 물음에 세란이가 짧게 대답하였다. 

“어제 언니들 싸운 거 아냐? 막 울고 있던데요 보니까?”

영숙이가 간밤에 있었던 일을 영애에게 말하자 민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민정은 빈 그릇을 설거지통에 집어넣고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어쩜, 너네 진짜 싸운거야?”

영애가 묻자 세란이는 힘 없이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네. 얘 표정 보니까. 그런데 너 아픈 데는 좀 괜찮니? 병원 안 가 봐도 돼?”

영애의 거듭되는 질문에 세란이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세란이 역시 설거지통에 빈 그릇을 집어넣고 방으로 올라갔다. 

“쟤들 왜 그러니?”

“글쎄요. 둘 다 그 날인가? 아닌데. 둘 다 중순일건데. 아 잘 모르겠어요.”

이유를 알 리 없는 영애와 영숙이는 그냥 답답하고 황당할 뿐이었다. 민정이의 얼굴을 본 세란이는 괜히 서러운 나머지 침대에 엎드려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때 노크 소리가 들려 왔다.

“혼자 있고 싶어요.”

세란이가 큰 소리로 말하였지만,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혼자 있고 싶다니까요. 누구니?”

짜증이 난 세란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하였다. 그러자 조용히 방문이 열리고 민정이가 걸어 들어왔다. 

“언니.”

민정이는 방문을 닫고 세란이의 앞에 우두커니 섰다. 세란이는 민정이의 얼굴을 보고 마음에 없는 말을 내뱉었다. 

“같은 하숙집에 사는 사이일 뿐인데 참견해서 미안하네요 그만 나가주세요.”

세란이의 말을 들은 민정이는 또 다시 울 것만 같은 표정이었고, 어제 서운한 일을 겪고 상처받은 세란이는 독하게 마음을 먹었었지만, 눈이 퉁퉁 부은 얼굴로 금새 울음을 쏟을 것 같은 민정이의 표정을 보자 금새 마음이 약해지고 있었다. 

“언니, 나랑 얘기 좀 해.”

“됐어. 나 너랑 할 말 없어.”

“언니, 흐흐흑”

민정이는 결국 무릎을 꿇고 세란이의 무릎에 얼굴을 기댄 채로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세란이도 또 다시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있었다. 

“왜 그랬어. 왜, 왜, 응? 왜, 왜 그랬냐고 이 기지배야.”

세란이는 민정이의 등을 주먹으로 치며 울었다. 

“미안해 언니, 정말 미안해.”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을 그 자리에서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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