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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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60

학교를 마친 민정이가 집에서 쉬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전화 받으신 분이 한민정 양 본인 되시는지요?”

“네, 제가 한민정 맞는데요. 누구시죠?”

“네, 저는 성진그룹 비서실 김현중 대리입니다.”

“성진그룹이요? 성진그룹에서 저한테 무슨 일로...”

성진그룹이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아닌가. 그런 곳에서 왜 나한테 전화를 했을까. 민정이는 왠지 장난 전화 같아서 그냥 끊으려고 하였다. 

“갑자기 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선정 양 아시죠?”

“선정이요? 네, 친구인데요.”

“그러시군요. 먼저 갑자기 이런 연락을 드리게 돼서 송구스런 말씀 드리겠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어제 이선정 양이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네, 선정이가요?”

민정이는 선정이가 죽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선정이의 죽음을 성진그룹 비서실에서 알려오는 것도 이상하였고, 불과 한 달 전에 다시 만나자는 연락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난 선정이가 갑자기 죽었다는 사실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저, 지금 하신 말씀이 전부 사실인가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요.”

“많이 당황스러우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진정 하시고 차후 일정에 대해 말씀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네, 말씀해 보세요.”

“선정 양의 시신은 내일 한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시신이 도착하면 바로 삼성의료원 영안실에 빈소가 차려질 예정이구요. 3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오니 바쁘시더라도 부디 찾아주시어 선정 양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선정 양의 부친이신 이진구 회장님께서 선정 양의 지인 분들께는 직접 유선으로 연락드리라고 지시하셔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게 된 점, 다시 한 번 양해의 말씀 올리겠습니다." 

민정이는 남자의 말을 듣고나자 넋이 나가 버렸다. 농담이기를, 장난 전화이기를 바랐지만 선정이의 죽음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진실로 민정이에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갈게요.”

“민정이는 남자의 부탁에 힘 없이 대답하였다. 

“감사합니다. 민정 양께서 빈소를 찾아주신다면 유족 분들께도 많은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자세한 일정은 문자로 다시 한번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전화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수고하세요.”

민정이는 전화를 끊고, 침대에 앉아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 때까지 살아오면서 주변의 어느 누구도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경험이 없었던 민정이에게는 선정이의 갑작스런 죽음이 꽤나 큰 충격이었다. 곧이어 도착한 장례일정에 관한 문자를 확인한 민정이는 선정이의 죽음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민정이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거실에 나와 쇼파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있던 세란이와 민용이가 넋이 나간 민정이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나 민정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마침 두 사람이 보고 있던 TV에서 뉴스를 방송하고 있었는데, 뉴스 하나가 민정이의 눈에 들어왔다. 

“다음 소식입니다. 한국 시간으로 어제 오후 4시 20분 경, 성진그룹의 1남 2녀 중 차녀인 이선정 양이 뉴욕 맨하탄 거리의 횡단도로를 건너던 중, 신호를 무시하고 과속으로 달려오던 트럭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현장에 곧바로 출동한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긴급하게 후송 되었으나 결국 숨졌다는 소식입니다. 고인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중...”

뉴스에서는 선정이의 죽음을 보도하고 있었다. 앵커의 우측 상단에는 선정이의 생전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사진 속의 선정이는 무심하게 웃고 있었고, 선정이의 사진을 본 민정이는 그제서야 선정이의 죽음을 실감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야, 왜 그래? 갑자기 왜 울어.”

울고 있는 민정이에게 민용이가 물었고, 세란이도 선정이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물었다.  

“어머, 왜 그래 민정아. 혹시 쟤 아는 사람이니? 그래서 그런 거야?”

두 사람이 이유를 물으며 민정이를 진정시키려 하였으나, 민정이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틀 후 민정이는 선정이의 빈소가 마련 되어 있는 삼성의료원 영안실을 찾아갔다. 대기업 오너 딸의 빈소라서 그런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있었고, 복도부터 주욱 늘어서 있는 조화에는 이름만 대도 알만한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빈소에 도착한 민정이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차례를 기다려 선정이의 영정 앞에 걸어가 꽃을 놓고 절을 하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족들에게도 절을 하였다. 절을 마친 민정이는 무엇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런 민정이에게 중년의 부인이 말을 걸어왔다. 느낌이 선정이의 어머니 같았다. 

“혹시 니가 민정이니?”

“네, 맞는데요.”

“그렇구나. 와줘서 정말 고맙구나. 나는 선정이 엄마야.”

선정이의 어머니는 민정이의 손을 두 손으로 꼬옥 잡았다. 

“어머니, 힘내세요.”

딸 같은 민정이의 위로에 선정이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선정이가 생전에 니 얘기를 여러번 했단다. 자기 힘들 때 힘이 돼준 고마운 친구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도 언제고 너를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는데, 오늘에서야 이렇게 선정이 떠나는 날에야 보게 됐구나.”

선정이 어머니는 옷고름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그것을 바라보는 민정이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니에요 어머니, 전 선정이한테 잘 해 준게 아무 것도 없는걸요.”

“아냐. 민정 양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선정이는 어렸을 때부터 호르몬 이상으로 고생이 심했단다. 항상 온 몸이 자주 붓고, 아무리 굶고 운동을 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 특이체질이었지. 그래서 선정이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었어. 덕분에 친구도 많지가 않았지. 그런 우리 선정이가 생전에 엄마 아빠한테 말했던 몇 안 되는 친구 중에 하나가 우리 민정 양이야. 민정 양 얘기를 할 때 우리 선정이 표정이 얼마나 밝았는지, 그 때를 생각하면 내가 ...”

선정이의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옆에서 조문객들의 인사를 받던 선정이의 아버지가 선정이 어머니의 어깨를 두 손으로 감쌌다. 

“여보, 진정하구려. 당신이 힘을 내야지.”

선정이의 아버지가 손수건을 꺼내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여보, 당신 우리 선정이가 말했던 친구 중에 민정이라고 기억나요? 이 친구가 민정이에요 여보. 우리 선정이 친구 민정이 흐흑.”

간신히 말을 꺼낸 선정이의 어머니는 다시 흐느끼기 시작하였고, 선정이의 아버지는 민정이의 앞으로 걸어와 선정이의 손을 잡았다. 

“민정 양, 와줘서 고맙네. 죽은 우리 선정이도 민정 양을 보고 기뻐할거야. 정말 고마워. 찾아와줘서.”

선정이의 아버지는 민정이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표정은 더 없이 침착하고 의연하였지만, 민정이는 그의 눈빛에서 세상에 다시 없을 고통과 슬픔, 절망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부모의 심정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민정이는 다시 한번 선정이의 부모님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빈소를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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