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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하숙집에서 생긴일-67
휴가 당일, 이른 아침부터 세 사람은 짐을 챙기며 부산을 떨고 있었다.
“언니 언니, 고데기 챙겼어요?”
“응 챙겼어. 화장품하고 로션은 니가 챙겼지?”
“네, 아 참, 선텐 크림 빠졌다. 어쩌죠? 가서 사야 되나.”
“아냐, 나 있어. 내가 챙길테니까 넌 다른 거 점검해.”
“네, 언니.”
겨우 부산에 2박3일 놀러갈 뿐인데 민정이와 영숙이는 큼지막한 캐리어에 짐을 한가득 집어넣고 있었다. 이를 옆에서 보고 있던 세란이 참다 못해 혀를 끌끌 차며 한 마디 하였다.
“얘들아 얘들아, 니들 무슨 이사 가니? 응? 부산에 살러 가? 그냥 대충 좀 해. 갈아 입을 두어벌하고 속옷하고 기초 화장품만 챙겨 가면 되지. 하여간 유난들이야. 쯧쯧.”
세란이의 잔소리를 들은 민정이와 영숙이가 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언니!”
“어머, 깜짝이야. 얘들이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니.”
“언니, 여자는 하다 못해 슈퍼에 생수를 한 통 사러 갈 때도 화장을 해야 되는 법이에욧!”
“그러게. 언니 요새 공부 한다고 스스로한테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어머, 피부랑 머릿결 상한 것 좀 봐. 언니 관리 좀 해야 돼.”
휴가준비 얘기가 엉뚱하게 세란이의 자기관리로 번져 나가자 세란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영숙이는 그렇다 치고, 평소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돌아다니길 즐기던 민정이가 저런 말을 하다니.
“야, 한민정.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꾸몄다고 그러니? 너나 나나 트레이닝복 차림에 쓰레빠 짝짝 끌고 다니던 거 잊었어?”
세란이의 말에 민정이 한숨을 푹 쉬며 말하였다.
“휴, 언니. 그래도 나는 때와 장소를 가려서 입었지. 어디 놀러가고 중요한 자리 가고 할 때는 원래 꾸몄지. 안 그래?”
두 사람과 더 말을 섞었다가는 기분만 상할 것 같은 세란이는 자리를 피하기로 하였다.
“에휴, 모르겠다. 알아서들 해. 30분 안에는 출발해야 되니까 그렇게 알어.”
말을 마친 세란이가 거실로 내려갔다.
“언니, 바다 들어갈 거니까 수영복 챙겨요.”
영숙이가 내려가는 세란이의 뒤에다 소리쳤다.
“벌써 챙겼어 기지배야!”
그 후로도 한참을 부산을 떤 민정이와 영숙이 덕분에 세 사람은 KTX 서울역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뛰어야만 하였다.
“헉헉, 니들 때문에 이게 뭐니. 내가 정말 못 산다. 못 살아.”
기차 출발 시간이 다 되어 가는 마당에 아직도 기차 승강장에도 도착하지 못한 세란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가고 있었고, 그 뒤로 영숙이와 민정이가 큰 캐리어를 낑낑대고 끌며 뒤따르고 있었다.
“학학, 언니. 이거 좀 같이 끌어주면서 얘기 하든가. 헥헥.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
영숙이의 말에 세란이 대꾸하였다.
“얘, 그거 세 사람이 붙잡을 데는 있니? 잔말 말고 빨리 뛰어 기지배야. 기차 놓치겠다 헉헉.”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죽을똥 살똥 달린 세 사람은 간신히 시간에 늦지 않게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에휴 힘들어. 내가 이게 무슨 고생이냐 니들 때문에. 하여간 탔으니까 됐다 됐어 헉헉.”
“기다려 언니 헉헉. 자판기에서 음료수 좀 뽑아올게. 영숙이 너도 마실거지?”
“아, 난 화장실 좀. 같이 가요 언니.”
잠시 후, 민정이가 뽑아온 음료수를 함께 마시며 세 사람은 숨을 돌렸다.
“와, 진짜 나도 늙었나보다. 고거 뛰었다고 그렇게 숨이 차다니.”
세란이의 엄살에 영숙이가 핀잔을 줬다.
“울 언니 진짜 누가 들으면 스물 둘이 아니라 쉬흔 둘은 된 줄 알겠다. 운동을 해요 언니. 운동부족이야 운동부족!”
영숙이의 말을 들은 민정이 웃으며 말하였다.
“어머 얘는 남말 하는 것처럼 말한다 호호. 영숙이 너도 아까 죽을 것 같았거든?”
민정이의 말에 영숙이는 억울하다는 듯 대답하였다.
“민정 언니, 난 언니들보다 콤파스가 짧잖아. 내가 언니들처럼 컸으면 나는 기차 안 타고 부산까지 뛰어갔지. 정말 뭘 모르신다니까.”
영숙이의 허세작렬에 세란이는 마시던 음료수를 뿜을 뻔 하였다.
“하하하 민정아 얘 봐라. 하여간 말로는 우리 영숙이를 당할 수가 없지. 암 하하하.”
“그러게. 하여간 못 당해 진짜.”
영숙이는 두 사람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기지개를 쭈욱 켜며 말하였다.
“으으으으아아아아아악 피곤하다. 언니들은 간 밤에 잘 잤어요? 난 설레어서 한 숨도 못 잤는데. 아침부터 막 달리니까 슬슬 졸린다.”
“나도 늦게 자서 좀 졸리네. 너는 부산 처음이야?”
세란이 영숙이에게 물었다.
“아뇨. 처음은 아닌데 꼬맹이일 때 서너 번 가 보고 처음이에요. 기억도 잘 안 나. 어디 갔었는지.”
“난 부산 처음인데. 나도 설레어서 잠 제대로 못 잤어.”
“나도 늦게 잤는데. 다들 잠을 제대로 못 잤나 보구나. 그런데 혹시 니들 부산에 아는 사람은 있니? 간 김에 겸사겸사 봐야 되는 사람이라도 있어?”
세란이 두 사람에게 묻자 민정이가 먼저 말하였다.
“난 없어요. 난 전부 강원도야.”
“영숙이는?”
“걔 있잖아요. 은애.”
“아, 창식이랑 사귀기로 했다는 애?”
“맞아요. 내려간 김에 걔 얼굴이나 잠깐 볼려고 했는데 오늘 걔 서울로 올라온데요.”
“그래? 창식이 볼려고?”
“뭐, 겸사겸사 온데요.”
“어머, 걔들 초반부터 너무 뜨거운 거 아니니?”
“몰라요. 아주 그냥 둘이 좋아 죽어요. 쳇, 괜히 소개시켜줬어. 은근히 배 아프네 이것들.”
영숙이의 얼굴에 슬슬 심통꽃이 피어 올랐고, 그런 영숙이를 바라보는 세란이와 민정이는 그 표정이 재미있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얘들아, 피곤할텐데 눈 좀 붙이자. 이따가 부산 도착하면 계속 바쁠거야.”
“그래요 언니. 나도 좀 자야겠어. 엄청 피곤하네.”
“나도 좀 자야지. 언니 이따 봐용.”
세란이의 옆에 앉은 영숙이가 세란이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잠을 청하였고, 민정이도 시트를 뒤로 젖히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눈을 감은 세 사람은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꿀잠에 빠져 들었다.
“얘들아 일어나. 영숙아 눈 떠 어서.”
“웅? 으암. 으으으으.”
영숙이는 세란이의 깨우는 소리에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깼다. 길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 영숙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바쁘게 내리고 있었고, 민정이도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고 있었다.
“영숙아, 정신 차려. 얼른 내리자.”
민정이의 말에 영숙이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신의 뺨을 찰싹 때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짐을 챙긴 세 사람은 기차에서 내려 부산역을 빠져 나왔다.