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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66
영숙이는 다음날 저녁 창식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창식? 나다 영숙.”
“오, 오랜만. 잘 지내냐?”
“누님이야 잘 지내고 있지. 그런데 어째 넌 방학 하고 나서 안부전화 한 번이 없을 수가 있냐? 은애한테는 맨날맨날 저녁에 전화 하는 거 같드만.”
“야, 은애랑 너랑 같냐? 오바야 오바. 너도 이 참에 남자친구 만들어서 걔한테 해달라고 해라. 알았지?”
“오호라, 그러셔? 이거 이거 며칠 안 봤더니 우리 창식이가 영 감을 잃었네. 은애한테 우리 김창식이의 변태성에 대해서 말을 좀 해 놔야겠구만. 나중에 당황 안 하게. 어떻게, 사발 좀 풀어드려?”
영숙이가 또 다시 하드보일드한 본성을 드러낼 기미가 보이자 창식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양을 떨기 시작하였다. 처음 왔을 때 영숙이의 팬티를 한 번 훔쳐 본 것이 이리 두고두고 머리가 아픈 일이 될 줄이야. 생각 같아서는 확 한 번 질러 버리고 싶지만, 말로는 도저히 당할 수 없는 영숙이기에 일단은 좋게 좋게 덮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창식이다.
“아이, 또 왜 그래. 너는 가끔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는 버릇이 있더라? 그러지 마 친구야. 내가 잘 할게. 그런데 너 은애랑 요새 연락하고 그러냐?”
“그럼 친군데 연락 안 하냐? 너네 사귀기로 했다는 말은 들었다. 잘 해줘라. 순진한 애 울리지 말고.”
“응, 그래. 혹시 은애가 무슨 다른 말은 안 하고?”
창식이는 은애가 사귀기로 한 날 밤 모텔에서 있었던 일을 영숙이에게 말하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눈치 빠른 영숙이 귀에 그 얘기가 들어가면 또 다시 약점를 하나 잡히는 꼴이라 상상만 해도 끔찍하였다.
“무슨 얘기? 야! 너 설마 사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은애한테 좃대가리 들이민 건 아니겠지?”
“야, 너 나를 뭘로 보냐? 절대 아니거든. 행여 은애한테 그런 비슷한 얘기도 절대로 하지 마라. 괜히 이미지 이상해지니까. 만에 하나라도 비슷한 얘기라도 했다간 나 진짜로 너 안 볼 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알았냐?”
방귀 뀐 놈이 성 낸다고 영숙이의 예측샷에 가슴이 콩알만 해진 창식이는 되려 큰소리를 치며 영숙이를 협박하고 있었다. 창식이의 진정성 어린 협박이 통했는지 다행히도 영숙이는 그 일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오냐 알았다. 니가 이렇게 정색하는 게 좀 수상하긴 한데 내가 이번엔 그냥 넘어가 주지. 하여간 조심해. 은애 울리면 가만 안 둔다.”
“알았어. 걱정 하지마. 내가 알아서 할테니깐.”
창식이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생에 무슨 악연이었는지 왜 사사건건 영숙이에게 책 잡힐 만한 일만 하고 다니는 건지, 나중에 시간 나면 점집에라도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야야, 다른 게 아니고 너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뭐 하냐? 약속 있냐?”
“나야 뭐 알바 하지. 왜?”
“응, 우리 하숙집 패밀리끼리 휴가나 같이 갈려구 그러지. 너 시간 안 돼?”
“그렇게 빼긴 힘들걸. 게다가 나 얼마 전에 부산 2박3일로 갔다 왔잖아. 또 놀러 간다고 하면 엄마가 뭐라고 할거야 아마. 맨날 놀러 다닌다고.”
“그럼, 너 안 된다고 세란이 언니한테 얘기한다?”
“어쩔 수 없지 뭐. 누구누구 가냐? 아줌마까지 다 가냐?”
“아니, 아줌마는 젊은 사람들끼리 재밌게 놀라고 안 가시고 우리 셋이 가는 거지.”
“아, 재밌겠다. 어디로 가는데?”
“글세, 아직 생각 중인데 언니들이 바다 보고 싶다고 해서 부산으로 가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 에이, 좀만 일찍 말하지. 누나들하고 너하고 같이 갔으면 더 재밌었을텐데. 아꿉다 아꾸버.”
“입에 침이나 발러 이 자식아. 됐고, 나중에 또 전화 하자. 이 눔 시꺄, 쉬는 날에 하숙집에도 좀 놀러 오고. 너 2학기 때도 하숙집에서 지내기로 했다며? 내가 그런 얘기를 은애 입을 통해서 들어야겠어? 하여간 이 성의 없는 놈 같으니라구.”
“하하 미안 미안. 아 맞다. 세란이 누나 시험은 잘 봤대?”
“니가 직접 전화해서 물어봐 이 놈아. 내가 무슨 메신져냐?”
“에이, 그러지 말고 통화하는 김에 가르쳐 주라.”
“몰라, 시험 보긴 했는데 자신은 없는 눈치더라구. 명색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어려운 시험인데 한 번에 되기가 어디 쉽겠냐?”
“그렇구나. 발표는 언제래?”
“10월 말? 그런데 이 놈이 보자보자 하니까.”
“알았어 알았어 하하하. 나중에 다시 전화 하자.”
“오냐.”
영숙이는 전화를 끊고, 세란이의 방으로 올라갔다.
“언니”
영숙이가 세란을 부르며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영숙이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세란이는 침대에 누워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언니, 뭐 해요?”
“응, 공부 한다고 맨날 앉아 있었더니 몸이 좀 무거워서 가볍게 운동 좀 하고 있었어. 응, 무슨 일이야?”
“창식이는 못 간대요. 알바해야 돼서.”
“그래? 그럼 우리 셋이서 놀러 가지 뭐.”
“그럼 어떡해요? 선배들 한 번 소집할까요?”
세란이 웃으며 만류하였다.
“아냐, 그냥 우리 여자들끼리 의리 여행 한 번 가자. 뭐 심심하면 거기서 꼬시면 되지. 우리가 뭐 남자 하나 못 꼬실 주제는 아니잖아. 안 그러니?”
세란이의 말에 영숙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언니. 그럼 우리 셋이서 놀러가요. 민정이 언니한테도 그렇게 말할게요.”
“그랭, 수고행.”
“넹, 쉬세용.”
영숙이는 방에서 PC로 여행 정보를 검색하고 있는 민정이에게도 사실을 알렸고, 그날 저녁 세 사람은 여행의 목적지를 부산으로 정하였다.
“가는 건 어떡해요? 차 빌릴까?”
영숙이의 말에 민정이가 KTX를 타고 가는게 편할 것 같다고 얘기하였다.
“거기까지 운전하고 가면 엄청 피곤할걸? 여섯 시간도 더 걸릴텐데. 그냥 기차 타고 가서 거기서 택시 타고 다니면 되지.”
“그런가. 언니 생각은 어때요?”
“음, 내 생각에도 거기까지 운전하고 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주차하고 그러면 시간도 시간이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클거 같은데? 그냥 기차 타고 가자 영숙아.”
“넹, 그래요.”
세란이가 회비에 대해서 얘기를 꺼냈다.
“음, 회비는 얼마 정도 해야 될까? 아무래도 넉넉하게 갖고 가는 게 낫겠지?”
영숙이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꼽으며 계산을 해 보았다.
“일단 차비가 인당 왕복 10만원 정도 하지 않아요? 거기다 이틀치 숙소 잡고, 맛집 좀 돌아다니고, 나이트고 가고, 배도 좀 타고, 이것저것 할려면 백 만원은 훌쩍 넘을 거니까 인당 못 해도 50만원 정도는 갖고 가야 될 거 같은데요?”
“음, 그런가. 생각보다 비용이 만만치 않네. 그럼 일단 인당 50만원씩 준비하고 남으면 엔분의 1로 나누자. 어때? 혹시 너무 부담 되는 건 아니니?”
“전 괜찮아요.”
그 때까지 세란이와 영숙이의 얘기를 듣고 있던 민정이가 말하였다.
“언니, 영숙아. 이번 휴가 비용은 내가 낼게.”
갑작스런 민정이의 제안에 세란이와 영숙이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래? 그리고 돈이 있어도 그렇지, 한 두푼도 아니고 백 만원도 넘는 돈을 왜 니가 다 내니? 얘는 참.”
“맞어 언니. 오바야 오바. 정 돈 쓰고 싶으면 언니가 회나 한 접시 사라 헤헤.”
두 사람은 민정이의 말을 반 농담으로 받아들였으나, 민정이의 태도는 진지하였다.
“아냐, 내가 진짜 두 사람한테 돈 한 번 쓰고 싶어서 그래.”
민정이의 말을 들은 세란이가 만류하고 나섰다.
“그러니까 우리 뭐 사 주고 싶으면 영숙이 말처럼 회나 한 접시 사. 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 큰 돈을 함부로 쓰고 그러니?”
세란이의 만류에 민정이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언니, 나 돈 많아. 그 동안 알바하면서 두 사람한테 제대로 밥 한 번 안 샀잖아. 그냥 몰아서 쏘는 거니까 그렇게 할게요. 응? 영숙아, 언니 말대로 하자.”
민정이의 말을 들은 영숙이가 대답하였다.
“언니 그렇게 무리하는 거 나도 싫은데. 그냥 밥이나 한 번 사요.”
두 사람의 거듭된 만류에도 민정이 계속 고집을 부리자 세란이가 중재안을 내놓았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이렇게 하자. 민정이가 휴가비로 백 만원 쏘고 모자르면 나랑 영숙이가 나눠 내는 걸로. 어때? 그 이상은 나도 양보 못 해. 영숙이 너는 어때?”
“나야 상관 없죠. 그래도 민정이 언니한테 너무 미안한데. 진짜 언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아냐. 나 알바비 엄청 많이 받았어. 그럼 그렇게 해요. 고마워요 언니, 영숙아.”
민정이 웃으며 세란이를 바라보았다. 민정이의 진심을 알고 있는 세란이는 자신을 보고 웃고 있는 민정이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세 사람이 휴가를 떠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